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의 행사–보호하는 것
“네가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잠언 3:23-26
1. 오늘날 우리에게 장성된 사고력과 판단력이 크게 귀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로 어떻게 하도록 해 줍니까?
장성된 사고력과 판단력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추구하는 사람에게 매우 귀중합니다. 그것은 현 낡은 사물의 질서 내에서 항상 부닥치는 유혹을 막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종말인 오늘의 악한날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성실을 위협하는 것들은 물질주의, 중상 모략, 비방, 착취, 부도덕, 피의 남용입니다 증점하는 민족주의 감정은 그리스도인에게 그의 숭배를 국가 표준에 두고 점점 더 정치적으로 그의 충성과 생명을 국가에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에 부가해서 안일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추구 하도록 하고, 물질주의를 신뢰케 만들고, 합법성의 경계선상에서 속임수와 노골적인 사기로써 빨리 돈을 벌도록 유혹하는 상업적 유혹이 있읍니다. 즉각적으로 생기는 질문은 『그러한 유혹에 직면했을 때 나의 결정은 어떠할 것인가?』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그가 하여야 될 것을 압니까? 때때로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 할지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읍니까?
2. 요한 14:15에 있는 예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보호할」 것입니까?
2 우리가 견디지 않으면 안될 압력으로 볼 때, 성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는 다음의 말씀 가운데 그 원칙을 보여 주셨읍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그러므로 세상의 유혹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순종이 절대 필수적임이 명백합니다. 항상 여호와의 말씀과 일치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의 보호물이 됩니다. 그의 사고력은 부단한 연구와 장성으로의 전진으로 말미암아 증진됩니다. 그것은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요한 14:15; 잠언 2:11.
3. (ㄱ) 일생을 통하여 연구는 왜 필수적입니까? (ㄴ) 현재 그렇게 긴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만일 우리가 계속 정확한 지식을 얻고,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하여, 그 분석으로부터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우리의 기억속에 저장해 두고, 적절한 때에 실용적으로 사용하면, 장성을 행사하는 것은 하나의 보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통하여 항상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겠읍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고력과 결정은 그러한 지식과 지혜로 제한받읍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신 여호와의 충고의 말씀은 얼마나 적절합니까!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사고력, 신세]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잠언 5:1, 2) 이것은 우리가 실용적인 지혜를 보호 하여야 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잠언 3:21, 22의 말을 유의해 보십시오. 『완전한 [실용적, 신세]지혜와 근신 [사고력, 신세]을 지키 . . . 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라].』 사고력을 배양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장성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요구하는 위험한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그 일을 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전에해 둔 연구가 우리로 감정에가 아니라 올바른 결론에 기초한 결정을 짓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4 예를 들어 의사나 정확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가족 성원이 아이의 생명이 수혈에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 수혈을 허락하라고 압력을 가할 때, 부모가 된 우리는 즉시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읍니까? 혹은 「지금 당장은 적절한 설명을 모르니까 그 제목을 찾아 읽어 본 후에 충고하겠어, 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읍니까? 그러한 위험한 때에 감정이 장성된 사고력을 가리워 버릴 수 있음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장성된 판단은 정신이 그 문제나 사태를 명확히 분석할 수 있고, 건전한 결론을 내려서 외부의 영향력의 속박이나 방해를 받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경우에만 있을 수 있읍니다. 전에 해 둔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일치하게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의 물결은 반석같은 당신의 믿음에 헛되이 부딪쳐 버리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피조물 숭배—우상 숭배
5. 우상 숭배적인 행동을 하도록 타협케 하는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읍니까?
5 하나님의 원칙을 생각하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직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신은 그 행로가 옳고 나쁜 이유를 알 것입니다. 그러나 경우가 좀 달라질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상징물 앞에서 숭배의 행동을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즉각적으로 요한 1서 5:21의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는 말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에 나온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 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생각할 것입니다. 사태를 진단하여 보십시오. 무엇이 우상입니까? 무엇이 우상 숭배입니까? 우리는 어떠한 피조물의 형상이나 상징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국가 상징물들은 피조물의 상징이 아닙니까? 별이라든가, 동물이라든가의? 그 특성을 대표하는 색갈들은? 그것들은 「베드로」가 말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가 아닙니까? 그것들을 경외해야 합니까? 여호와 자신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신세] 하나님[이니라].』 그러므로 절하는 것은 숭배의 한 행동입니다. 다른 행동이 수반된다면 원칙이 달라질까요? 애국가를 부를 때 기립하는 것은 우상이 지나갈 때 기립하는 것과 다를 바가 있읍니까? 혹은 모자를 벗는 것은, 혹은 손을 내민다거나 손을 가슴에 대는 것은 다를 바가 있읍니까? —출애굽 20:4, 5; 베드로 전 2:13.
