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안전 운전
“안전 운전”에 관한 여러분의 최근 기사에 대해 드리는 답례의 말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어판은 1988년 1월 15일호) 그 기사에서 다른 위험들, 이를테면 운전시 흡연이나, 여러 가지 마약 특히 일부 처방약에 들어 있는 마약을 사용하는 일 등이 모두 운전자의 운전 능숙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언급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또한, 수면 부족, 다량의 음료를 마시면서 혹은 마시지 않고서 과식하는 일, 가정 불화, 고속 운전을 보여주는 영화, 불량한 시력, 운동 부족 등의 다른 요인들에 관해서도 분명히 주의를 환기해야 할 것입니다.
R. G., 프랑스
위에 언급된 것들 중 일부에 관해서는 본지의 기사들이 논하였지만, 그러한 것들은 반복해도 좋을 것입니다. 안전 운전을 하려면 운전자가 도로상에서 발생하는 일에 온전히 정신을 차려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상황에도 재빨리 대응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편집자.
여러분의 기사는 훌륭한 안전 운전을 권장하였지만, ‘안전 벨트 착용’을 권하는 말이 없어서 의아했읍니다. 그것 역시 안전 운전 습관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안전 벨트를 매야 할 이유”라는 귀지의 기사 (한국어판은 1978년 11월호)에는, 충돌시에 ‘벨트를 사용한 운전자의 생존 가능성은 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운전자의 10배 이상 높다’고 결론을 내린 캐나다의 한 보고서와, “벨트를 맨 사람들이 입은 상처는 각종 속도에서 벨트를 매지 않은 사람들이 입은 상처보다 약 절반 정도였다”고 결론지은 한 스웨덴의 보고서가 언급되었읍니다.
C. S., 미국
우리는 안전 벨트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것은 여러 주와 나라에서 법으로 요구되어 있으며,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생명의 선물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이치적인 안전 수칙을 따라야 합니다.—편집자.
해방 신학
귀지의 “해방 신학”에 관한 호 (한국어판은 1987년 11월 15일호)에 가톨릭 교회의 명예를 훼손하는 한 삽화가 실렸는데, 기관총 형태로 묘사된 십자가를 보고서 불쾌했읍니다. 그것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형당하신 십자가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J. V., 미국
총을 십자가의 형태로 나타내는 것은 해방 신학의 궁극적 결과를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상징인데, 해방 신학은 압제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최후 수단으로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그 상징을 인쇄한 것이 그리스도에게 불명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에게 불명예를 돌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장 폭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입니다. 해방 신학의 방법은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나라[왕국]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왕국]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왕국]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 18:36) 그분은 자기 추종자들에게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가르치셨읍니다. (마태 26:52) 그분은 존재하는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것을 옹호하여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2:21) 그리고 그분은 자기 추종자들이, 압제로부터의 구출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서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읍니다. (마태 6:9, 10; 시 72:1, 2, 4, 11-1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예롭게 하는 것은 그러한 가르침을 따름으로써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