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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4 10/15 17-20면

핵 시대의 무고한 희생자들

「깨어라!」 ‘구암’ 통신원 기

1946년 7월 1일 월요일, ‘하와이’에서 약 3,200‘킬로미터’ 남서쪽에 있는, ‘마아샬’ 제도 내의 잘 알려지지 않은 환초로 이루어진 반짝이는 잔잔한 개펄이 눈부신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방사선 버섯 구름이 10‘킬로미터’ 상공으로 치솟았으며, 이로써 ‘비키니’는 평화 시대의 최초의 핵 폭탄 시험 장소라는 명성을 순식간에 얻게 되었다.

‘비키니’는 타원형인 775평방 ‘킬로미터’의 개펄 여기저기에 산재한 수많은 작은 열대 섬들과 소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도시들이 핵 폭탄으로 황폐된 지 5개월 후에, 미국 정부는 장래 핵 실험 장소로 ‘비키니’를 선정하고 그것이 줄 영향에 대해 미국 내에 공개적인 광고를 하였다. 그러나 ‘비키니’ 원주민들은 몇 주일 후에야 비로소 이주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167명의 섬 주민들은 떠나기를 싫어하였으나, 그 시험들이 “인류의 유익을 위해서 또한 세계 전쟁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란 말에 승낙을 하였다. 이윽고 수천명의 군사 및 과학 요원들과 수백척의 배와 항공기들이 야자수로 옷입은 이 환초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편, ‘비키니’ 사람들은 서글픈 마음으로 그들의 집을 떠날 준비를 함으로 기나긴 방랑 생활에 들어갔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생활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비키니’ 사람들은 이 시험들이 끝나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동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론저릭’에 머물기로 하였다. 그러나 ‘론저릭’은 ‘비키니’와 달랐다. 17개의 섬으로 된, 이전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이 환초에는 마른 땅이, ‘비키니’는 6평방 ‘킬로미터’였는 데 비하여, 단지 1.3평방 ‘킬로미터’ 뿐이었다. 그 개펄도 142평방 ‘킬로미터’로서 ‘비키니’의 774평방 ‘킬로미터’의 개펄에 비교가 안 되었다. 유일한 우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소금기 있는 물뿐이었다. ‘코코넛’은 질이 형편없었다. 또한 ‘비키니’에서 식용으로 사용된 여러 종의 물고기들이 ‘론저릭’에서는 유해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도착한 지 두달도 채 못되어 ‘비키니’인들은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근의 ‘론젤랩’ 환초 원주민들이 그들의 곤경에 대해 듣고 생선과 기타 식품을 현외재가 달린 ‘보우트’에 싣고 와 도와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론저릭’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화재가 일어나 생산적인 ‘코코넛’나무들의 30‘퍼센트’가 소실된 결과 더 심한 식량 부족을 겪게 되었다. 그후 2년 동안 행해진 몇가지 의학적 보고들은 ‘비키니’인들이 “굶주리는 사람들”이며 ‘론저릭’을 떠나는 일이 “너무나 오래 지연되어” 왔음을 밝혔다.

마침내 그들은 두번째 피난 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역시 ‘마아샬’ 제도 내의 ‘콰잘레인’에 있는 해군 기지의 임시 수용소였다. 몇달 후, 그들은 투표로 ‘킬리’로 이주하기로 하였다. ‘킬리’는 0.86평방 ‘킬로미터’ 넓이 밖에 안 되는 하나의 섬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추천할 만한 한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그 점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마아샬’ 제도 사람들은 자기네가 속한 사회적 무리가 소유한 토지권 외에는 환초들에 대한 토지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땅을 매매하지도 않는다. 땅과 바다가 그들의 생필품을 공급해 주므로, ‘마아샬’ 사람들은 다른 섬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에 거주하기를 꺼린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환초에라도 거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원주민들의 호의에나 의존하는 가난한 친척과 같은 입장이 된다. ‘비키니’인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킬리’로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생활 조건은 형편없었다. ‘킬리’는 깊은 바다에서 가파르게 솟은 좁은 암초로 둘러싸여 있다. ‘코코넛’이 잘 자라고 강우량이 풍부하긴 하지만, 파도가 그대로 암초에 닿아 부서지기 때문에 그곳엔 물고기와 조개류가 없다. 거센 물결 사이로 타고 나갈 길이 없기 때문에 ‘카누우’도 소용이 없다. 무역풍이 부는 계절에는 대양에 폭풍우가 어찌나 몰아치는지 보급선들이 이 섬에 닿지를 못한다. 현재 ‘마주로’에 살고 있는 한 ‘비키니’인은 이렇게 말한다. “‘론저릭’과 ‘킬리’에서의 생활은 아주 고생스러웠어요. 감옥 생활보다 더 힘들었지요. 왜냐하면, 그 섬들은 아주 작았고 먹을 것이 부족했으니까요.”

