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암 치료 “세계를 살펴봄” 기사에 실린 “치료법 비교” 난(한국어판은 1991년 10월 1일 호)은 상당히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암 환자들이 상설 의료 센터에서 받는 치료 못지않게 일반화되지 않은 요법으로부터도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귀지의 그 난의 근거가 된 「뉴잉글랜드 의학지」(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기사의 취지는 귀지의 것과 아주 다릅니다.
A. R., 의학 박사, 미국
본지의 간략한 그 난은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지는 그 연구의 주요 결과 한 가지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반화된 치료를 받는 말기 환자들이 비정통 치료를 받는 환자들보다 “생활의 질이 상당히 나아졌음”을 알려 왔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본지에서 보여 준 것처럼, 두 가지 치료법 모두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는 효과가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연구 결과는 일부 말기 환자들을 위해 “무치료 요법”을 고려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연구가들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 연구 결과는 “[암] 상태가 덜 진전된 환자에게는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독자들은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 연구 논문 작성자들은, 일부 비정통적 치료법은 의료 연구가들의 “적절한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편집자.
동유럽의 대회들 “동유럽에서 기뻐하는 경건한 자유 애호자들”이라는 일련의 기사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어판은 1992년 1월 1일 호) 마치 그곳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자국어로 새로운 성서 출판물이 발표될 때 외친 즐거운 함성과 박수 갈채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제가 그 대회들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기사가 발행된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 그 기사들로 인해 다소나마 그곳 형제들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더 잘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M. M., 이탈리아
새롱거림 “청소년은 묻는다 ··· 어떻게 하면 새롱거림 때문에 상처 입는 일이 없을까?”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국어판은 1991년 12월 15일 호) 제 마음을 감동시킨 기사였습니다. 저도 그 기사에 언급된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새롱거리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지 말라”는 소제목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새롱거림의 피해자임을 깨닫게 될 무렵이면 이미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사에서 알려 주듯이, 참다운 사랑에 도달하려면 약간의 흠집과 생채기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치 있는 기사에 대해 감사합니다.
S. C. S. M., 브라질
피 논쟁 “절대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기사를 방금 읽었습니다. (한국어판은 1991년 10월 1일 호)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눈물이 그칠 줄 모릅니다. 저는 종교적으로 분열된 가정에서 살며, 어린 딸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남편이 현재는 제 믿음을 반대하지 않지만, 딸아이에게 수혈 문제가 제기된 상황에서는 제 믿음을 반대할 것입니다. 그 기사는 자녀가 어릴지라도 스스로 성서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자녀를 훈련시킬 필요성을 단단히 일깨워 주었습니다.
L. W., 미국
양모와 옷좀나방 귀지는 “경탄스러운 양모” 기사(한국어판은 1991년 10월 1일 호)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아마 옷좀나방이 양모를 좋아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옷좀나방이 알을 낳으면, 새로 부화된 애벌레는 먹을 것을 풍부하게 누린다.” 하지만 대다수의 옷좀나방은 양모나 그 외의 어떤 섬유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귀지의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옷좀나방이 해로우며 따라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할 것입니다.
T. K., 영국
그 기사는 옷좀나방을 철저히 박멸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옷좀나방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실용적 제안을 하였을 뿐입니다. 흥미롭게도 「그지멕 동물 백과 사전」(Grzimek’s Animal Life Encyclopedia)은 양모를 먹는 옷좀나방류가 “거의 날아다니지 않[으며] 집에서 잘 날아다니는 옷좀나방은 대부분 다른 무해한 종류의 나방에 속한다”고 알려 줍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