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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게릴라’ 전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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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게릴라’ 전투원이었다
  • 깨어라!—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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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1
깨71 7/8 16-18면

나는 ‘게릴라’ 전투원이었다

‘키프러스’ 주재 「깨어라!」 통신원에게 기고됨

나는 어려서부터 민족주의 사상을 교육받았다. ‘희랍은 전세계에 문명을 보급하였다. 나는 ‘키프러스’계(系) 희랍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등의 사상을 주입받았다. 학교에서 역사 선생은 1821년에 ‘터어키’에 반역한 용감한 희랍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해 주었다.

집에서도 민족주의 교육을 받았다. 부친은 희랍 정교회 사제였기 때문에 그 교육은 종교 교육과 혼합되어 있었다. ‘우리는 희랍인이며, 우리는 자유를 찾아야 한다’ 하고 부친은 거듭거듭 강조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만일 ‘키프러스’에서 영국의 세력을 추방한다면 우리는 자유를 찾게 될 것이라고 배웠다. 영국은 독재자라고 간주되었으며, 영국을 증오하도록 교육받았다.

1955년 4월 1일에 EOKA(키프러스 전투 단체)가 발족하였다. 그 단체의 목적은 군 관계 목표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여 영국인들에게 공포감을 넣어주고 이 섬에서 떠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떠나게 되면 우리는 자유를 얻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자유! 이 말은 내 귀에 실로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EOKA 요원들의 업적에 관한 신문 기사를 자부심을 가지고 읽곤 하였다. 나도 이러한 용감한 애국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될 수 있는가? 어느날 내 소원이 실현되었다.

EOKA에 가입하다

EOKA 단체는 ‘키프러스’에서 유명한 인물인 ‘디제니스’의 지휘하에 있었다. 그 단체는 부사령관 한명과 몇 명의 대대장이 있었는데 각 부락에 한 명씩이었다. 또한 수명의 소대 지휘자도 두었다. 나는 얼마 안되어 대대장을 만나게 되었다.

1957년이었다. 그때 나는 스물 다섯살로, 결혼 후 두 자녀가 있었다. 우리 부락의 EOKA 대대장이 내게 찾아왔을 때에 나는 진정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렇다, 나는 이 단체의 활동적인 요원이 되고 싶었다. 이 운동에 열의는 있었지만 먼저 훈련을 받아야 하였다. 내가 받은 훈련은 폭발물을 만드는 일이었다.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한 다음 나는 소대장에 임명되었다. 내 부하가 32명이었다. 결국 나는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폭발물을 장치하다

우리의 임무는 비밀 장소에서 시한 폭탄과 지뢰를 만들고, 다음에 그것을 대대장의 지령에 따라서 장치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폭발물을 장치하여 지정한 시간에 파괴 작용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비밀 제조 장소에서 들키지 않고 폭파장소로 폭발물을 운반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특수 구조로 되어 있는 옷 가방을 만들었다. 그 가방의 맨 밑 부분에 폭탄을 넣고 그 부분을 닫은 후에 그 위에 의복과 다른 물품을 넣었다. 그 안에는 폭탄 장치를 맡은 사람들의 의복을 넣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리하여 설사 경찰이나 군인들의 수색을 당하여 폭탄이 발견되더라도 우리는 그 가방이 우리 것이 아니고 아마 잘못하여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뀌어진 것 같다고 발뺌을 하고 그리고, 남의 가방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속에 든 의복이 우리 것이 아님을 지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영국의 어느 장성이 부하 장교들과 회합하기로 되어 있는 군사 기지 강당에 시한 폭탄을 장치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 기지 내에서 일하는 부하 한 사람이 그 강당의 열쇄 복제품을 만들었다. 다음날 우리 몇 명이 기지 내에 잠입하여 강당 문을 열고 시한 폭탄을 장치하였다. 일은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었다. 결국 장교 10명이 죽고 수명이 부상을 입었다.

군인을 실은 비행기가 어느날 ‘키프러스’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비행기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우리는 승객의 화물 속에 시한 폭탄을 장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비행기의 출발이 늦어져서 화물이 비행기에 적재되기 전에 공항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내 활동은 범위가 넓어져서 우리의 “임무”가 수행될 때마다 3, 4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체포되어 교수형이나 총살을 당할 위험성 외에도 다른 위험성이 또 있었다. 그러한 예로 전날밤에 장치한 폭탄이 폭발하지 않고 말았다. 그런데, 내 부하들이나 내가 바로 그 장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만일 그 폭탄이 지금 폭발한다면 나와 내 부하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 폭사할 것이다. 자신을 밝히지 않고 폭발물 처리반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한 입장을 해결하였다.

분명한 증거로 체포되다!

