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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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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8
깨88 5/1 11-15면

죽음의 고비에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보니를 바라보았을 때, 너무나도 빨리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눈을 단 한번이라도 깜박거리면 몸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힘마저 전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두눈을 굳게 감고 누워 있었다. 아내의 안색은 핏기라곤 전연 없이 창백하여 주근깨조차도 희게 보였다. 이른 아침에 의사는 “부인은 틀림없이 오늘 사망할 거요”라고 말했고, 한 간호원은 “부인은 오늘 정오를 넘기지 못할 거예요”라고 했었다.

보니는 왜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새아기를 가지게 된 축복이 어떻게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아내에게 가혹한 시련기를 가져다 준 사건을 지금부터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보니가 다시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쁘기는 하였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보니는 열살 된, 딸 애시리를 낳을 때 제왕 절개 수술을 받았고, 그때 이후로 그는 두번이나 자연 유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염려스러웠던 점은 수혈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보니와 나는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아시고 사도 행전 15:29에서 “피[를] ·⁠·⁠· 멀리 하”라고 훈계하셨음을 확신했다.

갑작스러운 위기

보니의 출산 예정일을 5주 앞두고, 우리는 1987년 2월 28일, 토요일을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24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아기가 태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아침, 침대를 피로 적신 채 깨어난 보니를 보았을 때 평온했던 기분은 산산 조각이 나 버렸다. 즉시 의사에게 전화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수혈을 받지 않는 우리의 입장을 알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즉시 제왕 절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는 태어난 여아를 간호원에게 넘겨 주었다. 간호원은 우리 딸을 보니에게 잠깐 보여주고 나서,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갔다. 나는 대기실로 가 있으라는 말을 들었고, 약 30분이 지나서야 회복실에 있는 아내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대기실에는 친구 몇명이 이미 와 있었으며, 나는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회복실을 나와 그들에게 여아를 출산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의사가 제왕 절개 수술을 하면서 보니가 자궁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할 상태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음을 알지 못했다. 약 두 시간 후에 의사가 나와서, 일어났던 일을 알려 주었다. 의사는 말하기를 분만이 시작될 때, 12.5이던 보니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6.1로 떨어져 버렸다고 했다. 아내는 극히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의사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늘기 시작했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지 15분도 지나지 않아 병원 구내 스피커를 통해 내 이름이 흘러나오면서 신생아실로 가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도착하자, 태어난 딸의 안색이 새파랗게 되어, 이미 호흡 정지 상태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기는 회복되어 산소를 공급받았지만, 이제 많은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그 중에는 아주 복잡한 것도 있을 것이다. 나는 검사에 대한 승인서에 서명함과 동시에, 피를 절대로 주입하지 않음을 밝힌 서류에도 서명하였다.

마침내, 여러 시간이 지난 후, 아내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정신이 들어 있었고 적극적이었다. 우리 부부는 여호와께 감사드렸고, 만사가 잘 되어가는 듯했다. 나는 아내가 충격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에게 몇 가지 문제가 일어났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보니의 상태가 악화되다

일요일인 그 날 늦게, 보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다시 혈구수를 재어 보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2.5로 떨어져 있었다. 체내에서는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혈압도 내려갔고, 모든 생명 징후는 약화되어 갔으며, 호흡도 가빠졌다. 월요일 아침이 되니, 보니는 착란 상태에 있었고, 때때로 부위 감각을 상실할 때도 있었다. 보니의 담당 의사는 전문의들과 협의하며 그날 밤을 꼬박 세웠다. 그는 인공 혈액의 사용까지도 조사했었다. 마침내 아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유일한 치료법으로서 고압 산소 요법을 해보기로 결정되었다.

