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음을 가진 충성
“나는 충성하오니 나의 영혼을 인도하옵소서. . . . 오 여호와여 주의 길에 관하여 나를 교훈하옵소서. 나는 당신의 진리대로 행하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 하는데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시 86:2, 11, 신세.
1, 2. (ㄱ) 지도자에게 어떠한 것이 요망되고 있읍니까? 그리고 오늘날 어떠한 나라들에게 정치적 지도력이 기대되고 있읍니까? (ㄴ)어떠한 다른 지도력이 요청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이 불안정하고 변화 무쌍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 모든 민족들은 지도력을 구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좋은 결과를 약속하는 잘 짜여진 계획을 가지고 있는 믿을만 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도자를 지지하기 원합니다. 그 지도자는 성공으로써, 업적으로써, 품격으로써, 확신을 가진 용기로써, 노련한 판단력으로써 위신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충성심을 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도 또한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리고 확고한 목적과 행동의 법칙에 대하여 충성되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냉전』으로 인하여 분열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여러 나라의 대변자들은 미 합중국이 세계적인 문제를, 특히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유익을 위하여 지도력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미국의 크기와 부와 강대함으로 보아 그 나라야 말로 그러한 지도력을 갖기에 알맞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 「블로끄」에 속해 있는 다른 나라들은 지도력을 붉은 「러시아」의 「모스코바」에 기대하며 그들의 충성을 그에게 바칠 것을 공개적으로 맹서하고 있읍니다. 마음의 설복도 없이 충성이 강요되고 있기도 합니다. 정치적 지도력을 구하는 부르짖음의 소리 뿐만 아니라 종교적 지도력을 구하는 소리도 있읍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오늘날 충성이라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읍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한 마음을 가진 충성을 바쳐야 합니까?
3. (ㄱ) 정치 세력 사이와 종교 세력 사이에 지금 어떠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읍니까? 그리고 무엇에서 신용이 더욱 없어지고 있읍니까? (ㄴ) 그러나 어떠한 소식이 진리를 울리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오늘날은 이전 어느 때에도 결코 본 일이 없는 선전(宣傳) 시대입니다. 시각과 청각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써 정치 세력들 사이와 종교 세력들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과 충성심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읍니다. 그 결과는 혼란과 분열 뿐입니다. 보고 듣는데서 신용은 점점 잃어지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거짓 선전』이라는 것이 너무나 많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큰 부분은 지금 격렬한 『냉전』입니다. 그러나 모든 선전 전의 시끄러운 소음 가운데 진리의 소리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소식이 들리고 있읍니다. 이 소식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혼미케 하는 소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쁜 소식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속이거나 인간이나 혹은 인간의 조직의 노예가 되도록 인도하지 않는 소식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도 1:2)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십니다.—히브리 6:18.
4, 5. (ㄱ) 지금 전해지고 있는 천국 소식이 다만 우연이라든가 인간의 발명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ㄴ) 어떠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그리고 어떠한 사실의 증거로서 이것이 예언되었읍니까?
4 다만 우연이나 인간의 발명 또는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은 주후 1914년 이래 전 세계에서 울리고 있읍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되었으며 그것은 오늘날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십구 세기 전에 이 땅에 계시던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전파자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표시라고 예언하셨읍니다. 우리 세대에 관한 역사를 미리 말씀하실 때 이 천국의 전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을 인류 역사의 전환기가 되게 한 제1차 세계 대전과 식량부족, 온역, 지진, 불충성, 불법의 성함, 종교적 박해, 국제적 고난, 그리고 1914년 이래의 우리의 시대에 특징이 되고 있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말씀하셨습니다.
5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래에 대한 예고를 어둡게 해놓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3-14) 예수께서는 그가 언제 하나님의 나라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언제 이 세상 조직 제도의 마지막 장인 결론이 기록될 것인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이러한 모든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1914년 이래 이 낡은 세계 역사의 마지막 장에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천국의 기쁜 소식이 세계적으로 전파된다는 예수의 예언의 특징이 성취되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러면 누구에 의하여 그것이 성취되고 있읍니까?
6, 7. (ㄱ) 어떠한 반열의 사람들에 의하여 천국의 기쁜 소식이 전파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ㄴ) 현대 역사는 이 예언된 전파 사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읍니까?
