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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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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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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파87 7/15 15-20면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언 15:29.

1.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한 가지 조건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모든 요구 조건은 지혜로우며 공의로우며 사랑이 많음을 나타내는 것들입니다. 그 요구 조건들은 결코 짐스러운 것들이 아닙니다. (요한 1서 5:3) 그 가운데는 기도에 관한 요구 조건들이 있읍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우리가 기도와 일치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이 우리의 탄원과 간구를 호의적으로 고려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읍니까?

2, 3.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의 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도의 이 부면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도 이 부면을 간과하였읍니다. 바로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대표하는 예언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셨읍니다.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라.]” (이사야 1:15-17) 그렇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해야 하였읍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3 사실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진리를 반복적으로 생각나게 해줄 필요가 있음을 아셨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읽게 됩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하나님께] 가증하니라.”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잠언 28:9; 15:29)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예레미야는 슬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주[여호와]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셨나이다.]” (애가 3:44) 영감을 받아 말한 미가의 다음과 같은 경고가 참으로 성취되었읍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찌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미가 3:4; 잠언 1:28-32.

4. 심지어 여호와의 백성중에서도 자기의 기도와 일치하게 행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4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와 일치하는 생활을 할 필요가 있읍니다. 오늘날에도 이 사실을 강조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읍니까?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리스도교국 내의 상태 때문만이 아니라 여호와께 헌신한 백성 중 일부 사람들의 상태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지난 해에 좋은 소식을 전파한 3,000,000명 이상의 전도인 중에서 37,000명 이상이 그리스도인에게 합당치 않은 행실로 인해 제명되었읍니다. 그 수자는 약 80명당 한명의 비율에 해당합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적어도 이따금씩은 틀림없이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하였읍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읍니다! 심지어 이런 저런 형태의 징계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수십년 동안 전 시간 봉사를 해온 일부 장로들도 있었읍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참으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여, 자기를 만드신 분에게 기도가 가납되지 않게 만드는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고린도 전 10:12.

기도에 행함이 따라야 할 이유

5. 여호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려면, 우리는 자신의 진실성을 어떻게 증명해야 합니까?

5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려면, 우리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깨끗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로 구한 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기도만으로는 정직한, 지적인 노력을 대신할 수 없읍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교훈을 적용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여호와께서 대신 해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근거를 가지시도록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기꺼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잘 말했듯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기꺼이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6. 우리가 기도해야 할 어떠한 두 가지 이유가 있읍니까?

6 그러나 ‘우리가 기도로 구하는 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 기도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읍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적어도 두 가지 있읍니다. 첫째는,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분은 모든 훌륭하고 완전한 선물—햇빛, 비, 결실의 계절, 그리고 그외 많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 5:45; 사도 14:16, 17; 야고보 1:17) 둘째로,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의 성공 여부는 여호와의 축복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27:1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고린도 전서 3:6, 7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말도 같은 점을 지적해 줍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고대의 본들

7, 8. (ㄱ) 기도에는 행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야곱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그의 생애 중에 있었던 어떤 일이 알려 줍니까? (ㄴ) 다윗 왕은 이 점에 있어서 어떤 본을 보여 주었읍니까?

7 성경은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이 기도로 구한 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였음을 알려 주는 사례를 여러 차례 알려 줍니다. 몇가지 대표적인 본들을 고려해 봅시다. 아브라함의 손자였던 야곱이 장자가 받을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일 듯이 미워했읍니다. (창세 27:41) 약 20년 후에 야곱은 대식구와 큰 무리의 가축을 거느리고 밧단아람에서 자기가 났던 땅으로 돌아오다가, 형 에서가 자기를 맞이하러 나온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야곱은 에서가 품었던 적의를 생각해 내고 형의 분노에서 보호해 주실 것을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였읍니까?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 앞서 많은 선물을 보냈읍니다. 그는 이렇게 추리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풀리라.]” 그리고 그렇게 되었읍니다. 두 형제가 만났을 때, 에서는 야곱을 안고 입맞추었기 때문입니다.—창세 32, 33장.

