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93 1/15 4-10면
  • 변하는 이 세상—어디로 가고 있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변하는 이 세상—어디로 가고 있는가?
  • 깨어라!—1993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우리 생활을 바꾸어 놓은 범죄
  • 범죄와 마약
  • AIDS—달라지게 재촉하는 것?
  • 달라진 세계 정치
  • 변하지 않는 골칫거리—민족주의
  • 변하는 환경
  • 종교가 세상을 변하게 하는가?
  • 인간이 항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가져올 수 있는가?
    참다운 평화와 안전—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 범죄는 참으로 증가하고 있는가?
    깨어라!—1973
  • 현재 우리의 세상은 어떠한가?
    깨어라!—1995
  • 범죄가 실제로 위협이 되는가?
    깨어라!—1985
더 보기
깨어라!—1993
깨93 1/15 4-10면

변하는 이 세상—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변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그리고 인류 전체와 앞으로 있을 세대까지 두고두고 큰 영향을 미친다. 폭력 범죄, 마약 남용, 널리 퍼지는 AIDS, 물과 공기의 오염, 삼림 훼손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 중 몇 가지일 뿐이다. 냉전이 끝나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서구식 시장 경제와 함께 널리 퍼지자,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앞날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게 달라지게 하는 것 몇 가지를 살펴보자.

우리 생활을 바꾸어 놓은 범죄

이웃의 거리는 어떤가? 밤에 혼자서 밖에 나가 마음놓고 걸어 다닐 수 있는가? 30년이나 4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대문을 잠그지 않고도 밖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문 하나에 자물쇠를 두세 개나 달아 놓고 창문에는 쇠창살을 대기도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좋은 옷이나 패물로 치장하고 거리에 나서기를 두려워한다. 도시에 사는 일부 사람들이 가죽 잠바나 혹은 밍크 코트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마약단들끼리 서로 쏘는 총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다. 거의 날마다 많은 어린이를 포함하여 지나는 사람들이 애꿎게 다치거나 죽는다. 거리에 자동차를 안전하게 세워 두려면, 기생충 같은 도둑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잘 만든 안전 장치를 해두어야 한다. 이 뒤틀린 세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도 달라졌다. 정직과 성실이라는 가치관은 거의 잊혀졌다. 신뢰는 사라졌다.

범죄와 폭력은 세계 곳곳에 있다. 여러 곳에서 들어온 다음의 뉴스 제목들은 그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도둑 쫓기에 바쁜 경찰, 조직 범죄와 타락한 행동—모스크바에 가득”, “범죄로 얼룩진 한국의 새 시대”, “프라하의 일상 생활을 강타한 거리 범죄”, “일본의 조직 범죄 단속과 조직 폭력단의 반격”, “문어발 같은 마피아 조직의 힘—이탈리아 마피아 소탕전 선봉장 폭사.” 범죄는 어디에나 있는 문제다.

또한 요즈음의 범죄는 더 난폭하다. 생명은 값싸게 여겨진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 변두리의 한 빈민가는 “세계에서 가장 난폭한 곳으로 국제 연합이 공식 인정”한 지역으로서, “해마다 그 곳에서 2500명 이상이 죽임을 당한다.” (「월드 프레스 리뷰」) 콜롬비아에서 마약계의 거물들은 젊은 시카리오스 즉 청부 살인자를 오토바이에 태워 보내 경쟁자와 빚진 사람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즉결 처형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그 범행을—콜롬비아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본 사람은 흔히 본 것을 후회하게 된다. 뒤이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까.

크게 달라진 또 다른 점은 갈수록 많은 범죄자들이 치사적인 자동 화기들을 가지고 다니며, 갈수록 많은 보통 사람들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권총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늘어가니까 범죄 때문이든, 사고 때문이든,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자연히 늘어갈 수밖에 없다. 주머니나 집에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누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범죄와 마약

50년 전만 해도, 마약이 세계 문제가 될 것으로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는 마약 때문에 범죄와 폭력이 숱하게 벌어진다. 리처드 클러터벅은 자기가 지은 책 「1992년 뒤 유럽의 테러, 마약, 범죄」(Terrorism, Drugs and Crime in Europe after 1992)에서 이렇게 앞을 내다보았다. “마약 거래가 늘어나는 것은 결국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마약계 거물들은 [콜롬비아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경제계와, 정치계에서 엄청난 세력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끔찍할 정도로 많은 범죄의 뒷돈을 댄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세계에서 테러 행위와 폭력 범죄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요인은 콜롬비아의 코카나무 밭에서 유럽과 미국에 있는 마약 중독자들에게 코카인을 파는 장사다.”

