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8 3/8 8-11면
  • 나의 이혼—생애의 두번째 기회였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나의 이혼—생애의 두번째 기회였는가?
  • 깨어라!—1978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그렇게 결정한 이유
  • 조정
  • 아이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
  • 도움을 받음
  • “이전에 내가 알았었더라면”
  • 의미있는 생활
  • 이혼에 관해 알아야 할 네 가지 사실
    깨어라!—2010
  • 우승을 위한 나의 투쟁—그것은 가치있는 일이었는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자녀들, 무고한 이혼의 희생자들
    깨어라!—1981
  • AIDS 보다 더 나쁜 것
    깨어라!—1989
더 보기
깨어라!—1978
깨78 3/8 8-11면

나의 이혼—생애의 두번째 기회였는가?

판사석 앞 나의 변호사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이제 나는 곧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나는 마음대로 ‘데이트’를 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고, 마음대로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1974년 12월 그 시점에서는 생애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지 않았다. 나는 29세로서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오하이오’ 주(미국) 북부의 조용한 교외에 아늑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보험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대부분의 것—자녀, 가정, 훌륭한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내 생애에서의 중대한 실수인 나의 결혼이 판사의 붓을 통해 곧 해소되려고 한다.

무질서한 사회 상태 때문에 나는 점차 자유를 더 갈망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한 1966년 이래로 도덕 표준이 급격히 변화되었다. 나는 이제 젊은 여자들이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시험해 볼 수 있다.—즉 나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다. 나는 진정으로 이 두번째 기회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였다. 내가 가기를 원하는 곳도 많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든지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혼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책에서 얻은 지식들과 ‘텔레비젼’ ‘드라마’와 사무실에서의 잡담을 통해 얻은 광범위한 지식을 통해서 나는 밖으로 나가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려는 생각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

8년간의 결혼 생활은 나에게 단지 불행하다는 생각 밖에 가져다 주지 않았다. 우리집은 먹고 자는 하숙집에 불과하였다. 남편과 나는 자녀들의 훌륭한 생활을 위해서 일하였다. 우리가 일하지 않을 때는 함께 말다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매우 바빴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드물었다.—나의 남편은 큰 돈을 벌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혼한다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대 이상에 걸쳐 우리 집안에서 이혼이란 없었다. 그러나 또 다시 우리의 격렬한 논쟁이 있은 후 결국 그러한 상황하에서 계속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 내가 이혼을 하려고 결심하였을 때는 가까운 친구 한 사람과 부모에게만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혼란에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동일한 방법으로 빠져 나오려고 생각한 것이다. 자, 얼마 있지 않아 그 소식이 퍼졌다. 가까운 벗들은 나에게 도덕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개방적인 충고는? 그렇다. 확실히 그러한 충고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대부분의 충고가 부정확한 것이었음을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진정한 것으로 보였으며, 내가 침울해졌을 때 나에게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였다.

부모들은 나의 이혼에 관한 소식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좋게 받아들이셨다. 나는 부모들에게 언제나 친근감을 느꼈으나 결혼 생활과 관련된 은밀한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모들은 결코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들은 내가 구타당하고 학대를 받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나는 21세에 결혼을 하였으며, 어린 시절은 대부분 ‘오하이오’ 주에 있는 한 농장에서 보냈다. 부모들은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행동으로써 나의 남동생과 나에게 사랑을 나타내셨다. 우리는 말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후에야 부모들이 나의 남편의 불충실을 알고 계셨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점을 결코 말하지 않으셨다. 나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

이혼하는 데 거의 일년이 걸렸기 때문에 나는 점차적으로 여러 가지 조정을 할 수 있었다. 한 가지는 나의 직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결혼 상태의 변화 때문에 집으로 더 많은 봉급을 가지고 오는 것이 필요하였다. 여성 자유화 운동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권유를 받은 후 나는 그 점을 상사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남자의 일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봉급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함을 상사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그러한 점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주기로 하였다. 그들은 내가 이전에 함께 일하던 세 여자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보수와 더불어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었기 때문에 그 변화가 꼭 즐거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여자들과 함께 앉아서 흥미있는 밤의 생활에 관한 긴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이제 나의 임무는 그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 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친밀한 관계는 사라졌다. 그들은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가정에서의 일은 그처럼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나는 매일 일하러 가고, 아이들을 아이보는 사람에게 데려 가고, 가계를 주관하는 동일한 일을 계속 수행하였다. 유일한 주요 변화는 저녁에 내 자신이 관심있는 어떤 일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특히 내가 정구를 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경우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곤 하였다. 거의 주간의 매일 밤마다 어떤 일이 계획되었다.

나의 친구들은 주말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데이트’를 마련하였고 나를 다른 이혼한 친구들에게 소개하였다. 나는 곧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즉 대부분의 다른 이혼한 친구들과 내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어느날 나는 이혼한 16명과 함께 ‘나이트 클럽’의 탁자에 앉아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그들의 이전 배우자의 불건전한 점과 그들이 모든 것을 빼앗긴 것에 관하여 들었다. 들어 보면 마치 어떤 사람이 녹음기를 틀어 놓고 있는데 단지 이름만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 연민이나 술에 몹시 빠져 있었으며 자신들의 인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혼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는 고독이다. 그러나 ‘바아’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맥주에 취하여 소리치는 것이 해결책인가? “의미있는” 저녁을 보내기 위하여 자기 ‘파트너’와 집으로 가는 사람도 많다. 약 6개월 동안 이러한 생활을 계속한 후에 나의 어머니는 내가 이전의 나의 남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아주 정확하게 지적하셨다.

