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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 혁명”으로 충분할 것인가?
    깨어라!—1972 | 11월 8일
    • 인간들은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과학자들과 그들의 “녹색 혁명”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야말로 온 인류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실 분이시다. (시 146:6, 7) 언제 그렇게 해 주실 것인가? 그의 말씀은 조만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분명히 이 세대 안에 하나님의 왕국은 경쟁적인 정부 없이 다스릴 것이며, 참 하나님을 숭배하는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축복할 것이다.—마태 24:34.

  • 즐겁고도 유익한 사교적 모임이 되게 하는 요령
    깨어라!—1972 | 11월 8일
    • 즐겁고도 유익한 사교적 모임이 되게 하는 요령

      손님을 초대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참으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당신은 틀림없이 그러한 도전을 받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당신은 어떻게 하였는가? 다과를 대접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손님들을 흥겹게 하는 일 즉 모두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도록 하는 일은 어떠한가? 당신은 어떻게 즐겁고도 흥미있는 모임이 되게 하였는가? 그 모임은 손님들에게 유익하였는가?

      손님을 초대하였을 때에 손님들이 머무는 동안 그들의 기분을 전환시켜줄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마음의 긴장없이 몇 시간동안 당신과 당신이 초대한 다른 손님들과 상쾌한 교제를 즐기려 온다. 그들은 당신이 사회자역을 맡을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초대한 주인이 몇가지 ‘프로’를 염두에 두는 것이 일반적으로 초대받은 벗들을 즐겁고 흥겹게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유익하게 할 수 있는 성공의 요결이다.

      피해야 할 함정들

      손님들을 흥겹게 하기 위하여 기성 오락 용품을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만일 잘 선택하지 않으면 벗들에게 유익은 커녕 해가 될 수 있는 오락용품을 모르고 사게 되어 크게 후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위장 오락용품을 열거한 소책자에 광고된 한 오락용품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보라. “‘게임’의 가장 좋은 요소는 참가자들이 ‘게임’에서 이기려고 서로 책략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속임수, 계교, 사기, 거짓말, 기타 생활을 의의있게 만드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당신이 초대한 손님들은 이러한 ‘게임’으로부터 유익을 받을 것인가?

      오늘날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또 다른 오락용품에 대한 구조와 설명서를 보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물주가 될 수 있고 착취를 할 수 있으며, 고리 대금 업자가 되고, 혹은 물품을 가로챌 수 있는데 이러한 불법적인 행동에 대하여 처벌을 받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카드’ 놀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흔히 목조르기, 돈걸기, 술 훔쳐 내기, 강탈을 한다. 그리고 음란한 행동을 조장하는 ‘게임’도 있다.

      물론 이러한 놀이가 단순히 무해한 ‘게임’이며 장난의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오락을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러한 오락이 불건전한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에 극구 반대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늘날 오락용품이 참으로 여러 가지이며 손님들을 즐겁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으므로 취사 선택을 하면 된다. 그러나 벗들을 흥겹게 하기 위하여는 오락용품을 사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조금만 연구하면 한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흥겹고 재미있는 놀이를 계획할 수 있다. 상품용 오락 기구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발명하는 오락에도 함정이 있을 수 있다. 경쟁 의식을 자극하는 놀이는 일부 사람에게 흥미가 있을지 모르나 다른 사람들만큼 빨리 생각해 내거나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게임’에서 지거나 올바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놀이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북하게 여기거나 초조감을 느낄 것이다. 현명한 주인은 이런 일을 피한다. 그는 손님 모두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기를 원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쟁심을 자극하는 ‘게임’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그것이 단지 ‘게임’에 불과하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그 ‘게임’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 어느 부부가 그들이 사귄 새로운 부부와 경험한 일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그들이 모여서 ‘카드’ 놀이를 하였을 때 그들은 새로 알게 된 벗들이 ‘게임’을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아내는 “그들이 서로 거의 주먹다짐을 할 정도였어요! 저녁 내내 서로 비꼬는 말을 하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번째로 모여서 놀이를 하였을 때에는 분위기가 더욱 험악하였다. 이 부부가 이 기회를 즐기지 못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게임’ 때문에 우정에 심각한 금이 가는 예가 있다. 미용사였든 고 ‘헬레나 루빈스타인’과 가까왔던 한 친구는 그 여자와 작가 ‘서머세트 모음’이 “한 때 서로 미워하는 사이였었는데 그 이유는 한번 ‘카드’ 놀이를 할 때, 그가 그 여자를 왈패라고 부르고 그 여자는 그를 졸장부라고 별명을 붙였기 때문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오락도구로 무엇을 사용할 것인지를 고려할 때에 균형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사교적인 모임에서 건설적인 대화는 참으로 유익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 경험을 들으면 견해가 넓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며 감정이입을 사용하도록 도와 준다. 그러나 손님이 많을 때에는 좌담으로 하루 저녁 전체를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료하다. 그렇게 되면 끼리끼리 앉아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어떤 손님은 앉아서 다른 일을 기다리거나 떠날 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방법으로 모두의 관심을 끄는 어떤 일을 조직한다면 사교적인 모임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함정도 피할 수 있다.

