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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 두 사람의 이야기—그들이 가르치는 일을 중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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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 두 사람의 이야기—그들이 가르치는 일을 중단한 이유
  • 깨어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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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03월호 22-25면

교사 두 사람의 이야기—그들이 가르치는 일을 중단한 이유

“이윽고 나는 매일 두려움 가운데 수업에 임하기에 이르렀고,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을 알았다.”

수십년 동안 교육자들은 “왜 ‘조니’는 읽지를 못하는가”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고심해 왔다. 한편 ‘조니’는 “바둑이가 뛰어갑니다. 뛰어라, 바둑아, 뛰어라”라고 인쇄된 지면을 앞에 놓고 그것을 상대로 한 힘겨운 씨름에 들어간다. 그런데 첫 해에 선생님이 두번 세번 바뀌어 ‘조니’가 좌절을 겪게 되는 일이 잦다. 그러므로, ‘조니’가 “바둑이가 뛰어갑니다”와 씨름하고 있는 동안, 교육자들은 “선생님이 뛰어갑니다”라는 문제를 직면하고 있으며 동시에 “왜 선생이 가르치지를 못하는가?” 하는 문제에도 봉착한다.

교육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왜 경험있고 헌신적인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는가? 나 역시, 은퇴 10년을 앞두고 교직을 떠났을 때 그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과거의 상태

나는 교육자 가정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인형을 갖고 학교 놀이를 하던 나는 그 헝겊 인형들이며 장난감 곰들, 사기 인형들이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살아 움직일 날을 고대하였다. 드디어, 꿈이 실현되어 그들은 국민학교 3학년 남자 아이들이 되었다.

나의 가르치는 일이 시작된 것은 학기가 시작된지 3개월 후였으며, 나는 그 학급이 세번째 맞는 선생이었다. 이 사실을 아이들은 의기양양하게 내게 알려왔다. “우리가 그 두명을 쫓아 버렸어요.” 하고 앳된 목소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들은 척도 않고 그 아이들 자신에 관한 대화로 그들을 이끌어 갔으며, 곧 집에 있는 애완 동물로 화제가 바뀌었다. 각자가 앞서 나온 것보다 더 익살스러운 동물의 행동을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 마침내 나는 한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집 강아지가 네게 뛰어 오르며 놀고 싶어하는데, 네가 놀기 싫다면 어떻게 하겠니?”

“그냥 떠밀어 버리죠 뭐.”

“하지만, 네가 떠밀어 버려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그럴리가 없어요.”

“왜?”

“날 좋아하니까요!”

나는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 알겠어요?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역시 여러분을 좋아하게 될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난 바로 그 강아지같이 될꺼예요. 여러분이 가끔 나를 떠밀어 버릴 수 있겠지만, 내가 여러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날 쫓아 버리지는 못할꺼예요. 그렇죠?”

그 때는 내가 이겼다. 그 당시는 제 2차 세계 대전 직후 시절이었다.

모든 선생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즐겨 가르치는 과목이 있었다. 그중 첫째로 꼽는 것은 6학년 사회 과목 중 “세계 강국들의 흥망성쇠”였다. 나는 교과서 내용이 성서 역사와 그토록 일치하는 데 대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의 교과서 「고대 세계에서 생활함」의 교사용 주석판에서는 심지어 세계 강국들의 흥망에 관한 다니엘 2장의 ‘느부갓네살’과 그의 꿈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읽힐 것을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그 때는 행복한 시절이었으며, 가르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세월은 흘러 내가 어머니가 되기 위해 교실을 떠났을 때는 이미 10년 이상이 경과된 것이다.

내가 교실로 되돌아온 것은 내 나이 60대 후반이 되었을 때였다. 한 때 가르치는 일에서 내가 느꼈던 즐거움은 이제 당연히 더욱 배가 되어야 하였다. 내 자신의 아이가 이제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현재의 상태

온갖 계층에 대한 존경심의 결핍은 가슴이 섬뜩할 정도였다. 분명 선생들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동일한 태도를 교장에 대한 젊은 교사들의 태도에서 볼 수 있었다. 한 때 그토록 잘 유지되던 규율은 이제 거의 걷잡을 수 없었다. 11살 짜리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욕설에는 그만 기가 막혔다. 이윽고 나는 매일 두려움 가운데 수업에 임하기에 이르렀고,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을 알았다.

나는 과거에 함께 일했던 교사들과 교장들을 만나 회견해 보기로 했다. 또 이미 대부분 학부모가 된 이전의 제자들도 만나기로 했다.

규율,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규율의 결핍에 대한 불평이 수위를 차지하였다.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아무런 말썽에 말려들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면 그 날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규율이 무너진 이유에 관하여는 의견이 구구하였으나, 모두들 그 주원인으로 “권위에 대한 존경심의 결핍”을 꼽았다. 한 교장은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학 전에 알게 되었고, 대부분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 아이에게는 부모가 최고의 권위로 부각된다.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한 존경심마저 전혀 갖지 않을 때, 우리들 즉 선생들에 대한 무관심은 어떠한가?”

나는 2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한 교사에게 도덕상의 가치 기준에 현재 어느 정도의 역점을 둘 수 있는지 질문하였다. 그는 젊은 교사들이 나이든 교사들과 그 점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며, 따라서 종교적 측면에 접하지 않도록 경험있는 교사들이 조심스럽게 다루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학교에서 기도 시간을 폐기한 후로 우리 선생들은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장 규범에 관한 기준의 저하가 교내 규율에 대한 치명타였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 흥미있는 발언은 이러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들의 옷차림과 똑같은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이상 더 악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이제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옷차림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교사들은 “외모가 단정할수록 더 나은 학생이다”라는 점에 동의한다. 한 교사는 이렇게 숙고하였다. “더러운 청바지 차림으로 ‘셔츠’ 윗단추 아홉 개를 풀어 놓은채 자리에 그들이 걸터 앉아 있을 때, 우리를 뒤돌아 보는 그들의 얼굴에서 어딘가 학업에 대한 열의의 부족을 느끼게 된다.”