「깨어라!」(한국어판은 「깰 때이다」)지 1979년 5월 22일호 (한국어판은 9월호)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환자를 대기압보다 더 높은 압력을 가한 순수 산소 속에 두는 치료법이다. 높은 압력으로 인하여 산소는 대기압의 경우보다 훨씬 진한 농도로 체조직 속에 흡수된다. 그 기구는 혈액 손실이나 중한 화상 심지어는 악성 전염병의 치료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보니는 롱비치메모리얼 의료 센터로 옮겨져야 하였다. 그 병원에는 이동식 고압 산소 기구와 그것의 사용법을 익힌 기술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는 대단히 위독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급차를 타고 30분 걸리는 그 병원에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지 4분만 타면 도착할 수 있는 헬리콥터로 보니를 수송하도록 마련하였다. 헬리콥터 의료반의 한 간호원은 병원과 연락을 하고 나서 보니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2.2로 떨어진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잘못 생각하셨어요. 부인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고압 산소 요법은 월요일 밤에 시작되어 밤새 계속되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은 기구 안에 있다가 두 시간 반 동안은 기구 밖에 나와 있는 방법이었다. 처음에 그 치료를 2회 받자 보니는 다시 생기를 얻어 활력이 소생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 기구의 밀폐된 공간은 보니를 동요시키기 시작했다. 그 기구에는 내부와 통화할 수 있도록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였다. 성서 계시록 21장, 이사야 35장과 65장에서 알려 주는 지상 낙원을 이야기해 주고 여호와의 사랑에 찬 돌보심을 일깨워 주어 기구 안의 아내를 좀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피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이 가해지다

화요일 아침, 의사가 나에게 와서 피에 대한 나의 입장을 재고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보니의 절개 부분에서 나오는 분홍색 액체를 보아서, 보니가 계속 출혈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죽건 살건 절대로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심은 단호했다. 여호와의 의의 표준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자 의사는 지혈용 거품식 접착성 특수 물질을 사용하여 절개 부분을 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즈음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일부 친척들은 수혈에 동의하도록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이해할 만하였다. 왜냐하면 관련된 의사마다 모두 이구 동성으로 “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부인이 수혈을 받게 하는 길뿐이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가족 중에는 경찰, 변호사 심지어는 신문사와 연락을 취하면서까지 강제로 수혈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수단을 찾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병원 당국은 보니가 수혈을 받아들이지 않아 사망하게 되면 소송당할 것을 우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병원 직원으로 있는 한 여호와의 증인도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다. 그 여직원은 피에 대한 성서의 견해에 관하여 45분에 걸쳐 병원 당국자들에게 설명했다. 보니는 병원측에서 우리의 뜻에 전적 협조하는 데 동의하였음을 알고 매우 만족하였다.

죽음의 문 앞에서

그러는 사이, 보니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었다. 수요일 아침이 되자 아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부위 감각 상실 상태에 있었고, 심장 휴식은 정상 비율 70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170이었다. 혈압은 큰 폭으로 변화하였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2.2 였는데, 헤마토크리트(순환 혈액 내의 혈구 체적 비율)는 정상이 40-65인 것에 비해 놀랍게도 6이었다.

그날 수요일 아침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보니의 병상을 지켜보았던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임종이 가까와지고 있으니, 친척과 친구들을 부르십시오. 보니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읍니다. 보니는 심장 마비나 발작으로 사망할 것입니다. 수혈도 이 시점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이제는 어떠한 치료로도 부인을 살릴 수는 없읍니다. 우리는 부인을 ‘소생되지 않는’ 상태의 환자로 변경해 놓았읍니다. 이것은 혈압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인에게 약물 치료를 하거나,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때 이후로, 가족들 이외의 병문안객들도 면회가 가능하게 되었다. 대기실에서 면회를 기다리던 수십명의 동료 증인들도 보니가 죽기 전에 그를 만나 보도록 허락되었다. 모든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고 나자, 의사는 파부론이라는 약을 사용하여 보니가 마비 상태에 있게 하였다. 이 약은 어떠한 근육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그 사람을 깊은 수면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보니는 혼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상태에서는 심장 마비가 일어나도 보니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편안하게 사망하게 된다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 상태에서 아내는 눈을 단 한번이라도 깜박거리면 몸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힘마저 전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지, 두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목욕하고 필요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딸 애시리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여호와께 우리 마음을 호소하며 함께 울었다. 집안의 어느 구석을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보니를 생각나게 하는 것 같았다. 보니가 우리에게 대단히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였음이 가슴 깊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우기 우리는 지금까지 보니가 우리를 위하여 해주었지만 이제는 우리 둘만이 해 나가야 할 모든 일도 말해 보았다. 우리가 충실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이 낡은 제도를 멸하시고 새 제도로 대체하실 때 보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수요일 저녁에 병원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록 혼자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친척들과 동료 증인들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하여 늘 병원에 있었다. 수요일이 지나 목요일까지도 보니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고 의료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목요일 오후 늦게 의사가 오더니 고압 산소 요법을 다시 시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밤새도록 그 치료가 계속 되었다.

