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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이란 무엇인가?
    깨어라!—1993 | 9월 1일
    • 인종이란 무엇인가?

      인종! 이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일부 사람들은 차별과 압제가 생각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증오와 폭동, 심지어 살상이 생각날 것이다.

      미국의 인종 폭동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에 이르기까지, 동유럽의 민족 그룹들간의 전쟁에서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같은 지역의 분쟁에 이르기까지, 인종은 인간의 엄청난 고통과 황폐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무엇에나 관대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서까지 왜 인종 문제는 그토록 감정을 자극하는 쟁점인가? 무엇 때문에 인종 문제가 그토록 많은 혼란과 불공정을 야기하는 도화선이 되는가? 간단히 말해서, 인종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사이 좋게 지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면 인종이 무엇인지, 인종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사실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인종 관계에 역사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먼저 인종에 대해 과학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자.

      인간 분류상의 문제

      세계 곳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체적 특징이 각기 다르다. 다른 점에는 피부색, 얼굴 모양, 모발 모양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신체적 차이로 인종을 구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부색에 주의를 기울이는 표현으로 백인과 흑인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사람들은 라틴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스칸디나비아인, 유대인, 러시아인이라는 말도 쓴다. 이런 후자의 구분은 신체적 특징이 아니라 지리적, 민족적, 혹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구분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인종은 신체적 특징으로만 아니라 관습과 언어, 문화, 종교, 국적으로도 구분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인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인종”(rac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며, 그 단어를 쓸 때마다 인용 부호로 표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으며, 그 대신 “민족 개체군”, “그룹”, “집단”, “종족”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인종”이라는 단어에는 부가적으로 함축된 갖가지 의미가 들어 있어서, 올바르게 명확한 분류를 하지 않고 그 단어를 사용할 경우 종종 논점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흔히 생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인종을 “종의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신체적 특징을 유전받는 아종[亞種]”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인류 내에서 서로 다른 그룹들을 묘사하는 데 어떤 특징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특징을 구분할 만한 요소들로 피부색, 모발의 색과 모양, 눈과 코의 모양, 뇌의 크기, 혈액형 같은 것들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인종을 분류하는 기준으로서 온전히 만족스러운 것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그룹 가운데 모든 구성원이 똑같이 그런 특징을 지닌 그룹은 없기 때문이다.

      피부색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대개 인류를 피부색에 따라 다섯 가지 인종 즉 백인, 흑인, 갈색인, 황인, 적색인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흰 피부에 밝은 색 모발과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을 백인종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위 백인종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모발색과 눈 빛깔, 피부색이 매우 다양하다. 「인류」(The Human Species) 책은 이렇게 알려 준다. “유럽의 인구 집단 중에 구성원 대부분이 한 가지 유형으로 된 집단은 오늘날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집단은 있은 적이 없다.”

      사실, 인류를 분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류의 종류」(The Kinds of Mankind) 책에서 이렇게 지적하는 바와 같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즉 모든 인간이 다른 모든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여러 면으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은 아직도 인류가 정확히 몇 종류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을 이런저런 인종으로 지정하기 위해 무슨 기준을 사용할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다. 일부 과학자들은 정말 연구를 포기하고 문제가 너무 어렵다—해결책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들으면 고개가 갸우뚱해질지 모른다. 동물과 식물을 속(屬), 종, 아종으로 분류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과학자들이 인류를 인종으로 구분하는 데는 왜 그토록 문제를 겪는가?

      “사람의 매우 위험한 통념”

      “신체적 특질과 정신적 특질이 연관되어 있고, 신체적 차이는 지적 능력의 꽤 두드러진 차이와 결부되어 있으며, 이런 차이는 지능 검사와 집단들의 문화적 업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인류학자 애실리 몬터규는 말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은 인종들의 신체적 특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특정 인종이 지적으로 우수하고 다른 인종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몬터규는 그런 생각이 “사람의 매우 위험한 통념”이라고 말한다. 다른 전문가들도 그에 동의한다.

      모턴 클래스와 핼 헬먼은 「인류의 종류」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개개인은 분명히 다르다. 모든 인구 집단에는 천재와 백치가 있다. 그러나 연구를 마친 뒤, 책임진 학자들은 지능 혹은 능력과 관련하여 인구 집단들 사이에 인정할 만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증거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겉모양이 다른 것으로 인해 인종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가? 과연 어째서 인종 문제가 이토록 쟁점이 되었는가? 다음 기사에서 그런 문제를 고려할 것이다.

