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벗에 주의하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린도 전 15:33.
1.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행동은 회중 집회 외에 또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지식이나 경험으로부터 그들이 회중적으로 모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들은 또한 성경을 공부해 봄으로써 거짓 종교 조직의 성원들이 한 주일에 한번이나 두번 혹은 세번씩 그들의 숭배 장소에 모이지만 다른 때에는 하나님에 관하여 전혀 잊어 버리고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든지 않든지 간에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것같이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리스도인의 생각이나 행동은 회중이 모인 가운데에서든지 가정에서 가족끼리든지, 직장에서든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휴식을 즐기기 위하여 모인 때에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읍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리스도인은 모든 시간을 다 회중 집회나 또는 하나님의 왕국의 기본 소식을 전파하는 야외 봉사에서 사용하지 않읍니다. 만일 일하는 사간이나,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성서 교육을 위한 집회에 참석하고 전도하는 일에 바치는 시간을 모두 합한다 하더라도 아직도 매일 그의 취미나, 독서, 편지 쓰기, 대화, 또는 오락이나 휴식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에 약 100 시간이나 남게 됩니다.
3. (ㄱ) 휴식 상태에 있을 때에 정신과 몸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사귀는 벗을 취사 선택해야 합니까? (ㄴ) 우리가 사귀는 벗들이 올바른 벗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읍니까?
3 이러한 사교적인 휴식 시간에 그리스도인은 누구와 사귈 것인가를 취사 선택해야 하고, 선택에 관한 교훈을 현명하게 청종해야 할 때입니다. 휴식을 즐기는 상태나 환경에서는 정신이나 몸이 긴장이나 문제나 책임으로부터 해이되어 있어서 징계의 법칙을 엄격하게 고착하지 않는 경향이 있읍니다. 가령 생활에 변화가 있는 것이 좋고 또 많은 사람들은 일만 하고 놀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의 모든 시간을 그의 영원한 생명을 확실케 해 주는 좋은 일에 바치는 것이 여호와의 의로운 새질서에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낫읍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이나 혹은 보내고 난 다음에 우리가 영적으로 북돋움을 받았고 여호와의 봉사에 대하여 더 열심히 그리고 충실하게 하도록 격려를 받고 우리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과 은혜를 인식하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잘못된 사람들과 사귄 것입니다. 여호와의 경고를 기억하십시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 (고린도 전 15:33) 근묵자 흑(近墨者黑) 즉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과 같이 우리도 나쁜 친구들과 접촉하면 영향을 받을 수 있읍니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생각과 말과 행동
4. 「솔로몬」이 말한 대로 우리의 벗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합니까?
4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문제는 당신이 사귀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냐에 따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읍니다. 다른 말로는 『유유 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현명한 왕 「솔로몬」은 우리의 벗이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 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언 13:20) 그러므로 우리의 벗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며, 우리의 말은 건설적이 될 수도 있고 도덕을 파괴하게 할 수도 있으며, 우리의 행동이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파괴적이 될 수도 있읍니다. 이러한 것들은 주로 우리가 사귀는 사람들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5. (ㄱ) 왜 『미련한 자들』을 전적으로 피할 수 없으며, 이러한 불가피한 연합에도 참으로 위험이 있읍니까? (ㄴ)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 하여야 하며, 언제 우리는 그들을 피해야 합니까?
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의로운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북돋아 주는 벗을 만나기란 도덕을 파괴시키는 사람들만큼 쉽지 않읍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대로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있다는 말로 보아 그것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요한 1서 5:19) 그러므로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혹은 매일 생활해나가는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솔로몬」이 말한 『미련한 자』들과 어깨를 비비고 다니지 않을 수 없읍니다. 예수께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가 무엇인가를 잘 아시고 하늘에 계시는 그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읍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요한 17:15, 16)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위험이 되는 것은 이러한 불가피한 연합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직장에서 일하거나,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상점에서 음식이나 옷이나 다른 필수품을 사면서도 이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경건치 않은 사람들과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증명되었고, 백만이 넘는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의하여 증명되었읍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교적 휴식이나 오락을 위하여 그리스도인 회중 밖에 있는 사람들과 사귄다면 거기에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나 행동이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나 행동과 정반대의 사람들과 자진적으로 사귀고자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이것은 물론 그리스도인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우정있고 친절하게 도움이 될 수 없다거나 그렇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닙니나. 「바울」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갈라디아 6:10)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이 끝났을 때에나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오락을 위하여 영적인 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좋은 벗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질문을 할수 있읍니까?