      성서 지식을 시험하는 ‘게임’은 건설적이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성서가 사람들의 생활에 가장 건전하고 유익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서를 중심으로 한 ‘게임’은 교육적인 동시에 흥미 만점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시 손님을 고려하고 그들의 능력을 고려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과 복잡한 성서 게임을 하는 것은 그들로 거북하게 하고 무식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며 심지어는 그들을 실망시키기까지 할 수 있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있다면 ‘게임’을 구상할 때 그들의 능력의 한계를 또한 고려하여야 한다.

      일부 증인들과 그들의 벗들이 즐기는 한 가지 ‘게임’은 유명한 성서 인물들을 토론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성서의 한 인물의 이름을 선택하면 손님들 각자가 그 사람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할 기회를 갖는다. 흥미있는 그의 역사를 무엇이라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출생지, 친척, 친구, 경험, 충실 혹은 불충실 등이다.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많은 세부점들이 나온 후에 그 이름을 선택한 사람이 이 사람에 대한 성서 기록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주는지 질문한다. 그러면 임석한 각 사람이 이 성서 인물의 생애가 어떠한 행위의 원칙을 알려 주며 어떤 예언적 중요성이 있는지 등을 이야기할 기회를 얻는다. 그 후에 또 다른 사람이 성서 인물을 택하고 같은 절차를 따른다.

      여러 사람이 단체 여행을 할 때에도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은 경쟁적인 놀이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 왜냐하면 성서 지식을 주고 사고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의 상호 관계를 보임으로 발전시켜 준다.

      가나다 순으로 성서 인물의 이름을 대는 것도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한 사람이 글자를 부르면 각 사람이 순서대로 그 글자로 시작하는 성서 이름을 말한다. 즉 가, ‘가인’, 나, ‘나훔’, 다, ‘다윗’, 라, ‘라멕’, 마, ‘마리아’, 이런 식으로 한다. 또 다른 방법은 한 글자를 부르고 각 사람이 그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성서 인물의 이름을 대는 것이다. 즉 가, ‘가야바’, ‘가인’, ‘가말리엘’, ‘가이사’, ‘가이난’ 등; 나, ‘나아만’, ‘나발’, ‘나오미’, ‘나단’, ‘나다나엘’,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

      생각을 자극하는 또 다른 게임이 있다. 어떤 사람이 ‘요’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성서 인물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실마리를 얻기 위하여 추리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방법은 질문을 받은 사람이 질문자가 염두에 둔 사람을 알아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를 질투하는 열사람의 형제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그는 “요셉이 아닙니다.” 하고 대답한다. 만일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사실 ‘요셉’이라면, 혹은 그가 질문자의 성서 인물을 알아내지 못하면 질문자가 처음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의 첫 글자를 부른다. 특권을 잃은 사람은 자기가 누구를 염두에 두었었는지를 말할 필요가 없다. 다음 차례가 돌아오면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수도 있다.

      성서 지도를 사용하여 흥미있는 지명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참가자는 각자 사용될 지도를 펴 놓는다.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묘사한다. 누가 그 사건 발생 장소의 지명을 말하고 지도에서 지적하겠는가를 묻는다. 각자 사건을 차례로 선택할 수 있는데 물론 그 사건의 발생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유익하고 즐거운 다른 ‘게임’들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즐겁고 유익한 또 다른 ‘게임’으로 성서 이름의 철자법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각 사람에게 연필과 종이가 필요하다. 첫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네글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각 사람이 자기의 종이에 네개의 밑줄————을 긋는다. 다음에 질문이 시작된다. ‘그 이름에 “ㄹ”자가 들어갑니까?’ (그가 선택한 이름은 ‘엘르아살’이다. 이 이름에는 “ㄹ”자가 세개가 있지만 대답할 때에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습니다. 네번째 칸에 받침으로 들어 갑니다.” 하고 대답한다. 모두는 네번째 밑줄 위에 그 글자를 쓴다. 글자가 채워짐에 따라 어떤 사람이 그가 누구인지를 안다고 말한다. 지명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서는 안된다. 그는 자기 차례가 오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이름을 알아 맞힌 사람이 다음 이름을 선택할 특권을 받을 수 있다. 혹은 누가 대답을 알아내었든지 간에 참석한 각 사람에게 이름을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이 ‘게임’은 성서에 언급된 지명이나 기타 성서적 단어로 즐길 수도 있다. 이상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만일 같은 글자가 두 개 혹은 세 개가 들어있는 이름이나 단어를 선택하였다면 이름의 중간쯤에 나오는 글자나 누구인지 알아 맞히기 어려운 곳에 있는 받침을 알려 준다면 ‘게임’은 더욱 까다롭고 흥미있을 것이다.

