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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아마겟돈’에 직면하여 담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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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아마겟돈’에 직면하여 담대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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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2/1 45-54면

세계의 ’아마겟돈’에 직면하여 담대함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시 27:14.

1, 2. (ㄱ) 담대하라는 격려를 듣고 희망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질문을 합니까? (ㄴ) 그들은 왜 그러한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읍니까?

『담대하라』고요? 이러한 세상에서?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담대하게 할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환란 가운데 처하여 있읍니다. 그것도 가장 심한 환란입니다. 만일 정치가들이나, 군사 전문가들이나, 대 실업가들이나, 노동 지도자들이나, 아니 종교 교직자들까지도 이 환란에 대하여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면 우리가 그에 대하여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읍니까? 이러한 환란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면 우리는 죽든지 살든지 다만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있읍니까? 그저 다만 현재를 위해서—오늘만을 위해서 삽시다. 양대 진영에서는 모두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 분열된 세계에는 인류를 위한 미래의 희망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데 왜 『먹고 마시자 내일은 죽으리라』라는 옛날 속담대로 생활하지 않겠읍니까?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 아닙니까?

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전망은 그들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킬만한 아무런 굳고도 설복적인 것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읍니다. 이 세상의 상태로 보아서는 그들이 미래에 대하여 담대하게 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만 거짓 희망만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신들과 우상들은 아무런 구조도 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어떠한 기도에도 응답해 주지 못하고, 아무런 해결책도 보여주지 못하고, 다만 아무런 신도 없음을 증명해 줄 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신론(無神論)은 점점 왕성하고 있고 전통적 종교는 점점 깨어지고 있읍니다.

3. 그러면 우리에게 감히 담대하라고 격려하는 이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그렇게 격려합니까?

3 그러면 감히 『담대하라』고 격려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그렇게 격려하는 분은 살아계신 참다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의 담대하게 하는 소식을 오늘날 수십억만부가 발행된 불멸의 서적인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를 위하여 보존해 두셨읍니다. 이 우주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책에서 우리에게 담대할 건전한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날에 필요한 담대함을 우리에게 자극시켜 주는 것은 바로 이 책인 것입니다. 담대함은 우리의 마음에 즐거움을 갖다 줍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임할 환란의 「아마겟돈」까지도 우리로부터 뺏아 가거나 적게 만들 수 없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왜 담대하게 「아마겟돈」을 대하시며 악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심한 재난이 될 이 전쟁을 어떠한 것이 되게 하실 것입니까?

4 임박한 「아마겟돈」이 이 세상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심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처리하시기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그것을 대하십니다. 이 우주 전쟁에 있어서 그는 전투 사령관이 되실 것입니다. 이 전쟁이 그와 하늘과 땅에 있는 그의 적의 모든 군대와의 충돌이지만 그는 승리를 거두시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그에게 있어서 큰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것이 예언적으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이라고 불리웁니다. (계시 16:14, 16) 적국에서는 인간 가족 전체를 죽일 수 있을 만큼 핵무기와 화학과 세균과 방사능 무기를 제조해 놓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전쟁의 결과에 대하여 근심하시지 않습니다. 그는 현재 땅을 멸망시키는 자들을 모두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는 인간 가족의 일부로 「아마겟돈」을 통과하여 낙원(樂園)의 아름다움을 가진 의롭고 평화스럽고 건전한 신 세계(新世界)에 들어가 살도록 보존하실 수 있으시며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심한 재난이 될 이 전쟁이 참다운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유익과 도움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의 앞에 놓여져 있는 이러한 즐거운 전망을 가지시고 그는 담대히 「아마겟돈」으로 진군하고 계십니다.

5. (ㄱ) 오늘날 실패할 수 없는 담대함을 갖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ㄴ) 담대함에 있어서 성경은 어떠한 책입니까?

