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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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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이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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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파68 12/1 536-540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이다’

“미혹을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자기 육체로부터 썩음을 거둘 것이나, 영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6:7, 8, 신세.

1, 2. (ㄱ) 갈라디아 6:7에 있는 원칙은 실제 심는 일에 있어서 어떻게 참됩니까? (ㄴ) 바울은 그 원칙을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였읍니까?

문자 그대로 심고 거두는 면에 있어서 농부들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이 원칙을 잘 알고 있읍니다! 일단 밭에 보리를 심어서, 새 잎파리가 돋아난 후에는 밀을 심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해본들 소용이 없읍니다. 자기가 마음 속으로 아무리 소원한다고 해도 다른 것을 거두어들일 수 없읍니다. 결코 그럴 수 없읍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둘 수밖에 없읍니다. 자연계의 불변의 법칙, 곧 만물의 창조주께서 만드신 법칙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창조에 대한 영감받은 기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세 1:11) 이 자연 법칙이 작용하는 면에 있어서 “하나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6:7, 신세.

2 이 자연 법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기 때문에,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 같은 장 8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강력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흙에 심은 바로 그것을, 그 “종류 대로” 곧, 우리가 심은 씨가 좋은 씨냐 나쁜 씨냐에 따라, 성령을 위하여 심었느냐 육체를 위하여 심었느냐에 따라, 틀림없이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므로 현재 우리가 심는 방법을 잘 살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3. 우리 개인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심는 씨와 심는 우리의 동기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3 우리 개인 생활에 있어서, 심는 목적은 씨 자체와 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은 “씨”를 가지고 있어도 나쁜 동기를 가지고 “육체를 위하여 심”을 수 있읍니다. 이것은 씨를 썩게 할 수 있고 썩은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읍니다. 건강, 힘, 시간, 말하고 듣는 능력, 독서력, 다른 선천적 재능,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기회,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 등, 이 모든 것들과 기타의 것들을 좋은 방향이나, 나쁜 방향으로, 즉 이기적인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사용할 수도 있고 자신이나 남의 영적 생활을 세워 주기 위하여서 사용할 수도 있읍니다.

4. “육체를 위하여 심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4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썩어진 것을 거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러한 방법으로 심는 일을 피하고자 할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이러한 종류의 심는 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몇 가지 것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 중에서도 물질적 소유를 그 자체가 목적인 양 추구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고 부러워합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질까 봐 광적으로 물질을 추구합니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심는 방법을 정직한 마음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읍니다. 그것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우리는 어떻게 물질적인 것에 있어서도 영을 위하여 심을 수 있읍니까?

5 물질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아내와 자녀를 위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적절한 거처 등 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한 마련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5:8)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전체 이방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양 그것을 열광적으로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마태 6:32, 신세)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예수께서는 명하셨읍니다. (마태 6:33) 그러므로 사물을 각각 자기의 정당한 위치에 두고, 물질이 인생의 목표인 양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고, 우리의 물질적 소유를 참 하나님 여호와의 찬양과 봉사를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 유익되게 심을 것이며, 우리는 크신 영, 여호와의 뜻을 중요시하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의 뜻은 성령 곧 그의 활동력의 작용에 의하여 그리고 그의 진리의 말씀에 의하여 밝혀집니다.

6. 예수를 따랐던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의 전도 봉사에 대하여 어떻게 그릇된 견해를 가졌읍니까?

6 한 동안 예수를 따르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육체를 위하여” 따랐지 영적인 것을 위하여 따르지 않았음을 드러냈읍니다. 한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갈릴리 바다 동편으로부터 가버나움까지 예수를 따라왔읍니다. 그들이 드디어 예수를 찾아 만났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한 6:26, 27)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적으로 먹을 것을 풍부히 마련해 주는 것을 보고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 그들의 이기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용이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본 기적의 의미에 대하여는 괘념치 않았읍니다. 그 기적은 실제로 예수께서 오래 전에 약속된 메시야 곧 “생명의 떡”임을 증명하는 표였읍니다.—요한 6:41-48.

7. 재물과 더불어 어떠한 기회와 위험이 오며, 어떤 결과에 이를 수 있읍니까?

7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어느 정도 즐거움을 가져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특히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서 좋은 일을 많이 할 입장에 있읍니다. 그러한 일을 하면, 진정한 즐거움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이기적인 쾌락을 추구하도록 “육체를 위하여 심”도록 인도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은 여태까지 즐기지 못했던 세상적 쾌락의 문을 열어 놓으며, 문이 열렸을 때에 그것들을 즐기자는 유혹은 대단히 강합니다. 만일 “재리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조만간에 진리에 대한 사랑이 꺼지고 영적인 것을 결실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태 13:22)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 (디모데 전 6:9, 10) 그렇다면, 당신은 이 점에 있어서 미혹되지 않고자 할 것입니다. 만일 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면, 부패, 그렇습니다, 멸망과 침륜을 거둘 것입니다. 이 인생의 법칙이 적용되는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부당한 성적 욕망

8-10. (ㄱ) 어떠한 방법으로 부당한 성적 욕망의 씨가 마음 속에 심어질 수 있읍니까? (ㄴ) 만일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욕망은 틀림없이 어디로 인도합니까?