  • 왜 인종이 그토록 쟁점이 되는가?
    깨어라!—1993 | 9월 1일
    • 왜 인종이 그토록 쟁점이 되는가?

      유사 이래 줄곧 “그들”과 “우리”라는 사상이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지배해 왔다. 많은 사람은 자기 민족만이 모든 일을 올바로 할 수 있는 정상인이라고 확신하였다. 과학자들은 이런 사상을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한다. 즉 오로지 자기 민족과 자기 방법만이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인은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을 모두 “야만인”이라고 부르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야만인”에 해당하는 단어(barbarian)는 외국어가 “바-바”라는 말처럼 그리스인들의 귀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들리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 앞 시대의 이집트인들과 그 뒤 시대의 로마인들 역시 다른 민족보다 자기 민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였다.

      여러 세기 동안 중국 사람은 자기 나라를 중국(中國) 즉 ‘중앙에 있는 왕국’이라고 불렀다. 중국이 우주의 중심은 아닐지라도 세계의 중심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후에, 붉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 불그스레한 살결을 가진 유럽 선교인들이 중국에 오자, 중국 사람은 그들을 “양퀘이즈”(洋鬼子)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처음 발을 디딘 동양 사람은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이상해 보이는 관습 때문에 조롱과 의혹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인류의 종류」(The Kinds of Mankind) 책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믿는 것과, 과학적 연구 결과를 사용하여 그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은 그리 오래 된 편이 아니다. 인류학자 애실리 몬터규는 “본질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신체뿐 아니라 정신이 서로 다른 인종이 있다는 개념은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발전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인종적 우월성이라는 문제가 18세기와 19세기에 그토록 두드러지게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예 무역과 인종

      주된 이유는 그 시기에 돈벌이가 잘 되는 노예 무역이 한창 성행하여, 아프리카인 수십만 명이 강제로 유럽과 아메리카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기 때문이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일쑤였으며, 남자, 여자, 어린이가 세계의 서로 다른 지역으로 보내져 두 번 다시 서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노예 상인들과 노예 소유주들은 그런 비인간적 행위를 어떻게 정당화하였는가?

      아프리카 흑인이 본질적으로 열등하다는 견해를 퍼뜨림으로써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나는 으레 모든 흑인을 미심쩍게 여긴다. 대체로 다른 모든 인종은 본질적으로 백인보다 열등하다.” 사실, 흄은 “[흑인] 가운데서는 어떤 뛰어난 창작물도, 어떤 예술도, 어떤 과학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주장이었다. 「월드 북 백과 사전」(1973년판)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수백년 전 고도로 발달한 흑인 왕국들이 아프리카 곳곳에 있었다. ·⁠·⁠· 12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서아프리카의 팀부크투에서 흑인-아라비아인 대학교가 융성하였으며 스페인, 북아프리카, 중동 전역에 걸쳐 유명해졌다.” 그렇지만, 노예 매매에 가담한 사람들은 흄 같은 철학자들의 견해 즉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고, 실상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까지 하는 견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종교와 인종

      종교 지도자들은 노예 상인들의 인종주의 견해에 상당한 뒷받침을 해주었다. 일찍이 1450년대에 로마 가톨릭 교황들은 회칙을 통해 “이교도”와 “불신자”의 “영혼”이 “하느님의 왕국”을 위해 구원되도록 그들을 정복하고 노예로 삼는 것을 승인하였다. 교회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초기 유럽의 탐험가들과 노예 상인들은 토착민들을 잔혹하게 다루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노예제와 인간의 진보」(Slavery and Human Progress) 책은 이렇게 말한다. “1760년대와 그 뒤 수십 년 동안에도, 가톨릭과 성공회, 루터 교회, 장로 교회, 개혁 교회의 교직자와 신학자들은 흑인 노예제를 용인하였다. 현대의 어떤 교회나 분파도 성원들에게 흑인 노예를 소유하거나 매매하는 일조차 하지 말라고 권유하려 하지 않았다.”