5 그와 같으신 하나님이 계신데 그의 기록된 말씀이 교훈하는 대로 담대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우리가 만일 오늘날 인간으로서 갖고자 노력하는 실패하지 않는 담대함을 갖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그의 말씀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경 책을 팔고 있는 기독교국에 의하여 주어지는 잘못된 인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비겁한 자나 패배자의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아첨하고 아무에게도 거슬린 소리를 듣기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원칙대로 행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심지어는 그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하는 무릎이 약하고 뼈가 없고 희미한 타협적인 종교가들의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靈感) 아래 담대한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었읍니다. 그것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깨어지지 않는 담대함을 가진 사람들 즉 그러한 담대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원칙 아래 있는 신 세계에서 그들 앞에 놓여져 있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깨어질 수 없는 기록을 내포하고 있읍니다.

6. (ㄱ)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까? (ㄴ) 요한 16:33에 있는 예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오늘날 그의 추종자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 줍니까?

6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 해석되거나 잘못 적용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영향에 승리할 수 있는 담대한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 성경 기록에 있는 가장 위대한 분은 조그만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6:33)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참다운 추종자들은 이러한 강력한 말씀을 굳게 따르며 힘을 얻고 있읍니다. 그들 위에 환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평화를 알고 있읍니다.

7, 8. (ㄱ) 소년 목자 「다윗」은 어떠한 담대함을 나타낸 일이 있읍니까? (ㄴ) 소년 목자의 두려움이 없는 비결이 어떻게 알려졌읍니까?

7 우리 독자들 중에서 혼자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사나운 사자나 곰을 만났을 때 「팔레스타인」의 한 목자가 가지고 있던 기구만을 가지고 이 습격자를 죽일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읍니까? 우리 독자들 중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개인 전투에 아주 능한 구척 장신(九尺長身)의 투사 앞에 서서 다만 돌 팔매로써 그를 죽일 담대함을 가진 사람이 있읍니까?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조그만 고을에 사는 「이새」의 아들 「다윗」이 그러한 놀라운 담대함을 가졌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나운 짐승과 짐승 같은 거인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사무엘 상 17:34-44, 48-51) 「불레셋」 거인의 허세와 자만과는 반대로 이 소년 목자가 가졌던 두려움을 모른 비결은 무엇이었읍니까? 목자 「다윗」은 「불레셋」의 모든 거짓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욕하는 거인에게 할말 가운데서 그 비결을 알려주고 있읍니다.

8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불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사무엘 상 17:45-47.

9. (ㄱ) 그러면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하였읍니까? (ㄴ)「다윗」은 왜 결코 담대함을 잃은적이 없었읍니까?

9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두 대적의 인간 사이의 결투였읍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신들 사이의 전쟁 즉 거짓 신들과 살아계시는 참 하나님, 소년 목자 「다윗」이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은 하나님과의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읍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스러운 숭배자였고 그를 전적으로 믿는 자였기 때문에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그는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되었읍니다. 그는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의 담대함을 잃지 않았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결코 그의 하나님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칭찬하여 그는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다고 말씀하셨읍니다.—열왕 상 14:8.

10. 「다윗」은 왜 시편 27:1에 있는 바와 같은 담대한 말을 할 수 있었읍니까?

10 이러한 이유로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후원하셨고 「다윗」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후원에 의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이것이 「다윗」으로부터 모든 피조물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27:1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러므로 「다윗」은 거인 「골리앗」이나 「골리앗」의 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하나님에 대하여 실망한 적이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흐와께서는 거짓 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싸움에서도 「다윗」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그가 담대함을 갖게 된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

11. 생명의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암흑의 길을 걸어 이 세상이 들어가게 될 암흑으로 들어가게 될 필요가 없읍니까?

11 구원은 빛으로 인도합니다. 구원을 발견한 눈은 마치 쾌청한 날 햇빛을 보는 것과 같이 빛납니다. (전도 11:7) 오늘날의 국제 조직 제도는 악한 신인 「사단」마귀의 세력하에 있으며 그것은 그의 멸망으로 가까이 오고 있읍니다. 그러나 생명의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낡은 세상의 멸망의 암흑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오늘날에 살고 있는 어떠한 사람도 인간의 방법으로써는 아무런 구원도 없는 불확정적이고 혼란한 이 세상의 암흑을 걸을 필요가 없읍니다. 임박하고 있는 「아마겟돈」의 우주적 전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될지에 관하여 전혀 깜깜하므로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있읍니다. 그것은 공포심을 갖게 하고 공포심은 마음을 약하게 만듭니다. 만일 사람들이 시편 필자 「다윗」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마음을 돌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치 「다윗」에게 빛이 되셨던 것 같이 그들의 갈 길을 비추어 주시고 장래에 대한 그들의 모든 공포를 제거해 주는 『빛』이 되시며 우리를 이 세상의 멸망으로부터 구해 주실 『구원』이 되실 것입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에 의하여 전영(前影) 되었었으나 「다윗」보다 더 크신 하늘에서의 왕이 되신 분입니다.

