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비밀이 아니다
“이 비밀 지키고 남에게 일거주지마요”
현대식 맞춤법에 따라 다듬어지지 않은 위와 같은 경고를 서두로 하여, 윌리엄 H. 모리는 미국 남북 전쟁 중인 1863년, 버지니아 주의 애퀴아크릭에서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젊은 아내 일라이자 앤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모리는 24세로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으며, 펜실베이니아 주의 해노버 군구(郡區) 출신인 사병이었다. 모리는 북군, 즉 미국 연방군 편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의 적은 누구였는가? 미국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연합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워싱턴 D.C.의 연방 정부(북부)가 자기들의 경제 문제에 간섭한다고 주장하였다. 모리가 비밀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이 일의 배경을 알아보기로 하자.
미국의 남북 전쟁은 남부의 7개 주가 미국 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후인 1861년에 일어났으며, 곧 이어 4개 주가 더 탈퇴하였다. 이 11개 주가 남부 연합을 형성하였다. 노예 제도의 존속이 남부와 북부 사이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였다. 남부의 부유한 대농장주들의 주장은, 북부는 수천 명의 유럽 이민자들로 그 경제가 지탱되기 때문에 노예 제도를 폐지해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부의 경제는 목화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남부의 4백만에 가까운 노예들이 있어야만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소신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1862년 8월에 이렇게 썼다. “이 전쟁에서 나의 최대의 목표는 미국 연방을 살리려는 것이지, 노예 제도를 존속시키거나 폐지시키는 것이 아니다. 노예를 전혀 해방시키지 않고서도 미국 연방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또한 노예를 모두 해방시켜야만 미국 연방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 말을 한 지 얼마 안 된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남군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모든 노예의 해방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남부의 노예 소유주들에게 경제적으로 굉장한 타격을 주었다. 그들의 판단으로,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수십억 달러 상당의 노예라고 하는 소유 재산”을 잃었다.
이 끔찍한 내란으로 1861-65년 사이에 수많은 부상자는 물론, 최소한 61만 8000명에 달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그 어느 전쟁에서보다도 더 많은 미국인이 희생된 것이다. 윌리엄 모리가 1863년 1월 25일에 일기를 쓰면서 비밀 편지를 썼을 때는 그 자신이 바로 이러한 전쟁에 휘말려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평범한 군인으로서 그가 이 전쟁에 대해 비밀리에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격분에 찬 편지
모리는 아내가 보내 준 “담배와 기타 물건들”에 대해 아내에게 감사하는 말로 편지를 시작한 다음, 이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믿고 보기에 이 전젱[전쟁]은 순저니 사기에다 돈벌기 전쟁이오 모두가 최대하느로 돈을 벌려고 하고 또 그게 전쟁을 계속하는 유일한 목적인지라 우리는 이제 이 전젱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보고 있소 내가 다시 집에 갈 수만 있다면 누구든 나한테 다시 입대하라고 입을 떼기만 하면 그 자를 때려 누피겠소 우리는 여기서 개처럼 취급당하고 있소 많은 개의 형편이 우리보다 훨씬 나을거요 [당신에게] 하는 말이지만 요 넉 달치 봉급만 있어도 도망갈 시도를 해보겠소 매일매일 우리에 대한 대접이 더 나뻐지고 있소.”a
모리는 자기들이 주둔해 있는 곳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이 곳은 아주 멋지고 경치도 아주 좋소 퍼토우먹 [강]으로 배가 오는 것도 볼 쑤 있소 ··· 여기서 차[기차]에다 짐을 시르며 여러 날 아주 고되게 일하고 있는데 먹을 건 반바께 안 주오 아주 많은 병사들이 자기들 돈만 받으면 도망갈꺼라고 얘기하고 있소 ··· 우리는 마냥 진군하면서 항상 고된 일만 하고 있소.”
그러나 이러한 궁핍은 실제로 전투를 하고 있는 군인들이 겪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남부의 장군 D. H. 힐은 한 전투에서 6500명의 병사 중 2000명을 잃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육이었다.” (「회색 여우」[Gray Fox], 버크 데이비스 저) 북부와 남부의 징병 상태는, 돈 있는 사람은 면제받거나 돈을 주고 군 복무에서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부의 일부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은 “부자들의 전쟁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라고 불평하였다. 모리 상등병은 전쟁 참여 보상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제과점을 차렸다.
조지아 주의 앤더슨빌과 같은 포로 수용소로 가게 된 사람들은 흔히 아주 지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수용소 분위기가 아주 침체되어 있었다. 빈약한 위생 시설, 빽빽이 들어찬 포로들, 악천후에의 노출, 불충분한 식사 등이 건강에 나쁜 환경을 조성해 이환율 및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았다.” (「앤더슨빌」, 팜플렛) 더 심한 악조건은, 특공대라고 하는 잡범들의 무리가 자기들도 포로이면서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약탈과 폭력을 마구 자행”하도록 부추겼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앤더슨빌에서 최소한 1만 2920명의 군인이 사망하였다.
1995년의 인류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것이 있는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웠는가? 르완다, 라이베리아, 발칸 반도 및 그 밖의 수많은 분쟁 지역에서 벌어진 소름 끼치는 대량 학살은, 최근에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비인도적 행위의 표본이다.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 신봉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찬 모범과 일치하게 살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만이 중립을 지키며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거나 행하기를 거부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이사야 2:4; 미가 4:3.
[각주]
a 맞춤법이 틀린 것은 철자가 형편 없고 구두점도 빠져 있는 편지 원본을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