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
9월 3-9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1-2장
영적 보물 찾기
요 1:1 「신세연」 연구 노트
‘말씀’: 또는 “로고스”. 그리스어 호 로고스. 여기서 이 단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며 요 1:14과 계 19:13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요한은 이 칭호를 가진 분이 예수임을 밝혔다. 이 칭호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기 전 영적 피조물로 존재하셨을 때, 땅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봉사하셨을 때,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도 그분에게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 즉 ‘대변자’로서, 창조주의 다른 천사 아들들과 인간들에게 정보와 지시를 전하는 의사 전달자 역할을 하셨다. 따라서 이치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이 ‘말씀’ 즉 천사 대변자를 사용하여 인간과 의사소통하셨을 것이다.—창 16:7-11; 22:11; 31:11; 출 3:2-5; 삿 2:1-4; 6:11, 12; 13:3.
하느님과 함께: 직역하면 “하느님을 향해”. 이 문맥에서 “함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프로스는 두 대상이 가까이에 있고 친밀한 관계라는 점을 암시한다. 또한 이 전치사는 두 대상이 별개의 인격체임을 보여 주며, 따라서 ‘말씀’이 유일하신 참하느님과 별개의 인격체임을 알 수 있다.
‘말씀’은 신이셨다: 또는 “말씀은 신성을 지니고 계셨다[또는 “신 같은 분이었다”]”. 요한의 이 말은 ‘말씀’(그리스어 호 로고스. 이 구절에 나오는 ‘말씀’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즉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이나 특징을 묘사한 것이다. ‘말씀’은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것을 창조하는 데 사용하신 맏아들로서 탁월한 지위를 가지고 계시므로, ‘말씀’을 “신; 신 같은 분; 신성을 지닌 분; 신격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합당하다. 많은 번역자들은 그분을 전능한 하느님과 동일시하여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몇 가지 점을 고려해 보면, 요한이 ‘말씀’과 전능한 하느님이 동일한 분이라는 의미로 그 말을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이 구절의 앞 부분과 다음 구절은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또한, 1절과 2절에는 그리스어 테오스가 세 번 나오는데,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그리스어 정관사와 함께 사용되었지만 두 번째는 정관사 없이 쓰였다. 많은 학자들은 두 번째 테오스에 정관사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맥에서 정관사와 함께 사용된 테오스는 전능한 하느님을 가리킨다. 반면에 문법 구조를 볼 때 여기서 정관사 없이 사용된 테오스는 성질을 묘사하는 것으로, ‘말씀’이 지닌 특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여러 성경 번역판들은 이 표현을 번역할 때 「신세계역」과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여 ‘말씀’이 “신이셨다; 신성을 지니고 계셨다; 신격을 가진 존재였다; 신 같은 분이었다”와 같이 번역한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요한복음을 콥트어 방언인 사히디어와 보하이르어로 번역한 고대 역본들을 들 수 있다. 기원 3,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역본들은 요 1:1에 나오는 첫 번째 테오스와 두 번째 테오스를 각각 다르게 번역했다. 그러한 번역 표현은 ‘말씀’이 가진 특성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그가 하느님과 유사한 본성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말씀’을 그의 아버지인 전능한 하느님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이 구절이 묘사하는 것과 일치하게, 골 2:9에서는 그리스도에게 “하느님의 특성의 모든 충만함”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벧후 1:4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도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알려 준다.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으로, 「칠십인역」에서는 그리스어 테오스가 히브리어 엘이나 엘로힘을 번역할 때 주로 사용된다. 히브리어 엘과 엘로힘은 “하느님” 또는 “신”으로 번역되며, 기본적으로 “위력 있는 자; 강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히브리어 단어들은 전능한 하느님을 가리킬 때만 아니라 다른 신들과 인간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요 10:34 연구 노트 참조) ‘말씀’을 “신” 즉 “위력 있는 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 9:6의 예언과 조화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예언에서는 메시아가 (“전능한 하느님”이 아닌) “위력 있는 신”으로 불릴 것이며, 자신의 백성 모두에게 “영원한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의 아버지인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그 일을 이룰 것이다.—사 9:7.