6 그리스도인이 올바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 현명함을 몇 가지 단순한 질문을 해 봄으로써 알 수 있읍니다. 만일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돈을 사랑하는 「아나니아」나 「삽비라」같은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충성스러운 「아굴라」나 「브리스길라」와 같읍니까? 당신은 의로운 「아벨」과 함께 들을 산책하는 것이 더 안전하겠읍니까, 혹은 성미가 나쁜 「가인」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겠읍니까? 당신은 친구로서 「가롯 유다」를 가지겠읍니까, 혹은 사랑을 받은 사도 「요한」을 가지겠읍니까? 영적으로 가장 유익을 얻을 곳은 어디입니까? 「살로메」의 춤을 구경할 수 있는 「헤롯」의 궁전입니까? 혹은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 것이겠읍니까? 『속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명은 당신의 벗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7, 8. (ㄱ) 한 몫 끼려는 욕망이 무엇으로 인도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학생들 사이에 흔한 어떠한 짓을 그리스도인들은 피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젊은이나 나이가 든 사람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자기도 그 가운데 한 몫 끼고자 하는 것이 자연적 욕망입니다. 젊은이들은 특히 이 점에 있어서 민감합니다. 그들은 벗들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의 친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른 행실을 위한 지도서로 존경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과 행동을 억제하지 않을 때에는 문제를 부닥치게 됩니다.
8 오늘날 학생들 사이에는 학과 시간을 빠지거나 학교에 전혀 가지 않고 동급생중 한 학생의 부모들이 직장에 나간 사이에 그의 집에 모여 품행이 나쁜 짓을 하거나 많은 경우에는 부도덕한 행위까지 합니다. 젊은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러한 행실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그가 학교를 빠지는 것이 잘못일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자들과 사귀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한 짓은 부정직한 행동이며 부모를 속이는 것이고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약함으로 인하여 얼마는 그들이 나쁘다고 알고 있는 행실을 하도록 유혹을 받았읍니다. 「바울」은 악과 사기로 가득차 있고 그들의 부모들에게 불순종하는 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로마 1:32.
9. (ㄱ)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학교 동급생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하여 성경에는 어떠한 명령이 있읍니까? (ㄴ) 「이스라엘」 자손의 젊은이들에게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9 학교에 다니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께 헌신하지 않은 동급생들과의 「파티」에 끼고자 하여 그들의 부모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롭니다. 『동급생들하고 「땐스」나, 영화나, 「파티」에 가는 것이 해롭거나 위험할 것이 무엇에요?』 그러나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무시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고 해로웁니다. (고린도 후 6:1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방인들과 연합하지 말 것을 명령하신 것은 자녀들의 영적 상태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읍니까?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누리를 삼지 말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 . . 것임이니라.』 (신명 7:3, 4)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고린도 후 6:14.
10. 이 세상 젊은이들은 어떠한 비그리스도인 행동을 합니까?
10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과 해는 「파티」나 「땐스」가 끝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읍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위험과 해는 더욱 더 증가합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더 즐기고 더 놀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욕망이 더욱 심한 위험과 해로운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어둠 컴컴한 곳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정차해 둔 자동차 안에서 부도덕한 성적 희롱을 하도록 유혹되거나, 음주의 영향으로 사고력이 약화하기 쉬운 음식점에 들어가서 보통 때는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거나 또는 부도덕한 행위를 범하기 위하여 밤늦게까지 혹은 밤새도록 여인숙이나 여관에서 보내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다만 몇 가지만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바로 오늘날 이 세상 젊은이들 사이에 행해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또 행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이고 또 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의와 불법에 끼어 든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자녀들이나 부모들에게 똑같이 해롭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을 피해야 합니다.
