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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천적 불멸성 아니면 부활—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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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천적 불멸성 아니면 부활—어느 쪽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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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7/15 8-9면

선천적 불멸성 아니면 부활—어느 쪽인가?

본 면에서 시작되는 일련의 네 기사를 주의깊이 검토해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이 기사들은 사망시에 영혼에게 일어나는 일, 부활, 하나님의 심판 날 및 최후의 환난 등에 관해 하나님의 말씀의 주제인 왕국과 연관지어 성서의 견해를 알려 준다.

매년 3, 4월이면 지상 거민의 4분의 1 이상이 “그리스도의 부활 축제”라 불리는 부활절을 기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부활제 일요일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수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결국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리라는 희망을 실제로 표명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후의 생명이 부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영혼”의 생존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또한, 부활절을 기념하지 않는 그 외의 수억의 사람들도 사후의 생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부활이 아니라 “영혼”의 생존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교국 안팎의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지상에서의 짧은 수명 후에 틀림없이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인간이 살다 죽는 것이 마치 동물과도 같다는 생각으로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장래의 생명을 갈구하는 그들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후의 생명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후의 생명—어떻게?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종교들의 “경전”은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대답을 제시한다. 그러한 책들 중 얼마는 죽은 사람의 “영혼”, 혹은 “영”이 자동적으로 생존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성서는 죽은 자들이 생명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 부활을 통해서라고 가르친다.—히브리 11:17-19; 누가 20:37, 38; 요한 5:28, 29; 11:24.

동방 종교들이 “영혼” 혹은 “영”의 자동적인 생존을 가르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믿을 만한 역사에 의하면, 그러한 신앙이 기원한 곳은 동양이기 때문이다. 고대 ‘바벨론’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들이 ‘네르갈’ 신과 여신 ‘에레쉬 키갈’ 밑에서 거주하는 저승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도 영혼불멸을 믿었으며 그들 나름의 “저승”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죽은 자의 신”인 ‘오시리스’를 숭배하였다. ‘이집트’인들처럼 고대 ‘페르시아’인들도 사후에 “영혼의 심사”가 있다고 믿었다. 다수의 고대 희랍 철학자들은 불멸의 영혼에 대한 그러한 동방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그것은 기원전 4세기에 ‘플라톤’에 의해 정립되었다.

놀라운 것은 불멸의 영혼 때문에 장래 생명이 가능하다는 개념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결코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다. 「콘사이스 유대교 백과사전」(1980)은 이렇게 알려 준다. “성서는 영혼불멸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명백히 초기의 [‘유대’교] ‘랍비’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 ·⁠·⁠· 결국, 인간 특성의 어떤 부분이 영원하고 멸절되지 않는다는 신앙은 ‘랍비’ 신경의 일부분이 되었고 후기 ‘유대’교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은 ‘유대’교 ‘랍비’들의 전철을 밟아 인간이 불멸의 영혼을 소유한다는, ‘바벨론’, ‘이집트’, ‘페르시아’ 및 희랍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성서를 받아들인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러한 비그리스도교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그 궁지란 이것이다. 즉, 교회들은 성서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고수하는 동시에 어떻게 사람이 불멸의 영혼을 통하여 죽음을 살아 남는다고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이 궁지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려 하는가? 「가톨릭 백과사전」은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제 4차 ‘라테란’ 회의는, 택함을 받은 사람이든 저주받은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자기가 현재 지니고 있는 육신을 가지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신앙 신경 및 신앙 선언 용어로는 이렇게 생명으로 되돌아 오는 것을 육신의 부활이라고 부른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바꿔 말해서, 죽은 자들의 부활이란 단순히 죽지 않는 영혼이 육체를 다시 입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참다운 부활의 희망

많은 성서 학자들은 선천적 불멸성의 교리와 “육신의 부활”이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프랑스 가톨릭’ 경전학 교수 ‘조르즈 오주’는 이렇게 인정한다.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순전히 영적이고 비물질적인 실체를 의미하는 ‘영혼’이란 개념은 ·⁠·⁠·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신약은 ‘육체의 부활’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언급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교수 ‘오스카 쿨만’도 「영혼의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자기 저서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대와 영혼불멸에 대한 희랍 신앙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후에 그리스도교가 이 두 가지 신앙을 결합시켜 오늘날 일반 그리스도교인들이 그것들을 완전히 혼동하고 있지만, 나는 나와 대다수의 학자들이 진리라고 간주하는 것을 숨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 신약의 생명 및 사상은 전적으로 부활의 신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 실제로 죽은 전체 인간이 하나님의 새로 창조하시는 활동에 의해 생명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그렇다, 장래 생명에 대한 참다운 성서적 희망은 불멸의 영혼의 자동적인 생존이 아니라, 부활 즉 “죽은 자로부터 다시 일어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성서는 매우 명백하게 이렇게 진술한다.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 (사도 24:15, 새번역) 이제, 내세에 대한 그토록 많은 종교적 혼동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를 다음 기사에서 고려할 것이다.

[8면 삽화]

영혼이 시체 위를 배회하고 있는 이 그림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망시에 영혼이 살아남는다고 믿었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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