6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들이 천국과 천국의 전파자들에게 공개적 공격을 가함으로써 천국을 더욱 널리 알려지게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수들에게 의하여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이 전파 사업은 예수와 그의 사도 당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 똑같은 반열의 사람들에 의하여 즉 헌신하고 침례를 받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추종자들에 의하여 수행되고 있읍니다. 정치 운동에 있어서 가령 미국에서 민주당과 그의 강령과 정당의 약속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물론 민주당원들입니다. 공화당과 그의 정책과 약속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물론 공화당원들입니다. 사회당과 그의 정치적 목적 그리고 후보자들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물론 사회당원들일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예언과 일치하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전도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겠읍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입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편에 서서 그것을 충성스럽게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산상에서 설교하실 때 말씀하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교훈을 행하고 있읍니다.—마태 5:1, 2; 6:32, 33.
7 이것은 이 조직 제도의 결말의 날에 하나님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전파된다는 예수의 예언이 오늘날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8억 6천 9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에 의하여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역사는 1914년 이래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알려진 헌신하고 침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수행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수행되고 있음을 증명해 줍니다.—「아메리카나 어뉴알」 1961년 396면 2난 참조.
8, 9. (ㄱ) 우리가 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안될 천국 증거에 관한 어떠한 질문이 있읍니까? (ㄴ) 어떠한 사람들이 천국의 축복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그리고 왜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8 이 천국 전파 사업은 우리 시대에 수행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언 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말하실 수 없고 또 거짓말장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증거되기 위하여 천국 전파가 수행되어 영감에 의한 예언이 성취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각자가 다음과 같은 큰 질문에 직면하게 되며 그것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그것은 즉 우리는 다만 증거되기 위하여 전도를 받기만 하고 천국을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인가? 혹은 전파하고 증거하는 사람의 하나가 되어 그 나라만이 전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요 해결책이라는 것을 충성스럽게 변호하고 있음을 나타낼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하나님의 나라』는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죽음으로써만 하늘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활동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분열되어 있지 않는가?
9 충성이 분열되어 있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에 들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시 3:16) 다만 증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전도하고 증거하는 사람들—그들이야말로 이 조직 제도의 종말을 통과하여 살 수 있을 것이며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큰 환란 후에 올 천국의 축복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 24:21, 22)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야말로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므로 이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들인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되게 함
10. (ㄱ) 천국 전파자들이 박해를 당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까? (ㄴ)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만 증거를 받기만 할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정치적 전쟁 마당에 있어서 다른 정부에 대항하여 한가지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정적(政敵)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 반대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만이 올바른 주권이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반대를 받고 욕을 들으며, 심지어 박해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그렇습니다. 『이 조직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수 자신의 예언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세계 전쟁에 관하여 예언하신 직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 24:9) 얼마나 되는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요? 『모든 민족에게』라고 예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정치적 민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할 것이며 그것의 전파자들을 미워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그리스도인들까지도 다만 증거를 받으려고 할뿐 그들 스스로 증거할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11. 천국 전파자들에게 어떠한 성품이 요구되며, 그러므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합니까?
11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충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기를 원치 않겠읍니까?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그가 주기도문으로 항상 기도해 온 영광스러운 천국에 충성을 바치는 것은 모든 민족에게 박해와 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충성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는 마치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하여 『여호와의 보좌』에 앉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을 지킬 것을 항상 기도합니다.—역대 상 29:23, 신세.
12. (ㄱ)「다윗」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성품을 나타냈으며, 또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나타내실 것을 기대하였읍니까? (ㄴ) 언제 그리고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성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12 시편 86편에서 「다윗」은 그가 박해를 받은 것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의 귀를 기울이시옵소서. 나는 곤궁하고 빈곤하오니 나에게 대답하시옵소서. 나는 충성하오니 나의 영혼을 인도하옵소서. 당신을 의뢰하는 당신의 종을 구원하소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시 86:1, 2, 14, 17, 신세)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사랑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정 수반으로서 봉사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의 충성심과 일치하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도 그와 또 그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성하실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시편 18:25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자에게는 당신도 충성으로 행하』신다고 말하였읍니다. (사무엘 하 22:1, 2, 26, 신세)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나라의 유익을 위하여 헌신하였고 그것을 첫째로 구한다면 우리도 「다윗」과 똑 같이 천국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지키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성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성하신다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와 같이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충성스럽다. 여호와의 말이다』라는 것을 읽을 수 있읍니다. (예레미야 3:12, 신세) 그러므로 우 리에게 충성스러우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3. 충성은 몸의 어떠한 기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충성심을 어떻게 하고자 하여야 합니까?