6. (ㄱ) 근본적으로 우상 숭배는 무엇입니까? 왜 그 것은 반역에 해당합니까? (ㄴ) 우리가 인간이나 땅에 있는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6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무엇이 나쁜 것이 있읍니까? 자, 여호와께서는 전적 헌신을 요구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온전히 합당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재판장이시고, 율법을 세우신 분이시고, 왕이시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이사야 33:22) 그의 관할 구역은 우주의 모든 정부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인간에게나 피조물에게 숭배의 행동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이 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조그만 숭배 행동을 받고 크게 만족과 승리감을 느끼려고 하였는지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읍니다. (마태 4:9, 10) 그러한 짓은 반역이며 사형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보편적으로 공인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위협하고 여호와께 불명예를 돌린 반역은 얼마나 더 나쁘겠읍니까! 국가 상징물에 숭배 (경례)하라든가 혹은 다른 순종의 행동을 하도록 명령을 받음으로써 그러한 타협이 요구되는 사태를 직면하였다면, 우리는 즉시 마태 10:28의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께헨나, 신세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당신이 많은 시험과 환란을 직면할 것이며 그것이 계시록 2:10에서와 같이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 당신의 장성된 판단력이 당신의 생명을 보호하도록 하십시오. 그 귀절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권고합니다. 인간과 국가가 현재 당신의 생명율 빼앗을 수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명을 도로 줄 수 있읍니까?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읍니까? 그들이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생명을 주는 것을 막을 수 있읍니까? 우리들은 장성된 판단력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또 기회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깊이 새겨 두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속에 강력히 뿌리박아서, 여호와께 반대하는 불순종이나 반역의 행동은 무엇이나 미워하도록 하게 합시다.
피를 멀리함
7. (ㄱ) 하나님의 말씀은 피의 사용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ㄴ) 어떤 이는 자기 자녀가 관련되었을 때 피의 사용에 관해 어떻게 합리화할 것입니까? (ㄷ) 피의 남용은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증한 일입니까?
7 피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반대하는 최초의 선언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시작하여야겠읍니다. 최초의 선언에는 피를 먹는 것이 인간에게 금지되었읍니다. (창세 9:4) 「유대」인들은 어떠한 육체로부터든지 어떠한 종류의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읍니다. (레위 17:14) 아마 가장 강력한 표현은 사도 행전 15:29에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일 것입니다. 『피를 . . . 멀리 할찌니라.』 상기 선언에 관해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특히 자신의 혈육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피를 조금 희생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닐 것인가?』라고 합리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예언자 「사무엘」을 통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또 하나의 다른 성서 원칙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22) 이에 부가해서 반역과 건방진 행동은 점이나 마술력, 「데라빔」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게 악한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렇지만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전하고 장성된 사고력과 원칙을 사용하였을 때에도 그러합니까? 우리의 온전하고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과 우리 자녀들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됩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며, 진정한 사랑은 그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세상의 원칙이나 일시적 감정에 의해 우리 자신의 자녀의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위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 10:37의 예수의 말씀은 여기에 적용됩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더 사랑하는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그러므로 당신이나 당신의 자녀가 현재의 짧은 생명을 몇 년 더 연장받는 것이 가장 좋읍니까? 혹은 새로운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읍니까? 양쪽을 잘 달아본 후에 결정을 내리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율법이 가증히 여기는 불순종하는 자가 될 것입니까? 피를 취하는 것은 사람을 잡아먹는 것처럼 비천한 짓입니다. 다른 사람의 육체를 먹는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이 그것과 다를 바가 있읍니까? 입으로 넣는 것과 혈관으로 직접 넣는 것과 다른 점이 있읍니까? 다른 점이 없읍니다.
장성과 비장성
8. 「다윗」은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생명을 걸고 떠 왔을 때, 그 물을 마시는 것을 어떻게 보았읍니까?
8 우리는 피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았고 그것을 분석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은 그 모양까지도 생각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른 「다윗」의 본을 볼 수 있읍니다. 역대 상 11:19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다시금 장성된 판단은 「다윗」에게 보호물이 되었읍니다.
9. 어떠한 경우에 「다윗」은 비장성된 판단력을 보여 주었읍니까?
