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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정직이 이토록 만연한 이유는?
    파수대—1982 | 6월 1일
    • 부정직이 이토록 만연한 이유는?

      영국의 옛 격언에 “기회가 도둑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와는 반대로, “도둑이 기회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든 간에 여러 가지 형태의 부정직은 경악할 만한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중 많은 것은 생활화되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더는 부정직으로 보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 몇가지를 들어 보자. 고용주는 점원에게 판매 수입금을 줄여서 장부에 기재하라고 말한다. 점원은 사장이 지시하는 대로 하는 것이므로 거리낄 것이 없다고 여긴다. 주부는 가계부를 속여서 자기 용돈으로 얼마를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밤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동료들이나, 어쩌면, 다른 여자와 함께 외출한다.

      한 상점 주인은 최근에 말하기를 청소년들이 자기 상점에 무리를 지어 들어 온다고 한다. 한명이 물건을 사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계산대를 급습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붙들리면 두려워하였읍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걱정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슬픈 일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나가라고 하면, 그 아이들이 다시 와서 유리창을 박살내 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칭호를 가진 영국의 한 연로한 부인이 상점 들치기 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소규모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수백만 단위에 이르는 횡령에 관해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부정직으로 흐르는 압도적인 경향의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다. 유아 때부터 대부분의 자녀들은 내재하는 부정직의 영향력에 굴복한다. 민속담, “‘알리 바바’와 사십인의 도적”과 같은 고전 이야기, 영화, TV ‘프로그램’ 및 많은 책들은 부정직을 어떤 면으로인가 미화한다.

      ‘브라질’ ‘사웅 파울로’의 한 남자는 회견 중에, 자행되는 많은 악행들에 대한 책임은 고백을 통한 관대한 죄사함과 같은 종교 관습들에 있다고 비난하였다. 한 여자는 “산타클로오스”가 자기 친척이 가장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의 정직성의 세계가 무너졌다고 시인하였다. 아기를 가져다 준다고 하는 황새 이야기로부터 헛된 공약을 내거는 정치가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정신을 부정직으로 흐르기 쉽게 만드는 강력한 영향력들에 둘러 싸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소위 “악의 없는 조그만 거짓말”은 해가 없는 것으로 여기겠지만,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누구나 큰 일에도 부정직하다.” 그분은 또한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고 그를 대부분의 인류가 통치자로 복종한다고 말씀하셨다. 확실히 그것은 생각에 도움을 주며 부정직이 그토록 만연한 이유를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누가 16:10, 오늘날의 영어 역본; 또한 요한 8:44; 14:30 참조.

  • 왜 정직해야 하는가?
    파수대—1982 | 6월 1일
    • 왜 정직해야 하는가?

      적절하게도 성서는 여호와를 “진리의 하나님”으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으로 묘사한다. (시 31:5; 디도 1:2, 신세) 인간이 창조된 이래 그분의 참 숭배자들이 모든 일에 정직해야 한다는 여호와의 요구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스가랴 8:16, 17.

      정직하려면, 대중의 태도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표준을 지침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그 표준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신 방법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중에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 19:11, 12.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받는 처벌은 가볍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에게 변상해 주어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소유물의 가치가 율법이 요구하는 가치에 못미친다면, 노예가 되어 노동으로 빚을 모두 갚아야 하였다.—출애굽 22:1-4.

      여호와께서는 세부점들을 명확하게 밝혀 주심으로써 온갖 형태의 부정직을 정죄하신다는 사실에 오해가 없게 하셨다. 그분은 ‘궤사를 말하는 혀’, 거침없지만 부정직한 말, 폭력과 은밀한 도둑질 및 거래상의 부정직한 저울 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셨다.—잠언 1:10-19; 다니엘 11:32; 미가 6:11, 12.

      그리스도인 요구 조건

      그리스도인 회중의 설립과 더불어 정직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은 바뀌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거짓말과 도적질에 관해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서로 거짓말을 말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 도적질이나 악행[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골로새 3:9; 에베소 4:25, 28; 베드로 전 4:15.

      문제의 심각성이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로 강조되어 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었느니라.]”—고린도 전 6:9-11.