11. 한 전도인의 경험이 알려주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 왜 사교 활동을 피해야 합니까?
11 나이 많은 그리스도인 남녀들도 또한 이와 같은 상태나 다른 위험한 결과를 가져 올 여러 가지 일들을 매일 부닥칩니다. 직장에서 운동 연맹이나 수영 「팀」이 있고, 사원들의 「파티」같은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일들은 나쁜 벗들과 사귀기 쉽게 합니다. 이러한 기회가 유쾌하고 즐겁고 휴식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읍니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인 충성을 지키기에 매우 위험하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은 한 젊은 그리스도인 회사원의 실제 경험이 그것을 잘 증명해 줍니다. 그는 다음 달에 임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려고 신청을 내서 협회로부터 임명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봉사의 특권의 즐거움과 축복이 결코 실현되지 못하였읍니다. 바로 임시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하기 전날에 같은 직장에 있는 동료 고용인과 간음을 범하였다는 고백과 함께 임명장을 돌려 보냈읍니다. 그에게 주어진 근신의 징계란 단지 임시적인 것이고 그의 마음과 정신에 받은 상처는 더 영구적입니다. 조그만 육체적 쾌락이나 즐거움 대신에 영적 축복과 이익에 대한 손실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결과는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12. 악한 연합이「솔로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하였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읍니까?
12 우리는 결코 여호와의 의로운 요구를 따르지 않고도 그러한 결과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젊은이나 나이가 든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우리 중에 누가 「솔로몬」만큼 현명하겠읍니까? 그러나 그가 이방 여자들을 사귀고 그들과 결혼함으로써 그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그를 참다운 숭배로부터 이탈시켜 버렸읍니다. 그들의 설복력에 대하여 성경에 이렇게 말합니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열왕 상 11:4, 5) 「솔로몬」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느끼셨읍니다.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열왕 상 11:11) 우리도 또한 나쁜 친구들을 사귐으로써 영과 진리로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으로부터 떠나게 한다면 「솔로몬」의 경우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사교적 휴식을 위한 건설적인 연합
13. (ㄱ) 휴식 시간은 다만 누구들과 즐겨야 합니까? (ㄴ)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방문하신 경우는 어떻게 그리스도인 연합의 본이 됩니까?
13 우리에게 휴식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시인을 받기 위하여는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즐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의 행실을 주관하는 성경적 법칙과 원칙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만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저녁을 지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을 방문하셨을 때에 보이신 본을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먹고 마시는 데만 열중하고 어리석고 무익한 말을 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셨읍니까? 그의 방문에 관한 기록의 일부를 들어 보십시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누가 10:38-40) 이 두 자매들과 이야기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10:42) 「마리아」는 일이나 먹는 것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지 않 았으며, 예수께서도 그러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기회를 말씀하시는 데 사용하셨고, 「마리아」는 자기를 영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분의 말씀을 듣는 데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였읍니다. 이러한 본을 받아 장성한 사람들은 형제들과 모였을 때에 성서 토론이나 성서 질문을 대답하는 일을 솔선 격려함으로써 형제들을 북돋아 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14. 휴식하는 저녁에 형제들을 초대할 때에 어떠한 성서적인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우리는 보통 가장 가까운 벗들과 사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항상 같은 몇 사람과만 사귀는 일이 없게 함으로써 회중에서 더 많은 도움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모여서 즐길 때에 기억하는 것이 좋을 원칙을 세워 놓으셨읍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라].』 (누가 14:12-14) 장성한 형제들과 사귀는 것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유익됨은 사실이지만, 후퇴하거나 새롭거나 약한 형제들과 사귀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갚음을 받을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격려하고 힘을 줄 수 있읍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방문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같은 이유로 우리도 그들과 함께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격려]함을 얻으려 함이라.』—로마 1:11, 12.
