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다 3.
1, 2. (ㄱ) 『한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다』라는 믿음에는 어떠한 위험성이 있습니까? (ㄴ) 이 믿음에 대한 경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교국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한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다』라는 말같이 거짓이고 위험한 유행어는 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재난으로 인도할 수 있읍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 있을 의로운 새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희망을 알려 주는 성서의 가르침을 상실할 수 있읍니다.
2 『한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다』라는 위험한 믿음에 대하여 우리에게 경고하고 참다운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제자는 오늘날의 긴급성을 알리는 짤막한 편지를 썼읍니다. 이 편지는 성서의 예순 다섯번째 책이며, 기원 1세기65년 경에 기록되었읍니다. 이 글을 유다서라고 부릅니다. 이 편지는 다만 25절밖에 없지만 이 영감에 의한 충고를 듣고 실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든 참다운 추종자들에게 놓여져 있는 구원을 얻느냐 혹은 잃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읍니다.
3. 「유다」는 누구였으며, 왜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릅니까?
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때에 적합한 이 경고를 주시기 위하여 누구를 사용하셨읍니까? 이 편지가 대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유다 1, 2) 이 영감받은 필자인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부 동생이었읍니다. (마태 13:55) 그러나 「유다」는 육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친척 관계에 있다는 것으로 자신에게 영광을 가져 오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예수의 참다운 추종자들은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고린도 후 5:16, 17)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관계를 강조하였읍니다. 「유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자신을 다만 「종」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그는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읍니다. (요한 7:5; 사도 1:14) 그 후에 「유다」는 그를 믿었고, 그에게 믿음을 둔 후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귀중한 피값으로 종과 같이 그가 사들여졌음을 인정하였읍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써 사들임을 받은 모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람의 종이 될 수 없었습니다.—고린도 전 7:22, 23.
4. (ㄱ) 유다서는 특히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러나 생명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때에 적합한 경고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유다」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의 동료 종들에게 그들의 주에게 순종하도록 돕기 위하여 그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편지하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느 특정한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 일반적인 편지를 썼읍니다. 그러나 그 편지가 어떠한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명백하였읍니다. 즉 『부르심을 입은 자』들 즉 하나님의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그리고 제사장으로서 통치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2:12) 이들 영적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속 구원받은 상태를 지킨다면 천국을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은 아버지의 즐거움이었읍니다. 이 영감에 의한 편지가 『하나님의 회중』 즉 인류 가운데서 나온 144,000으로 성경에 제한된 수에게 보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서 구원받을 희망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 즉 낙원이 된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때에 적합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들도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같은 정도의 헌신과, 같은 정도의 충성과, 같은 왕국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구원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참다운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5. 「유다」의 기도는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 위에 어떻게 응답되었습니까?
5 「유다」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 즉 그들 중 얼마가 오늘날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영적 남은 자들에게 응답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1919년에 거짓 종교 세계제국인 큰 「바벨론」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으며, 이들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평강을 넘치게 하심으로써 모두가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확장시키는 데 연합해서 일할 수 있게 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그들은 「바벨론」적 이교로부터 깨끗하게 되었고 그의 깨끗한 증인들이 되게 하셨읍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해방된 그리스도인 증인들 위에 그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더하셨기 때문에 『다른 양』의 『큰 무리』가 그들 편으로 몰려들게 된 것입니다. (계시 7:9-17; 요한 10:16) 이 사람들은 이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남은 자들 즉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국 증인들의 『한 무리』의 일부가 되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 세계 사회는 선한 목자에 의하여 인도를 받는 평화스러운 한 무리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즐기고 있으므로 그들 위에 「유다」의 기도는 풍부하게 응답되었읍니다. 「유다」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우리에게 증가하라는 것이 감소되어 마침내는 끓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겠읍니까? 그러한 일이 개인에게는 일어날 수 있읍니다. 「유다」는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해 줍니다.
힘써 싸워야 할 특별한 이유
6. 그리스도인 개인들에게 어떠한 권고를 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다 3, 4.