      그들 초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도둑질과 토색을 하던 자들이 있었음에 유의하라.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었다. 사도 ‘바울’은 한 ‘그레데’인(아마 시인 ‘에피메니데스’였을 것임)의 말을 인용하여 ‘그레데’ 사람들의 평판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디도 1:12) 희랍인들 사이에서 “‘그레데’인”이라는 명칭은 “거짓말장이”와 동의어였다. 그러나 ‘그레데’ 거민들 중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행로를 바꾸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그들 가운데 ‘비난받을 것이 없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선을 좋아하며 의로우며 충성스러우며 절제한’다는 평판을 받은 그리스도인 장로들이 있었다.—디도 1:7, 8, 신세 참조.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켰는가?

      그러한 변화는 그들이 “진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알게 되고 그분의 종들에 대한 요구 조건들을 알게 됨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들의 본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 예수의 생활 방식을 연구하는 가운데 그들은 ‘그의 입에는 아무 궤사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분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들은 다음과 같은 점도 배웠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베드로 전 2:21, 22; 누가 6:31.

      물론, 그들이 하룻밤 사이에 변화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행실과 관련된 특정한 문제들을 “계속 상기시”키라고 편지하였다. (디도 3:1-3, 신세) 처음에 그들은 새로운 성품을 옷입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장애물에 직면하였을 때 그들은 낙담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과거의 죄많은 행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사해 주시기 위해 여호와께서 해주신 놀라운 마련에 대한 인식은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를 의뢰할 줄 알게 되고 그분의 영의 도움을 구하게 됨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이 이룩할 수 있었던 변화를 하게 된 것이다.—고린도 전 6:11, 비교.

      왜 그래야 하는가?

      그러나 왜 그러한 투쟁을 해야 하는가? 왜 모든 일에 있어서 정직성을 고수해야 하는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결혼 배우자 간에 서로 신뢰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그것은 그 시작이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곧 전체 관계가 침식당하고 만다. 반면에 모든 일에 정직하다면 그것은 결혼의 띠를 강화시켜 준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들의 생활에도 유익한 영향을 강하게 줄 것이다.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정직성은 동료 인간들을 보는 당신의 견해를 나타내 준다. 여기에서는 형벌이 일부 사람들로 악행을 하지 못하게 억제한다. 그러나 그보다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로마 13:9)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해야 한다. 정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다. 그는 또한 내적으로도 평화롭다. 양심이 괴로와 밤에 잠 못이루는 일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어깨 너머를 보며 잡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일이 없다.—로마 13:3-5.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다. 사람을 감동시켜 자신의 불완전성과 투쟁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정직할 때 정직하게 만드는 것은 여호와께 대한 진실한 사랑과 그분의 승인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다.—시 15:1-5.

      오늘날 정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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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성은 가정 내에 신뢰감을 심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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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한 사람은 깨끗한 양심을 갖게 되며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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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려면 정직해야 한다

  • 정직한 데 성공한 사람들
    파수대—1982 | 6월 1일
    • 정직한 데 성공한 사람들

      도난당할까 염려하는 일 없이 대문을 열어 놓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구나 신뢰할 수 있고 자신이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활에 참으로 큰 유익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개인 수준에서 시작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개개인이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나쁜 경향을 극복하여 애써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몇가지 예를 고려해 보자.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장을 위해 속이는 일을 할 것인가?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의 한 남자는 그가 고객들을 속이는 일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일자리를 잃게 될 판국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왜 그러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가?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 없이 고용주의 지시를 이행해 오다가 성서로부터 하나님의 표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즉각적으로 성서가 말하는 바를 실천할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하였다. 즉 성서 연구를 중단하였다. 잠시 동안은 일자리를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는 그의 양심이 편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는 사표를 제출하였다. (로마 2:14, 15) 하나님께 선한 양심을 구한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연구하기 위해 근처에 살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을 찾아 나섰다. 흥미롭게도 오래지 않아 그의 이전 사장이 그를 불렀다. 이유는? 그 사장이 그가 다시 일해 주기를 원하였다. 그의 자리에 채용된 사람은 고객들에게만이 아니라 그 사장에게까지도 부정직했던 것이다! 한편, 정직해야겠다는 결의가 강화된 그 성서 연구생은 돌아가는 것을 고려해 보겠지만 자신의 조건을 들어 주어야 된다고 말하였다. 즉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정직성을 유지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은 받아들여졌다. 정직성의 승리였으며, 현재 그 사람은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다.