8 부당한 성적 욕망을 품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없애지 않는다면, 분명히 썩어진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5:19에서 “육체의 일”들을 열거하면서 그중에서도 부당한 성적 욕망의 열매들 즉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등을 열거하였읍니다.

9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잠간, 농부가 자기의 밭에 씨를 심는 비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가 뿌리는 씨는 대단히 작아서 땅에 떨어지면 별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부당한 성적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씨는 대단히 작아서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자기 자신도 거의 분별하지 못하는 사이에 심을지 모릅니다. 오늘날 사면 팔방으로부터 부당한 성적 욕망의 유혹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읍니다. 십대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로맨틱”한 소설, 특히 값싼 그림 이야기 형식의 잡지 등은 “참 사랑”이라는 허울 아래 음행과 간통을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구출한다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오늘날 영화로서 관객 대다수의 성도착적인 구미를 맞추어 주지 않는다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학생들, 특히 고등 학생들은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실제적이거나 상상적이거나, 성적 혹은 이성과의 “모험”에 대한 욕망을 자극받습니다.

10 어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대화를 들어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유혹받을지 모릅니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러 버린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그러한 이야기가 한쪽 귀로 들어가서 다른 쪽으로 나가는 동안에 머리를 지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깨끗지 못한 생각의 작은 씨가 뿌리를 박게 되고 후에 부당한 성적 욕망이 싹트게 됩니다. 만일 외설 작품을 읽고, 읽은 내용을 마음으로 늘 생각하거나, 호색적인 사진을 본다면 깨끗지 못한 생각과 부당한 성적 욕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생각으로만 그러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고 할지라도 때가 되면, 육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등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미혹을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러한 식으로 심으면, 틀림없이 그러한 것 곧 “육체로부터 썩음”을 거둘 것입니다.

11. (ㄱ) 방자한 성적 행실은 어떠한 더욱 심한 썩음을 초래합니까? (ㄴ) 그러므로 무슨 권고를 받는 것이 적절합니까?

11 방자한 성적 행실은 흔히 매독, 임질 기타 성병 등으로 실제로 육체가 썩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하지만,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상실하는 결과 곧 영원히 살 소망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 .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 8:6-8) 그렇습니다, 진리의 빛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러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일을 과거로 돌려 버립니다. 그들은 더 이상 어두움의 열매를 거두지 않고 빛의 열매를 거두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 .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 5:8-16.

올바른 동기

12. 나쁜 동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12 그러나 “육체를 위하여 심는” 또 다른 방법도 있읍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지는 모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적 성장을 크게 저해하며 우리에게 재난을 가져 올 수도 있읍니다. 우리는 그 자체 옳고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동기가 나쁘다면, 즉 우리의 행동이 자기 정당화, 자기 찬양 혹은 시기, 경쟁 등에서 나온 것이라면, 우리의 선한 활동은 무가치한 것이며, 우리의 영적 생활이 썩어지게 될 것입니다.—로마 10:3; 잠언 14:30.

13. 율법이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바로 이 태도가 이스라엘 나라를 부패시켰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중보 모세를 통하여 법전을 주셨읍니다. 갈라디아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바울은 율법이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바로 유대인들에게 진정으로 죄를 제거하고 사망의 정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할 희생의 필요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실제로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 . . 갇혔”읍니다. 그리하여 “계시될 믿음”을 바라보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율법은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읍니다. (갈라디아 3:19, 23, 24) 그러나 유대 민족은 그것을 그러한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율법에 있는 많은 것들을 지켰어도, 율법이 인도하는 목표에는 달하지 못하였읍니다.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유대인들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육체로 자랑하려”고 다른 사람들도 할례를 받게 하였으며, 율법을 지키게 하였읍니다.—로마 9:31, 32; 갈라디아 6:12, 13.

14, 15. (ㄱ)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독선적인 태도를 어떻게 비유로 설명하셨읍니까? (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어떻게 이러한 독선적인 올무에 빠질 수 있읍니까?

14 그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그러한 정신 태도를 감찰하시고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 18:9-14.