      일부 교회들은 그리스도교인의 사해 형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인종 논쟁에 부채질하는 가르침을 조장하였다. 예를 들어, 「유대 백과 사전」(Encyclopaedia Judaica)은 이렇게 기술한다. “기나긴 투쟁과 신학 토론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만난 토착 인종이 영혼을 지닌 사람임을 인정하였다.”

      이 말에는 그런 토착 인종에 속한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 그들의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한, 그들을 신체적으로 어떻게 다루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그리고 흑인의 상황에 대해 종교 지도자들 다수는 아무튼 흑인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그런 주장을 증명하려고 성구를 잘못 적용하였다. 교직자들인 로버트 제이미슨, A. R. 포셋, 데이비드 브라운은 그들의 성서 주석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라[창세기 9:25]—이 선고는 가나안 사람의 멸망으로, 이집트의 쇠퇴로, 함의 후손인 아프리카인의 노예 상태로 성취되었다.”—「성경 전서의 주석, 비평, 해설」(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흑인종의 조상이 저주받았다는 가르침은 결코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다. 사실 흑인종은 구스의 후손이지 가나안의 후손이 아니다. 18세기에 존 울먼은, 흑인의 천부 인권을 박탈하여 노예로 삼는 일을 정당화하려고 성서에 나오는 그 저주를 이용하는 것은 “확고한 원칙에 따라 살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왜곡된 억측”이라고 논증하였다.

      사이비 과학과 인종

      사이비 과학 역시 흑인이 열등한 인종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하려는 노력에 한몫 하였다. 19세기 프랑스 저술가 조제프 드 고비노가 지은 「인종의 불평등에 관한 에세이」(Essay on the Inequality of Races) 책은 뒤이어 나온 그런 유의 많은 저작물의 기초가 되었다. 그 책에서 고비노는 인류를 별개의 세 인종으로 구분하면서, 우수한 순서로 백인, 황인, 흑인을 꼽았다. 그는 각 인종의 독특한 특성이 혈액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인종간의 결혼으로 혼혈이 되면 우수성이 떨어지고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고비노는 그 자신이 아리안족이라고 칭한,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순수 백인종이 존재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문명과 산스크리트어를 인도에 소개한 것도 아리안족이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확립한 것도 아리안족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하지만 열등한 지방 민족과 통혼하는 일로 인해 한때 영광스럽던 그런 문명이 사라지면서 아리안 인종의 특질과 훌륭한 특성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순수 아리안족에 가장 가까운 민족을 북유럽인 즉 노르딕인 가운데서, 확대하면 게르만 민족 가운데서 볼 수 있다고 고비노는 단정하였다.

      고비노의 기본 사상—인종의 세 부류, 혈통, 아리안 인종—에는 과학적 근거가 조금도 없다. 그래서 오늘날의 과학계는 그런 사상을 완전히 배격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상을 재빨리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영국 사람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이 있다. 이 사람은 고비노의 사상에 매료된 나머지, 독일에 정착하여 오로지 게르만족을 통해서만 아리안 인종의 순수성을 보존할 희망이 있다는 주장을 지지하였다. 짐작할 수 있듯이, 체임벌린의 저술물이 독일에서 널리 읽혔으며, 그 결과 추악한 일이 벌어졌다.

      인종주의의 추악한 결과

      아돌프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게르만 인종이야말로 세계를 지배하도록 운명이 정해진 우수한 아리안 인종이라고 단언하였다. 히틀러는 이 영광스런 운명에 장애 요인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독일 경제 파탄에 대한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유럽의 다른 소수 민족을 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이 인간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어두운 장이 되었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바로 고비노와 체임벌린의 사상을 포함하여 인종주의 사상이 낳은 파멸적 결과다.

      하지만 그런 추악한 사태가 유럽에만 있은 것이 아니다. 대양 너머 이른바 신세계에서도 그런 유의 근거 없는 사상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쳐 무고한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끝난 뒤, 마침내 아프리카 노예들이 자유롭게 되었으나, 여러 주들에서는 일반 시민이 누리는 특권 중 많은 부분을 흑인이 누리지 못하게 하는 법을 정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백인 시민들은 시민의 의무나 행정에 참여할 지적 능력이 흑인에게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인종적 감정이 참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을 인종간의 결혼 금지법과 관련된 한 사건에서 예시한다. 그 법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을 금하였다. 그 법을 어긴 남녀에게 형을 선고하면서, 한 판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종을 백인, 흑인, 황인, 말레이인, 적색인으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각기 다른 대륙에 두셨으므로, 그분의 마련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그런 결혼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오.”