나는 한번 체포된 일이 있었다. 사형을 모면한 것이 기적이었다. 우리는 폭탄 제조에 사용되는 4인치짜리 철관(鐵管)을 자동차에 싣고 가다가 헌병의 검문을 받게 되었다. 헌병이 우리 차를 수색하여 철관을 발견하고 우리를 수상적게 여긴 나머지 군당국에 무전 연락을 취하였다. 우리는 체포되어 각각 다른 감방에 감금되었다. 심문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모두가 동일한 진술만 반복하였다. 즉, 동료 한 사람이 철물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그가 일을 마친 다음 쇠부스러기를 모두 주어 모았기에 우리는 단지 그가 다른 공장으로 옮기는 것을 도와 주는 것 뿐이라는 것이었다. 군 당국에서는 우리의 진술을 그럴듯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내가 번민한 것은 단순히 철관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 때문이었다. 우리 차 안에 EOKA의 대대장으로부터 온 지령 문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소대장에게 가는 지령문으로서 그 봉투 안에 돈 15‘파운드’가 들어 있었다. 내가 그 편지를 전달해 주게 되어 있었으며, 그 편지 안에는 돈을 전달한다는 내용도 기재되어 있었다.

헌병들이 우리 차를 수색할 때에 그 중 한 명이 그 봉투를 열어서 그 속에 든 15‘파운드’를 보았었다. 그는 그 돈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상관에게 그 편지를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내가 크게 번민한 점이었다. 만일 그 편지를 제시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차 안에 그 편지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내가 EOKA의 요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천만다행하게도 그 헌병은 돈에 대한 애착심이 너무나 강하였다. 그는 돈을 슬쩍해 버렸기 때문에 그 편지를 제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살아났다. 3일간의 심문과 구류 후에 풀려나오게 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다

나는 민족주의자이면서도 종교성이 강하였다. 이곳 ‘키프러스’는 종교와 민족주의가 오랫 동안 함께 결합되어 있었다. 어느날 나는 희랍 정교회의 새로운 교회당 건립 사업의 일환으로 복권을 팔고 있었다. 내가 나가는 직장에는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도 고용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다른 동료들에게 여호와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는 나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였다. 그가 조금만 더 애국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은 민족적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만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 곧 질병과 사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여호와의 왕국을 통하여 오게 된다는 것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른 경우에 나는 이 사람에게 복권을 사도록 권유하였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인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점에 대하여 칭찬하면서 인정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복권을 사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면으로 나를 도와 주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는 성서 잡지인 「파수대」지 1년 예약을 권유하였다. 나는 수락하였다.

몇 주일이 지나자 그 잡지는 우편으로 우리 집에 배달되어 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읽어볼 만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집 한쪽 구석에 팽개쳐버리곤 하였다. 심지어 봉투를 펴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그 증인은 최근 「파수대」에 실린 어느 기사에 관한 내 견해를 물었다. 그것은 내가 참으로 관심을 가진 제목이었다. 그러나 잡지를 펴보지도 않았다고 말하기가 창피하여 다음날 대답하겠다고 말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한쪽 구석에 쌓아둔 잡지 무더기를 뒤적여 그 기사를 발견하였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정말 흥미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후부터 그 증인은 만날 때마다 흥미있는 어떤 점들을 이야기해 주곤 하였다.

성서 연구가 진정한 자유로 인도하다

얼마 안가서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다. 민족주의 감정보다도 하나님과 동료들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하였기 때문에 온 가족과 함께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목적에 대하여 더 많이 배우게 되었다. 어떤 종류의 민족주의나 어떤 종류의 인간 정부를 지지하는 데 진정한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부 곧 하나님의 왕국을 지지하게 되었다. 성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라들을 지금과 같이 극도에까지 이르도록 허락하신 데는 목적이 있다는 점과 바로 이 세대가 참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세기 동안 고대해 온 커다란 변화를 보게 될 세대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에 나는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여호와는 자비로운 하나님이며 기꺼이 용서를 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을 때에 내 눈에는 눈물이 글썽 거렸다. 나야말로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몇차례 성서 연구를 하고 나서 나는 결심하였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왕국이 좋았고 필요하였다. 나는 물의 침례로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을 표상하였다. 그 후 내가 최초로 한 일은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내 밑에서 활동한 단체성원들에게 보내는 일이었다. 그 중 한 명만 관심을 나타냈다.

나는 지금 또 다시 “집단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중류의 책임자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평화스러운 회중의 책임자인 것이다. 이번에도 함께 일하는 사람이 약 35명 된다. 이 사람들과 함께 야외 전도 봉사를 나가서 인정 많고 친절한 ‘키프러스’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 아래 이루어질 천년간의 평화에 대한 좋은 소식을 이야기해 주는 일은 즐겁기 한량 없다. (계시 20:4-6) 사람들에게 죽은 자들이 부활하리라는 소식이나 참 하나님 여호와께서 급속히 다가오는 새로운 사물의 제도 하에서 성취하실 일들에 대하여 읽어 주는 것은 즐겁기 그지없다.—계시 21:1-4.

내가 갈구하던 진정한 자유를 이제야 발견하였다. 나에게 인생의 참 목적을 알려 준 그 여호와의 증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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