1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하에 있지는 않지만, 불완전하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육체의 일들을 기초로 하여 자기를 의롭다고 하고 “편벽”되게 하고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하여 의를 추구하는 올무에 빠질 수 있읍니다. (야고보 3:17; 로마 9:3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의로운 신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의 대속 희생을 기초로 한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의 결과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16.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도 봉사에서 수행한 사업의 기록을 보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전도 봉사에 목표를 정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여호와의 백성들은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사랑에 기초하여 봉사의 동기를 순수하게 유지한다면, 그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확신하고 있읍니다. (고린도 전 15:58) 그들은 모든 나라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훌륭한 사업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며, 하나님은 편벽되지 않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을 인식하고 있읍니다. (사도 10:34, 35) 그들은 이 왕국 사업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전도 사업에 보낸 시간, 얻은 결과 등 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을 보존합니다. 발전이 나타날 때에 격려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그러한 기록은 또한 회중에서 어디에 발전을 해야 하며, 전도 봉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한 기록은 또한 새로운 전도인들과 전도 봉사에서 발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스런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회중 전체의 발전을 고려할 근거를 주기 위하여 그리고 균형잡힌 전도 봉사를 격려하는 수단이 되도록 제안된 평균 목표가 있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역을 정규적으로 전도하되 호별 방문, 재방문 및 관심가진 사람들과 가정 성서 연구를 하도록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17. 무엇을 동료 그리스도인의 성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그러나 그러한 제안된 목표를 그리스도인의 성실을 재는 척도로 사용할 수는 없읍니다. 또한 전도 봉사에서의 자기의 활동 기록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비교하는 근거로 사용되어서도 안됩니다. 비교를 한다면, 독선적이 되고 자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 햇 동안 전시간 전파를 한 것이나 여호와의 조직에서 탁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편벽된 차별을 하거나, 위에 설명한 예수의 비유에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과 같이 될 근거는 안됩니다. (누가 18:9)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 장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환경과 선천적 재능이 어느 정도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 활동에 있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무슨 일을 할 수 없는가를 결정합니다. 그러한 조건이 또한 본인이 하나님의 사업에 어느 정도의 재정적 도움을 베풀 것인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께서 궁핍한 과부가 바친 성전 헌금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누가 21:1-4.

18.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전도 봉사에 대하여 어떠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자 할 것입니까?

18 그리스도인 전도인들은 절대로 숫자의 노예가 되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시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도하거나 자기의 회중 혹은 왙취 타워 협회의 봉사 기록을 올리기 위하여 봉사하지는 않습니다. 전도인으로서 균형잡힌 전도 봉사를 하기 위하여 제안된 목표를 달성 혹은 능가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나 그러한 목표 숫자 그 자체를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지혜롭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전도인은 항상 자기의 마음과 정신에 그의 봉사 활동에 대하여, 나아가서는 회중과 관련하여 하는 모든 활동에 대하여,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자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여호와]께 받을줄 앎이니[라].”—골로새 3:23, 24, 신세 참조.

19, 20. 전도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은 왜 적절하며 유익합니까?

19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은 모두 전도 봉사에 나가기 전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단적인 전도 활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모일 때에는 언제나 그들의 활동에 여호와의 축복을 비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가 주는 한 가지 유익은 그들의 전도의 목적을 기억하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여호와의 크신 이름과 목적을 선포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의로운 경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을 찾도록 기회를 주고 동시에 이 악한 사물의 제도에 임하게 될 여호와의 심판을 경고하기도 합니다. 또한 전도 봉사는 우리 각자에게 전능한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성실을 증명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20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전도를 하면,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여하에 불구하고 항상 즐거운 만족을 얻게 됩니다. 진실로 이것은 영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21.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가 무거운 짐이 되며, 그렇게 되면 무슨 위험이 닥칩니까?

21 아마 당신은 수년 동안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에 참여하였었는데 지금은 그 즐거운 만족감을 상실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이 대단히 힘드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그 일을 완전히 중지할 입장에 있거나 이미 중지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 한때는 당신도 하나님의 봉사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읍니까? 한때는 열정이 넘쳐 있었읍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 봉사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당신은 영을 위하여 심는 일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도중 심는 습관을 변경하였읍니다. 사물을 육체적으로 보는 습관에 빠져 버린 것입니까? 목표나 숫자만 보고, 진정한 목표는 생각지 않고, 일을 위한 일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지 않아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일에 실패한 것입니까? 영을 위하여 심는 일을 시작은 잘하였는데, 지금은 영적 장성을 완전하게 달성하는 일에 완전히 실패할 위험에 처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 영적 장성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에 의해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읍니다.—갈라디아 3:2, 3.

22. (ㄱ)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심”도록 자극하는 무슨 자극제가 있읍니까? (ㄴ) 하나님의 성령에 일치하게 심는 자들은 지금 무슨 열매를 거둡니까?

22 다음의 질문을 심중히 고려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심습니까? 육체를 위하여 혹은 영을 위하여? 더 말할 것 없이 당신은 영을 위하여 심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이 잡지를 읽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음을” 거두는 것과 같이 “영을 위하여 심는 자”는 중요한 것을 거둘 것입니다. 중요한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갈라디아 6:8) 우리가 심는 방법을 잘 살펴 보고, 우리의 영적 생활의 영원한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에 일치하게 심는 방법을 배우도록 훌륭한 자극제가 아닙니까! 심지어 지금도 우리가 영을 위하여 심을 때에 풍부한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여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성령의 열매는 [현재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 . .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갈라디아 5: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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