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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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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가족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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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5 8/1 21-24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가족

한 아이에게, 아니 어떤 아이에게도 가정은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은 아이의 신체적,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데 도움이 된다. 가정은 훈련과 교육과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가정은 아이에게 안전을 느끼게 해준다. 자기 가정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겠는가! 마치 내게 일어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이지리아 동부에 있는 한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일곱 아내를 둔 추장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서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나는 스물아홉 번째 자녀였다.

내가 열 살 되던 해인 1965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두 남자가 가방을 들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자기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밝혔다. 아버지는 주의 깊이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이 잡지 두 부를 제공하자,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면서 잡지를 원하는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나를 위해 그 잡지들을 받았다.

그 증인들은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며, 실제로 다시 찾아왔다. 다음 두 해 동안, 그들은 와서 나와 함께 성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방문이 정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증인들은 우리 마을에서부터 1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배척당하다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여드레 후에, 맏형은 모임을 갖기 위해 가족을 모았다. 약 20명이 모였다. 우리 모두는 형이 장례 비용에 대해 이야기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형은 자기 동생인 바로 나에 관해 토의하고자 모임을 소집하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형은 내가, 마치 가족이 나를 먹여 살릴 돈이 없기라도 하다는 듯이, 4페니를 “구걸”하러 다니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하였다. 형은 4페니를 벌려고 잡지를 팔러 돌아다니는 것은 가문에 먹칠을 하는 짓이라고 덧붙였다. 형은 내가 어디에 속하기를 원하는지—증인들에게인지, 아니면 가족에게인지—결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사망하였지만, 한 의붓어머니가 나를 위해 울면서 간청하였다. 의붓어머니는 이 일을 빌미로 나의 상속권을 빼앗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한 여자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은 형의 편을 들어 나에게 결정을 하라고 강요하였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가족은 다음날 저녁까지 시간을 주겠다는 데 동의하였다.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무력하고 배척당하고 두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되었다.

그 때까지 나는 왕국회관에 참석하거나 증인들과 함께 전파 활동에 참여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며, 우리 마을에는 나에게 이야기해 줄 증인도 전혀 없었다.

나는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분이 참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배워 왔다고 말씀 드렸다. 옳은 결정을, 즉 그분을 불쾌하시게 하지 않는 결정을 하도록 지원해 주시고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다음날 저녁, 가족은 다시 모여 나에게 결정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나는 증인들과 연구를 시작하게 해준 분은 바로 나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였다고 설명하였다. 아버지가 내 잡지와 성서 대금을 지불하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증인들과 연구하는 것을 언짢아하지 않았는데, 형이 왜 이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나를 몰아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가족이 나에게 어떻게 하든지 개의치 않으며,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말하였다.

가족은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 중 한 사람은 “이 생쥐 같은 녀석이 자기가 뭐라고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하고 말하였다. 형은 즉시 내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옷가지와 책과 판지로 만든 작은 가방을 집어 마당으로 내던졌다.

나는 이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에게서 피신처를 구하였으며, 다섯 달가량 그의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 그 동안, 라고스에 있는 외삼촌에게 편지를 썼는데, 외삼촌은 자기한테로 와서 함께 살자고 권하였다.

몇 달 동안 나는 야자나무 씨앗을 모아 팔아서 돈을 저축하였다. 나를 변호해 준 의붓어머니가 나에게 또한 얼마의 돈을 주었다. 돈이 충분히 모아지자, 라고스를 향해 길을 떠났다. 도중에 모래를 실은 트럭 뒤 칸에 타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쫓겨나다

라고스에 도착하였을 때, 기쁘게도 나는 외삼촌이 증인들과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즉시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회중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호와를 섬기는 데 대한 외삼촌의 관심은, 나의 형의 방문을 받고 나서 금세 사라졌다. 형은 외삼촌에게, 나를 부양하지 않고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한 것은 내가 여호와의 증인과 계속 사귀기 때문에 가족이 내린 결정이라고 말하였다. 형은 외삼촌을 위협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형이 떠나고 나서 일 주일 뒤, 외삼촌은 한밤중에 나를 깨워 무엇인가 적혀 있는 종이를 한 장 내게 내밀었다. 외삼촌은 내 손에 볼펜을 쥐어 주고 서명하라고 강요하였다. 나는 외삼촌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 이것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외삼촌, 아침에 서명하면 안 돼요?”

외삼촌은 그 종이에 당장 서명하지 않으려면 “외삼촌”이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하였다. 나는 살인범도 자기에 대한 고소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고 대답하였다. 서명하기 전에 그 종이에 적힌 것을 읽어 볼 권리가 분명히 내게도 있었다.

그러자 외삼촌은 화를 내며 읽어 보도록 허락하였다. 그 내용은 이와 같이 시작되었다. “나 U. U. 우도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지 않기로 맹세한다. 나는 책가방과 책을 태워 버리는 데 동의하며 여호와의 증인과 절대로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 처음 몇 줄을 읽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재빨리, 외삼촌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이러한 서류에 서명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외삼촌은 몹시 분노하여 나가라고 호령하였다. 나는 조용히 옷과 책을 가방에 넣어 아파트 외부 복도로 나간 다음, 잠을 자려고 바닥에 누웠다. 외삼촌은 내가 그 곳에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지불하는 집세에는 그 복도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 건물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유혹적인 제안