상태가 호전되다

금요일 아침, 로비에서 자고 있는데 두명의 의사가 나를 깨웠다. 그들은 나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고 즉시 알려 주었다. 보니가 현저히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우리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읍니다. 만일 부인의 혈압이 떨어진다면, 부인에게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합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벌써 부인의 차트에 지시를 변경해 놓았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혈액을 사용하지 않고는 이러한 치료를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미지의 방법을 쓰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토요일 저녁에는 간호원과 함께 보니의 곁에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눈을 굳게 감은 채로 있었지만 우리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보니의 머리 위에 달아 놓았다. 보니가 눈을 떴을 때 새로운 아기의 사진을 가장 먼저 보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한 이유는 아내에게 삶에 대한 필사적인 의지를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간호원에게 다음날이 우리의 제 18주년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듣고 간호원은 눈물을 닦아 내었다.

일요일은 보니의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11로 올랐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보니는 파부론도 쓰지 않게 되었고, 나흘간의 마비 상태에서도 깨어났다. 그러나 의사는 이렇게 경고했다.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으니 기대를 너무 크게 가지지 마십시오. 부인의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20 정도로 올라가게 되면, 그때는 기뻐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내 기대는 커져만 갔다. 나흘 만에 처음으로 눈을 뜬 아내의 모습을 보자, 새 생명을 얻는 기분이었다. 보니는 인공 호흡기를 부착하고 있었고 매우 허약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내가 결혼 기념일을 기뻐하기를 기원했다. 아내는 겨우 입만 벙긋벙긋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연필을 쥐고 글을 쓰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럴 즈음 보니가 사진으로만 새아기를 볼 것이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도록 아기를 롱비치메모리얼 의료 센터로 데려오도록 마련하였다. 도착한 아기는 집중 치료실에서 간호원들이 보니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아기가 정상이며 건강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보니 앞에서 아기의 신체 각 부분을 보이고 손가락과 발가락 수를 세어 보였다. 다행히도, 아기는 건강하게 회복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빨리 기뻐하지 말라고 한 의사의 말은 옳았다. 새로운 문제들이 일어났다. 보니는 두 종류의 폐렴을 앓게 되었고, 부분적인 간 허탈 증세가 나타났다. 이 외에도, 재향 군인 병에 대해 양성 반응이 있었다. 이러한 병들 중 어느 것도 보니에게 치사적이 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니는 과거에 여호와의 증인의 전 시간 봉사자라고 불리는 파이오니아로서 15년간 일하였다. 아내는 봉사할 때 많이 걸었을 뿐 아니라 에어로빅 운동을 정기적으로 했었기 때문에 아내의 신체 상태는 우수하였다. 이러한 단련된 체력으로 인해 아내는 그 혹독한 시련을 견디어 냈던 것이 분명하다.

보니는 전체 혈액의 80퍼센트를 상실하고 병원에서 28일간 입원(22일 동안은 집중 치료실에서) 하였으며, 58회에 걸쳐 고압 산소 치료를 받은 후 마침내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대단히 놀라와 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건강하게 보입니다.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군요.”

비록 시련과 고통의 시기였다 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의사들, 간호원들, 병원 당국자들, 다른 종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 뉴스 매체 등은 피에 대한 성서의 견해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건재하다는 목격 증인이 되었다.

보니는 가혹한 시련을 겪은 지 겨우 두달 만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인 공개 전파 활동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우기 아내는 태어난 딸, 알리 라우렌이라는 새로운 파이오니아 짝을 가지게 되는 축복을 곁들여 받았다.—스티븐 M. 비더스타드의 체험기.

[12면 삽입]

헬리콥터 의료반의 한 간호원은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14면 삽입]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혈액을 사용하지 않고는 이러한 치료를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미지의 방법을 쓰고 있읍니다”

[13면 삽화]

내 아내는 이와 같은 고압 산소 기구 안에서 치료받았다

[자료 제공]

Memorial Medical Center of Long Beach

[15면 삽화]

회복된 후의 아내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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