      판사가 이 말을 한 때는 19세기가 아니었고, 장소도 원시적인 지역이 아니었다. 때는 1958년이었으며, 장소는 미국 국회 의사당에서 불과 100킬로미터도 채 안 떨어진 곳에서 그런 판결을 한 것이다! 사실 196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미국 대법원은 인종간의 결혼을 금하는 모든 법을 폐지하였다.

      그런 인종 차별—학교, 교회, 기타 공공 기관에서의 분리 그리고 고용, 거주지에서의 차별—법으로 인해 초래된 소요 사태, 항의 시위, 폭력은 미국과 다른 여러 지역에서 일상사가 되었다. 인명 피해와 재산 파괴는 덮어두고라도 그 결과로 빚어진 괴로움, 증오, 개인적 치욕과 고통은 이른바 문명 사회에 수치와 불명예로 남을 뿐이다.

      이렇듯이 인종주의는 인간 사회를 괴롭히는 매우 분열적인 힘이 되었다. 마땅히 우리 모두는 자기 마음을 살펴보고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공언하는 가르침을 무엇이든 배척하는가? 나는 내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인종적 우월감을 말끔히 없애려고 노력하는가?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도 적절하다. 오늘날 그토록 만연해 있는 인종적 편견과 긴장이 제거될 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가? 국적, 언어, 관습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가?

      [7면 삽화]

      많은 백인은 흑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았다

      [자료 제공]

      Reproduced from DESPOTISM—A Pictorial History of Tyranny

      [8면 삽화]

      나치의 말살 수용소는 인종주의 사상이 낳은 파멸적 결과다

      [자료 제공]

      U.S. National Archives photo

  • 모든 인종이 함께 평화롭게 살 때
    깨어라!—1993 | 9월 1일
    • 모든 인종이 함께 평화롭게 살 때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니라.]” (사도 17:26) 인간 가족의 기원에 대해 성서는 이렇게 간단히 말한다.

      그 말은 온 인류가 어디에 살든지 혹은 어떤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든지 하나의 공통 조상에게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류의 모든 족속”은 아무리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해도, 능력과 지능에 관한 한 잠재력이 같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인종이나 국적에 속한 사람은 다 평등하다.—사도 10:34, 35.

      성서의 견해가 정확하다면, 인종 차이에 근거한 온갖 편견과 불공정은 제거될 희망이 있다. 더 나아가, 인간 가족의 기원과 관련하여 성서가 정확하다면, 논리적으로 보건대, 성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류가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지식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면, 사실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성서 기록은 과학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과학적 증거

      인류학자들인 R. 베네딕트와 G. 웰트피시가 지은 출판물 「인종」(The Races of Mankind)은 이렇게 기술한다. “모든 인종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담과 하와에 관한 성서 이야기는 오늘날 과학이 보여 준 같은 진리 즉 지상의 모든 족속은 단일 가족이며,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여러 세기 전에 말해 주었다.” 이 필자들은 또한 “한결같은 인체의 정교한 구조는 ·⁠·⁠· 모든 사람이 공통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도저히 ‘우연히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지적한다.

      컬럼비아 대학교 동물학 교수 L. C. 던이 지은 「인종과 생물학」(Race and Biology) 팜플렛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은 신체의 근본 특징에서 다 비슷하므로 단일 종(種)에 속함이 분명하다. 모든 그룹의 성원들은 서로 결혼할 수 있고 실제로 결혼한다.” 계속해서 그 팜플렛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독특하며 다른 모든 사람과 소소한 면에서 다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사람이 사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물려받은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적 증거는 명확하다.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우월한 인종이나 열등한 인종, 순수 인종이나 혼합 인종 같은 것은 없다. 피부색이나 모발색, 눈의 빛깔—일부 사람들이 인종적으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것—같은 특징은 개인의 지능이나 능력의 지표가 아니다. 그런 특징은 유전으로 물려받은 결과다.