범죄 물결이 날로 드세지고 세계의 교도소에 갈수록 재소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려 할 뿐, 변화하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범죄를 하면 이득이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은 사람이 보아 왔다. 그 결과 이 세상은 달라졌다. 나쁘게 달라졌다. 더 위험해졌다.

AIDS—달라지게 재촉하는 것?

처음에는 주로 동성애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병이 모든 인종과 생활 방식에 속한 사람들을 해치는 역병이 되었다. AIDS는 더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일부 나라들에서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AIDS로 죽고 있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도덕 때문이 아니라 병에 걸리는 것이 무섭기 때문에 난잡한 성행위를 갑자기 멀리하게 된 것 같다. 이제 “안전 성교”를 부르짖는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콘돔을 쓰라고 많이들 권한다. 성관계를 멀리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면 AIDS는 가까운 앞날에 인류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얼마 전에 「타임」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2000년쯤 되면 AIDS는 1918년의 독감 재앙을 누르고 금세기의 가장 무서운 유행병이 될 것이다. 독감 재난으로 당시 세계 인구의 1퍼센트인 2000만 명—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군인 수의 배 이상—이 죽었다.” 한 전문가가 말한 것처럼, “AIDS 유행병은 역사에 남을 무서운 병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AIDS 연구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데도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AIDS 대책 회의에서 1만 1000명의 과학자와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AIDS 문제를 연구하였다. “분위기는 십년 간의 좌절, 실패, 늘어만 가는 비극을 그대로 보여 주듯 침울했다. ·⁠·⁠· 인류는 AIDS를 무찌르는 면에 있어서 이 병을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나아가지 못하였을 것이다. 백신도, 낫게 하는 방법도, 확실하게 잘 듣는 처방조차도 없다.” (「타임」) 지금 HIV 양성 반응을 나타낸 사람들과 이미 AIDS에 걸려 있는 사람들의 앞날은 어둡다. 이것 역시 나쁜 쪽으로 변한 것이다.

달라진 세계 정치

지난 4년간 정치 분위기가 달라지자 많은 지도자들은 놀랐다. 아마 미국의 지도자들이 가장 놀랐을 것이다. 미국은 갑자기 정치 무대에서 맞수가 없어진 셈이다. 미국은 져 본 적이 없는 활기 넘치는 농구팀이 갑자기 더는 아무도 시합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상태에 견주어졌다. 「외교 정책」(Foreign Policy)지 편집인 찰스 윌리엄 메인스는 1990년의 한 기사에서 그런 기운 빠지는 상태를 이렇게 간추려 말하였다. “현재 미국이 외교 정책에서 할 일은 재난을 가져오는 전쟁에서 미국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이전의] 소련 사이에 갑자기 시작된 기대하지 않던 평화를 자리잡게 하는 일이다.”

핵무기 제조 기술이 널리 퍼지는 것도 새로운 위협거리인 한편, 세계 무기 장사꾼들이 상당히 싱글벙글할 만하게도 구식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자꾸 늘어간다. 평화를 애타게 부르짖는 세상에서, 여러 정치 지도자들은 군대와 무기를 더 늘린다. 그리고 다 쓰러져가는 국제 연합은 고질 병으로 시달리는 세상에 반창고만 붙이느라 바쁘다.

변하지 않는 골칫거리—민족주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신 세계 질서”라는 개념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알고 있듯이, 꾀바른 외침 소리는 쉽게 나올 수 있지만, 바람직한 변화를 이루는 일은 훨씬 어렵다. 제프리 골드파브는 자신이 지은 책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민주주의를 좇는 중부 유럽」(After the Fall—The Pursuit of Democracy in Central Europe)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신 세계 질서’라는 한없이 부푼 희망을 갖자마자 우리에게 여전히 해묵은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가끔 호된 맛을 보며 깨달았다. 해방이라는 행복감은 ·⁠·⁠· 종종 정치계의 긴장, 민족간의 분쟁, 종교계의 근본주의, 경제가 무너지는 일 때문에 절망에 눌렸다.” 확실히 구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내란은 정치, 종교, 민족주의가 분열을 일으킨다는 뚜렷한 예다.