8 우리가 기도로 구하는 것을 위하여 행하는 면에 있어서 또 다른 본이 되는 사람은 다윗입니다. 자기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가담하였읍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히도벨의 모략이 수포로 돌아가게 해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였읍니다. 다윗은 그렇게 되도록 기도만 하였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의 충성스러운 모사인 후새에게, 압살롬에게 가담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라고 지시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일이 바로 그렇게 되었읍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좋지 않은 모략에 따라 행동하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사무엘 하 15:31-37; 17:1-14; 18:6-8.

9. 느헤미야는,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인식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9 우리에게 훈계가 될 만한 또 다른 본은 느헤미야의 본입니다. 그에게는 수행해야 할 대규모 계획—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많은 적들이 그를 적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었읍니다. 다음 내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느헤미야는 기도와 실천 두 가지를 다하였읍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였느니라.]” 그때로부터 느헤미야의 청년들 중 반은 방비를 하고, 나머지 반은 성벽을 건축하였읍니다.—느헤미야 4:9, 16.

예수의 본

10, 11.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도와 일치하게 행하셨음을 알려 주는 어떤 본을 보여 주셨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행하는 일에 관한 훌륭한 본을 세우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읍니다. (마태 6:9)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한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셨읍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만 하시지 않았읍니다. (요한 12:28)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셨읍니다.—누가 5:23-26; 17:12-15; 요한 17:4.

11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여호와 하나님]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마태 9:37, 38)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셨읍니까?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직후에 12명의 사도를 짝을 지어 전파 여행, 곧 “추수” 여행을 하도록 내보내셨읍니다. 후에 예수께서는 70명의 복음 전파자를 보내시어 같은 일을 하게 하셨읍니다.—마태 10:1-10; 누가 10:1-9.

원칙을 적용함

12.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와 어떤 관련이 있읍니까?

12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언행이 일치하기를, 곧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하시며, 그렇게 하여 우리의 진실성을 증명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6:11) 그러므로 그분의 추종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그런 취지의 탄원을 합당하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탄원과 관련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읍니까? 결코 기대할 수 없읍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읽게 됩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경우에 따라서는 기도로도—“원하여도 얻지 못하[느니라.]” (잠언 13:4)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후서 3:10에서 같은 점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기꺼이 일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지혜롭게도 “일하기 싫어”한 사람은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한 점입니다. 일하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아프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 일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일하고 싶어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합당하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성령을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여호와께서 들어주시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 예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그분의 성령을 구하라고 교훈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확증해 주신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주려고 하는 것 이상으로 기꺼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누가 11:13) 그러나 우리 자신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령을 우리에게 기적을 통해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할 수 있읍니까? 결코 그럴 수 없읍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데 더하여,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자신의 말씀과 별도로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땅에서 사용하고 계시는 통로, 곧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에 의해 대표되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우리가 무시하는 경우에도 성령을 받을 것을 바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종”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읽은 내용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배운 것을 적용하는 방법도 모를 것입니다.—마태 24:45-47.

14, 15. (ㄱ) 여호와께서 지혜를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려면, 우리가 어떻게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ㄴ) 이 사실이 솔로몬 왕의 예에서 어떻게 증명됩니까?

14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은 예수의 이부동생인 제자 야고보의 다음과 같은 말에도 적용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 1:5; 마태 13:5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적을 사용하여 이 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이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시 25:9)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온유한 자”를 가르치십니까?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치십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잠언 2:1-6에 다음과 같이 지적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면] ·⁠·⁠·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심이라.]”

15 솔로몬 왕이 기도로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기적을 통해 들어주셨을 때에도,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었읍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자기의 율법책을 기록하여, 그것을 매일 읽고, 자기 생활에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아내를 더 두고 말들을 늘림으로써 그 지시에 상반된 행동을 취하였을 때, 그의 행동은 더 이상 기도와 일치하지 않았읍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배교자가 되었으며, “어리석은 자”로서 죽었읍니다.—시 14:1; 신명 17:16-20; 열왕 상 10:26; 11:3, 4, 11.