사교적 모임에서 신권적 수준을 유지함
15. (ㄱ) 그리스도인들이 사교적으로 모일 때에 무엇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ㄴ) 만일 어떠한 사람의 행동이 무례하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15 그리스도인이 건전한 말과 좋은 행실을 하는 데는 쉬는 날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사교적으로 모였을 때에 우리는 행동과 말을 항상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회를 결코 비속한 말이나 천한 이야기나 농담을 하면서 보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시편 필자가 교훈한대로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시 34:13) 또한 친밀하고 휴식적인 분위기를 이용하여 형제로서의 「키스」나 포옹이라는 미명 아래 이성에게 무례한 일을 하여서도 안됩니다. 만일 어떠한 사람의 행동이 무례하였다면 그에게 직접 가서 그의 말이나 행동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은 형제의 사랑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에베소 5:10, 11) 만일 성경적 충고를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때에는 우리는 더는 그와 사교적인 연합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16. 휴식을 즐기는 시간은 어떠한 기회가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사교적 모임에 있어서 진행을 관장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읍니까?
16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휴식을 즐기는 기회를 영적으로 고무하고 격려하는 시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기회에 우리는 편견이나 증오 또는 내성적인 태도를 고치는 수가 많읍니다. 우리가 형제들과 함께 모였을 때에 「바울」의 교훈을 기억하고 신권적 수준을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 전 10:31)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쓸데 없는 말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교적 모임의 진행을 관장하는 것은 주인의 책임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결코 일방적으로만 치우쳐 있지 않읍니다. 거기에도 「유모어」가 있고 즐거웁게 먹고 마시는 것이 있읍니다. 심각한 이야기가 있고 또 가벼운 대화가 있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나, 음탕한 농담, 또는 어리석은 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잠언 10:14.
올바른 연합을 선택하라
17, 18.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연합할 수 있읍니까?
17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할 필요는 없읍니다. 한 왕은 한 때 이러한 말을 한 일이 있읍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라]』 (전도 3:1)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시간을 따로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하신 바와 같이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과의 연합을 구해야 합니다.—누가 4:42; 마태 14:13.
18 그리스도 예수께서 1900년 전에 하신 바와 같이 육체로 이 땅에서 걸어다니시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가 그와 함께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으로부터 그의 지혜의 말씀을 정규적으로 읽음으로써 우리가 그와 가까이 연합할 수 있읍니다. 그가 세워 놓으신 경건의 본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추종자로서 그와 함께 걸을 수 있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 전 2:21.
19, 20. (ㄱ) 진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핑계를 합니까? (ㄴ) 이 점에 있어서 「노아」와 그의 가족은 어떠한 훌륭한 본을 보였읍니까?
19 아마 젊은이나 나이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연합에 관한 성서 원칙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과 연합하거나 결혼하는 핑계로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회중은 너무 적기 때문에 내가 같이 사궐 만한 젊은 형제들이나 자매들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회중에는 내 나이에 알맞는 결혼 배우자감이 없어요.』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 밖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려고 합니다.
20 「노아」와 그의 가족은 그 당시 그들만이 진리 안에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에게로 흩어졌읍니까? 그들의 회중은 여덟 사람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회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연합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과 일치한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어떻게 그들의 연합의 폭을 넓힐 수 있었겠읍니까? 그들이 만일 의보다도 악을 더 좋아하는 자들과 사교적 연합을 가졌었더라면 매우 위험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날 진리 안에 있지 않는 사람들을 「노아」 시대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재]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 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재]도 이와 같으리라.』—마태 24:37-39.
21. 우리의 형제들과의 사교적인 연합이 왜 그렇게 가치있읍니까?
21 당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할 많은 벗들을 가지는 것보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몇 사람의 사교적인 벗을 갖는 것이 훨씬 더 낫읍니다. 수가 적든지 많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만 사귀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왜냐 하면 당신은 서로 좋은 영향이 될 것이며, 교제의 시간을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명예를 돌리게 할 것이며, 또한 당신의 영원한 복지를 위하여 축복과 보호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