      사실, 인종간의 차이는 아주 적다. 햄프턴 L. 카슨이 「유전과 인간 생명」(Heredity and Human Life)에서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다. “우리가 직면하는 자가 모순은 개개 인간 집단이 외부적으로는 다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실제로 한 가족을 형성한다면, 왜 끔찍한 인종 문제가 존재하는가?

      왜 인종 문제가 있는가?

      인종주의가 존재하는 근본 이유는 첫 인간 부모가 후손에게 나쁜 출발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고의로 하나님께 반항하였으므로 불완전하고 결함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아담의 불완전성—악으로 향하는 이 경향—이 후손에게 이어졌다. (로마 5:12) 그에 따라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기심과 교만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특성은 인종간의 분쟁과 혼란을 야기하였다.

      인종주의가 존재하는 다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저버림으로 성서에서 사단 곧 마귀라고 하는 악한 영체의 지배 아래 들어간 데 있다. “온 천하를 꾀는” 사단의 영향력 아래서 인종 문제에 관해 의도적으로 사람을 속이려는 노력이 종종 있었다. (계시 12:9; 고린도 후 4:4) 자민족 중심주의—자기 민족이 우월하다는 견해—가 맹렬한 열기를 띠었고, 수많은 사람은 알게 모르게 그런 열기에 휩싸여 재난을 초래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인종 문제의 원인이 된, 인종에 대한 온갖 거짓 가르침을 퍼뜨렸다.

      그러므로 인류가 연합하려면, 모든 인간이 우리가 참으로 한 가족이며 하나님께서 실제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음을 믿어야 한다. (사도 17:26) 더 나아가, 모든 인종이 함께 평화롭게 살려면, 인간사에서 사단의 영향력이 제거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가 올 것인가?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무슨 근거라도 있는가?

      인종 편견을 없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심으로 인종 편견이 어떻게 제거될 것인지를 밝혀 주셨다. (요한 13:34, 35) 이 사랑은 특정 인종이나 인종들에 속한 성원에게만 나타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한 제자는 “형제들의 총연합체에 대한 사랑을 가지”라고 권하였다.—베드로 전 2:17, 「신세」.

      이 그리스도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 성서는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강력히 권함으로 그 방법을 설명한다. (로마 12:10) 이렇게 할 때, 과연 상태가 어떠할지 생각해 보자! 각 사람은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을 진정한 품위와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며, 다른 사람을 얕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남을 낫게 여기게 된다.’ (빌립보 2:3) 그처럼 진실한 그리스도인 사랑의 영이 있을 때, 인종 편견의 문제는 해결된다.

      인종 편견을 가르침받은 사람이 사단의 영감을 받은 그런 사상을 씻어 버리려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 1세기에 그리스도인 회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비길 데 없는 일치성을 즐기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 3:28) 실로, 그리스도의 참 추종자들은 진정한 형제 관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증인—450만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조직—가운데서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모든 증인이 이 불경건한 제도에서 배운 편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한 흑인은 동료 백인 증인에 대해 솔직하게 이렇게 지적하였다. “나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인종적 우월감을 나타내는 태도의 잔재를 감지하게 되며, 개중에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긴밀한 교제를 할 때 거북함을 나타내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이렇게 인정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은 지상의 어떠한 사람들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인종적 편견을 벗어버렸다. 그들은 인종에 관계없이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때때로 나는 백인 증인들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는 마음이 너무 감동되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인종간의 연합을 즐기는 소수—그 수가 수백만에 달한다 해도—가 과연 인종적 우월감이라는 사단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을 크게 달라지게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인종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인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기뻐할 만하게도, 여호와께서는 이제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왕국을 통해 땅에서 모든 불공정을 없애고 인종 문제이든 다른 무슨 문제이든 이기적으로 차별과 증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실 것이다. (다니엘 2:44; 마태 6:9, 10)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의 관리 체제 아래 완벽한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모든 인종이 참으로 연합하게 될 것이다. 그 교육이 진행됨에 따라 모든 인종은 인종 차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 곧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계시 21:4, 5.

      당신은 참 형제 관계가 편만할 때, 모든 인종이 함께 평화롭게 살 때를 간절히 바라는가?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곳인, 근처의 왕국회관에 참석할 것을 권한다. 여호와의 증인이 모든 인종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기 바란다.

      [10면 삽화]

      곧 어디서나 모든 인종이 함께 평화롭게 살 것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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