9 「다윗」이 장성된 사고력에 기초를 두지 않은 결정을 한 다른 때를 고찰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즉 그의 육체적 정욕에 가리워져서 그의 장성된 판단을 흐리게 한 경우입니다. 그는 매혹적인 여인 「밧세바」를 너무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간음을 행함으로 제7계명을 범하게끔 되었읍니다. 그는 분명히 이번에는 전번과 같이 주의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읍니다. 이번에 「다윗」은 그의 개인적 욕망에 눈이 어두었읍니다. 「다윗」이 간음을 범한 자들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데는 추호의 의문도 없읍니다.—사무엘 하 11:2-5.
10. (ㄱ)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간통 혹은 음행을 벌할때 그 형벌은 무엇입니까? (ㄴ) 어떤 비장성된 사람은 그의 양심을 어떻게 달랠지 모릅니까?
10 동일한 성서 원칙이 고린도 전 6:9, 10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읍니다. 『간음하는 자는 . .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못하느니라.』 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제명 처분 당해서 죽음과 같은 상태로) 쫓겨납니다. 「바울」이 음행과 간통에 대해 충고하였듯이, 음행 금지법은 이방인 신자를 위한 조건 중의 하나였읍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데』라든가 『그렇게 자연적인 일을 하였다고 돌로 쳐죽이는 것은 좀 심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함으로 양심을 달래는 비장성된 판단을 내립니다.
11. 성적 관계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언제 올바릅니까?
11 주의 깊은 연구를 통한 올바른 계몽에 의해서, 우리는 성적 관계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이 결혼 마련하에서 부모들이 생명을 전달하는 것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적절한 성장, 발전, 교육을 위한 안전책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읍니다. 이 마련 밖에서 양육된 자녀들은 하나님의 규범 밖에서 출생되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읍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정의의 기준을 적용할 때, 성적 부도덕은 악용이며, 악행이며,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2. 우상 숭배에 있어서 「이스라엘」민족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그 이유는?
12 비장성의 한 가지 좋은 실례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때때로 노골적이고 뻔뻔스럽게, 분명히 우상숭배인 것에 빠졌읍니다. 단순히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우리가 문제에 처하는 대부분의 원인이 그것이 아닐까요? 즉 단순히 우리는 생각하지 않읍니다. 만일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은 뻔합니다. 「호세아」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다음과 같이 책망하였읍니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 어버리리라.』 (호세아 4:6) 지식이 결핍한 곳에서는, 어떠한 피조물의 회고도 그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를 잘못으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보호물로서 올바른 지식을 취하지 못하였거나 그것을 기억속에 간직하지 못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13.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장성됨을 설명하십시오.
13 현명한 행로를 택한 훌륭한 본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 1:4에서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포로들을 찾아 보라고 명령하였을 때 장성된 사고력이 예시되어 있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장성된 사고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격을 구비하였읍니다. 그 후에 유혹을 받았을 때, 힘을 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읍니다. 사실상 「두라」 평지에서 정치적 형상 앞에 절하라는 심한 압력을 받았을 때, 「느부갓네살」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그들의 장성된 대답을 나타내 줍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그들의 다음말에 유의 하십시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물론 우리는 그들이 극렬히 타는 풀무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된 감동적인 결말을 잘 알고 있읍니다.—다니엘 3장.
14. 「다니엘」은 두번의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그의 장성됨을 보였읍니까?
14 「다니엘」 역시 그의 사고력에 있어서 비길 데 없이 굳세었읍니다. 그는 유혹에 직면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그의 근본적인 결정은 다니엘 1:8에 지적된 바와 같이 사전에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 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라.』 「다리오」 왕이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다른 이에게 구하면(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칙령에 어인(御印)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전의 관습대로 하루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계속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자의 입을 봉하심으로 그러한 충실에 보상하셨읍니다.—다니엘 6:7-22.
15. 「사울」은 장성된 판단력의 결핍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어떠한 종말이 뒤따랐읍니까?
15 한때 「사울」은 「불레셋」인들을 공격할 계획을 하였읍니다. 그는 「사무엘」이 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줄 것을 7일 동안 기다렸읍니다. 그러자 그는 참지 못하여,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렸』읍니다. 그는 주를 계속 바라보지 않았읍니다. 여호와의 교훈에 비교해 볼 때 매우 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자기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사무엘」이 그에게 왔을때, 그는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 .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 . .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그는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말하였읍니다.—사무엘 상 13:9, 13, 14.
16. 「아브라함」이 어떻게 장성된 판단력과 여호와께 대한 최상의 믿음을 보였는가 설명하십시오.
