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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아무도 경제를 예측하지 못하는가?
  • 깨어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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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5
깨75 7/8 3-7면

왜 아무도 경제를 예측하지 못하는가?

적자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거처럼 쉽지가 않게 되었다. 가정 주부는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내고도 더 적은 식료품을 사온다. 남편은 월급은 전보다 더 많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건 더 줄었다. 사태가 호전될 것인가?

특히 서방 비공산 세계의 경제는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화폐제도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전문가들은 현재의 재정적 곤경은 단지 새로운 큰 영향력에 맞춰나아가기 위하여 경제가 겪게 되는 하나의 국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경제가 곧 다시 활기있게 전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얼마의 다른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비지니스 위크」지는 다분히 우울한 특별호에서 미국의 “부채경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의 부채부담은 매우 팽팽하게 드리운 밧줄과 같다. ·⁠·⁠· 그 줄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며 아마 끊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 한편 많은 계획과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아무도 그 긴장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이처럼 경제의 장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운가? 이 돈으로 내일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을는지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에 대한 기초를 약간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는 하나의 제도이다

간단히 정의한다면 경제란 상품과 노동력이 어떻게 생산되고 배분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학은 제도에 대한 학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필요로 한다. 갑이라는 사람에게는 양모를 생산하는 양이 있고, 을이라는 사람에게는 염료가 있다고 하자. 서로 원한다면 단순히 물건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갑은 물감을 얻고 을은 양모를 얻는 것이다. 경제란 기본적으로 협동적 교환제도이다.

그러나 갑은 을에게서 물감을 원하는데, 을은 이미 갑의 양모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그러면 갑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둘 다 병이라는 제 삼자에게서 직조를 필요로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병은 어떻게 보수를 받아야 할 것인가? 경제제도는 이보다 더 복잡한 상황을 충분히 처리할 만큼 커야 한다. 어떻게 처리하는가?

돈이 사용된다. 돈 곧 화폐는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상징 혹은 대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환제도에서 대단히 융통성이 있는 도구이다. 물론 돈을 실질적인 부(富)와 혼돈해서는 안된다. 갑이 가지고 있는 실제 가치 있는 것은 양이며 을과 병은 참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각각 염료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이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실상의 가치를 상징할 뿐이다.

그러나 각자의 생산품 혹은 용역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요가 그것을 결정한다. 아무도 양모를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가치는 낮을 것이다. 반대로 누구나 다 옷을 만들기 위해 양모에 의존한다면 그 생산품의 수요가 커져서 가치는 대단히 높을 것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사람 ‘아담 스미스’와 같은 소위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주장하기를, 경제제도는 물과 같이 자유롭게 유동하도록 하여 스스로 그의 수준을 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이 각 생산품과 용역의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개인이나 회사가 생산품 혹은 용역을 다른 데보다 싸게 생산하면 경쟁자는 대중의 요구에 의해 사업계에서 밀려날 것이다.

가격도 역시 수요에 의해 정해진다. 수요는 크고 공급은 제한되어 있을 때 값은 비싸진다. 그러나 물건은 많은데 수요가 적다면 값은 떨어진다. 이것이 “자유” 경제 제도의 기초 원리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제도가 방해받는 일 없이 무한정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서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어떤 제도가 창안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곧 “좋은” 제도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 제도는 얼마나 “좋은”가?