12. 여호와는 누구에게 요새가 되실 수 있으시며, 그리고 어떻게 그러하십니까?

12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모든 힘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만일 멸망의 운명 아래 있는 인간의 조직으로가 아니라 그에게로 피란 한다면 그가 마치 「다윗」에게 그러했듯이 우리의 생명의 요새가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여호와를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구주가 되게 하실 때 결코 실패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결코 패배의 암흑으로 내려갈 수 없읍니다. 그는 지금 우리를 구원받은 상태로 보존하실 수 있으시며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오는 모든 공격을 능히 이기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를 우리의 요새로 할 때에 미래에 있어서의 우리의 생명은 안전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성실을 시험하는데 있어서 끝까지 견디어 날 수 있읍니다. 우리 하나님의 『요새』는 점령당하거나 패배될 수 없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어떠한 적이나 어떠한 악한 자들이나 이 악한 세상이 당할 재난의 종말을 두려워 할 이유도 없으며 또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13. (ㄱ)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며 그 이름을 갖기에는 왜 담대함이 필요합니까? (ㄴ) 1931년에 그리고 그 후부터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전도 활동에 있어서 어떻게 담대함을 나라냈읍니까?

13 우리의 독자들은 종교계나 심지어는 기독교국까지도 그리고 과학계에서 『살아 계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기가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이름을 고백하고 그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에 의하여 불리워지기 위하여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1931년 7월 26일에 「오하이오」 주 「콜롬버스」시에서 헌신하고 침례받은 성경 연구생들인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국제대회를 진행시키고 있는 동안에도 담대함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때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명칭으로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집집을 방문하여 전도하기 위하여는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자신들을 여호와의 증인들이라고 소개하기에는 담대함이 필요하였읍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집에서 만나는 집주인에게 다음과 같이 인쇄된 「카드」를 내어 보여주었읍니다. 즉

중요함

온 세상은 재난 가운데 있으며 당신은 왜 그리고 무엇이 장차 일어나게 될 것인가를 의심하고 계십니다. 저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람들에게 하나의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은 저의 큰 특권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그 소식이 들어있는 소책자를 가지고 있읍니다. . . . 당신은 이 내용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실 수 없읍니다. . . . —1931년 9월, 소책자 「천국, 세계의 희망」을 제공하기 위하여.

14. (ㄱ) 조소와 박해가 그들의 수를 줄게 하였는지 아닌지를 무엇이 알려줍니까? (ㄴ) 「다윗」은 어떻게 그의 하나님 여호와에 의하여 힘을 얻었으며, 그러한 담대함은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읍니까?

14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의 천적 소유자의 증인으로서 봉사하기 때문에 조소와 박해를 당하였읍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들의 수를 적게 만들었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1931년에는 5만명에 불과하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는 185개 나라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만이 지금 멸망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인류를 위하여 다만 하나의 확실하고도 실현성 있는 희망이라는 것을 활동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90만명 이상으로 증가하였읍니다. 이들 증인들은 여호와를 그들의 빛으로서, 그들의 구원으로서, 그들의 요새로서 바라고 있읍니다. 그들은 마치 「다윗」이 욕을 먹고 돌에 맞을 위협을 당할 때에 한 바와 같이 하였읍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의 요새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사무엘 상 30:6) 그는 그가 행하여야 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하고 또 배우므로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그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그는 강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하신 대로 하였읍니다.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성공의 혜택을 받았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무솔리니」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육년간의 제2차 세계 대전에도 불구하고 계속 번영하였던 것입니다.

15. 무엇이 그들로 자신들에 대하여 시편 27:2, 3을 인용할 만큼 담대하게 해줍니까?