13 충성은 심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애정에 있어서, 사랑에 있어서, 애착심에 있어서 분열되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충성할 수 없읍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사랑과 헌신의 대상자를 반대하는 자들이나 또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두려워 한다면 우리는 충성할 수 없읍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은 「사단」 마귀의 종들로서 일하고 있는 자들이며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충성을 깨뜨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의 나라를 첫째로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바와 같이 그것을 전파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항산 충성심을 기르고 그것을 육성하며 원수를 두려워하는 생각을 내어 쫓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시편 86:10, 11에서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읍니다. 『당신은 즉 당신만이 하나님이십니다. 오 여호와여 주의 길에 관하여 나를 교훈하옵소서. 나는 당신의 진리 대로 행하겠읍니다.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 하도록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신세)
14. (ㄱ)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표현은 우리의 심장의 상태가 어떠함을 암시하여 주는 것입니까? (ㄴ) 「사울」왕은 왜 불충성하게 되었읍니까?
14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것은 얼마나 독특한 표현입니까? 이것은 마음이 하나의 통일된 상태에 있지 않으며 애정과 두려움에 있어서 그것이 갈려져 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온전히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뺏아가는 인간을 두려워하는 무엇이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을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잠언 29:25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그러한 올무는 우리를 삼키고 우리를 멸망시키기 원하는 자들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도록 사로잡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박해하던 「사울」왕은 사람을 두려워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어겼읍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예언자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 상 15:24) 그러한 두려움이 여호와 하나님께 불충성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15.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이에 관하여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교훈하셨으며, 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다윗」은 그러한 두려움에 빠지기 원치 않았읍니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열두 사도들을 『천국이 가까왔다』라고 전파하도록 선교인으로 내어 보내실 때에 그는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에게 경고하셨읍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천국을 담대히 전파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께헨나v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 10:5-7, 27, 28, 신세) 그러므로 「다윗」이 그분에게 『나는 충성하오니 나의 영혼을 인도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16, 17. (ㄱ)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두려워 하는데 「다윗」의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셔야 하였읍니까? (ㄴ) 그의 이름에 여호와의 증인들의 관심을 이끌므로 왜 두려움이 그들의 온 마음을 싸게 하며, 그것은 무엇으로 인도하여 줍니까?
16 「다윗」이 영감에 의하여 기록한 시편은 오늘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보존되어 있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께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 하도록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셨읍니까? 그것은 「다윗」의 마음을 분열케 하고 몸과 영혼을 함께 소멸의 「께헨나」에 멸망시키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른 두려움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었읍니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을 다만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 하는데 한 마음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었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감명적인 이름이나 명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말만 하여도 더욱 높은 두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큰 두려움을 갖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말이 나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에게 어떠한 깡패 두목이나 어떠한 독재자나 어떠한 무당의 이름으로 위협적인 말을 하면 그들은 낯빛을 잃고 벌벌 떨며 그들의 생명과 몸을 위하여 두려워 합니다.
17 그러나 삼천년 전에 살던 「다윗」은 그렇지 않았읍니다.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리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됨으로써, 그들은 다만 그의 이름에 씌우신 그의 영광만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과거에 그가 행하신 모든 놀라운 행사와 업적과 이 20세기에 성취하게 하신 모든 예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의 이름을 말하기만 하여도 그들의 머리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과 그에게 불충성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집행하신 모든 형벌과 멸망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가 어떻게 「노아」시대에 모든 세상 사람들을 멸망시키셨는가를 생각합니다. (베드로 후 2:5; 3:6) 그러므로 여호와께 대한 이러한 두려움이 기타 가능성 있는 다른 모든 두려움을 압도하게 합니다. 그의 이름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온 마음을 하나로 되게 하고 두려움을 갖게 하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길로 한 마음을 인도하여 줍니다.
