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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의인이 고통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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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의인이 고통을 받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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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8/1 261-287면

왜 의인이 고통을 받는가?

고통이 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을 탓하는가?

지진이나 폭풍으로써 의인과 악인의 구별 없이 사람들이 죽고 불구가 되는 것을 볼 때 당신은 하나님의 탓이라고 생각하는가? 딴 사람의 죄 때문에 무죄한 사람이 몇년씩 감옥살이를 하였다는 것을 읽을 때 왜 이렇게 부당한 일이 있는가 하고 의심하는가? 올바르고 하나님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이 불치의 암병으로 고통하는데 한편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그 이웃 사람은 번영하고 건강을 누리는 것을 볼 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의인이 고통을 받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가?

의인은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불의한 짓을 했을 때 결과적으로 고통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욥」을 위안하러 온 세 친구는 이와 같이 토론하였던 것이다. 「욥」은 말할 수 없는 질병과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열명의 자녀를 위시하여 모든 재산을 상실하였다. 종전에는 그를 존경하던 「욥」의 형제들과 친구들까지도 그가 가까이 하는것 조차 싫어한 것이다. 그의 부인까지도 돌아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까지 하였다.—욥 1장, 2장; 19:13-19.

「욥」을 방문한 세 사람은 7일간 말도 없이 그가 몹시 고통하고 비천하게 된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하여 그중 하나가 드디어 말하기는 하였으나 위안과 동정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찌르는듯한 날카로운 말로써 「욥」이 불의를 행하였기 때문에 벌로써 이렇게 고통한다고 말한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라고 「엘리바스」는 말하였다. 그렇다. 너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너를 벌하시고 그러므로 네가 고통하고 있다고 「엘리바스」는 「욥」에게 말한 것이다.—욥 4:7-9.

사람들, 심지어는 목사들까지도 이와 동일한 의견을 말하며, 재난으로써 하나님이 죄진 자를 벌하신다고 말하는 것을 당신은 들어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욥」에 대한 비방은 거짓된 것이었다. 그가 행한 불의한 행동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벌하신 것이 아니었다. 「욥」은 의인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데만」 사람인 「엘리바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 42:7.

하나님의 탓이 아님

오늘날 사람들의 고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굶어 죽고 가난한 생활을 한다. 『하나님께 죄를 짓거나 부당한 말을 하지 않았던』 「욥」과 달리 많은 사람들은 분격하여 하나님을 탓한다. 세계 제 2차 대전시 폭탄이 하늘로부터 쏟아져서 선악인을 막론하고 죽음과 고통이 만연되었을 때에 더욱이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전쟁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어긴 까닭에 결과로써 고통하는 것을 하나님 탓이라고 하는것이 정당한 일인가? 부모가 자녀에게 서로 싸워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였는데도 그들이 충고를 무시하고 막대기나 돌을 가지고 서로 덤벼 싸움으로써 멍이들고 다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여 고통을 자초하는 것과 동일하게 부모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의로운 종들이 전쟁이나 혹은 폭풍, 홍수, 지진 등의 재난으로 고통한다 하드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탓이 아닌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악인을 처벌하기 위하여 천재를 일으키신 일은 있다. 그러나 그런 때에는 「노아」의 대 홍수처럼 미리 경고하심으로써 누구나가 하나님이 멸망시키신다는 것을 알도록 예고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재난이 인류의 죄를 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처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성귀는 도무지 없다. 반대로, 예를 들자면, 지진은 땅이 주저앉임으로 인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시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재난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측 못한 일과 우연에 인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 부부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그들은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났다. 이렇게 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은 창조주의 특별한 보호와 축복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인류에게 일어나는 일은 우연한 것이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따라서 선인이건 악인이건 동일하게 자연적 재난과 사고와 화재등으로 인하여 고통하게 되는 것이다.—전도 9:11.

의인과 악인이 갈이 고통받음

아픈것과 질병은 가장 흔한 고통의 하나이다. 의롭건 악하건 어린 아이들까지 고통스러운 병이 걸리는 것이다. 충성스러운 어린 「디모데」도 속병이 있어 『자주 나는 병』의 고통을 받은 것이다. (디모데 전 5:23) 「바울」이 편지에서 특별히 언급한 것을 보면 「디모데」가 이 병으로 인하여 많이 고통한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또 「바울」도 『육체에 가시』라 한 것을 보면 그에게도 고통스러운 병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고린도 후 12:7-9.

이런 의인들은 그 외의 충성스런 성경의 인물과 더불어 왜 고통을 받았는가? 오늘날의 하나님의 의로운 종들이 고통받는 것과 동일한 이유 즉 죄로 인한 물려받은 불완전성으로 인한 것이다. 인간은 부모로부터 불완전한 육체를 받았으므로 하나님 목전에서 의롭게 행하드라도 유전받은 약점이나 질병에 대한 감수성을 바꾸거나 고칠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써 의인이 고통받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하는 반면에 악인이라도 오래 살아서 악행을 계속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도 육적 약점을 유전받은고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즉 예측 못한 일과 우연에 인한 것이다.—욥 14:4; 로마 5:12.