16. 우리의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기도에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점을 어떤 예가 알려 줍니까?

16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은 우리가 깊이 젖어 있는 어떤 이기적인 습관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에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한 파이오니아 자매는 자기가 TV 연속극에 중독되어,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연속극을 봤다는 것을 시인하였읍니다. 이러한 부도덕한 TV 프로그램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지역 대회의 한 연설을 통해 배우고 나서, 그 자매는 이 문제를 기도로 하나님께 가지고 갔읍니다. 그러나 그 습관을 극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 자매가 말한대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읍니다. ‘나는 그 습관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서는, 그대로 그 연속극 프로그램을 보곤 하였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유혹을 받지 않고자 하루 종일 야외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였읍니다. 마침내 나는 오전에 TV를 끄고는 하루 종일 켜지 않을 정도가 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 자매는 자기의 약점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에 더하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기도와 우리의 증거 활동

17-19. (ㄱ) 여호와의 증인이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해 왔음을 무슨 사실이 알려 줍니까? (ㄴ) 같은 점을 지적해 주는 어떤 개인적인 예가 있읍니까?

17 왕국 전파 사업이야말로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부면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 모두는 추수꾼이 증가할 것을 기도로 구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나라와 지역마다 굉장한 증가를 해왔읍니다. 한 가지 예만 살펴봅시다. 1930년에는 칠레에서 전파하던 여호와의 증인이 단 한명 밖에 없었읍니다. 현재는 그 한명이 천명 정도가 아니라 30,000명 정도가 되었읍니다. (이사야 60:22) 이것은 단지 기도의 결과일 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함도 관련되어 있었읍니다. 1986년만 해도 칠레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은 전파 활동에 6,492,000시간 이상을 바쳤읍니다!

18 전파 활동이 금지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인은 증가하기를 기도로 구할 뿐만 아니라 지하로 들어가서 계속 전파 활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역에서도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이 그러한 당국의 박해를 받고 있는 33개 나라에서 그들은 1986 봉사년도에 전파 활동에 32,600,000시간 이상을 바쳤으며, 4.6퍼센트나 증가한 것에 대해 즐거워하였읍니다!

19 물론,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은 개인적으로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가정 성서 연구를 한건 갖게 해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할지 모르지만, 연구를 갖고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읍니다. 한 파이오니아는 그러한 경험을 하였읍니다. 성서 연구가 한건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자매는 더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읍니다. 그 자매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였읍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의 봉사의 직무를 세심하게 살펴보았으며, 자기가 재방문을 하면서 가정 성서 연구를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이 면에서 계속 노력하여, 그 자매는 곧 두건의 성서 연구를 더 갖게 되었읍니다.

20.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읍니까?

20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예는 얼마든지 있읍니다. 이를테면, 가족이나 회중 내에서의 개인적인 관계와 관련된 경우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앞에서 나온 예들은 기도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려 주기에 충분합니다. 이것은 매우 논리적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탄원을 호의적으로 고려하실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시기를 기대하려면, 우리의 기도와 일치하게 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참으로 여호와의 원칙들은 지혜로우며 공의롭습니다. 그 원칙들은 이치적이며, 이 원칙들과 일치하게 행동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기억하십니까?

◻ 고대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기도에 관한 어떤 요구 조건을 간과했읍니까?

◻ 우리가 바라는 것을 기도로 구할 뿐 아니라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비이치적인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 여호와의 종들이 자신들이 기도로 구하는 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어떤 고대의 본들이 알려 줍니까?

◻ 하나님의 성령과 지혜를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우리의 야외 봉사에 어떻게 적용됩니까?

[17면 삽화]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추수꾼들을 더 보내 달라고 기도하도록 촉구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전파 활동 곧 “추수” 사업을 하도록 그들을 보내셨다

[18면 삽화]

텔레비전 시청을 자제하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가? 그렇다면 TV를 끔으로써 기도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라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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