16 그 반대로 장성된 사고력을 가진 사람에 유의하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가 그의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아들의 생명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실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읍니다. 이러한 일은 여호와께서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결코 명령하신 적이 없는 것이었읍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확신을 두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맺은 언약은 그의 뇌리 속에 꺼지지 않고 불타 있었고, 그는 모든 민족에 대한 축복이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아브라함」은 그 지시에 응하여 약속된 후손이 나올 단 하나의 통로를 죽일 준비를 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단 하나의 가능한 결론은 히브리 11:19에 나와 있읍니다. 즉 그가 그대로 행하여 그의 아들을 죽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읍니다. 『비유컨대 죽은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7. 「엘리」의 아들들은 어떻게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전적인 경시를 나타냈읍니까? 그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이르렀읍니까?
17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할 정도로까지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충고를 경시한 고대의 본으로는 대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읍니다. 그들은 제물 중 제일 좋은 것을 탐욕스럽게 횡령하였을 뿐만 하니라 성막에서 섬기는 여인들과 음행하였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여호와를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의 이기적 욕망대로 마구 행동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생각하셨으며, 그들의 행실을 관찰하셨고, 그것을 그의 의로운 율법과 비교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제사장으로 계속 일하는 문제와 제사장으로 섬길 후손을 출생하는 문제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셨읍니다.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에 대한 결정을 기억하셨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로 전쟁터에서 죽었읍니다.—사무엘 상 2:22-26, 30, 34; 4:11.
18. 「요셉」은 어떠한 유혹을 받았옵니까? 즉각적으로는 어떠한 결과를 받았읍니까? 그러나 성실을 유지함으로 종국에는 어떠한 결과를 받았읍니까?
18 한 청년이 여호와의 의로운 도덕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과 원칙을 잘 인식한 경우가 있읍니다. 그의 장성된 판단력은 그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 음행을 범하지 않도록 보호하였읍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나와 동침하자.』함으로 음행을 범하도록 누차 「요셉」을 유혹하였읍니다. 그의 결정은 다음의 말에 잘 나타나 있읍니다. 『내가 어찌 이 큰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의 반응은?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갔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충실하라는 그의 결정을 파하기 보다는 그가 거절한 죄로 감옥에서 몇해를 보내기를 택하였읍니다. (창세 39:7, 9, 10, 12) 「요셉」은 실지 허위 고발로 감옥에 들어 갔읍니다. 그의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말미 암아 그는 그의 백성의 양식 공급자로 사용되었읍니다. 그러한 시련하에서의 충실함은 그러한 승인을 받는 데 선결 조건입니다.
결론
19. (ㄱ) 우리는 보호로서 누구들의 행로를 본받지 않으면 안됩니까? (ㄴ) 장성은 어려운 환경 아래에서까지 우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입니까?
19 신권적으로 훈련받은 마음은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것이며, 경계를 소홀히 함으로 근심과 슬픔, 고통과 영원한 사망으로 인도하는 죄의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행로가 그들의 영혼을 주의깊이 보호하고 경계한 충실한 사람의 행로를 본받게 하고, 심지어 시련하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머물러 있도록 합시다.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유지하는 것은 생명이 보호물이 됩니다. 순종의 즐거움과 축복은 안전과 만족, 그리고 자족을 가져 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바울」이 설명한 바와 같은 강력한 믿음의 방패를 세우도록 해줍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 「사단」이 우리의 모든 서적을, 심지어 성서까지 다 뺏아가 버리고, 우리를 독방에 유폐시키거나 사악한 박해를 받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이 결코 뚫을 수 없는 보호물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한 말씀인 성서에 있는 대로 여호와의 목적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만일 우리가 회중과 연합하는 가운데 장성된 형제들의 도움으로 그것을 주의깊이 비교하고 분석해 본다면,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닥칠 여러 가지 환경하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사전에 결정해 둔다면, 만일 우리가 그러한 결정을 회상하고 실용적인 결정을 짓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항상 닥치는 유혹에 대해 우리 자신을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에베소 6:16.
20. 무엇이 우리의 영원한 보호물을 마련해 줄 것입니까?
20 항상 여호와께 의뢰하라고 말하는 잠언은 얼마나 참된 말입니까! 잠언 3장 5절과 6절은 다음과 같읍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러므로 장성된 판단력에 입각해서 현명하게 여러분의 모든 믿음과 신뢰를 여호와께 두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이며 여호와께서 친히 여러분의 영원한 방패가 되어 주실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