그 동안 ·⁠·⁠·

그 동안, 40개의 소도로 이루어진, 역시 ‘마아샬’ 제도 내의 ‘에니위이톡’이란 환초가 추가 핵 무기 시험을 위해 주목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 원주민들은 철거되어 200‘킬로미터’ 남서쪽의 ‘우젤랑’으로 이송되었다. 이 섬은 우연히도 ‘비키니’인들 역시 선택하였던 곳으로서, 당국자들이 거의 예고 없이 ‘에니위이톡’ 사람들을 대신 이주시켰을 때에는 ‘비키니’인들이 벌써 그들 자신을 위한 새 집들을 짓고 있었다. 이 일로 ‘비키니’인들은 상당한 쓰라림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수소 폭탄이 출현하여, 1952년에 ‘에니위이톡’에서 그 첫 시험이 있었다. 하나의 섬 전체와 다른 두개의 섬의 일부가 완전히 증발하였다. 비참한 결과를 낳은 (얄궂게도 ‘브라보’라 이름하였던) 시험이 1954년 3월 1일에 있었다. 가장 널리 광고된 이 수소 폭탄은 ‘비키니’에 떨어진 첫 원자 폭탄보다 아마도 700배나 강력하였다고 한다. 눈을 멀게 만드는 현란한 빛 줄기가 그에 뒤이은 수천만도의 뜨거운 불덩이와 더불어 시속 483‘킬로미터’의 속도로 위로 치솟았다. 몇분 만에 거대한 버섯 구름이 약 30,500‘미터’까지 솟아올랐다.

그 개펄은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강풍에 요동되었다. ‘비키니’의 수억 ‘톤’의 암초, 섬들과 호수가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빨려들어갔다. 상층부의 바람은 치사적인 방사능 재를 안고 130‘킬로미터’를 달려 마침 ‘행운의 용’이란 이름의 배에 타고 있던 23명의 일본인 어부들 위에 눈 내리듯 재를 뿌렸다. 16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론저릭’과 ‘론젤랩’의 사람이 거주하는—방랑하는 ‘비키니’인들에게 그렇게도 친절을 나타냈던 주민들이 사는—환초들 위에는 모래같은 방사능 재가 내려 5‘센티미터’나 쌓였다. 거의 440‘킬로미터’나 떨어진 ‘우티릭’ 환초에서는 재가 안개처럼 내렸다. 모두 11개 섬들과 3개의 환초가 직접 영향을 받았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일본인 어부들과 ‘우티릭’과 ‘론젤랩’의 주민들이 가려움증, 피부의 화상, 메스꺼움과 구토 등 급성 방사선 노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인 어부들 중 한명은 오래지 않아 사망하였으며, 그 후 2년 동안 일본 정부는 나머지 병든 선원들과 다랑어 산업의 손실에 대한 보상금으로 2백만 ‘달러’를 받았다.

그 시험이 끝났을 때, 18‘킬로톤’에서 15‘메가톤’에 이르는 범위의 핵 폭발이 ‘비키니’에서 23회, ‘에니위이톡’에서는 43회나 있었다! 시험들 사이에 휴식 시간도 있었지만, 일련의 시험이 시작되면 하루 걸러 평균 하나씩의 핵 무기가 폭발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시험들이 끝난 얼마 후에, 누구나 ‘비키니’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9년 원자력 위원회에서 첫 검사를 마친 후, ‘비키니’는 안전함이 공포되었다. 핵 시험에 관련되었던 모든 파편들은 1.6‘킬로미터’가 채 못되는 거리에 있는 개펄 내의 세 지점에 내버리게 되었다. ‘비키니’인들은 “방사능이 실질적으로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으며, 따라서 식물이나 동물의 생활에서 식별할 만한 영향을 전혀 찾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정화 작업과 재정주를 위한 8개년 이상의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오랜 꿈이 악몽으로 변하였다. 그들이 떠났던 녹음이 우거진 섬들 대신에, 돌아온 그들이 발견한 것은 쓸모없는 빽빽한 덤불과 나무 몇 그루 및 수‘톤’의 시험 파편들로 뒤덮여 엉망이 된 환초뿐이었다. 더러는 슬피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그들은 일에 착수하여 ‘코코넛’나무들과 기타 농작물을 심고 집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72년과 1975년에 행해진 방사선 검사 결과,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있음이 밝혀졌다. 일부 우물들은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방사능이 너무 많았다. 특정 식품들은 금지되었다. 그들의 몸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따라서, 또 다시 ‘비키니’인들은 이주하여 다른 곳으로—‘킬리’로 돌아가야 했다. 300만 ‘달러’의 재건 계획의 일부였던 50,000그루의 ‘코코넛’나무들과 40채의 새집들은 포기되었다. 1983년 4월에 행해진 ‘비키니’에 대한 과학 연구 결과, 대대적인 정화 작업이 없다면 적어도 110년이 지나야 비로소 누구라도 그곳에 살 수 있게 될 것임이 밟혀졌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어떠한가?