골드파브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중부 유럽 사람들은 날마다 외국인 공포증과 개인적 불안감에 시달린다. 민주주의가 경제, 정치, 문화에 저절로 좋은 것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장 경제는 돈벌이를 약속해 주기도 하지만 그 제도에 적응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도 가져온다.”

그러나 중부 유럽과 구소련에 속한 공화국만 그런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외국인 공포증과 경제 불안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인류 가족은 고통과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증오와 폭력을 일으키는, 골이 깊이 팬 이런 태도가 가까운 앞날에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조금도 없다. 왜 그런가? 부모로부터든, 민족주의를 따르는 학교 제도로부터든 대다수가 받는 교육이 바로 증오와 편협을 심어 주고 민족, 인종, 부족 혹은 언어를 바탕으로 우월감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주간지 「아시아위크」가 “가장 추악한 주의”라고 부른 민족주의는 여전히 증오와 피흘리는 일을 줄곧 일으키는 요인이다. 그 잡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르비아 사람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크로아티아 사람을 미워한다면, 아르메니아 사람이 자유를 얻자 투르크 사람에게 앙갚음한다면, 줄루족이 독립하자 코사족을 정복하려 한다면, 루마니아 사람이 민주주의 때문에 헝가리 사람을 추방한다면, 민족주의는 이미 가장 추악한 얼굴을 한 것이다.”

우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이런 말을 생각하게 된다. “민족주의는 소아병이다. 그것은 인류가 겪는 홍역이다.” 이런저런 시기에 거의 누구나 민족주의라는 홍역에 걸린다. 그리고 이 병은 계속 퍼지고 있다. 지난 1946년에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이렇게 썼다. “애국주의가 ·⁠·⁠· 그리스도교를 대신해 서양 세계 종교의 자리를 거의 다 차지하였다.”

지금 형편에서 사람의 행실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교육이 철저하게 달라져야만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썼다. “진보의 공통 요소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 사람이 나아지지 않고는 어떤 개선도 있을 수 없으며, 사람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게 교육받을 때 분명히 진보가 있다. ·⁠·⁠· 먼저 문맹을 물리쳐야 한다.” 과연 세상의 교육계가 증오와 불신이 아니라 사랑과 관용을 가르칠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가? 부족끼리 그리고 인종끼리 뿌리박힌 앙심을 버리고, 서로 신뢰하고 이해하며 우리 모두가 하나의 인류 가족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날이 언제 올 것인가?

분명히 바람직한 변화가 필요하다. 샌드라 포스텔은 「세계 상태 1992」(State of the World 1992)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실제로 붙잡으려면 1990년대의 남은 기간에 더욱 깊이 있고 폭 넓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고 가고 있는가? 리처드 클러터벅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위험하다. 민족주의자와 종교인의 열광은 식지 않을 것이다. ·⁠·⁠· 1990년대는 금세기중에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되거나 가장 진보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1992년 뒤 유럽의 테러, 마약, 범죄」

변하는 환경

지난 몇 십년 동안 인류는 사람의 활동이 환경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삼림을 마구 못쓰게 하기 때문에 갖가지 동식물이 죽어 간다. 그리고 삼림은 지구에서 폐 구실을 하기 때문에, 삼림이 황폐되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지구의 능력도 줄어든다. 그런가 하면 겉흙이 나빠져서 결국 사막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경고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국의 정치가 앨 고어도 한마디하였다. 그가 지은 책 「균형 있는 지구—환경과 사람 정신」(Earth in the Balance—Ecology and the Human Spirit)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속도로 삼림이 파괴되면, 열대 우림이 다음 세기중에 거의 다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파괴하는 것을 내버려두면,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유전 정보 창고를 잃을 것이며, 아울러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을 낫게 할 수단도 잃을 것이다. 사실, 지금 흔히 사용되는 중요한 약품 수백 가지가 열대림의 식물과 동물에서 나온 것이다.”

