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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상가니’의 소생
  • 깨어라!—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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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4
깨74 6/8 14-16면

‘키상가니’의 소생

‘키상가니’는 우리의 보금자리이다. 이 도시는 현재 소생되는 단계에 있다. 이전에는 유명한 탐험가의 이름을 본따 ‘스탠리빌’이라고 알려졌던 이 도시는 넓은 ‘자이레’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큰 부분이 북쪽에 있다. 적도에서 80‘킬로미터’도 채 못되는, 광대한 ‘아프리카’ 우림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이 도시는 햇빛과 비를 많이 본다.

이곳에 발달된 이 큰 도시는 백인의 낙원이 되었다. 즉 백인만이 도시 중심부에 살았고 ‘아프리카’인은 특별한 증명서 없이는 해진 후에 도시 중심부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현대식 상점과 사무실이 즐비한 넓은 거리가 있었고, 호화 ‘아파트’가 우뚝우뚝 솟아 있었으며, 주택가에는 우아한 종려나무가 줄지어 아름다운 별장이나 넓은 별장식 단층 집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전기는 이 도시의 자체 수력 발전시설에서 공급하였다. 훌륭한 하항(河港)과 현대식 공항을 갖춘 이 도시는 번창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난 십년 동안에 ‘스탠리빌’에는 재난이 닥쳤다. 불과 4년 동안에 세차례의 반란과 폭동이 있었다. 한 때 아름다웠던 이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그 도시의 많은 남자들은 살해되었으며, 백인 주민의 대부분은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도망하였다. 거의 모든 기업체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1967년 마지막 분쟁 이후 소생이 시작되었다.

폐허 상태에서 벗어남

공화국의 대통령령에 의하여 ‘키상가니’(이것이 ‘스와힐리’어로 이 지역의 원명임)라고 개명된 이 도시는 슬픔을 서서히 극복하기 시작하였다. 1969년에 도피했던 ‘유럽’인들은 그들의 집과 기업을 구조하기 위하여 다시 이곳을 찾아 왔다. 여기 저기에서 가옥들이 수리되었다. 같은 해 말에 우리의 친구 몇 사람 즉 여호와의 증인들이 도착하였으며 우리는 몇달 뒤에 그들과 합세하였다.

거의 매일 우리는 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을 보곤 하였으며, 건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시 사용되는 것,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먼저 양쪽을 살피지 않고도 차도를 건널 수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차량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 넓은 차도는 번화하다. 교통이 매우 복잡하고 차량이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현대식 ‘버스’(“매머드”라고 불리우는)가 있으며, “택시 버스”라고 알려진 그보다 작은 영업용 차량이 있다. 각 상점에는 상품이 가득하다. 훌륭한 ‘호텔’과 식당이 있다. 방직 공장이 건축 중에 있으며 새로운 국제 공항이 만들어지고 있다. ‘트럭’ 조립 공장이 일을 시작하였다. 현대식 제재소는 거대한 우림에서 목판을 수출한다. 상점의 창문이나 낡은 차의 바람막이 유리에 더러 탄환 구멍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25만명의 인구가 붐비는 이 대도시가 불과 수년전에 끔찍한 파멸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복구자들

이 도시의 이 놀라운 소생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아프리카’인들 즉 ‘자이레’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대체로 그들은 태평하고 우정적이며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기업인과 정치인 및 특정한 고위 정부 관리가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한 사람은 도시 외곽의 크고 아름다운 저택에서 산다. 독립 전에는 보통 백인들이 살았던 집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며 항상 이 나라 남자들의 고유 의상인 “아바스코스”를 입는다. ‘에어콘’ 시설이 되어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며, 자가용을 타고 다니거나 어디든지 ‘택시’를 타고 간다. (도시를 횡단하는 데 60‘센트’)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백인을 원수로 생각지 않고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의 집에는 “보이”로 알려진 동료 ‘아프리카’인 한 사람 이상이 종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내나 “여자 친구”는 화려한 차림을 하며 때로는 이국적인 머리 모양을 하거나 가발을 사용한다. 한 가지 문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흔히 여러 아내(둘 혹은 셋, 모두 법적 아내)와 “여자 친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세 사람의 아내와 스물 두명의 자녀가 있는데도 저녁에 “외출”을 한다.

사회적, 경제적 등급에 있어서 다음 가는 사람들은 공무원들과 사무원들과 사무실 직원들이다. 그들 일부는 한 때 아름다웠던 집, 버려져서 지금 폐허가 된 집에서 살고 있으나 대부분은 ‘아프리카’인 부락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그들의 집은 흔히 손질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아프리카’인들은 대가족을 갖는 경향이 있으므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 그들의 모든 돈이 지출된다. 면허있는 한 전기 기사(부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약국을 낸)는 세명의 “법적” 아내와 스물 일곱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호구지책으로 흔히 여자들은 작은 규모의 장사를 한다. 그들은 물건을 도매가격으로 사다가 소매 가격으로 판다. 혹은 그들의 뜰에 과일나무를 가꾸어 시장에서나 집집을 다니면서 과일을 판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손님이 그들의 상품을 사려고 흥정을 할 때 매우 흥분을 하며 손님이 너무 싸게 사려고 하면 대단히 불쾌한 기색을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천성이 좋으며 그들의 우정적인 경쟁은 흔히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들은 부지런한 주부들이다. 보통 어린 아이는 엄마 등에 업혀서 어디에나 가며, 바로 위의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다닌다. 여자들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젖을 준다.