의로운 길을 걸어온 자라도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성경의 충고를 항상 적용하지 않으므로 고통받는 수가 있다. 성경적 충고를 듣지 않고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그리스도인은 결과로써 결혼의 고통을 받는다. 혹은 판단력이 부족하여 식사를 적당히 안하고 충분히 쉬지도 않음으로써 쇠약하여져서 고통받는 일도 있다. 한 때 「다윗」은 성경의 충고를 적용하지 않고 「밧세바」와 간음한고로 후에 회개하고 죄를 되풀이 하지 않았는데도 그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베드로」도 영적으로 쇠약하여 그리스도를 세번이나 부인한고로 통곡하였다고 성경은 말하였다.—사무엘 하 11:2-4; 마태 26:75.

「베드로」는 이것에서 단단히 배워 후에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한 충고를 하였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것이다. 의로운 행로를 밟아 온 사람이라도 이러한 잘못된 행동은 슬픈 시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일로 고통받는 사람은 의인으로서 고통하는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판단 부족이나 성경적 충고를 안듣는 것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베드로 전 4:15.

악인들은 타락과 방탕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충고를 무시하므로 흔히 고통을 받는다. 「헤롯」 대왕은 나쁜 생활 습관으로 인하여 못된 병에 걸렸으며 그의 궁전은 고통스러운 통곡으로 들석들석 울리었다고 한다.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오늘날에도 화류병의 고통을 받는 자들이 많이 있다. 비록 하나님의 율법이 의인을 위하여 보호가 된다 하드라도 그들이 받을만한 분량 이상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어떤 이유로 그러한가?

의롭기 때문에 고통함

고통을 많이 받아 온 사람들은 다른 이들 보다도 정의에 복종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경험은 그들로 부드럽게 되게 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의로운 행로를 쉽게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로 의인이 고통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의로운 까닭이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살이 한 것은 이러한 예의 하나이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리웠을 때 그를 산 사람은 「애굽」의 궁정관(宮起官)인 「보디발」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보디발」 집안 전체의 책임을 갖게 되었다. 「요셉」이 아주 잘 생긴고로 「보디발」의 아내는 그와 관계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하여 「요셉」에게 자기와 눕기를 강권하였다. 마침내 의인인 「요셉」은 대답하기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한 것이다. 여기에 분노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무고하게 고발하여 감옥에 갇히게 하고 따라서 「요셉」은 억울하게 2년 이상이나 감금되었던 것이다.—창세 39:9.

옳은 일을 위하여 꿋꿋이 서는 이러한 사람을 당신은 경탄하지 않는가?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충고를 순종하느라고 비난이나 박해까지 견디는 것을 볼 때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이 이 악한 세상과 그의 유혹 속에서도 옳은 길을 걷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상상하여 보라. 그러나 당신은 묻기를, 하나님은 왜 자기 종들로 고통케 하시는가 라고 할지도 모른다. 반역한 천사인 악마 「사탄」이 일으킨 문제에 대답이 놓여있다. 이 문제는 사람의 충성에 관계되어 있다. 이것은 의로운 「욥」의 경우로도 알 수 있다.

하늘에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의 집회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단에게 물으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이 「욥」의 충성을 「사단」에게 주목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 인간이 하나님께 충성을 지킬 것인가가 문제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단」의 대답은 이런 문제가 존재하였던 것을 증명한다. 왜냐 하면 그는 「욥」의 충성에 대하여 구실을 붙였기 때문이다. 즉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충성을 지킨 것이 아니라 물질적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말한바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찌니라.」』—욥 1:7-12.

악마가 행할 수 있었던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의로운 행로를 밟았다.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기쁘시게 하기 원하였기 때문에 그를 섬겼다는 것을 「욥」은 입증하였다. 그는 자기가 끝까지 성실을 지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방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욥 27:5.

성실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믿는바를 위하여 고통받기를 서슴치 않는다. 한 사람이나 나라를 사랑하므로 자기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 있다. 성경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강한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예로 충만한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의로운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화를 돌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창조물로 돌아서게 할 수 있다고 한 악마의 주장을 거짓된 것으로 증명하고자 원하는 것이다. 의로운 행로를 좇음으로써 많은 고통을 받았더라도 그들은 옳은 태도를 유지하여 왔다.

고통에 대한 올바른 태도

고통 자체가 행복을 초래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가 자기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유익하게 되거나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 때 고통 중에도 그는 기뻐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써 사도들은 천국 복음 전파 때문에 채찍질 받은 후에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전도하라고 하신 명령을 따른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듯이 그들은 행복하였던 것이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라.—사도 5:40, 41; 베드로 전 3:14.

이것으로써 예수의 산상 수훈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태 5:10-12)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충성을 지키고 고통을 받을 때에는 자기가 악마를 거짓말장이로 입증하고 동시에 하나님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알므로 기쁨에 넘친다. 고통 자체가 행복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의 이름 입증에 이바지 한다는 사실이 행복을 초래하는 것이다. 또한 충성자를 위하여 약속된 보수 때문에도 기뻐할 수 있다.—잠언 27:11.

이 악한 사물의 제도에 살고 있으며 또한 죄로인한 불완전을 유전 받은 까닭에 오늘날 누구나가 고통을 경험하게 되어 있다. 의로운 자는 하나남께 충성을 지키기 때문에 고통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 속으로부터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지으시는 신 세계가 아주 가까왔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고통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현재의 고통으로 분격하지 말라. 장래를 내다보라. 그렇다. 고통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신 세계에 희망과 확신을 두라.—계시 21:4; 베드로 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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