고어는 사람이 환경을 해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살아 남기가 어려운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환경과 관련하여 구석구석 손을 뻗치다 보면, 점점 더 뚜렷하게 우리 자신의 문명이 허약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 단 한 세대 동안에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화산보다도 더 심하게 지구 대기의 구조를 바꾸어 놓을 위험에 빠져 있으며, 이 영향은 앞으로 여러 세기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고어와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지구의 대기만 아니라 생명에 꼭 필요한 물도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 특히 개발 도상국에서 “물이 오염되어 있음은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설사로 죽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에서 매우 가슴 아프고 비참하게 느낄 수 있다.” 그에 더하여 고어는 이런 사실을 언급한다. “17억 명 이상의 사람이 안전한 식수를 제대로 먹지 못한다. 3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위생 시설[화장실과 하수 시설]이 없기 때문에 물이 오염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114개 읍과 도시는 인분과 정화하지 않은 하수를 그대로 갠지스 강에 버린다.” 그런데 그 강은 수많은 사람에게 물을 공급하는 생명선이다!

세계 은행 부총재인 가우텀 S. 카지는 방콕에서 한 연설에서 청중에게 이렇게 경고하였다. “동아시아의 물 공급이 보나마나 다음 세기의 중대 문제가 될 것입니다. ·⁠·⁠· 보건과 생산성을 생각할 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유익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동아시아 정부들은 지금 공공 제도로도 마실 물을 공급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 이것이 바로 잊혀진 문제인 건전한 환경 개발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생명에 꼭 필요한 것—깨끗한 물—이 소홀히 여겨지고 못쓰게 되고 있다.

이것이 변하는 이 세상의 이모저모다. 곳곳이 위험한 소굴로 바뀌는 세상, 인류가 앞으로 살아 남기가 위태로운 세상이다. 무엇보다 해 보아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즉 정부와 대기업은 지구의 자원을 마구 파괴하는 일을 막기 위해 손을 쓰려는 의지와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종교가 세상을 변하게 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종교계에서 인류가 가장 크게 실패한 상태를 보고 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할 경우, 종교는 종교가 맺은 증오와 편협, 전쟁이라는 열매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번드르르한 겉모양, 거죽 한 꺼풀처럼 여기는 것 같다. 종교는 인종주의, 민족주의, 경제 불안정으로 압력을 받으면 훌훌 벗어버리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교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종교일진대,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가톨릭교인과 정교회교인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들의 사제들은 그들이 서로 죽이고 증오한 행위를 다 덮어 줄 것인가? 북아일랜드에서는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를 가르쳐 왔는데도 고작 증오와 살인이라는 열매를 맺지 않았는가? 그러면 그리스도교가 아닌 종교들은 어떠한가? 그런 종교들은 더 나은 열매를 맺었는가? 힌두교, 시크교, 불교, 이슬람교, 신도(神道)는 서로 관용하는 평화로운 기록을 남겼는가?

종교는 인류의 개화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열렬한 애국주의라는 불에 부채질을 하는 데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여러 다른 분쟁중에 군대를 축복하는 일에 미친 듯이 열을 올렸다. 종교는 더 나은 쪽으로 변하게 하는 힘이 아니었다.

이런 것을 볼 때, 가까운 앞날에 종교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실, 현 세계 제도에 무슨 앞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무슨 변화가 있을 것인가? 세 번째 기사에서는 독특한 관점으로 그런 질문들을 다룰 것이다.

[7면 삽화]

폭력 범죄가 대단히 많아지는 일은 변화의 또 다른 징후다

[8면 삽화]

민족주의와 종교인의 증오는 피흘리는 일을 계속 부추긴다

[자료 제공]

Jana Schneider/Sipa

Malcom Linton/Sipa

[9면 삽화]

사람이 환경을 함부로 다루기 때문에 생물권의 복잡한 균형이 변하고 있다

[자료 제공]

Laif/Sipa

Sipa

[10면 삽화]

교황 사절 바살로 디 토레그로사가 히틀러에게 인사하는 모습, 1933년.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와 민족주의에 종교가 관련되었다

[자료 제공]

Bundesarchiv Koblenz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