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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처음 제조자들은 아주 오래 전에 살았다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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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5 12/1 24-26면

유리—처음 제조자들은 아주 오래 전에 살았다

규조류는 해수면을 떠다니는 극히 작은 단세포 유기체로서, 대양의 플랑크톤을 구성하는 유기체의 10분의 6을 차지합니다. “플랑크톤”이라는 말은 “떠다니도록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며, 플랑크톤은 “너무 작고 약해서 해류에 따라 떠다닐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규조류는 작을지 모르지만 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폭풍우로 인해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자양물이 솟아올라오면, 규조류라고 하는 이 단세포 조류는 오로지 먹는 데 열중해서 이틀 만에 그 수가 배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가 배로 늘어나면 유리 생산도 배로 늘릴 수 있습니다. 「생명—그 기원은 무엇인가? 진화인가, 창조인가?」 책은 유리 생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합니다.

“단세포 유기체인 규조류는 바닷물에서 규소와 산소를 추출하여 유리를 만듭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들은 엽록소를 담을 아주 작은 ‘함’들을 만듭니다. 한 과학자는 그것들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극찬합니다. ‘그 보석함에 담긴 그 푸른 잎들은 바다 속에 사는 모든 생물의 먹이 10분의 9를 공급하는 초장이다.’ 그 영양가는 주로, 규조류들이 만드는 기름에 있습니다. 그 기름은 또한 규조류들이 해면 가까이로 둥둥 떠 있게 해서 엽록소가 햇볕을 쬘 수 있게 하는 데도 기여합니다.

동 과학자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 아름다운 유리함 덮개의 ‘모양은 원형, 정사각형, 방패형, 삼각형, 타원형, 직사각형 등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다양하며, 언제나 기하학적으로 새겨 놓은 듯이 절묘하게 치장되어 있다. 이것들은 순수 유리에다가 아주 섬세한 기술로 가는 줄세공을 한 것이라서, 사람의 머리카락은 세로로 사백 등분을 해야만 새겨 놓은 틈에 끼울 수 있을 정도이다.’”—143-4면.a

대양의 플랑크톤 가운데 또 하나의 자그마한 예술품들이기도 한, 잘 번성하는 집단은 방산충(放散蟲)입니다. 이 작은 원생 동물—20여 마리가 서로 닿지 않게 핀의 머리 위에 앉아 있을 수 있음—도 대양 속에 있는 규소와 산소로 유리를 만듭니다. 이 생물이 만들어 내는 복잡 미묘한 아름다움과 경탄스러운 무늬는 말로 묘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들의 솜씨는 규조류도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방산충 가운데 하나를 보여 주는, 여기에 실은 사진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세 개의 구체가 러시아 인형처럼 한데 포개져 있고, 원형질로 이루어진 가시들이 유리 골격의 구멍들을 통해 뻗쳐 나와 있어 먹이를 잡아먹고 소화시킵니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반구형 다각 구조물 하나로는 이 대건축 기사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 건축물은, 규칙적인 무늬가 들어 있고, 레이스같이 생긴 반구형 유리 구조물 세 개가, 하나 안에 또 다른 것이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해면 동물도 유리 골격을 구축하는데, 그 중 가장 경탄스러운 것은 ‘비너스 여신의 꽃바구니’입니다. 19세기 초에 이것이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그 설계의 모양이 하도 뛰어나서 이 해면 동물은 동물학 소장품 가운데 놓일 정도로 값비싼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 해면 동물은 희귀한 것이 아니라 “필리핀 세부 섬 부근의 바다 밑바닥에 그리고 일본 해안을 따라 200-300미터 깊이에 카페트처럼 깔려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과학자는 이 해면 동물에 깊은 감명을 받고 신비감에 싸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비너스 여신의 꽃바구니]라고 알려진, 규산 가시들로 구성된 복잡한 해면 골격을 보노라면 우리의 상상력이 무색해진다. 외견상 독립된 미시적 세포들이 어떻게 합력하여 유리질 조각을 수백만 개나 분비하고 그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격자 무늬를 이룰 수 있었는가? 우리는 모른다.”

이 해면 동물도 모릅니다. 이것들은 두뇌가 없습니다. 이 해면 동물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프로그램을 짰습니까?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리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할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존재하며, 유리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뚜렷이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리는 어느 곳에나 있고, 우리는 유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창문, 안경, 컴퓨터 화면, 식탁용 기구 및 그 밖의 수천 가지 제품에 유리가 사용되었습니다.