미래의 상태

이러한 발언 내용이 부정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 모두가 반항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선생들에게 기쁨이 되고 있는 사랑스러운 학생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선생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변천하는 세상의 희생자들입니다.” 이전의 한 학생은 이렇게 요약하였다. “60년대 초기의 세상은 마치 균형을 잃은 ‘자이로스코우프’(회전의, 回轉儀)와 같았고, 그 이래로 세상은 비틀거려 왔다. 과연 그 균형을 되찾을 것인지 그것은 우리에게 의아심을 일으킨다.”

나는 과거 6학년 사회 과목을 가르치던 생각이 났다. 세계 강국들의 행진, 그것들의 흥망이 현재의—비틀거리고 있음이 분명한—강국에 이르기까지 거듭되어 온 일, 이 현재의 강국 역시, 일반 역사책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인간의 가장 오래된 교과서인 성서에서 강조하는 강국—예수 그리스도 하의 하나님의 왕국—에게 그 길을 양보할 때 그 얼마나 웅대할 것인가! 그 때는 가르치는 일이 다시 한번 즐거움이 되리라.—D. B.

“나는 무관심한 부모들, 냉담한 교사들과 방치된 아이들의 조류의 방향을 돌려 보려고 애쓰는 일을 중단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50년대 초에 남부의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아직도 학생들이 교장 및 교사들을 존경했었다. 학급내에는 최대한의 규율이 서 있었고 아주 나쁜 행동이란 극소수의 남학생들이 수풀 뒤에 숨어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정도였다. 우리는 ‘뉴우요오크’ 시가 이미 직면한 문제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쉬지 말고 흔들라(Rock Around the Clock”)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을 주었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 종류의 폭력과 불경은 이곳에서 상상도 못한 것들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나는 청소년들의 반항이 점증함을 읽어 알게 되었고, 심히 염려한 나머지 나의 첫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도 교원으로서 학교에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그 곳에서 나는 교육계 내의 동향을 살피고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다.

6년을 가르치는 동안, 나는 실망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교장은 명색 뿐이지 권위가 없었다. 그들은 직원들에 대하여 전혀 권한이 없었다. 교육 위원회가 그들에게 교사들을 보내 주면 받아들여야 하였다. 어떤 교사가 어느 면에서 혹은 모든 면에서 자격이 없음이 드러났다 해도 교장은 아무 조처를 할 수 없었다. 헌신적인 “구식” 교사들의 대다수가 은퇴하였고, 그 후임들은 믿기 어려웠다. 이 교사들의 많은 수가 아주 저질의 영어—거리의 속어를 사용하였다. 더러는 공공연하게 다른 교사들과 다투며 민족적, 종교적 문제를 놓고 그들의 편협한 태도를 드러냈다.

시간제 부모들

우리 학교 학생들—유치원에서부터 7학년에 이르기까지—의 어머니들 중 90‘퍼센트’ 이상이 밖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그 중 적어도 50‘퍼센트’가 분열된 가정이다. 많은 부모들이 직장에 시간 맞춰 가기 위해 학교문을 열기 한 시간 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놓고 간다.

나의 학생들이 어른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가져 본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발견했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에게 이야기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그들을 칭찬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내가 학부모들—학교에 찾아오는 극히 소수의 부모들—과 회담을 가질 수 있었을 때, 나는 적어도 저녁 때 30분만이라도 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고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등을 물어 보며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격려하였다. 부모가 직업을 가진 아이들 대부분은 주중에 저녁 때 겨우 2시간 부모의 얼굴을 보며, 부모가 교대 근무에 종사하는 가정에서는 그나마 일주일에 이틀 즉 주말로 그 시간이 좁혀졌다.

학급의 말썽꾸러기는 분열된 가정에서

학급의 말썽꾸러기 혹은 방해자들이 분열된 가정과 빈 집에 방치된 아이들 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였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슨 행동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부모에게 지나치게 충성스러웠고 부모에 관해 허풍을 늘어놓기를 잘하였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난 내가 말하는 내용처럼 부모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가정내에서 부모가 세워 놓은 규칙들은 결코 시행되는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아이들은 학교도 그 규칙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종종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학교의 규칙을 경시하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한 적이 결코 없었다. 학교 건물내에서 총싸움, 칼부림, 강간 사건이 여러 번 있었고 도둑질과 마약 사용은 매일 있는 일이다. 거의 모든 고등학교 내에 보안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교육자들과 학교 경찰들은 ‘마리화나’ 사용이 일정한 선을 유지하는 한 외면을 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사실상 많은 수가 대부분의 학교 시절에 피해를 입으며 지낸다.

내가 매일 학교에서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고 그 절망감을 집에 안고 오게 되었을 때, 나는 무관심한 부모들, 냉담한 교사들과 방치된 아이들의 조류의 방향을 돌려 보려고 애쓰는 일을 중단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가르치는 직업을 중단하고 그 시간을 나의 가정 내에서의 의무와 특권을 누리는 데 사용하였다. 이제 나는 더욱 보람있고 만족을 주는 과목을—인류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그리스도 예수하의 하나님의 새 질서를 가르칠 시간을 갖게 되었다.—S.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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