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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기질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다
  • 깨어라!—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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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8 6/1 19-21면

나는 기질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다

그 일이 벌어진 곳은 낯익은 장소였는데, 내가 음악가로서 연주했던 다른 여러 곳과 비슷한 유럽식 선술집이었다. 종종 그러했듯이 친구들과 나는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 나는 손님들 중 몇명이 왜 우리에게 대들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

말다툼이 일어났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젊고 힘이 좋았으며, 손님 중 한 사람을 세게 쳐서 테이블 위로 쓰러뜨렸다. 이어서 나는 의자를 집어서 다른 사람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몇분이 지나자 그곳은 텅 비게 되었고 바닥에는 한 사람이 쓰러진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겁에 질리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집으로 달려갔는데, 나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선고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내가 기질을 제어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이유를 독자가 이해하려면 내가 자라온 환경을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나는 집시 가정에서 양육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떠돌아 다니는 집시는 아니었는데, 나의 가족은 항상 소유하고 있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종종 술에 취하였고, 어머니를 광적으로 질투하였다. 폭력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우리 집에서 흔한 일이었다.

내가 후에 추구한 생활 방식 역시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끼쳤다. 아버지는 음악가로서 생계비를 벌었고, 나는 여덟살이 되자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나는 아코디언 연주법을 배웠고 열 세살이 되자 독주자로 혹은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호텔, 대중 술집 그리고 결혼 피로연 등에서 흔히 밤새도록 연주했음을 의미한다. 나는 곧 폭음을 하게 되었고 담배도 피우게 되었다.

결혼과 질투

이러한 일 중 어느 것도 내가 조용한 성품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혼조차도 나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19세에 나는 예쁜 집시 소녀와 결혼했다. 우리는 집시 풍습에 따라 교직자가 아니라 부족 수장의 집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수장이 나와 내 신부의 손을 이끌어 손바닥을 위로 향해 같이 잡아 주던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 손바닥에 술을 부어 주었다. 나는 내 신부의 손 안의 술을, 그리고 신부는 내 손 안의 술을 마셔야 하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집시 사회에서 합법적인 부부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후에 우리는 결혼을 법적으로 등록하기 위하여 시청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직후부터 나는 아버지가 나타내었던 것과 똑같은 난폭한 질투심을 나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아내를 구타하였으며,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구타할 때도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일로 인해 전보다 더 심하게 술을 마시게 되었고 자연히 내 기질은 더 나빠져 갈 뿐이었다. 한번은 내가 다른 집시 친구들 몇명과 아버지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는데, 형이 나의 아내를 중상하기 시작하였다. 술에 취해 있는 상태로 나는 집으로 달려가 잠옷 차림의 아내를 침대에서 잡아 끌어내 아버지 집까지 끌고 갔다. 나는 아내에게 형이 말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십자가 앞에서 맹세하게 하였다!

그런데 아내가 모든 것을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욱 화가 났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도끼를 집어 들고 집의 창문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다른 형이 와서 나를 말리려고 하였다. 내가 형을 아주 난폭하게 밀자 형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손이 부러졌다.

변화가 일어남

나의 난폭한 기질은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던, 처음에 언급한 그 사건이 있기까지 꽤 오랫동안 절제되지 못한 채 계속되었다.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나는 우리 지방의 로마 가톨릭 교회에 가서 중앙 현관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였다. 나는 이런 일을 결코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무척 다행스럽게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기절했을 뿐이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여전히 매우 울적하고 낙담해 있었다. 3일 후에 아직 안정되지 않은 채로 일하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한 청년이 나에게 하나님의 왕국 즉 인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정부는 이 땅에서 병과 죽음과 슬픔을 없앨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 청년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누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은 나를 온전히 만족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나에게 소책자 한권을 건네 주면서 내 집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가 방문하기 전에, 두명의 다른 증인이 나를 방문하여 더 오래된 책 3권 즉 「창조」(Creation), 「화목」 그리고 「부(富)」(Riches)라는 책을 전해 주었는데, 이 책들은 모두 워치 타워 협회에서 발행한 것이다. 마침내 내가 기차에서 만났던 그 청년이 방문하여, 우리는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책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a

나는 빠른 진전을 보였다. 6주 이내에 나는 이러한 출판물을 통해서 내가 다니는 교회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제관에 가서 교회 회원 명부에서 내 이름을 지워줄 것을 요청했다.

가족의 반대

그러나 나는 또한 성품상에 어떤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 있는 나이 많은 한 여자 증인을 알고 있었다. “증인도 오락 활동이나 결혼식에 참석하나요?”라고 물어 보았다.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그리스도인 방식으로 행동하지요”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그들은 술 취하는 일도 없고, 소리 지르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도 없지요.”

그 순간부터 나는 결코 담배에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성서를 공부한 지 3개월째에 나는 음악가 친구들과의 교제를 갑자기 중단하였다. 그러한 나쁜 교제가 나의 진보를 방해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내가 생활비를 버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벽돌공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직업으로는 음악가로서 벌던 만큼 많은 돈을 벌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의 아내, 아버지, 형들—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이 나를 반대하고, 내가 이전 생활로 돌아가게 하려고 압력을 가하였다. 여호와의 도움으로 나는 술을 과도히 마시는 일을 중단하였고 내 기질을 제어해 나가기 시작했다.

독자는 아내가 내 변화를 보고 무척 감동받았으리라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구타하거나 말다툼하지 않으니까 아내는 내가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런 것이 집시 여인의 사고 방식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왔는데도 나는 그 행사를 축하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성서로부터 크리스마스가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축일이 아님을 배웠기 때문이다.b 그러나 아내는 이러한 나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매우 화가 나서 4명의 자녀를 데리고 내 곁을 떠나 버렸다. 아내는 친정에 머물러 있었고, 장인과 장모는 나에게 새로운 종교를 버리지 않으면 결코 처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으며, 아내도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해 왔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심한 압력이었다. 나는 굴복하기를 거절하였으며 2주 후에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은 직후, 내가 증인 청년을 만난 지 꼭 6개월 만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침례를 받았다.

기질을 제어하게 됨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기질을 제어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성서를 연구하고 열렬히 기도함으로써 여호와로부터 필요한 힘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아내의 반대를 견뎌야만 했다. 내가 성서를 연구하려고 하면 아내는 종종 나를 비웃곤 하였다. 내가 읽는 것을 말해 주려고 하면 내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러나 때가 되자 나의 변화된 성품이 아내에게 영향을 주었다. 2년 뒤, 아내 역시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숭배자가 되었다.

내가 그 술집에서 사람을 죽일 뻔한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후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회중에서 장로로 섬기며 한 아이만을 제외하고 자녀 모두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는 특권을 누려 왔다.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 활동에서 기꺼이 나와 함께 일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회중과 더불어 일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성서 진리가 나의 난폭한 기질을 극복하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이 기사의 기고자는 그리스도교가 정부에 의해 금지되어 있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자 한다.

[각주]

a 이 책들은 현재는 모두 절판되었음.

b 참조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25장.

[19면 삽입]

19세에 나는 예쁜 집시 소녀와 결혼하였다

[20면 삽입]

나는 어린 아내를 구타하였으며,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구타할 때도 있었다

[21면 삽입]

“그들은 술 취하는 일도 없고, 소리 지르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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