나는 라고스에 온 지 이 주일밖에 안 되었으므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였다. 나를 왕국회관에 데려다 주던 형제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동이 트자, 여호와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면서 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날이 저물 무렵, 나는 주유소에 이르렀다. 나는 그 주유소 주인에게 다가가 도둑이 훔쳐 가지 않도록 내 옷가방을 밤 동안 그 사무실에 놓아 두고 잠글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다. 이러한 요청에 그 주인은 호기심이 일어, 나에게 왜 집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주인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남자는 동정적이 되어 나를 자기 하인으로 고용하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내가 자기 집에서 일을 도와 주면 학교에 보내 주겠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유혹적인 제안이었지만, 나는 하인으로 있으려면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도둑과 짜고 집에 있는 물건을 훔쳐 갈까 봐, 하인은 외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잘해야 아마 한 달에 한 번의 일요일밖에는 일을 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관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그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내가 만일 그의 하인으로 일하게 된다면 왕국회관의 집회에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머물 집조차 없는데 집회가 무슨 소용이 있니?” 나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마음이라면 아버지의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다름 아닌 종교 때문에 쫓겨난 것이었다. 내가 그 남자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내 가방을 둘 장소뿐이었다. 마침내 그 남자는 내 가방을 보관해 주겠다고 하였다.

다른 가족을 발견하다

나는 주유소 밖에서 사흘 밤을 잤다. 음식을 살 돈이 한푼도 없었으므로, 그 동안에 먹을 것을 전혀 구하지 못하였다. 나흘째 되던 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한 젊은 남자가 길에서 사람들에게 「파수대」와 「깰 때이다」 잡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기쁨에 넘쳐 그에게로 달려가 가드윈 이데 형제를 아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내가 묻는 이유를 알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는 즉시 잡지를 가방에 집어 넣고는 이렇게 물었다. “여기 라고스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수천 명이나 있는데 네가 이렇게 고생을 해서야 되겠니?” 그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은 다음, 나를 주유소로 데리고 가서 내 가방을 실었다. 그런 다음 나를 자기 아파트로 데리고 가서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근처에 살고 있는 이데 형제에게 연락하였다.

이데 형제가 왔을 때, 내가 그들 중 누구와 함께 지낼 것인지에 대해 그들은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 다 나와 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둘 다 나와 같이 살기로—얼마 동안은 내가 이 사람과 지내고 얼마 동안은 또 다른 한 사람과 지내기로—합의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나는 사환으로 일할 자리를 구하였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두 형제에게 식비와 집세로 얼마를 내면 좋을지 물었다. 그들은 웃으면서 전혀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얼마 뒤에 나는 개인 교습뿐 아니라 야간 학교에 등록하였으며, 마침내 기본 교육을 마쳤다. 재정적으로도 형편이 좋아졌다. 좀더 나은 직업으로 비서직을 구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나는 1972년 4월에 침례를 받았다. 열일곱 살 때였다. 나는 파이오니아 봉사에 가담하여 여호와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것, 특히 그 어려운 시기에 베풀어 주신 것들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고 싶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임시 파이오니아에 등록하였지만, 기반이 잡히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드디어 1983년에 정규 파이오니아로 등록하였다.

그 무렵 나는 영적 가족의 가치를 온전히 인식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하신 이와 같은 말씀이 참됨이 나에게 분명히 증명되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하느님의 왕국을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이 시기에 어떻게든 여러 배를 더 받을 것이며, 오는 사물의 제도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누가 18:29, 30.

증인들은 진정으로 나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나를 돌보아 주었다. 그들은 내가 무일푼일 때 나를 집안으로 받아들였다. 증인들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는 영적으로 번영하였다. 세속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여호와의 길을 배워 알게 된 것이다.

내 친족들은 바로 이 사람들을 배척하도록 나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내가 거절하자 내 가족은 나를 배척하였다. 이제 내 영적 형제 자매들은 내 친족을 배척하라고 권하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에게 똑같이 해 주십시오.”—누가 6:31.

나를 배척한 가족을 돕다

내가 집을 떠나고 얼마 안 있어, 나이지리아에서는 내란이 일어났다. 내가 살던 마을은 황폐되었다. 나의 많은 벗들과 친족들이 생명을 잃었으며, 그 가운데는 나를 위해 간청하였던 의붓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제가 몰락하였다.

내란이 끝나자 나는 고향으로 가서,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내쫓는 일에 동조하였던 한 형을 방문하였다. 그 형의 아내와 두 딸은 병이 들어 입원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형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어,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인지 형은 필요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였다. 나는 형에게 가족이 나에게 한 일에 대해 내가 보복할까 봐 염려하지 말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형들이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임을 알고 있으며, 진심으로 형을 돕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형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는 돈이 한푼도 없고 아이들은 병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형에게 300달러(미화)에 상당하는 돈을 주면서 라고스에 가서 일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라고스에 돌아와서 형의 일자리를 구한 다음, 형에게 와서 함께 살자고 권하였다. 형은 나와 약 2년 동안 함께 살면서 돈을 벌어 고향에 있는 아내와 두 딸에게 보내 주었다. 그 동안, 나는 형의 숙식비를 기꺼이 지불하였다.

형은 여호와의 증인이 참 종교를 실천하고 있음을 안다고 말하였다. 형은 또한 자기가 이토록 세속에 물들지만 않았다면 자기 역시 증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아내와 두 딸이 성서 연구를 하도록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987년에 나는 순회 활동을 시작하라는 초대를 받았다. 1991년 4월에는 새러 우크퐁과 결혼하였다. 1993년에 우리는 순회 활동을 그만두고 나이지리아 지부에서 일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우리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으며, 아내가 임신하게 된 때까지 지부에서 봉사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가족은 나를 내쫓았지만, 영적 가족—부모들, 형제들, 자매들 그리고 자녀들—은 나를 받아들였다. 진심으로 내가 사랑하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 독특한 세계적인 가족에 속한 일이야말로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다!—우돔 우도의 체험담.

[23면 삽화]

우돔 우도와 새러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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