15 여호와께서 우리의 적들과 우리를 미워하던 자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에 대한 우리의 과거의 경험은 우리로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시편 27:2, 3을 인용할 만큼 담대하게 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16.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공격한 자들이 최근에 여호와의 증인들을 삼키려는 그들의 노력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16 여호와의 증인들을 없애 버리려고 한 하나님께서 주신 인권(人權)에 대한 독재자들과 반대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넘어져 세력을 잃고 넘어져 가고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고 있읍니다. 그들은 사도 5:38, 39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우리는 1934년 10월 7일에 「후릭크」박사가 「히틀러」에게 종교적 박해를 규탄하는 여러 장의 전보를 보이면서 『만일 성경 연구생들이 즉시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들에 대하여 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하겠읍니다』라고 말하였을 때 「아돌프 히틀러」가 그의 내무 대신이었던 「후릭크」에게 대답한 것을 잊을 수 없읍니다. 「히틀러」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이 족속들을 독일에서 씨도 없이 해버리겠다』라고 소리쳤던 것입니다.a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1945년에 이르기까지 형무소와 무서운 강제 수용소를 가공하게 이용하였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에서 없어진 것은 「히틀러」입니까 혹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경 연구생들입니까?

17. (ㄱ) 이 세상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사단」인 용이 참으로 삼키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ㄴ)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담대함을 계속 나타내고 있읍니까?

17 오늘날 모든 선진 세계는 핵 전쟁에 의하여 멸망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예언의 연구를 통하여 정말로 「사단」마귀가 멸망시키기를 원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읍니다. 그는 전 인류를 멸망시키는 한이 있다 하드라도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이겠읍니까? 아직도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인류를 보존하고 축복하기 위하여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통치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조직의 영적 자녀들입니다. 「사단」마귀를 붉은 용으로 상징하고 있는 계시록 12:17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읍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 [하나님의 거룩한 조직]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이 천국 증인들의 남은자들은 아직도 상징적인 용이 용의 보이는 모든 대행자들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가하고 있는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들 남은자들은 독재자들에게는 불순종을 의미하는 일이 있다 하드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1914년에 하늘에서 정식 왕권을 잡도록 즉위시키신 천적 왕으로서 예수를 증거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읍니다.

18.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용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에 수십만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읍니까?

18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읍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사단」마귀의 전쟁의 목표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만명의 경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조그만 남은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위하신 왕이라는 것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것에도 비할 수 없는 담대함을 나타냈는가를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또한 충성스러운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자들과 일치하게 담대하고 「사단」의 전쟁에서 용감하기 위하여 분발하고 있읍니다. 그것이 그들로 전쟁에서 하나님 편에 서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이상 더 훌륭한 편에 설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읍니까?

19, 20. (ㄱ) 용의 싸움이 무엇으로 가장 격렬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까? (ㄴ) 1953년에 용이 무엇임을 알게 되었읍니까?

19 상징적 붉은 용에 의한 이 싸움은 하늘과 땅에 있는 그의 세력을 총 망라한 「사단」 마귀에 의한 마지막 총 공격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가장 격렬한 절정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20 이 용 즉 「사단」 마귀가 한때 신비에 싸여져 있던 「마곡」의 「곡」의 악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53년이었읍니다. 그 해에 『신세계 사회는 극한 북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음』이라는 제목으로 그 소식이 전하여 졌읍니다. 이 소식은 그 신비를 명백히 하여 그 예언된 「마곡」의 「곡」의 정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쫓겨 내린 이후의 마귀 「사단」을 말하는 것이 증명되기 위하여 성경이 사용되었읍니다.—계시 12:7-13; 에스겔 38, 39장.