어떤 표준에 따라 판단하면 서방 세계의 경제 제도는 매우 효과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말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특히 최근 몇 10년 동안에 전문가들이 경제에 더 많은 통제를 가하였다. 왜 그랬는가? 만약 경제 제도가 참으로 주요 공급의 가격 결정으로 운영된다면 왜 그것을 통제할 필요가 있는가? 많은 이유들이 제시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인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두려움, 즉 경제의 한 부면을 “보호”하려는 열망이다. 한 개인이든, 회사, 한 집단의 노동자들 또는 한 국가이든, 모두는 자기네가 경쟁자에게 진다면 일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경제 “이론”을 매우 잘 알 것이다. 그들은 대중의 수요가 그들의 용역이나 생산품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알고, 이제 자기네가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경제 부문으로 옮겨서 대중이 요구하는 것을 공급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타격이 큰 변화라는 것을 또한 알고 있다. 이제 어떤 사람이 나이가 많고, 일평생 동안 기술을 익힌 그의 생업이 이젠 수요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그가 갑자기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배워야 할 것인가? 그리고 급료는 어떠하겠는가? 지금은 없어진 사업체에서 기술직에 있던 사람을 옮겨와 훈련받지 못한 새로운 직장에 앉혀 놓으면 이전만큼 돈을 벌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그의 가족은 더 적은 돈으로 살아가야 하며 그의 생활 수준은 낮아져야 한다. 누가 그것을 원하겠는가?

그렇다, 수요와 공급, 통제 않는 자유시장, 등등의 이론은 여러 세대 혹은 여러 세기 동안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론상으로는 좋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자기 직업을 잃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 저술가 ‘헨리 해즐릿’은 이렇게 말한다.

“일정한 경제 정책 혹은 발전의 영향을 장기적으로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한 국면에서 고찰한 점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큰 업적이었다.”

‘해즐릿’은 또 이렇게 부언했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넓은 관점에서 본 나머지 간혹 단기적이고 좁은 관점을 무시한 것은 그들의 결점이었다. 그들은 특수한 집단에게 발생되는 즉각적인 영향을 과소평가하거나 전혀 망각해버리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이러한 상황은 거의 모든 산업과 경제 발전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현재 서방 경제 학자들은 그 반대의 극단으로 흘러서, 어떻게 해서든 직장을 보존하라고 주장할 때에 그 정책의 장기적인 영향을 망각해 버린다. 간단한 예를 몇가지 들어가면서 고려해 보자.

남자의 모직 양복 한벌을 미국에서는 80‘달러’에 만들어서 팔 수 있는데, ‘홍콩’의 회사들은 똑같은 옷을 만들어 미국에까지 수송하여 40‘달러’에 팔 수 있다 하자. 거의 대다수의 고객은 미국제 양복 한벌 가격으로 ‘홍콩’제 두 벌을 살 것이다. 이것이 계속되면 미국제 양복은 수요가 없게 되고 수천명의 양복 공장 노동자들은 실직당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옷에 대해서는 무거운 세금 즉 관세가 붙게 된다. 이렇게 하면 외제 옷 값이 상당히 비싸게 되며 미국의 일자리는 안전하게 된다. 피상적으로는 그것이 좋게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기로 하자.

물건을 사는 사람은 어떤가? 그는 양복 한 벌에 대해 가외의 4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그 돈은 아마 경제의 다른 부면, 말하자면 ‘텔레비젼’ 수상기나 냉장고를 사는 데 쓰여질 수 있는 돈이다. 이론적으로는 미국의 양복 공장 노동자는 이들 다른 산업 중의 하나로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세가 이 불편한 직업 변경을 막아 준 것이다. 그러면 중국의 양복 직공들은 어떤가? 그들의 제품에 관세가 붙어 수요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문제가 참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며, 이 경우에 있어서는 문제가 단지 미국 밖으로 밀려 나간 것 뿐이다. 최근 몇 십년 동안 이러한 성질이나 혹은 비슷한 경우에 국가 주권이 굉장히 강하게 행사되어 경제에 대한 통제를 점점 강화해 왔다.

똑같은 현상이 각 나라 안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디젤’ 기관차가 도입되자 석탄을 때는 화부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 조합이 주선하여 화부의 직업을 보존시켰다. 그후 화부들은 말하자면 기차를 타고 다니기만 하면 임금을 받았다. 화부들의 직장은 유지되었지만 철도 승객과 화물 수송자들은 운임을 더 내게 된 것이다. 화부가 아마 필요할지도 모르는 복장 업계로 이직되는 대신, 그 제도가 그들을 철도에 머물도록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한편 고객은 품귀한 옷을 살 때나 철도를 이용할 때 돈을 더 내게 된다.