7. 「유다」는 무엇에 관하여 쓰려다가 제목을 바꿨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유다」는 참다운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는 문제에 관하여 편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관하여 일반적인 편지를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하여 천국에 부르심을 받은 144,000이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관한 교리적인 문제보다도 무엇인가 더 심각하고 더 긴급한 문제를 염려하게 되었읍니다. 십구 세기 전인 「유다」 시대에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록 7:9-17에 있는 『큰 무리』를 모으시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오늘날 『큰 무리』의 사람들이 똑 같이 참예하는 구원에 관하여 쓰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유다」가 쓰고자 한 문제에 직접 포함되어 있지 않음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왕국의 통치 아래 있을 귀중한 구원의 소망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도 마치 『적은 무리』의 남은 자들이 하늘에서의 영광을 바라고 있는 바와 같이 새로운 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고 있읍니다. 낙원이 된 땅에서 살게 될 이 희망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함께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만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날의 양같은 자들인 이 『큰 무리』를 포함한 전 인류 세계를 위하여 죽으셨읍니다. (요한 1서 2:1, 2) 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들 『양들』도 또한 상을 얻을 때까지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단」 마귀는 그러한 귀중한 상을 그들로부터 뺏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유다」는 어떠한 믿음을 명백하게 폭로하고 있으며, 일찌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개인 구원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8 「유다」는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씀으로써 『한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라는 믿음의 거짓됨에 초점을 두었읍니다. 지금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옮겨지거나 떨어져 나감으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인류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잃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이유가 되지 않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실을 명백히 하셨으며, 「유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즉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마태 24:13)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한 반열의 구원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개인적 구원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에 부르심을 입은 반열의 구원은 아무런 문제도 없읍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적은 무리』의 한 사람이든지 혹은 『큰 무리』의 한 사람이든지 간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끝까지 견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 신 『끝』이란 말은 꼭 어떠한 해라든가 혹은 「아마겟돈」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한 사람의 지상에서의 생명이나 긴 시험을 마칠 때까지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불충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충성스럽게 죽을 때까지든지, 혹은 이 악한 사물의 제도가 끝날 때까지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9.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9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들을 머리에 굳게 간직하고 끝까지 견딘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을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에 의한 부패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를 통하여 마귀의 책략이 그들 가운데 자신의 간계를 이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패하게 하는 자들을 침투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진리를 위하여 선언한 모든 사람들은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과 우리의 사랑을 시험합니다.
10. 「유다」의 경고로 볼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우리가 왜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가의 이유를 설명할 때, 「유다」는 어떠한 자들이 그리스도인인 체하고 하나님의 조직 안으로 가만히 들어온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사실상 『경건치 아니』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자비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입니다. 「유다」가 이 경고를 쓰기 약 10년 전에 사도 「바울」은 악한 동기를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가만히 들어올 것을 예언하였읍니다. (사도 20:29, 30) 예수께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가진 백성들을 부패하게 하려는 적의 움직임을 예언하셨읍니다. (마태 13:24-43) 마귀는 그의 대행자들을 『자신을 방탕에 방임』한 인류 세계로부터 이끌어 냅니다.—에베소 4:17-19.
11. 「유다」의 경고로 볼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마귀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 사회 가운데서 악한 계획을 가진 도덕적으로 파산한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려고 하므로 모두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회중의 감독자들이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때가 악하』며, 많은 사람들이 악을 사랑하므로 우리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읍니다. 그리스도인 회중은 적의 대행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한 자들이 조직 전체를 부패시킬 수 없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한 회중에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회중에서 악한 자들을 완전히 뿌리뽑을 때까지 회중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저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중의 발전이 없을 뿐 아니라 회중에 있는 개인들이 빗나가서 이성과 부도덕한 관계를 갖도록 부패시킬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조직이 깨끗하고 순결하여 더럽혀진 상태에 있지 않도록 보호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음심이 가득한 눈』
12. 「유다」는 하나님의 조직 안으로 가만히 들어 오려는 경건치 못한 자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경고하며, 이러한 자들을 끌어 들이려는 마귀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12 그러므로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을 부패시키려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라고 경고합니다. 이들이 나쁜 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동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니까 그의 자비를 색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부도덕한 행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전 6:9, 10) 그들은 믿음이 튼튼치 못한 자들로 하여금 부도덕한 관계에 빠지도록 설복시키려 하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때때로 정욕에 빠지는 일이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만일 그 죄를 고백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의 동기는 성적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치 「가인」의 경우와 같이 그들의 문지방에는 죄가 움크리고 있으며, 그들은 순결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읍니다. 「베드로」는 그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베드로 후 2:14) 마귀는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진 자들을 사용하여 순결한 눈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패시키려 하며 향락적인 죄로 그들을 유혹하게 합니다.
13. 이러한 경건치 않은 자들은 어떠한 면으로 「모세」와 같지 않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13 이러한 악한 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모세」와는 달리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 11:25) 그들은 정욕에 빠졌다가 그 다음에 회개하는 형식을 통하여 다음에 다시 죄에 빠질 때까지 하나님의 조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다른 사람들을 부도덕으로 이끌기 위하여 불순하게 설복시키려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과분하신 인자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도덕한 자들을 대항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힘써 싸워야 하며 저항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다만 개인에게 해가 될 뿐 아니라 이성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려는 손이 자유스럽게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회중을 해롭게 할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교국의 도덕적 상태가 왜 부도덕한 사람에게 빠지는 핑계가 될 수 없읍니까?