21. 이 소식은 무엇에 관하여 경고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들에게 경고된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게 될 때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21 『「마곡」의 「곡」에 의한 공격』이 가까이 온다는 이 소식이 여호와의 증인들인 모든 신 세계 사회를 경고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쫓겨난 용인 「사단」 마귀에 의하여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 경고되었으며 그것을 직면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하였읍니다. 신 세계 사회에 대한 「사단」의 이 공격은 이 낡은 세상 조직 제도에게는 「아마겟돈」 전쟁을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이 악한 조직제도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사단」 마귀와 평화를 방해하는 모든 악귀들을 무저갱에 가두게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상징적 「마곡」의 「곡」과 싸우실 것이며 그를 패배시키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그 자신의 이름을 거룩케 하시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서 우리의 대속주이시며 왕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의 신 세계 사회를 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인 「사단」 마귀에 의한 전쟁의 마지막 장면이 그들에 대하여 일어나게 될 때 남은자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동료들은 그들의 빛이며 구원이신 여호와를 의뢰함으로써 시편 필자 「다윗」과 같이 행할 것입니다.b

구한 『한 가지 일』

22. 시편 필자 「다윗」에 의하여 표현된 바와 같이 우리가 구하고 기대하고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배후에 있는 한가지 큰 일이란 무엇입니까?

22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와 같이 주의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에 시험과 「사단」 마귀에 의한 전쟁으로부터 구함을 받을 것을 기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는 우리로 하여금 악한 마귀로부터 그러한 구원을 구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읍니다. 그 다른 이유 즉 전심해야 할 것이 주기도문 처음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입니다. (마태 6:9, 13, 난외주) 바로 이 가장 중요한 일이 시편 필자 「다윗」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맡로 묘사되었읍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23, 24 (ㄱ) 「다윗」이 보기를 원하였던 것을 왜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라고 불리웠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신가를 무엇이라고 설명하였읍니까?

23 이 『한 가지 일』이란 「다윗」의 기도 전체의 뜻, 마음 즉 요소였읍니다. 그것은 전혀 정치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나 육체적인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영적인 무엇이었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숭배의 성전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접촉을 갖기 원하였읍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칭송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여호와께서 다루시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얻은 여호와와의 개인적 교제는 그로 숭배하는 태도를 갖도록 자극시켰읍니다. 특히 성전에서 「다윗」은 그의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있음을 느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희생을 바치고, 여호와께 찬양의 시를 읊으며, 그에게 기도를 올리고, 그의 기록된 말씀의 일부를 큰 소리로 읽고 하는 곳이 바로 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전에서 「다윗」은 그의 모든 동료 숭배자들과 형제와 같은 느낌을 가졌었던 것입니다.

24 그리하여 그는 거기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결코 「로마 가톨릭」회당 위에 새겨져 있는 괴상한 형상이나 이교(異敎)성전 입구나 안에서 볼 수 있는 무섭게 새겨져 있는 우상과 같이 흉한 신이 아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신가가 「다윗」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잘 묘사되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시키신 하나님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다우신 분이 아니면 안될 것입니다.

25. 「다윗」은 어떻게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하였읍니까?

25 여호와를 그러한 아름다운 하나님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다윗」은 또한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을 바랄 수 있었읍니다. 그의 눈에는 성전은 다만 이교 성전과 다른 모양을 가진 물질적 건물에 붙과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 성전의 여러 가지 특징은 모두 「다윗」에게 뜻이 있는 것이었읍니다. 즉 그것의 제단이라든지, 대야라든지, 촛대가 있는 성소라든지, 진설병 상이라든지, 금 향단이라든지 그리고 뚜껑 위에 두 「그룹」이 그들의 날개를 펴고 있는 것이 있는 금 언약궤를 둔 지성소라든지, 모두가 그러하였읍니다. 제사장들이 행하여 온 예언적인 의식들도 「다윗」에게는 뜻이 있는 것이었읍니다. 그가 성전에서의 숭배를 위한 모임에 참석하면 참석할수록 그는 더욱 그것을 사모하게 되었읍니다.—시 84:1-4, 10과 대조 해보라.

26. 「다윗」은 어떠한 방법으로 그의 일생의 모든 날들을 여호와의 집에 있을 수 있었읍니까? 그리고 그가 그러한 특권을 바랐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26 그 자신의 경우에 있어서 「다윗」은 제사장이 되므로 그의 일생을 전부 여호와의 집에서 보낼 것을 기대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아론」의 가족에서 나온 「레위」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였읍니까? 그는 어떻게 그것을 사모하였으며 하나님께 구하는 『한 가지 일』로써 그것을 구하였읍니까? 그는 가능한 한 모든 기회를 다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숭배하는 그의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담하기 위하여 성전에 있고자 노력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불충성한 「이스라엘」왕 「사울」이 「다윗」에게서 법의 권리를 빼앗고 정규적으로 매년 있는 절기와 성전에서 있는 다른 숭배의 경우나 회생의 경우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를 슬프게 하였읍니다.—사무엘 상 21:1-10.

