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6 10/22 3-4면
  • 자유가 계속되어 왔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자유가 계속되어 왔는가?
  • 깨어라!—1976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기록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 투쟁
  • 자유가 전혀 없는 것보다 나음
  • 미국 헌법과 여호와의 증인
    깨어라!—1987
  • ‘캐나다’의 새로운 헌법을 살펴봄
    깨어라!—1985
  •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문제들
    깨어라!—1976
  • 자유로운 백성이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2
더 보기
깨어라!—1976
깨76 10/22 3-4면

자유가 계속되어 왔는가?

1776년에 미 합중국의 독립 선언이 있으면서, 인간 정부 사상 특이하고 대규모적인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이 곧 현대 민주주의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왕 혹은 기타 형태의 독재주의자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국민의 동의에 의한 정부’만이 원하는 자유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가운데에는 언론, 종교, 출판 및 집회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자유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1787년에 그러한 것들은 미국의 기초가 된 공식 문서 즉 헌법에 반영되었다.

기록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선포된 그러한 사상이 실제로 얼마나 잘 실행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고상한 말을 지면에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점에 관한 역사 기록은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경우 선언된 자유는 상당히 잘 보존되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기본적인 자유가 비참하게 남용되고 무시되었다.

적극적인 면으로, 언론, 종교, 출판 및 집회의 자유에 포함된 기본 사상은 대체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법정 투쟁이 필요하였다.

투쟁

종교적 자유를 행사하는 점에 있어서, 소수인의 신앙은 때때로 피해를 입었다. 예를 들면,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미국에서 박해를 받았다. 집단 폭행도 당했고, 일부 편견가진 관리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당하였다.

그 결과, 여호와의 증인들은 미국의 대심원에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였다. 다행히도, 대심원의 판결은 압제를 밀어냈다. 종교의 자유가 유지되었다.

그 자유는 여호와의 증인의 전세계적인 전파 사업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세계 본부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헌법이 보증하는 종교, 집회, 언론 및 출판의 기본적 자유는 미국내의 모든 종교에 중요하였다.

이것은 많은 다른 나라의 상태와 대조가 된다. 그러한 전파 사업이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얼마나 억압을 당하였는가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여러 공산 국가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숭배의 자유가 없는 다른 여러 독재 국가에서도 그러한 사업을 공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원하는 기본적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강렬한 투쟁이 많이 있어 왔다. 미국에서 지금도 그러한 투쟁이 있다.

자유가 전혀 없는 것보다 나음

자유가 전혀 없는 것보다는 자유의 남용을 관용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본보기가 이백주년 기념 자체이다. 많은 단체들은 미국의 200주년 기념을 위해 품위있는 대회를 개최하였지만 그것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단체도 있다.

「유우. 에스. 뉴우스 앤드 월드 리포오트」지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주의하지 않는다면 금년은 미국 장사군의 200주년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이백주년 기념에서 한목 보려는 아귀다툼이 어처구니 없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 잡지는 이백주년 “티셔츠, 얼음 ‘바케츠’, ‘존 핸콕’의 의자 모조품, 원 독립 회관의 재목 토막, ‘조지 와싱턴’의 권총 모조품, 이백주년 기념 볼펜, 붉고 희고 푸른 변기 ‘시이트’, 자유의 종을 단 쓰레기통”이 시장에 나와 있다고 보도하였다.

「월 스트리트 저어널」지도 이렇게 논평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이백주년은 애국심으로 외부 장식을 한 저속한 상업주의를 ··· 지나치게 자극하였다.”

그것은 또한 유적지에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였다. 어떤 경우 관광객들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필라델피아’의 한 지역에서 관광객들은 유서깊은 거리로 몰려다니며 개인 가정의 창문을 들여다 보고 보도와 차도에 쓰레기를 버렸다.

참지 못한 한 여인은 호기심이 너무 많은 관광객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마침내 발견하였다. 그는 과거의 예를 따라 식민지 시대의 조상들이 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쓰레기를 이층 창문으로 내 던졌다! “그렇게 해도 관광객들이 다가온다면 방도가 없을 것이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이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근로자들이 특정 색깔의 옷을 입거나 특정한 몸치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 일을 강요하는 것은 이백주년을 맞이하는 자유 자체에 위반이 된다.

물론, 자유의 남용을 견딜 수 없을 때에는 법정에 호소할 수 있다. 법정은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유가 전연 없는 것보다는 자유의 남용이 낫다.

기본적인 자유가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립 선언서와 헌법에 구체적으로 표현된 자유의 고상한 이상이 실속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떠한 면으로 그러한가?

[4면 삽입]

자유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비참하게 남용되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