14 그리스도교국에서 부도덕한 길을 걷는다든가 그리스도교국 안에 있는 학교들이나 교회 제도에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정욕에 빠지는 핑계가 될 수 없읍니다. 「유다」는 누구든지 죄에 빠진다면 그들이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였읍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들에게 한번에 주신 믿음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빠지는 일을 꾸준히 거절하고 이 악한 시대에서 어떠한 부패도 저항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생각나게 해야 할 일
15. 「유다」는 어떻게 구원받은 상태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실할 수 있는가의 예를 들었으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구출을 경험하였습니까?
15 우리의 구원이 아직 봉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후에는 결코 상실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유다」는 한 사람이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그것을 상실할 수 있음을 말하였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읍니까? 힘써 싸우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유혹에 빠짐으로 그렇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의 운명은 이미 예언되어 있다고 그는 경고하였읍니다. 어떻게? 성서에 나와 있는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가운데에는 여호와께서 과거에 경건치 않은 자들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알리는 많은 실례들이 있읍니다. 이러한 실례들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실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만히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을 부도덕으로 유혹하기 전에 그들은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경고를 받았읍니다. 「유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여호와]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 5) 통용 기원전 1513년에 있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구출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읍니까! 여호와께서는 강한 손으로 그들을 구출하셨읍니다. 즉 「애굽」 위에 열째 재앙이 임하였을 때에 그들의 첫 태생은 죽음으로부터 구원되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만 첫 태생을 죽이는 때에 구출되었을 뿐 아니라 후에 또 홍해에서도 구출되었읍니다. 이 구출에는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닌 『중다한 잡족』도 끼어 있었읍니다.—출애굽 12:38.
16, 17. (ㄱ)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중다한 잡족』들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ㄴ) 사도 「바울」은 어떻게 같은 경고를 하였으며, 우리의 반응은 어떠하여야 합니까?
16 여기에 전영된 것은 무엇입니까? 「애굽」은 이 사물의 제도의 상징이므로 (계시 11:8; 고린도 후 4:4) 그것은 오늘날 여호와께서 이 사물의 제도로부터 구원한 자들이 「애굽」이나 죄의 속박으로 달려 가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악한 사물의 제도로부터 그들이 우선 구출된 것은 그들이 결코 실패할 가능성이 없이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변경할 수 없는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중다한 잡족』들과 함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참으로 좋은 예가 아닙니까! 그들을 구원하셨던 여호와께서는 광야에서 백만명 이상을 멸망시키셨읍니다. (출애굽 12:37; 민수 14:26-38)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들은 죄의 기만적힘에 빠졌던 것입니다. 죄는 기만적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경우와 같이 무자비하게 죄의 희생자에게 기어들어 잡아 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애굽」의 실체와 「바벨론」적 이교로부터 처음으로 구출되었다는 것이 마지막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경고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희의 다수를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자손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브올」의 「바알」에 제사지낸 제물을] 먹고 마시며 [그러한 제사에 초대한 「가나안」 여자들과 함께] 일어나서 뛰 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 회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중에 어떤 이들이 주[여호와]를 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린도 전 10:5-11.
17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모형적 실제 「이스라엘」의 예를 인용하였읍니다. 「이스라엘」에게 아주 우정적인 사람들인 『중다한 잡족』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실체에 있어서도 이 경고는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남은 자들과 『다른 양』의 『큰 무리』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산 자를 부도덕한 행실로 유혹하여 죄에 속박되게 하는 자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구원 길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읍니다. 결코 부주의하거나 자만하거나 지나친 자신을 갖는 일이 없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자신을 살펴 보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기만적인 죄의 힘에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천사들도 멸망당하는 일로부터 면제되지 않았음
18. 「유다」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할 필요를 예로 들었습니까?
18 「유다」는 다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할 필요성을 알리기 위하여 다른 예를 말합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다 6, 7.