18. 이것은 왜 비겁한 두려움이 아닙니까?
18 이것은 비겁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겁이 나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9:9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이른다고 하였읍니다. 그것은 인간 앞에서 겁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고 생활의 깨끗함으로 인도합니다. 그것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통치자로 순종하는 일을 망설이는 일이 없게 해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데 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그는 더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야고보 1:8)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최고 지상자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길입니다.
19.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셔야 함을 말하였읍니까?
19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이러한 마음의 통일을 기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기도와 일치하게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일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윗」은 바로 이러한 기도를 하기 전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할에 관하여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에 관하여 말해 주고 있읍니다. 『이는 당신이 위대하시오며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즉 당신만이 하나님이십니다. 오 여호와여 주의 길에 관하여 나를 교훈하옵소서. 나는 당신의 진리 대로 행하겠읍니다.』 (시 86:10, 11, 신세) 여호와께서는 그의 길에 관하여 교훈하실 필요가 있읍니다. 또한「다윗」도 여호와의 길과 진리대로 걸어야 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훈하실 것을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20 만일 우리도 「다윗」이 한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교훈하실 것을 기도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의 길에 관하여 기쁨으로 교훈을 받기를 원하며 교훈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또 항상 교훈을 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한 바와 같이 여러 세기를 통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도해 온 것입니다.
21.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무엇을 「다윗」이 가졌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을 마련해 놓으셨읍니까?
21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기도에 응답하시여 참으로 많은 교훈을 마련해 놓으셨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다윗」이 그의 시대에 받던 교훈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입니다. 「다윗」은 다만 욥기가 만일 「모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면 그 책하고 성경의 처음 여덟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완성된 성경인 66권의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책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교훈들을 포함하고 있읍니까! 그 교훈은 결코 낡아지는 교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우주 시대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 회중을 위하여 새로운 종교 교과서가 기록될 필요가 없읍니다.
22. (ㄱ) 하나님의 예언에 관한 어떠한 점이 그의 길을 우리에게 나타내 줍니까? (ㄴ) 그러므로 그의 길에 관한 교훈을 위하여 우리는 먼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22 성경 자체에 기록되어 있는 성취된 수 많은 예언 외에도 천구백년 전에 성경이 완성된 이래 성취되어 온 성경 예언은 얼마나 훌륭한 것입니까? 이러한 예언의 성취도 또한 오늘날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이며 우리가 교훈 받기 위하여 기도해 온 하나님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하나님과 협조해야 할 우리의 길은 명백합니다. 우리가 만일 그에게 길에 관하여 교훈하여 주실 것을 기도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의 기록된 말씀인 그의 책으로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책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책보다도, 심지어 이른바 자연의 서적에서 보다도 더 많이 그의 길에 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책을 밀어 놓시고 우리에게 직접 교훈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치 그 자신의 아들이 이 지상에 계실 때 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7, 8; 히브리 10:5-9.
23.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해줍니까?
23 우리가 그의 길에 관한 교훈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기록된 귀중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길 외에는 없읍니다. 우리는 지식을 위하여 성경의 책장을 살펴 가면서 연구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단조롭고 지루한 종교적 고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과 같이 흥분할만 하고 값이 있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합니다. (잠언 10:14)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의 도를 잘 알게 해줍니다. 그것은 그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그에 대한 존경을 더욱 북돋아 줍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깨끗하고 건전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게 합니다. 이것이 그에 관한 참다운 지식이 가져다 주는 결과라는 것이 잠언 22:17, 19에 잘 기록되어 있읍니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찌어다.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24. 예수께서 요한 17:3에서 어떠한 사실을 우리에게 명백하게 하셨읍니까?
24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 관한 자세한 지식을 갖는데 달려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 이 사실을 명백히 하셨읍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당신과 그리고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요한 17:3, 신세)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인가 혹은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한가지 사실은 그의 이름을 두려워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25, 26. (ㄱ) 개인 성경 연구 뿐만 아니라 또 무엇을 하여야 하며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께서 그의 신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통하여 교훈을 받을 것을 구할 것입니까?