      성서 낭독 역시 손님들에게 매우 즐겁고 유익하다. 흥미있게 하기 위하여 성서에 기록된 어떤 인물의 대화나 말을 각각 다른 사람이 읽도록 임명한다. 사용되는 사람의 수는 기록 가운데 나오는 인물이 몇 사람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한 사람은 해설 부분을 읽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각 사람에게 얼마의 귀절이나 항을 낭독하도록 임명하고 내용의 가치에 대하여 해설하도록 모인 사람들에게 초대하는 것이다. 낭독에 서투른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제스처 게임’도 모인 사람들의 재능을 요하는 ‘게임’이다. 성서 인물을 나타내는 어떤 행동을 무언의 ‘제스처’로 묘사를 하면 교육적이고도 재미있다.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그 인물이 누구인지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맞힐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수줍어서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 어떤 행동을 연출하는 것을 부끄러워할지 모른다. 아무도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일에 있어서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곧 싫증이 날 수 있다. 깨어있고 분별력이 있는 주인은 언제 어떤 오락이 흥미를 모으는 힘을 잃기 시작하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린다. 그리고 다양성이 즐거움을 더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려 깊게 다른 ‘게임’으로 넘어 간다.

      때때로 증인이 아닌 친척이나 친구가 증인의 사교적 모임에 참석하여 ‘게임’ 진행을 구경한다. ‘게임’이 모두 건설적이라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오레곤’(미국)에서 있었던 일이 그것을 예증한다. 수년 전에 한 침례교인 부부가 많은 증인들이 모여서 성서 ‘게임’을 즐기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그 모임을 구경하면서 그 부인은 생각했던 만큼 자기가 성서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남편에게 자기가 여러 해 동안 성서를 연구하였는데 증인들에 비하면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깊은 인상을 받은 그 부부는 그 모임이 끝난 다음에 증인들에게 그들의 집에 와서 성서 연구를 사회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확실히 건설적인 오락은 모두에게 즐겁고 축복이 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즐거우면서도 유익을 주는 ‘프로’를 짠다면 당신이 마련하는 사교 오락회는 당신의 벗들이 마음껏 즐기는 모임이 될 것이다.

  • 신비로운 내분비선
    깨어라!—1972 | 11월 8일
    • 신비로운 내분비선

      치밀하게 조직된 기업체를 생각하여 보라. 여덟명의 요원들은 서로 전신으로 혹은 직접 만나 계속 연락을 취한다. 각자에게는 자기 분야의 책임이 있다. 즉 한 사람은 증산에, 한 사람은 판매량에, 한 사람은 분쟁 해결에, 한 사람은 경쟁에, 한 사람은 연구 조사에, 한 사람은 광고에 등등 책임이 있다. 그 뿐 아니라 각기 억제와 균형의 복잡한 체제가 있어서 이 사람에게는 활동을 증대시키도록 자극하고 저 사람에게는 생산을 서서히 하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모두는 그들이 듣기는 하지만 결코 보지 못하는 신비로운 주인의 보이지 않는 통제를 받으며 일한다.

      인체의 내분비선 혹은 내분비 계통도 그와 비슷하다. 이들 여덟개의 내분비선은 ‘호르몬’(“활동하도록 자극하다”라는 뜻을 가진 희랍어 ‘호르모온’에서 온 말)이라고 불리우는 극히 강력한 화학적 합성물을 제조한다. 이 화학 물질이 흡수되어 혈류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한선이나 타액선이 사용하는 도관을 통하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분비선을 영어로는 ‘도관 없는 분비선’이라고도 하고 ‘내분비선’(内分泌腺)이라고도 하는데 ‘내분비’라는 말은 “안으로 분비하는”이라는 뜻이다.

      이들 분비액 혹은 ‘호르몬’은 그 다음에 인체 내에서 화학 변화를 일으켜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한다.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젠’은 소녀를 적당한 시기에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어 준다. 또한 같은 곳에서 분비되는 황체 ‘호르몬’은 자궁에 명령을 보내어 부드럽고 유연한 상태로 수정한 난자가 들어오면 그 난자를 키울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체내의 당분을 ‘에너지’로 바꾸는 일을 관리한다. 뇌하수체의 분비액은 골격의 성장을 조정한다. 너무 많으면 거인이 되고 너무 적으면 난장이가 된다. ‘아드레날린’은 피부 색소 형성, 혈압 등에 영향을 준다.

      분비선의 한 가지 놀라운 특성은 검약이다. 내분비선 자체는 미소하다. 예를 들면 인후에 있는 네개의 부갑상선은 쌀알 만하며 두뇌 속에 있는 뇌하수체는 제비콩 만하다. 분비선의 크기 뿐만 아니라 분비액의 양과 효능은 화학적 검약의 좋은 본보기이다. 부신은 평생 동안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그리고 하루 동안에 분비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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