1958년, 18‘킬로톤’의 폭발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데 실패하여, ‘에니위이톡’의 40개 섬 중 하나인 ‘루니트’ 섬 전체에 치명적인 ‘플루토늄’ 237이 퍼지게 되었다. 그 파편은 나중에 수거하여 분화구에 묻고 폭 113‘미터’, 두께 48‘센티미터’의 ‘콘크리이트’ 뚜껑으로 덮었다. 84,000 입방’미터’나 되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 중 얼마를 덮은 것이다. 한 보고에 의하면 그것은 “영원토록” 완전히 제한된 지역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 환초의 단 3개의 섬만이 거주지로 사용될 수 있는데, 그곳에 심은 ‘코코넛’, 빵나무, 칡 등이 자랄 때까지는 주로 수입 식품으로 식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1980년에 500명의 ‘에니위이톡’인들이 돌아왔으나, 2년도 채 못되어, 그 중 100명은 역경을 견디지 못해 떠나버렸다. 정화와 재건 작업 계획에는 2억 천 8백만 ‘달러’가 소요된다.

한편, 방사능 낙진을 덮어 쓴 환초들에서는 주민들의 갑상선 이상, 백내장, 성장 부진, 사산과 유산 비율이 다른 ‘마아샬’인들 사이에서보다 훨씬 높다. 1954년 “브라보” 폭발에 영향을 받았던 250명의 ‘마아샬’인들 다수가 갑상선 종양을 갖고 있다. 250명 전원이 갑상선 이상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감기, 독감 및 인후의 병에 보통 이상으로 감염이 잘되는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은 쉽게 피로를 느끼며 거의 모두가 건강 상태를 염려하고 있다.

정부 지도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노출되었던 각자는 ‘내일 건강이 괜찮을 것인가? 우리 아이들은 정상일 것인가?’를 자문해 본다. 그리고 병에 걸리게 되면 그들은 ‘이 병은 보통 병인가, 아니면 내 목숨을 빼앗으려고, 심지어 수년이 지났는데도, 지금 그 폭탄의 유령이 찾아온 것인가?’ 하고 자문한다.” ‘우티릭’ 환초의 한 남자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출생시 건강했던 우리 아이 몇명은 일년도 못살고 죽었읍니다. ·⁠·⁠· 모두 4명의 아기를 잃었어요. 아들 ‘윈톤’은 폭발이 있은 지 꼭 일년 만에 출생했는데,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두번이나 해야 했읍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

유랑하고 있는 ‘비키니’인들의 장래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그들의 새로운 장소로 최근에 선택한 ‘하와이’를 미국 정부는 현재 고려하는 중이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 ‘킬리’ 섬에 살고 있다. 그들의 경험은 핵 무기 경쟁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증명해 준다. 그것은 인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돈과 노력이 들며, 심지어 평화시에도 핵 군비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강국들로부터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사는 무고한 제 삼자들을 포함한 희생자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성서는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말한다. (잠언 13:12) 인간에 의존했던 ‘비키니’인들의 경험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몇년째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마주로’ 섬에서부터 ‘마아샬’ 섬들 전체에, 진정한 안전의 근원으로서 군비 경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으로 주의를 이끄는 소식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인류의 유익을 위하며 그리고 모든 세계 전쟁들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곧 그 왕국은 ‘땅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할’ 것이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것이다.—시 46:9; 계시 11:18.

‘킬리’에 살고 있는 ‘비키니’인들이 필수품들을 구하러 혹은 사업상 ‘마주로’를 방문할 때, 그들은 그곳의 활동적인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개인적으로 이 소식을 듣는다. 그 왕국이 지상에 낙원 상태를 회복시켜 주실 때가 매우 가깝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은 그들이 상기한 성서 귀절의 후반부를 경험하게 도울 것이다.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잠 13:12 그 왕국하에서는 더 이상 핵 무기의 위협이 없을 것이며, 더 이상 희생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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