요 1:29 「신세연」 연구 노트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침례를 받고 마귀에게 유혹을 받은 뒤에 침례자 요한에게 오시자, 요한은 그분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다. 이 표현은 이 구절과 요 1:36에만 나온다. (부록 가7 참조) 예수를 어린양에 비하는 것은 적절하다. 성경 전체에서 양은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제물로 바치는 동물이었다. 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희생하시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영감받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구절들과 연관이 있는 표현이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 대신 숫양을 바쳤으며(창 22:13),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을 잡았고(출 12:1-13),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제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어린 숫양이 바쳐졌다(출 29:38-42). 침례자 요한은 히브리어 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중 하나나 그 이상을 염두에 두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다. 또한 요한은 여호와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르신 자가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사 52:13; 53:5, 7, 11)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면서 예수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불렀다. (고전 5:7) 사도 베드로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를 언급했다. (벧전 1:19) 또한 요한 계시록에서는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를 가리켜 “어린양”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25회 이상 사용했다.—몇 가지 예를 보려면 계 5:8; 6:1; 7:9; 12:11; 13:8; 14:1; 15:3; 17:14; 19:7; 21:9; 22:1 참조.
9월 10-16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3-4장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증거하시다”
요 4:6 「신세연」 연구 노트
피곤하셔서: 성경에서 예수께서 “피곤하셨다”고 언급하는 것은 이 구절뿐이다. 이때는 낮 12시경이었고 예수께서는 오전에 유대의 요르단 골짜기에서 그보다 900미터 이상 높은 곳에 있는 사마리아의 수가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여행하셨을 것이다.—요 4:3-5. 부록 가7 참조.
영적 보물 찾기
요 3:29 「신세연」 연구 노트
신랑의 친구: 성경 시대에는 신랑의 가까운 지인 중 한 사람이 그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신랑과 신부가 맺어지게 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결혼식 날, 신부의 행렬이 신랑의 집이나 신랑 아버지의 집에 도착하면 거기에서 결혼 잔치가 열렸다. 잔치 중에 신랑의 친구는 신부와 이야기하는 신랑의 음성을 듣게 될 때 행복해했을 것이다. 자신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침례자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에 비했다. 신랑은 예수였고 제자들은 상징적 신부 반열을 구성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 침례자 요한은 “신부” 반열의 첫 번째 구성원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개했다. (요 1:29, 35; 고후 11:2; 엡 5:22-27; 계 21:2, 9) “신랑의 친구”는 소개하는 일을 마치고 나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므로, 더 이상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한도 예수에 비할 때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계속 커지셔야 하고 나는 계속 작아져야 합니다.”—요 3:30.
요 4:10 「신세연」 연구 노트
생명의 물: 직역하면 “생수”.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흐르는 물이나 샘물 또는 샘을 파서 만든 우물에서 길은 물을 의미한다. 저수조에 담긴 고여 있는 물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레 14:5에 나오는 “생수”는 히브리어를 직역한 것이며 “흐르는 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렘 2:13과 17:13에서는 여호와가 “생명의 물[직역하면 “생수”]의 근원[또는 “샘”]” 즉 생명을 주는 상징적인 물의 근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와 이야기하실 때 “생명의 물” 즉 “생수”라는 표현을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셨지만, 그 여자는 처음에 예수의 말씀을 문자적 의미로 이해한 것 같다.—요 4:11. 요 4:14 연구 노트 참조.
9월 17-23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5-6장
“올바른 동기로 예수를 따르라”
요 6:10 「신세연」 연구 노트
사람들이 거기에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5000명쯤 되었다: 마태만이 이 기적에 대해 기록하면서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 14:21) 예수께서 기적으로 먹이신 사람의 수는 1만 5000명이 넘었을 수 있다.
요 6:14 「신세연」 연구 노트
‘예언자’: 기원 1세기에 많은 유대인들은 신 18:15, 18에 언급된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메시아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 문맥에서 세상에 오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던 메시아가 출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요한만이 이 구절에 나오는 사건들을 기록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 ··· 계속 남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 예수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자신과 제자들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실제 양식은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양식”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준다.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계속 남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다시 말해 영적 필요를 채우고 배운 것에 대해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라고 권고하신다.—마 4:4; 5:3; 요 6:28-39.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문맥을 볼 때,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요 6:35, 40)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기원 32년이었으므로, 그분은 주의 만찬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의 만찬은 예수께서 그로부터 1년 뒤에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유대인의 축제인 유월절”이 있기 얼마 전이었다. (요 6:4) 따라서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다가오는 축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던 날 밤 어린양의 피가 어떻게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했는지 떠올렸을 수 있다. (출 12:24-27) 예수께서는 그 어린양의 피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피가 제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었다.