      무장 강도의 변화

      무장 강도가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는가? ‘브라질’ 남부의 19세된 한 젊은이는 가정 집들을 터는 ‘갱’단에 속해 있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그는 ‘왙취타워’ 협회가 출판한 성서 출판물에 접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 자신은 명목상 ‘로마 가톨릭’ 교인이었는데도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된 여호와의 조건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과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서서히 그는 발전하였다. 그의 의심이 없어짐에 따라 그의 인식은 깊어져 갔다. 현재 그는 성서를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스스로 연구하고 있으며 그의 놀라운 변화는 교도소 당국, 변호사 및 판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국은 그의 변화된 품행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아, 매주 40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열리는 집단 성서 연구를 허락하였다.

      더는 도둑질과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 사람

      영국 ‘런던’의 한 소년은 자기 주위의 체제에 매우 혐오감을 느껴 공개적으로 반항하게 되었다. 정기적인 일자리도 없고 일하기도 싫어한 그는 도둑질을 하려는 강렬한 유혹에 부딪혔다. 배달부로서 그 소년은 소포들을 가로채곤 하였으며 상점에서 ‘캔디’를 훔치기도 하였다. 곧 그는 빈집을 터는 ‘갱’단에 가입하였지만 붙들려 심문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겨우 16세의 나이에 그는 ‘보오스탈’이라는 영국 감화원에 보내졌다. 2년 후 그는 풀려 났으며, 또 감금될 것을 두려워하여 한 동안은 말썽에 끼어 들지 않았다.

      감화원이 그를 개심시킨 것인가?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 일년 후에 그는 다시 틈을 엿보기 시작하였다. ‘버스’ 차장으로서 그는 ‘러쉬 아워’를 이용하여 차표를 등록기에 넣는 대신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쳐냈다. 또 다시 그는 일자리를 상실하였다. 그 동안 그는 결혼했지만, 그 시초부터 과음과 혼외 정사로 인해 심각한 문제들을 겪게 되었다.

      이 무렵, 그들이 결혼한지 두달 후, 그 부부는 성서를 접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서 연구에 동의하였다. 그 연구가 급격한 변화를 이룩하였는가? 사실 그렇지 못하였다. 부정직한 경향이 너무나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는 연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씨는 뿌려졌던 것이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서, 그는 수주 동안의 그 성서 연구에서 자기가 들은 것이야말로 진리이고 자기를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다. 그의 마음은 그것을 원하였지만, 힘이 부족하였다. 하루는 그가 경찰과의 싸움에 말려 들게 되었다. 그는 보험에 들지 않은 자동차를 취중 운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다음날 아침, 거울에 비친 피에 물든 자신의 흰색 ‘셔어츠’를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단 두가지 길만이 내게 열려 있었읍니다. 무덤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께, 근처의 어떤 ‘증인’을 보내 주실 것을 기도하였읍니다. 과연 ‘증인’은 곧 찾아 왔고, 나는 그에게 나와 성서 연구를 해 줄 것을 간청하였읍니다. 그것은 1973년 11월의 일이었읍니다. 1974년 3월에 나는 침례를 받았읍니다.”

      이전에는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던 사람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었는가? “그렇지 않았읍니다”라고 그는 대답한다. “여러 차례의 일진 일퇴와 취약적인 나쁜 버릇이 다시 고개를 쳐드는 일들이 있었읍니다. 여호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빠져 있던 곤경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행복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적용하는 데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나의 가족은 정기적으로 왕국회관에 나갑니다. 그리고 나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육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나의 부모님들이 내가 알게 된 것을 모르고 나를 도우실 수 없었던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장래가 있는 삶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기회를 주면 도둑이 생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전에 도둑질을 하던 사람들까지도 정직한 생활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결과로 정직함, 선한 양심, 상호 신뢰가 있게 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앞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새질서에서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구 조건이다. 그 때에는 더는 도둑질이나 부정직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천년 통치하에서 있게 될 지상 낙원에서의 매우 만족스럽고 온전한 삶을 지배하는 요소는 사랑일 것이다. 정직성이 도처에 만연할 것이다. 이 훌륭한 희망에 대해 지금 더 알아 보기 바란다. 당신이 사는 지역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꺼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자 할 것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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