유리의 다양한 용도와 아름다움은 유리가 인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어 왔습니다. 유리는 아주 쉽게 깨질지 모르지만 다른 장점들도 있습니다. 음식물을 보관할 때는 아직도 유리가 애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리는 금속과 달리 음식의 맛을 변질시키지 않습니다. 어떤 유리 그릇들은 조리할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우리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고급 포도주를 플라스틱 컵에 내오리라고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욥은 유리의 가치를 황금에 비하였습니다. (욥 28:17) 욥 시대에는 분명히 유리가 오늘날처럼 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마 이미 천여 년 동안은 족히 사용되어 왔을 것입니다.

유리 제조 기술이 마침내 이집트에까지 보급되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모형 만들기라고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점토와 거름을 사용해서 일정한 모양의 모형을 만들고, 녹인 유리를 그 모형 주위에 부었으며 모형을 매끄러운 표면에서 회전시키면서 모양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런 다음 밝은 색조의 가는 유리 줄로 그 겉에 자국을 내면서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유리가 일단 식으면 점토 모형은 날카로운 기구로 파냈습니다. 이 원시적인 방법을 참작해 볼 때 당시 생산된 몇 가지 유리 제품은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것입니다.

유리를 불어서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 유리 생산을 혁신시킨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 기술을 처음 알아낸 곳은 아마 지중해 동부 해안 지역인 것 같으며, 그 기술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손으로 유리를 만드는 주된 방법입니다. 노련한 유리 부는 직공은 속이 빈 관을 불어서 관 끝에 있는 녹은 유리의 “덩어리”로 복잡하고도 대칭을 이루는 여러 모양을 신속히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또는 이 직공은 녹은 유리를 불어서 모형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거니셨을 때에는 유리 불기 제조법이 초기 단계였습니다.

강력한 로마 제국의 후원에 힘입은 이 혁신적인 유리 불기 제조법으로 인해, 일반 대중은 유리 제품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유리 제품은 더는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영향력이 증대해 감에 따라 유리 제조 기술은 많은 나라로 보급되었습니다.

15세기경에는 유럽 무역의 주요 중심지인 베네치아가 유럽에서 유리 제품의 주요 생산지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유리 산업은 무라노에 집중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유리 제조업자들은 상당한 존경을 받았지만, 그들의 귀중한 작업 비법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무라노 섬을 떠나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유리 제품이 유리의 인기를 높이는 데 상당히 기여하였지만, 유리 제품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리 역사 개요」(A Short History of Glass)라는 책에서는 그 작업이 어떠한 것인지를 묘사하는 1713년판의 한 출판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남자들이 몹시 추운 겨울 날씨에도 옷을 거의 벗은 몸으로 매우 뜨거운 노(爐) 가까이에 계속 서 있다. ·⁠·⁠· 그들의 활력이 과도한 열기로 소진되기 때문에 그들은 쇠약해진다.” 후년에 가서 유리 절단공들은 회전 원반과 연마용 분말을 사용해서 유리에 광택을 냈습니다.

그 후의 혁신적인 방법들

영국은 유리의 역사에서 특별히 언급 되었습니다. 영국의 한 유리 제조업 자가 1676년에 납유리 제조법을 완성시켰습니다. 산화연을 첨가한 강하고 투명하고 반짝이는 무거운 유리를 생산해 낸 것입니다.

대영 제국은 빅토리아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는데, 영국은 이 때에 주요 유리 생산국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851년에 수정궁에서 열린 대박람회로서, 세계 최초의 이 박람회는 거의 90개 국의 산업 기술 및 수공예 출품자들을 유치하였습니다. 전시물 중에서 유리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수정궁과 그 중앙에 있는 8.2미터짜리 유리 분수가 특히 각광을 받았습니다. 손으로 불어 만든 30만 개의 창유리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약 400톤의 판유리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유리 제조에 있어서 다음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그 변화란 1820년대에 기계식 압형기를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유리 역사 개요」 책은 그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압형기가 있으면 가장 적은 경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숙련공 서너 사람으로 된 한 팀이 유리를 불어 만드는 것보다 네 배나 되는 유리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병을 불어 만드는 자동 기계가 완성되었습니다. 1926년에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공장에서는 자동 기계를 사용하여 1분에 백열 전구 2000개를 생산하였습니다.

많은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유리가 지닌 예술적 가능성에 매력을 느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유리 제품에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미되었고, 유리로 된 공예품이 더욱더 창작되었습니다.

유리는 확실히 하나의 경이로운 산물입니다. 유리의 온갖 가정용 용도는 차치하고라도, 그 밖에도 수많은 부면들 이를테면 허블 우주 망원경, 카메라 렌즈, 광섬유 통신 시스템, 화학 실험실 등에 응용되고 있음을 고려해 보십시오. 깨지기 쉬울지는 모르지만, 유리는 용도가 매우 다양하고 아름답습니다.

[각주]

a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25면 사진 자료 제공]

위와 아래: The Corning Museum of Glass

[26면 사진 자료 제공]

The Corning Museum of 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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