나는 결국 내가 행하고 있는 것보다 생활에서 할 일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렇게 자문하였다. “내가 그들의 입장에 있다면 나는 이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인가? 그들을 위해서 내가 원하는 생활이 이것인가?” 내가 나가고 없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보는 사람과 같이 있지 않을 때는 친구집에 가 있었다.

아이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

나는 아이들에게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로 결심하였다. 일곱살과 다섯살 밖에 안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통찰력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에 나는 아이들에게 그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였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교회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각각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교회에 참석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숫제 전혀 가지를 않았다.

어느날 둘째 아들이 나에게 ‘하나님에게도 아들이 있나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당황하였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놀랐으나 나의 8년간에 걸친 결혼 생활을 돌이켜 볼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일하여 아이들이 ‘훌륭한 생활’을 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종교에 관하여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남편과 내가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에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해 듣게 되었으며, 그 때에는 그 이름들이 욕으로 사용되었었다.

어느날 저녁 학교 공개일에 나는 얼마 동안 보지 못했던 한 이웃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약 5년전에 우리 두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과 함께 연구하였는데, 두번 연구한 후 나는 남편이 공부를 계속하면 폭력을 휘두르겠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중단하였었다. 나는 그 부인에게 그 증인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서 나에게 하나님이나 성서에 관하여 모르는 두 아이가 있어서 걱정이 된다고 말하였다. 그 부인은 즉시 증인이 방문하도록 마련해 주었다. 이틀 후에 그 증인이 방문하였다.

도움을 받음

일주일에 한시간씩 우리는 앉아서 나의 문제들을 토론하였다. 그 증인은 나에게 성서의 훌륭한 원칙의 적용 방법들을 알려 주곤 하였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을 징계하는 데 약간 소홀하였다. 결국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버린 셈인데, 한쪽 부모인 나는 모든 시간을 그들에게 소리치면서 보내기를 원치 않았다. 내가 징계를 삼가함으로써 그들에게 사랑을 보이고 있지 않았는가?

성서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잠언 13:24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나는 내가 배우고 있는 지식에 관하여 몹시 즐겼다. 이전에는 성서에 한 가지 중요한 주제 즉 우리가 주의 기도를 말할 때마다 기도하게 되는 왕국 즉 하나님의 왕국이 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하였다. (마태 6:9, 10; 누가 4:43) 이 왕국은 전 지구를 다스릴 것이며, 그 신민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사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배워감에 따라 나는 찾고 있던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들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해 진정으로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주위에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밀거나 밀치는 일, 욕설, 여러 여자들이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일도 없었다. 나는 이전에 결코 그처럼 따뜻하고 사랑에 찬 환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전에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인데도 나와 아이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육개월 후 나는 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전에 내가 알았었더라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이전에 알았었더라면 나의 결혼 생활을 구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훌륭한 결혼 생활을 하는 데는 사려깊음, 협조, 의사 소통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그러한 점들을 배양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개인 생활에 너무 몰두했기 때문에 서로 당연히 나타내야 할 배려를 나타내지 않았다. 우리는 바빴기 때문에 가족을 위하여 ‘훌륭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의 감정이나 진정한 필요를 위해 깨어 있지 못하였다. 우리는 서로 협조하기보다는 차라리 사이가 벌어진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쳤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부부의 모든 문제가 침실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 부부 사이가 원만할지라도 그들이 함께 앉아서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면 어떠한 지속적인 유익이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랫 동안 결혼 생활을 영위해 왔기 때문에 상대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힘든 방법으로 배웠다. 우리가 문제점을 모른다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 후에 이렇게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이혼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이혼을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결혼을 마치 물질적인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기대에 맞지 않다면 그것을 버리고 더 나은 것을 찾는 식이다. 주의를 단지 자신에게만 돌린다. 즉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킬 것인가만 생각한다. 개인적인 충족감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된다. 그 사상은 ‘당신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한번 밖에 살지 못한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을 취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정신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나 자신의 행복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자유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 나는 여러 번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단순히 좋은 시간이었는가? 그러나 나는 밤새껏 ‘나이트클럽’에서 춤추고 ‘재미를 보는 것’ 이상이 생에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나와 생애를 같이 할 사람을 찾기를 원하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바아’에서 그러한 사람을 발견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는가?

이제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랑을 찾고 있었는가?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단지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나는 이제 각성하여 내 자신이 아닌 사람들 즉 자녀들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몹시 기쁘다. 그리고 내가 올바른 종류의 도움으로 향하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의미있는 생활

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성서 고린도 전 13:4, 5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느[니라].”

그렇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극적이다. 그것은 일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사랑을 행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 20:35.

나는 이제 정기적으로 내가 교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매일 그러한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이 실천되고 있음을 본다. 그들 중에서는 어떠한 욕설, 술취함,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모임에 생기를 주기 위해서 좋지 않은 농담을 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가족을 중심으로 한 따뜻하고 온정 있는 분위기가 있게 된다.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벗들의 훌륭한 본과 도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받은 인도가 가져다 준 결과는 흐뭇하다. 두 아이들이 하나님을 향해 선한 양심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자신들에 앞서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없지만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여호와가 계심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기 종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축복하실 분에 대하여 알고 감사함을 느끼면서 자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시 133:3)—기고.

[9면 삽입]

“나는 다섯 시간 동안 그들의 이전 배우자의 불건전한 점[을] 들었다.”

[10면 삽입]

“아이들은 남편과 내가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에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해 듣게 되었으며, 그 때에는 그 이름들이 욕으로 사용되었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