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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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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5 2/1 5-7면

지루함을 푸는 쉬운 방법?

수많은 지루한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재밋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이제 큰 사업이 되었다. 특이한 휴가, 정교한 가전 제품, 고급 취미—모두 고객들의 시간을 보내는 일을 돕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그런데도 지루함은 엄습해 온다. 심지어 휴가 중에도, 지루한 행락객들은 흥을 돋울 자극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많은 조깅 애호가들도 휴대용 라디오를 가져가지 않으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

텔레비전 같은 오락물이 흥분을 일으키고 지루함을 해소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과연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해주는가? 일부 사람에게 그러한 오락물은 습관성 약물과 같다. 다음 번에는 더 강한 자극과 더 많은 흥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에 다 본 것이라는 따분한 느낌에 다시 젖어든다. 그러한 오락물은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지루함을 조장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말 수 있다.

텔레비전 자체가 지루함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과다한 시청은 지루함을 쫓아 주지 못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텔레비전에 몰두할수록 현실에서는 소외될 수 있다. 아이들의 경우, 이런 일이 너무나 빈번하다. 한 연구에서, 네 살과 다섯 살 난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아버지 중 어느 쪽을 포기하겠느냐는 물음에, 3명당 1명이 아버지가 없이 사는 편이 더 견딜 만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온갖 욕구를 채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 많은 아이들은 “물질적 번영의 시대에, 갖가지 장난감과 휴가, 새로운 유행을 빼놓지 않고 누리면서 자란”다고 독일 의회의 사회 민주당 의원은 언급하였다. 그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겠는가? 아이들에게 온갖 신기한 신제품을 안겨 주는 너그러운 부모는, 만성 권태에 시달릴 성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지루함의 근본 원인

지루함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목표이다. 이 세상에서 삶이 결코 흥분과 행복의 연속일 수는 없다. 그러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쓸데없는 불만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게다가, 문제를 악화시키는 명백한 요인들이 있다.

예로서, 오늘날 점점 더 많은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 엄마 아빠끼리 즐기는 데 몰두한 나머지, 아이들과는 더 이상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십대들이 그들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 디스코테크, 전자 오락실, 쇼핑 센터 등을 전전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가정에서 가족 나들이 같은 가족 단위의 활동은 옛일이 되고 말았다.

또 다른 부류는 단조로운 삶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고서, 다른 어떤 사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을 점점 더 고립시켜 가면서, 한편으로는 소위 자기 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이루려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 아무도 고립해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교제와 의사 소통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퍼뜨려 본의 아니게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삶을 따분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좀더 깊은 곳에 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 이렇게 정곡을 찌른 것과 같다. “싫증은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서 [올라와] 정신을 그 독으로 [채운다].” 얼마나 참된 말인가!

마음이 인생의 참 의미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지루함은 사라지지 않게 마련이다. 자기 인생에 의미가 있다는 마음속으로부터의 확신이 필요하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목표도 없으며 미래에 대한 확고한 희망도 없이, 어떻게 적극적인 자세로 삶에 임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궁극적인 질문이 생긴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기의 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투쟁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동기를 부여하는 첫째 가는 힘”이라고 빅토어 프랑클 박사는 말하였다. 하지만 어디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어디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는가?

덜 지루함—어떻게?

책 중에 가장 오래 된 책이 그러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계몽의 빛을 비춰 준다. 19세기의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얻은 계몽은 전적으로 하나의 책을 읽은 데 기인한 것이다.” 어느 책인가? 성서이다. 찰스 디킨스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하였다. “성서는 이 세상에 나온 또는 나오게 될 책들 중 가장 훌륭한 책이다. 성서는 ·⁠·⁠· 인간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우리에게 베풀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성서는 의미 있는 인생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길잡이이다. 시종 일관 성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할 일을 주셨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인간은 이 땅을 돌보고 아름답게 가꾸며 동물을 인자하게 감독하고, 무엇보다도 창조주 여호와를 찬양하게 되어 있었다. 상당히 벅찬 임무로서, 지루함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수백만의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대의를 지지하여 그분께 헌신하고 온전한 정성을 바치면 실로 인생에 의미가 더해지고 지루함이 밀려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루함이 널리 퍼진 것은 현대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고대 언어에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성서는 인생의 의미를 알려 줄 뿐더러 지루함과 싸우는 데 대한 실용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 예로서, 성서는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기술한다. (잠언 18:1) 다시 말해서 마음의 문을 닫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군집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으며 선천적으로 교제 욕구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이 정상적인 욕구를 억누르는 것—외톨이나 방관자가 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피상적인 대인 관계로만 제한하는 것도 온갖 참 지혜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수동적으로 영화를 보거나 우리의 의사 소통을 컴퓨터에 정보를 쳐서 넣는 데까지로 제한하는 일이 훨씬 쉽다. 다른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일은 상당한 도전이 된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대화거리가 있고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 보람을 느끼고 지루함이 들어설 여지도 거의 없게 된다.—사도 20:35.

솔로몬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로서, 이처럼 강력히 권하였다. “당신의 눈앞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욕망의 고삐를 풀어놓는 것보다 낫다.” (전도 6:9, 「신 영어 성서」) 다시 말해서, 현재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이다. 지금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거나 솔로몬의 말처럼 “욕망의 고삐를 풀어놓는 것”보다 훨씬 낫다.

잘 계획된 일과, 분명한 목표, 계속 배우려는 의욕도 지루함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심지어 퇴직 후에도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발레아레스 제도의 한 증인은 70대 초반의 퇴직자로서 지금 독일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목표가 무엇인가? 그는 독일에서 오는 많은 지루한 행락객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싶어한다. 분명히 그에게는 지루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손수 무슨 일을 해 보는 것은 어떤가? 어떤 수공예나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분야에 솜씨를 익혀 보는 것이 어떤가? 성취감이 있을 때, 자중심이 커진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집 안팎일을 돕겠다고 나서 볼 생각은 없는가? 어느 집에나 손을 보아야 할 잔일이 많다.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집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특정한 기술에 능숙해지라.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이다.—잠언 22:29.

더욱이 성서는 우리가 무슨 일에 임하든지 영혼을 다하여 하라고 충고한다. (골로새 3:23) 그것은 물론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 진정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interest)는 라틴어 인테레세에서 유래하였는데, 그것은 문자적으로 “사이에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봄직하다. 그렇게 하면 일이 흥미로워질 것이다.

오래 전에 기록된 이 모든 훌륭한 충고는 적용하기만 하면, 여가 시간에 우울하던 사람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는 일에 몰두하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라.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라. 계속 배우라. 다른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의사 소통을 하라.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라. 그렇게 한다면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지루하지?’ 하고 한숨 짓게 되지 않을 것이다.

[7면 네모]

지루함을 극복하는 요령

1. 수동적인 오락으로 의욕을 꺾지 말라. 기분 전환과 오락에 있어서 선택적이 되라.

2. 사람들과 가까워지라.

3. 계속 배우라. 개인적인 목표를 가지라.

4. 창의력을 발휘하라. 손수 무엇인가를 하라.

5. 인생의 목적을 가지라. 하느님을 고려하라.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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