19, 20. (ㄱ) 「유다」가 언급한 천사들의 죄는 무엇이었으며, 그 죄의 결과는 어떠한 형벌을 가져 오게 하였습니까? (ㄴ) 죄를 범한 천사들의 예에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19 제자 「유다」는 이제 하나님의 조직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부패시키려는 경건치 않은 자들을 「노아」 시대에 타락된 천사들과 비교합니다. 이들은 틀림없이 아주 멋지게 생긴 인간으로 물질화 되었으며, 그러므로 아주 매력적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땅에 왔었읍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동기는 나쁜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정욕으로 가득찬 눈을 가졌읍니다. 그들의 눈은 아름답게 생긴 사람의 딸들에게 가 있었읍니다. 아주 감명적으로 생긴 이들 물질화된 천사들은 잘 생긴 여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이러한 여자들에게 대하여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든지 안하였든지 간에 그들이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지 혹은 얼마든지 아내로 취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이전에 아내 둘을 취하였던 「라맥」보다 더 많은 아내들을 가졌을 것입니다. (창세 4:19) 그들의 아름다운 생김새는 가만히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와 그들을 부패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유다」는 아마 겉으로 아주 잘 생긴 사람들이 가만히 들어올 것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특히 이성과 사귀기를 원하여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들과 불순한 성적 관계를 가짐으로써 그들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킵니다. 홍수가 있었을 때에 그들 천사들은 다시 비물질화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조직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읍니다. 그들은 이제 영적으로 흑암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빛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의 악한 동기로 말미암아 그들은 스스로 악귀가 되었읍니다. (창세 6:1-5) 여기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교훈을 받을 수 있읍니까!
20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천사들까지도 죄를 짓고 멸망의 심판 아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가 결코 천지 양서(天地兩棲) 즉 부분적으로 하늘에서 영으로 살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으로서 땅에서 여자와 동서하게 하실 생각이 전혀 없으셨읍니다. 그러나 이들 천사들은 그들에게 임명된 곳을 떠났읍니다. 이제 만일 천사가 멸망으로 타락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구원을 결코 상실하지 않고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다만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움으로써만 우리는 구원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읍니다. 우리는 결코 높은 지위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 천사들과 같이 되기를 원치 않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한계를 넘어서서 몸을 더렵히려는 인간들을 저항하십시오.
21. (ㄱ) 「소돔」과 「고모라」는 특히 어떤 죄로 인하여 멸망되었읍니까? (ㄴ) 이러한 도시의 멸망이 어떻게 경고가 되며, 동시에 경건한 사람에게 격려가 됩니까?
21 「유다」는 범죄한 천사들 외에도 홍수가 지난지 약 450년 후에 하나님께서 불의 멸망으로써 「소돔」과 「고모라」를 형벌하신 멸망을 경고로서 언급하였읍니다. 이 성읍의 거민들은 『간음을 행하』였고 부당한 사용으로 색을 따라갔읍니다. 그들은 다만 여자와 간음을 행했을 뿐 아니라 남자들과의 색을 좇았고 아마 짐승과의 색을 따르기도 하였던 모양입니다. (레위 18:22-25) 성서는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어떻게 두 천사를 「소돔」으로 보내셔서 그 도시의 도덕 상태를 조사하게 하셨으며, 그 도시가 당할 멸망으로부터 「롯」을 구하셨는가를 알려 줍니다. 「롯」은 천사들을 자기집으로 안내해 들여 잘 대접 하였읍니다. 그러나 「소돔」의 경건치 않은 거민들은 노소로 이루어진 폭도들이 부당한 성교를 위하여 두 천사를 요구하였읍니다. 천사들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폭도를 물리친 후에도 욕정으로 흥분한 『「소동」 거민들은 두 천사를 잡으려고 하였읍니다. 다음 날 아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불과 유황이 퍼붓게 하셨읍니다. 「롯」과 그의 딸들은 「소돔」 거민들 위에 임한 멸망을 피하였읍니다. 이 멸망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었』읍니다. 누구들 말입니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 . . . 주[여호와]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베드로 후 2:6-10.
22. (ㄱ)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고를 마음에 간직하여야 합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을 어떻게 시험에서 건져 내십니까?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조직 안에서 육체를 더럽히는 모든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들은 영원한 멸망의 운명 아래 놓여져 있읍니다. 참다운 숭배자들 모두는 순간적이나마 그러한 멸망의 운명에 있는 자들의 유혹에 이끌리는 일이 없도록 이 경고를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들을 저항하십시오.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들을 시련에서 구하시는 방법을 아시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당하는 환경에서 꼭 빼내셔야 할 필요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우리를 시험하게 두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을 시험에서 건지시는 방법은 그의 정하신 때에 경건치 않은 자들을 끊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가져 오는 자들을 무대에서 제거해 버리십니다.
23. 우리는 결코 어떠한 일을 하는 데 피곤하여서는 안되며, 어떠한 보상의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할 것입니까?
23 악한 자들이 얼마나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시험을 가져 올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경건치 않은 자들을 저항하면서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피곤하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끊으실 때에 축복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깨끗이 된 새로운 질서에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결코 경계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될 것이며, 항상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28면의 삽화]
‘소돔’과 ‘고모라’, 경고의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