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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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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4
깨94 5/1 9-11면

활동에 중독될 때

물질에 중독되는 것과 활동에 중독되는 것은 두 열차가 같은 철로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것과 같다.a 둘 다 종착역 혹은 목적이 같다. 즉 기분을 바꾸고 고통스런 감정을 지우는 것이다. 활동 중독 사례들을 고려해 보자.

일 중독

일 중독은 흉하지 않은 중독이라고 한다. 어쨌든, 일 중독자는 뛰어난 고용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속으로 충족감을 갖지 못한다. 일은 고통스런 감정에서 벗어나는 수단이거나 인정받으려고 지나치게 추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이 얼음 때문에 물에 빠지지 않듯이, 일 중독자는 활동 때문에 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처럼 일 중독자도 눈부신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종종 무엇인가? 정신 보건 상담가 린다 T. 샌퍼드는 이렇게 기술한다. “일 중독자는 일에 몰두해 있지 않을 때는 우울증, 불안, 분노, 절망, 허탈감이라는 무서운 감정에 빠진다.”

많은 일 중독자의 뿌리 깊은 강박 충동을 보면 그런 성향이 오랜 세월에 걸쳐, 아마도 자랄 때부터 뿌리 박힌 특성임을 알 수 있다. 메리라는 여자가 그러하였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요리와 집안일로써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귀염을 받아 보려고 애를 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을 더 많이 하면 혹은 더 잘하면 아버지의 귀염을 받을 것이라는 강박 의식이 생겼어요. 받은 것이라고는 꾸지람뿐이었지만.”

메리는 커서도 그런 잘못된 생각과 여전히 씨름한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지금도 속으로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껴요. 아직도 사랑을 얻어 내야 한다고, 뭔가 만들어내지 않는 한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교 모임이 있을 때면, 요리하고 시중 드느라 지쳐 버리는데, 마치 그 자리에 있을 권리라도 따내려는 듯이 기를 쓰거든요.”

메리 같은 사람은 일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 성서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분명히 칭찬한다. (잠언 6:6-8; 데살로니가 후 3:10, 12) 여호와 하나님 자신도 생산적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시 104:24; 요한 5:17) 그러나 결코 강박 충동에 사로잡히시지는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창조 활동을 하시면서, 일을 완성하셨을 때만 아니라 창조 과정도 좋게 보셨다.—창세 1:4, 12, 18, 21, 25, 31; 비교 전도 5:18.

여호와 하나님의 우두머리 일꾼인 그분의 아들 예수 역시 자신의 일에서 개인적 만족을 나타내셨다. (잠언 8:30, 31)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그들 역시 자기와 함께 일하는 데서 새 힘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들은 함께 매우 중요한 임무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마태 11:28-30; 마가 6:31; 비교 전도 4:6.

부모가 당신에게 개인의 가치는 그가 한 일에 달려 있다거나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한 사랑받을 수 없다는 내색을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심할 만하게도, 그런 견해는 올바른 부모 역할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가 아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 교훈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열등감을 가질까”, 「부연 설명된 성서」] 함이라.” (골로새 3:21) 여호와께서는 사랑 받을 만한 일을 해야 비로소 사랑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기 시작한 뒤에야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다. 사실 성서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심지어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솔선하시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알려 준다. (요한 1서 4:19; 로마 5:6-8)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려고 진실하게 노력할 때 꾸짖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것은 그분에 대한 사랑의 순수한 표현인 것이다.

텔레비전 중독

일부 사람은 지나친 TV 시청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머리 윈은 「플러그 마약」(The Plug-In Drug)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마약이나 알코올과 다를 바 없이, 텔레비전 시청을 하다 보면 현실 세계를 잊고 흥겨운 수동적 정신 상태에 빠져 든다.”

물론 일상적인 책임에서—잠시—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시청자도 있다. 갑작스레 수상기가 고장나서 TV를 볼 수 없게 되자 한 남편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정신이 아주 메말라 버린 것 같습니다. 수상기에 들러붙어서 도무지 떨어질 줄 몰랐으니까요.” 카이라는 소년도 그와 같은 강박 관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는 텔레비전이 그 정도로 보고 싶은 건 아닌데, 어쩔 수가 없어요. 안 볼 수 없게 되거든요.”

TV를 너무 많이 보면 사고력이 해를 받는다. 성서는 묵상하는 마음으로 숙고할 것을 권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여호수아 1:8; 시 1:2, 3; 145:5; 마태 14:23; 누가 4:42; 5:16; 디모데 전 4:15) 혼자 있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주변이 조용하면 초조해진다. 혼자서 사색하기를 두려워한다. 공백을 채울 것을 광적으로 찾는다. TV는 즉효약이다. 하지만 TV도 기껏해야 현실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강박성 도박

도박의 뿌리는 탐욕이다. 그러나 강박성 도박은 대개 돈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b 나이절은 이렇게 말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홀감’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마약 복용과 똑같더군요.” 강박성 도박꾼은 흔히 도박 그 자체가 보람이다. 결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이절은 친구를 잃었다. 가족을 잃은 도박꾼도 있다. 건강을 잃은 도박꾼도 많다. 그리고 사실상 누구나 돈을 잃는다. 그런데도 도박을 끊는 사람은 드물다. 따느냐 잃느냐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분을 바꿔 주고 마약 같은 황홀감을 주는 것은 도박을 하는 것—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도박이 인생 문제를 잊게 하는 수단은 될 수 있으나, 문제 자체를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심하게 다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만이 아니다.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도박을 하게 만든 상처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서 치료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마침내 보람을 맛보게 된다.

벗어나라

어떤 중독에서든 벗어나려면, 흔히 중독을 부추기는 내적 괴로움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중독자는 문제를 근원부터 치료하려고 해야 한다. 이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중독자였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30년간 빠져 있던 마약과 알코올에서 쉽게 빠져 나오진 못하죠. 특히 뿌리 깊은 문제가 중독으로 위장되어 있을 경우는 더하죠.”

그렇다 해도,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은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앞서 언급한 강박성 일 중독자였던 메리는 그 점을 잘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해 동안, 맞닥뜨릴까 봐 무서워한 일들을 피해 다녔어요. 그러나 직면하고 보니 의외로 별것 아니더군요.”

중독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였다. 이들은 “파멸적인 습관의 노예”로 계속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을 초월한 능력”을 기도로 구하여 중독을 끊는 도전을 성공적으로 직면하였다.—베드로 후 2:19, 「오늘날의 영어 역본」; 고린도 후 4:7, 「신세」.

[각주]

a 무엇을 중독이라고 부를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많다. 중독성 활동을 “강박 충동”이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본 기사는 중독의 역할을 감정적 “도피구”라는 부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같은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활동도 “중독”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b 그리스도인은 일이나 TV 시청과는 달리 도박은 어떤 형태이든 완전히 멀리한다. (비교 이사야 65:11) 더 자세한 점은 본지 1992년 6월 15일 호 3-11면 참조.

[9면 삽입]

‘중독이라는 말은 온갖 종류의 강박 행동에 적용될 수 있다.’—J. 패트릭 개넌 박사.

[10면 삽화]

일 중독자에게는 가족보다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10면 삽화]

도박은 기분을 바꿔 주고 마약 같은 황홀감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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