이러한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주부들은 어떻게 시장에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운반하는가? 머리에 이고 다닌다. 여자들은 짐을 이고도 매우 기술적으로 그리고 우아하게 다닌다. 넓은 ‘파인애플’ 그릇도 이고 물고기 ‘바케츠’도 인다. 이 여자들은 놀라운 균형 감각을 익혔기 때문에 ‘미싱’에서부터 침대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나 이러한 방법으로 운반한다! 그들은 집에서 허드렛일이 많지만 시간을 내어 갈고 심는 일을 한다. 혹은 그들이 집에 있을 때에는 ‘도너츠’나 작은 과자를 만들어 그들의 집 앞에서 판다.

또한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좋은 창의력을 보이고 있다. 적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작은 가게를 시작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사진찍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키상가니’에는 적어도 다섯군데에 사진관이 있다. 일부 사람들은 낡은 ‘페달’식 ‘미싱’을 가지고 양복 짖는 일을 한다. 청량 음료와 얼음 덩어리를 사서 길모퉁에서 시원한 음료를 파는 것이 더욱 쉽다. 이렇게 하면 ‘콜라’ 한병에 2‘센트’의 이익을 손쉽게 남길 수 있다. 이 곳은 오후에 기온이 섭시 35도 이상 올라가는 갈증이 심한 나라이다.

만일 물건을 경제적으로 운반하고자 하고 또 급하지 않다면 당신은 “파우씨-파우씨”를 세낼 수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밀고 밀어”야 하는 손수레인데, 그것이 그 이름의 의미이다. 이러한 손수레를 밀거나 끄는 사람들은 참으로 중노동을 한다. 그들은 1‘달라’나 그 이하를 받고 300‘파운드’의 짐을 도시를 황단하여 운반해 주기도 한다. 이 도시는 모두 평지도 아니다. 손수레의 구조는 다양하지만 대개는 고철 조각을 용접한 금속이며 양쪽에 한 개씩의 바퀴가 달려 있는데, 바퀴가 서로 다른 경우도 흔히 있다!

강 건너편에는 철로가 있는데 이 철로는 여러 가지 선로를 통하여 ‘자이레’의 동쪽으로 물품을 운송한다. 강은 어떻게 건너는가? 통나무배를 타면 된다. 그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통나무배는 하나의 통나무로 만든 ‘카누’이다. 크기는 작은 것에서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인데, 가장 큰 것은 50명까지 태울 수 있지만 두번의 큰 사고가 있은 후로 정원을 삼십 명으로 법률이 제한하고 있다. 각 통나무 배에서 일하는 사람이 두명이 있는데, 한 사람은 운전을 하고 한 사람은 요금을 받는다. 운전이라고? 그렇다. 그들은 선체 외에 발동기를 장비하고 있으며, 이 발동기는 창같이 생긴 이 배를 추진하여 약 5분 동안에 거의 반‘마일’의 수로를 달린다! 사람들 뿐 아니라 당신이 휴대한 자전거, 닭, ‘카사버’, ‘바나나’ 등 어느 것이라도 실을 수 있다. 각자는 편도 여행에 4‘센트’를 내며 자전거 한대당 4‘센트’를 추가한다. 이러한 빠른 배가 많이 있다.

물론 당신은 쌍발 ‘디젤’ 선박 ‘엔진’을 장치한 ‘카페리’도 탈 수 있지만 그것은 무료일지라도 크게 흥미있지 않다. 당신은 또한 모험삼아 발동기가 없는 통나무 배를 세내어 어부들이 단지 그들의 노만 가지고 거대한 ‘자이레’ 강의 격류와 싸우는 것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폐허를 변모시켜 ‘모부토 세세 세코’ 대통령이 ‘자이레’의 세번째가는 도시라고 선언한 도시로 만들고 있는 용감한 사람들의 약동하는 사회가 있다.

영적 계몽

물질적 번영과 현대식 시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미신을 숭상한다. 심지어 고소득층에 속한 사람들도 대대의 관습을 아직도 맹종한다. 도시의 주택가에서도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의식으로 새벽까지 애곡하고 춤추고 마시는 철야제를 지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아이의 손목과 발목과 허리를 검은 끈으로 묶는데, 이 끈에는 몇개의 작은 뼈나 대나무쪽이나 돌을 매단다. 어떤 사람이 아프면 누구의 영이 그를 공격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그 지방 주물(呪物) 의사와 상의하는데 주물 의사는 흔히 검은 끈으로 환자의 목에 걸 작은 주머니를 처방한다. 조상 숭배, 죽은 자들에 대한 두려움, 죽음을 초래하는 마술, 친구나 연인을 만드는 마법—이 모든 것이 현대 ‘키상가니’에 흔하다. 대부분은 자기들이 ‘가톨릭’ 교도라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읽거나 쓸 줄 모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스스로 연구할 수가 없다. ‘프로테스탄트’ 교도들도 성서를 보급하고 성서를 ‘스와힐리’어와 ‘링갈라’어로 번역하는 좋은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성서 연구를 실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곳 ‘키상가니’에서 두명의 ‘아프리카’인 여호와의 증인이 1965년에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성서를 연구하도록 개인적 도움을 베풀기 시작하였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사업을 축복하셨다. 지금은 활동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이 네개 있다. 작년 주의 만찬 기념식 참석자는 거의 500명이었다. 그들은 행복하고 성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둘째 아내를 버리고 매음 행위를 버렸으며 그들이 이교의 관습을 계속 행하기를 거절할 때 가족과 친지로부터 받는 노여움을 과감하게 극복하였다. 그들은 참 숭배를 위하여 용감하고 비정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의사 보조원, 대학생, 요리사, 우체국 직원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참 하나님 여호와께 헌신하였다. 우리는 소생하고 있는 매혹적인 장소인 ‘키상가니’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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