조그만 상점에서부터 대기업과 농업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십년 동안에 이러한 종류의 수많은 통제가 경제의 모든 부면에 대대적으로 가해졌다. 국가나 조합이나 회사나, 각 개인들도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상황이 그러하므로 대부분 이해할 만하다—때문에, 각자가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누가 해 줄 것인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제도는 누군가의 특별한 이익을 위하여 조절되지 않는 한 그렇게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현 경제 제도의 한 중요한 무능력을 지적한 것이다. 만약 그와 동시에 바로 그 제도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면 어떻게 전체적인 수요와 공급의 제도를 영구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사람들이 만약 지금 직업을 가지려면 그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거치장스럽고 자가당착한 제도가 그 자신의 무게 때문에 언젠가는 몰락해 버리리라는 것은 아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제도의 문제를 해결함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듯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암담한 경제적 곤경에 관계되어 있다. 그것은 탐욕이다. 실제로 필요치 않은데도 사람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나은 생활 방식”을 원한다. 노동자마다 더 높은 임금을 원하고 각 제조업자는 생산품의 값을 올리기를 원한다. 그래서 ‘파리’ 「드 몽드」지의 ‘부르노 듀리오’는 “국가의 부를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는 사회 집단들 간의 항구적인 투쟁”에 관해 언급했다.

모직 양복을 만들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이 더 높은 임금을 원한다면 완제품의 가격이 그만큼 인상되어야 한다. 그 옷을 사고자 하는 다른 사람은 그들 자신의 고용주로부터 더 많은 돈을 타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제공하는 생산품과 노동의 가격은 올라간다. 이리하여 무섭게 악순환이 형성된다. 수요는 치솟는데 제품은 충분히 빨리 만들어지지 못하므로 값은 계속 오른다. 이것이 악성 ‘인플레’의 한 가지 형태이다.

정부 자체가 ‘인플레’를 일으킬 때에도 그에 못지 않은 해독이 있다. 돈은 단지 실질가치를 대표하는 것뿐이라는 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이론적으로, 한 국가의 통화량은 그것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실질적 가치를 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대 국가들은 이 기본적 법칙을 범하여 실질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찍어냈다. 보통 이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국가적 위기의 때에 군수 산업에 돈을 들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통화량이 과다하게 되면 결국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돈의 액수로 볼 때 모든 물건의 값은 올라간다.

‘인플레’가 자리를 잡게 되면 그 나라의 국민은 더 많은 돈을 가지고도 더 적게 살 수 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통화가 가치를 잃게 되며, 다른 나라의 통화에 비해서 ‘인플레’가 일어나기 전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시장에서 공식적인 평가절하가 행해져야만 된다. 그러면 외국인들은 그 영향을 받아 더 싸진 그 나라의 물건을 더 쉽게 살 수 있다. 그러면 더 심한 타격이 생긴다. 어떻게 그러한가? 그들은 이미 품귀가 되어 크게 ‘인플레’를 일으킨 그 물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더 심한 ‘인플레’이다. 대‘인플레’가 현재 대부분의 서방국가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돈이 평가절하되면 단지 액면의 가치만 잃는 것이 아니라 또 잃는 다른 것이 있다. 즉 많은 사람의 신용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투자를 중지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고수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확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자금 조달의 길이 막힌다. 생산을 촉진시키기는커녕 줄여야 하며 그래도 값은 여전히 비싸다. 사람들은 직업을 잃게 되며 경기 후퇴가 자리를 잡는다. 현재의 미국과 다른 곳에서의 상태는 ‘경기 후퇴’의 한 형태라고들 말한다. 수많은 파업도 역시 생산을 감소시킨다.

한꺼번에 ‘인플레’, 경기 후퇴, 실업(失業)이 나타나면 실로 큰 문제가 된다. 그러나 현재의 수많은 문제는 악몽 같은 정도로 확대되었다. 어떻게? 새로운, 예기치 않았던 요소가 들어온 것이다. 원유 값이 4배로 뛰었고 다른 천연자원들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어가며 따라서 값은 더 비싸진다. 몇달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들 극심한 변화는 서방 세계의 모든 산업에 피해를 주었으며, 때로는 파괴적인 정도로 피해가 심하였다.

