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하나님을 숭배해야 하는가?
먼저, 홀로 숭배받아 마땅한 한 하나님은 누구인가? 성서는 매우 직접적으로 대답한다. 계시록에서는 “우리 주[여호와, 신세]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단언한다. (계시 4:11) 그렇다. 창조주 여호와는 우리의 숭배를 받기에 합당한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은 잠시 후에 다시 고려하기로 하고, 먼저 인류가 숭배했던 다른 신들에 관해 살펴보자.
모든 거짓 신의 배후
사람들이 여러 신을 섬기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어느 신들에게 바치는 숭배든지—창조주 여호와께 바치는 숭배를 제외하고—모두 단 하나의 신의 목적에 이바지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을 읽어 보자. 그 도시에서는 음탕한 아프로디테로부터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이 숭배를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신 배후에 사실상 단 하나의 사악한 세력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기록하였다. (고린도 전 10:20) 그렇다. 이교도 고린도인들은 귀신 곧 악귀들을 숭배하였다.
악귀들은 반역으로 인해 생겨났다. 악귀들 중에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자는 옛날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했던 천사 피조물이었다. (창세 3:1-6; 요한 8:44)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그 피조물은 창조주의 주권에 대항하여 반역하였다. 그후에 그는 “반항자”를 뜻하는 사단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는 다른 영물들이 그의 반역에 가담하였다. 그들 역시 악귀들이 되었는데, 사단은 “귀신[악귀들, 신세]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 12:24, 26) 계시록에서, 이 악귀들은 사단의 “사자들”로 불린다. (계시 12:7) 그러므로 악귀들을 숭배하는 것은 사단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사단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이 그의 권세 안에 있다고 말했으며, 바울은 그를 “이 세상 신”이라고 불렀다. (요한 1서 5:19; 고린도 후 4:4) 그러므로 여호와 이외에 그 어느 신을 숭배하더라도 실제로는 사단을 숭배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사단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사단의 목표는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을 유혹하여 여호와를 반역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온 천하를 꾀는” 자이므로, 절대 다수의 경우에 성공을 거두었음이 분명하다. (계시 12:9) 그러나 언제나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분투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릇된 숭배의 열매
한 가지로, 그들은 여호와 이외의 신들을 숭배할 때 자신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안다. 북아프리카 고대 카르타고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에서 어린이 묘지가 발견되었다. 그곳에는 페니키아의 신 바알에게 희생으로 바쳤던 어린이들의 유골이 있었다. 어린이 희생은 카르타고인들이 바알 숭배의 결과로 치른 끔찍한 대가였다. 중세 가톨릭교 역시 피에 굶주린 십자군과 잔인한 종교 재판을 통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초래함으로써 그 대가를 요구하였다. 콜럼버스 시대 이전 아메리카에서 행하던 잉카 신들의 숭배에는 수천 명을 죽이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다 최근 들어서, 여러 형태의 숭배로 인해 인도에서는 대량 살육 사태가 벌어졌으며, 중동과 북아일랜드에서는 정치 문제가 심화되었다. 무지와 미신과 두려움 역시 사람이 많은 신을 숭배한 결과로 치른 대가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반면에, 여호와를 숭배할 때는 오직 유익만 따른다. 한 가지로, 그분은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시다. (계시 10:6)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숭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특성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숭배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그분을 숭배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였다. (요한 1서 4:8) 충실한 사람 욥은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다고 말하였다. (욥 9:4) 모세는 그분에 관해 “반석, 그분의 활동은 완전하시다.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다. 충실하신 하나님, 그분에게는 불공정이 없으시며, 그분은 의로우시고 곧으시다”라고 노래하였다. (신명 32:4, 신세) 누가 그런 하나님 섬기기를 주저하겠는가?
그뿐 아니라, 성서는 “경건의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고 지금의 생명뿐만 아니라 장차 얻을 생명까지도 약속해 줍니다”라고 알려 준다. (I 디모데 4:8, 새번역) 얼마나 참된 말인가! 여호와께서는 인류에게 유익이 있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자신의 창조물을 위한 아름다운 집으로 땅을 준비하셨고, 삶을 즐길 수 있는 풍부한 마련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계속해서 생명이 지속되도록 인류에게 필요한 물질을 모두 공급하신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비추어주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5, 새번역.
그러나 ‘지금의 생명의 약속’은 그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만족과 성취감을 준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충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도록 도우신다. 그분은 성서를 통해서 독신들, 부부들, 자녀들—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지침을 주신다.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가 사단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세상에서 생활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그분은 신뢰할 만한 실용적 지혜를 주시어 모든 상황에서 도움을 베푸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으로 그분을 숭배한다면, 우리는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빌립보 4:7, 신세.
또한 ‘장차 얻을 생명의 약속’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영원한 생명! 여호와 외에 어느 신이 그러한 것을 약속하고 또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 그 웅대한 선물을 받는 사람들의 최종 상태가 계시록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4, 5) 진실로, 장차 누릴 생명의 전망을 고려할 때 여호와 섬기기를 원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하나님을 숭배해야 하는가? 오직 창조주 여호와만 숭배해야 한다. 모든 신들 중에서 오직 그분에게만 이러한 말이 적용된다. “주[여호와, 신세]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계시 15:3, 4) 시편 필자의 이러한 권고에 응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들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6면 삽화]
사단이 인류를 유혹하여 숭배하게 한 얼마의 신들
[7면 삽화]
장차 누릴 생명의 전망을 고려할 때 여호와 섬기기를 원하는 것은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