25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의 길에 관한 교훈을 받는 것이 다만 혼자서 그의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는 것으로 만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경 역사에 있어서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이나 성경이 완성된 이래 성경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에 있어서나 언제나 그의 백성들 즉 그의 증인들과 관련을 맺어 오셨읍니다. 우리가 온전한 교훈을 받기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교훈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백성들인 그의 증인들과 사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일에 마음을 온전케 한 사람들은 서로 따로 따로 공부하고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입니다. 말라기 3:16은 이렇게 예언하였읍니다.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26 그들이 만일 그의 이름에 관하여 생각한다면 그들은 서로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 할 것이며 서로 그 이름에 대한 인식을 더욱 넓게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신 세계에서 살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가까와 오고 있는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을 통과하여 살도록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길과 일치하게 그의 조직된 백성들 즉 그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록된 말씀 위에 빛을 비추어 주어 여러 가지 면으로 성경을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사용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그의 도에 관하여 우리에게 교훈해 주실 것을 여호와께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가 진실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조직된 백성을 통하여 나오는 교훈을 기쁨으로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27. 받은 교훈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진리 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27 「다윗」은 교훈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끝이지 않았읍니다. 그는 곧 『나는 당신의 진리 대로 행하겠읍니다』라고 덧붙였읍니다. 이와 같이 받은 교훈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그는 하나님의 진리 대로 걷습니다. 그는 진리 대로 생활합니다. 그는 그의 생활을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관한 진리와 일치하게 합니다. 그는 이 세상의 거짓 종교로부터 받은 거짓과 전통과 의식과 행사와 축일을 버립니다. 그는 예수께서 하신 바와 같이 진리를 전파하고 말과 행동으로써 진리를 증거합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위하여 인간 피조물로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28. 진리는 우리를 어떻게 자유케 해주며 진리 대로 행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합니까?
28 진리를 통하여 우리는 미신과 거짓 신과 악귀들을 두려워하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됩니다. 홀로 『살아계시고 참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그의 생활을 좌우하고 조정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도에 관하여 여호와로부터 교훈을 받고 그의 진리 대로 행하는 것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두려워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한 마음이 우리의 생활에 가져오는 것은 얼마나 가벼운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까!
29. 인간의 어떠한 상태가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증명해 주며, 야망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을 이기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충성의 시험을 당하게 합니까?
29 오늘날은 이전에 생각지도 못하던 정도의 국제적인 공포의 날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때』 즉 『이 조직 제도의 결말』을 알려주는 공포인 것입니다. 상태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바와 꼭 같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누가 21:25, 26) 그러한 두려움과 놀라운 기대는 교훈을 받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호와 안전과 보존을 약속해 주는 인간 조직에 피난하게 합니다. 그들은 유능한 지도력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욕망과 공포심을 이용하여 지도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사람들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충성을 잘못 바쳐서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하고 고생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게 우리의 충성을 올바로 바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더욱더 날카롭게 해줍니다.
30, 31. (ㄱ) 이 세상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을 합니까? (ㄴ) 어떠한 결과에 대하여 우리가 충성한 것은 보증해 주며, 그러므로 어떠한 현재의 상을 하나님께서 충성한 사람들에게 주십니까?
30 우리 즉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 하는데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한 사람들은 이 낡은 세상의 사람들과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심이나 무서운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두려움을 갖는 대신 예수께서 이러한 때에 하라고 하신 말씀 대로 합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누가 21:28) 우리는 어떠한 인간의 조직이나 정치적 독재자에게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시편 필자 「다윗」이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충성하오니 나의 영혼을 인도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시 86:2, 신세)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충성함으로써 우리는 다시는 고칠 수 없는 잘못된 길을 갈 수 없읍니다. 우리는 의로운 길로 우리의 걸음을 지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의 선하심을 의뢰합니다. 그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가 그 [충성한]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사무엘 상 2:9, 신세.
31 이 약속은 우리의 심장과 신경에 얼마나 굳은 힘을 주는 것입니까! 이 약속도 또한 그러합니다.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충성한] 자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잠언 2:7, 8, 신세)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이름을 두려워 하는데 한 마음을 가지고 충성을 지키는 데 대한 얼마나 훌륭한 현재의 상입니까! 그는 지금도 상을 주십니다. 왜냐 하면 그는 우리가 그의 신 세계에서 영속하는 상을 즐기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상은 그에게 영원히 충성한 사람들이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