거기다가 고르지 못했던 기후는 농작물 수확을 형편없이 만들었다. 늘어나는 인구는 제한된 공급량을 가로채 간다. 그래서 한때는 값이 싸던 콩이나 설탕 같은 농작물이 몇 배로 뛰었다. 거의 매일 보통 사람 수입의 큰 비율이 생활 필수품을 사는 데 사용된다.

모든 걸 더 많이 갖자는 사람들의 욕망은 다른 방법으로 이 제도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은 외상 구입이다. 경제가 팽창하여 왕성할 때는 외상 거래가 인기가 있었다. 현재는 사람들이 ‘인플레’가 된 돈으로 부채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외상 거래를 차츰 차츰 끊는 것같다. 값싼 돈에다 비싼 이자율이 붙기 때문에 매입자들은 구미를 잃는다. 외상 거래를 덜 한다는 말은 상품과 노동력이 덜 팔린다는 것이며 생산의 저조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까지는 누구나 경제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미국에서 총 부채는 2조 50억 ‘달러’로 높아졌다. 이것은 국민 총생산고, (1년간 전국의 생산품과 노동력의 총계)의 2배 이상이다. 그리하여 통용되고 있는 미국 돈 1‘달러’에 대해 8‘달러’씩의 빚이 있는 것이다.

사실상 최근 수십년간 서방 세계에서 이룬 “경제 기적”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것은 대부분 빚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톤 선데이 글로브」지에 ‘토마스 올리판트’가 쓴 것처럼 오늘날 미국인의 현실은 “그들의 부모 때보다 훨씬 나빠졌다. ·⁠·⁠· 그들이 물질적으로 더 부유한 것은 건전한 경제 상태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용거래가 엄청나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국가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빚을 지고 있다.

예측이 불가능함

이 모든 사실과 또 여기 언급되지 않은 수백 가지의 다른 요인들이 서방 세계의 경제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니 경제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조금이라도 이상할 것이 있는가? 문제는 몇몇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것이며 상호 연결되어 있다. 한 나라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상태가 조금만 변하여도 서로 얽혀 있는 전체 경제 상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현 경제의 바다에 표류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떠 있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에 당혹하고 있는 것이다. ‘뉴우요오크 체이스 맨하탄’ 은행 경제 개발과의 ‘알. 더불류. 에버릿’은, “경제 제도에 관한 인간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다. 이 제도가 늘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세밀한 분석을 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칼럼리스트’ ‘막스 러너’는 경제 예보자들 앞에 놓인 불가능한 과업을 다음과 같이 화려하게 묘사하였다.

“지금은 경제학자들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은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경제적 상황이라는, 그물 안에서 물고기처럼 꿈틀거리고 버둥거리고 꾸물거리다가는 뛰어오르고 하는 꼴은 실로 가관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최상의 상태를 희망하나 사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데 대한 건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설사 이 제도가 현 위기에서 일시적으로 헤어나온다 할지라도 장차 그 균형을 유지하리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종말은 명백한 것같다. 남은 문제는 단지 언제 끝이 올 것인가? 하는 것 뿐이다.

성서를 믿는 사람들은 세계 변화—단순히 경제 제도만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성서로부터 전세계 제도가 더 이상 지속을 못하고 사라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로 대치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제도에 의해 분명히 영향을 받고 있는 데도 그들은 거기에 확신을 두지 않는다. (마태 6:9, 10, 19-34) 그들은 미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어딘가 다른 곳에 의지한다. 즉 하나님께 의지한다.

[5면 그래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제1차 세계 대전 이래의 미국의 ‘인플레’

제1차 세계 대전

대공황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월남 전쟁

1915

1935

1955

1974

[4면 삽화]

“‘인플레’의 원인은 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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