영적 보물 찾기
요 6:44 「신세연」 연구 노트
이끌지: “이끌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끌어 올리는 것을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지만(요 21:6, 11),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억지로 이끄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 동사는 “끌리게 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는데, 예수께서는 렘 31:3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을 수 있다. 그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고대 백성에게 “[내가] 충성스러운 사랑으로 너를 내게로 이끌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칠십인역」에서는 그 구절을 번역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를 사용했다.) 요 12:32에서는 예수께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든 부류의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고 알려 준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누구나 그분을 섬길지 섬기지 않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신 30:19, 20) 여호와께서는 합당한 마음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부드럽게 이끄신다. (시 11:5; 잠 21:2; 행 13:48) 그분은 성경에 담긴 소식과 자신의 성령을 통해 그렇게 하신다. 요 6:45에 인용된 사 54:13에는 아버지께서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끄실 것임이 예언되어 있다.—요 6:65 비교.
요 6:64 「신세연」 연구 노트
예수께서는 ···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가룟 유다임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택하기 전에 밤새도록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눅 6:12-16) 따라서 유다는 처음에는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을 통해 자신이 가까운 동료에게 배반당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 (시 41:9; 109:8; 요 13:18, 19) 그리고 유다가 악해지기 시작하자,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예수께서는 그러한 변화를 알아차리셨다. (마 9:4) 하느님께서는 예지력을 사용하여 예수가 신뢰하던 동료 중 하나가 배반자가 될 것임을 내다보셨다. 하지만 유다가 그 배반자가 될 것임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특성과 그분이 과거에 일을 처리하신 방식과 조화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 표현은 유다가 태어난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가 사도로 선택된 시점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밤새 기도하신 다음 그를 사도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눅 6:12-16) 여기서 “처음”이란 유다가 배반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며, 예수께서는 즉시 그 점을 알아차리셨다. (요 2:24, 25; 계 1:1; 2:23. 요 6:70; 13:11 연구 노트 참조) 또한 이 표현은 유다가 배신한 것이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미리 생각하고 계획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처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르케의 의미는 문맥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벧후 3:4에서 “시작”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창조의 시작을 가리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단어는 좀 더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례로 베드로는 성령이 “처음에 우리에게 내렸던 것처럼” 이방인들에게도 내렸다고 말했다. (행 11:15)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처음”은 그가 태어난 시점이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원 33년 오순절 즉 성령이 특별한 목적으로 “처음” 부어진 때를 언급한 것이었다. (행 2:1-4) “처음”이라는 단어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된 예는 눅 1:2; 요 15:27; 요1 2:7에서도 볼 수 있다.
9월 24-30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요한복음 7-8장
영적 보물 찾기
요 8:58 「신세연」 연구 노트
내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그분에게 돌을 던지려고 한 것은 그분이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분이 “아직 나이가 오십도 안 됐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요 8:57)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자신이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강력한 영적 피조물로 존재했다는 점을 알려 주셨다. 일부 사람들은 이 구절이 예수와 하느님이 동일한 분임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일부 번역판에는 “나는 있습니다”로 되어 있다)가 「칠십인역」에 나오는 출 3:14의 번역 표현을 가리키는 것이며, 두 구절을 같은 방식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 4:26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동사 에이미로 표현된 행위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에고 에이미를 “나는 있습니다”가 아니라 과거 시제인 “내가 있었습니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러 고대 역본들과 현대 번역판들도 이 표현을 그와 비슷하게 번역한다. 사실 요 14:9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을 기록할 때, 동일한 형태의 그리스어 동사 에이미가 사용되었다. “빌립,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 있었는데도 당신은 나를 모릅니까?” 대부분의 번역판들도 그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며, 이것은 에이미를 문맥에 따라 과거 시제(일부 언어에서는 현재 완료 시제)로 번역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현재형으로 된 그리스어 동사를 과거 시제로 번역한 다른 사례를 눅 2:48; 13:7; 15:29; 요 15:27; 고후 12:19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요 8:54, 55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볼 때, 예수께서 자신이 아버지와 동일한 인격체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이 구절에 나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