27. 여호와의 집에서 사는 것과 일치하게 왕으로서의 「다윗」은 그가 성전을 사모함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27 「다윗」이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그의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가서 모든 축하 행사에다 자유롭게 참석하고 그의 모든 임무를 다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얼마나 기뻐하였겠읍니까! 「다윗」이 「예루살렘」을 그의 수도로 만든 후에 그는 지성소로 부터 떨어져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시온」산 위 그의 왕궁 근처 적당한 곳에 두었읍니다. 후에 그는 자기가 고정된 궁전에서 살고 있으면서 여호와의 임재(臨在)를 상징하는 그의 언약궤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궁전 즉 성전(聖殿)을 건축하기로 결심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허락지 않으셨읍니다. 그와 같은 영화로운 성전을 건축할 특권은 그의 아들인 후계자에게로 가게 되었읍니다. 그는 「솔로몬」이었읍니다. 그러나 왕「다윗」은 그러한 성전을 매우 사모하였으므로 많은 돈을 헌납하였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사용할 많은 재료를 수집하여 주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정식 성전을 위한 건축 설계까지 만들도록 영감을 주셨읍니다.

28.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에 관하여 힘이 되는 어떠한 말을 해주었으며 마침내 어떠한 것이 건축되었읍니까?

28 그의 통치가 끝날 때쯤 되어 그는 이 모든 재료를 그의 후계자가 될 「솔로몬」에게 주었읍니다. 그 때 「솔로몬」은 다만 아름다운 청년에 불과하였고 이 성전 건축 사업은 참으로 큰 공사였읍니다. 이 공사를 착수하기에는 담대함과 경건한 헌신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래서 왕 「다윗」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찌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찌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찌니라.』 (역대 상 28:9, 1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건축을 위하여 그를 선택하셨다는 보증으로서 왕 「솔로몬」은 담대할 수 있었고 또 그러하였읍니다. 그는 그렇게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를 위하여 사람에 의하여 일찌기 건축되어 본 일이 없는 가장 큰 성전을 건축하였읍니다.

29. (ㄱ) 지금 깨끗한 종교 형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왜 담대함이 필요합니까? (ㄴ) 어떠한 대행 기관을 통하여 지금 이 깨끗한 숭배가 바쳐지고 있읍니까?

29 거짓 종교가 매우 유행되고 있는 오늘날 (거짓이기 때문에 유행되고 있지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있는 예언된 종교적 상태가 나타난 이 때에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의 보시기에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의 형식』에 참여하기 위하여는 담대함을, 참으로 크나큰 용기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디모데 후 3:1-5; 야고보 1:27, 신세) 「예루살렘」 「모리아」산 위에 있던 여호와의 물질적 성전은 서력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으므로 더는 우리가 그 곳에 갈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예언하신 바와 같이 여호와의 깨끗한 숭배는 영과 진리로써 계속하고 있읍니다. (요한 4:21-24) 여호와께서는 파괴될 수 있고 없어질 수 있는 「예루살렘」에 있던 그러한 성전보다 훨씬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는 지금 하늘에서 영원히 있을 그의 영적 성전을 가지고 계십니다. 스스로 희생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성전의 모퉁이 기초석이시며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참다운 모든 추종자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계실 수 있는 산 집을 형성하기 위하여 그의 위에 세워지는 건축물입니다. (에베소 2:20-22) 온 인류가 그 후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숭배를 올리기 위하여는 이 살아 있는 영적 성전의 대행 기관을 통하게 됩니다. 『산 돌』로 된 이 성전의 건축자는 「솔로몬」왕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그 분은 만주의 주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베드로 전 2:5; 계시 17:14; 디모데 전 6:14, 15.

30. 이 영적 성전의 건축자는 성전을 건축할 때에 「솔로몬」이 가졌던 담대함 보다도 왜 더 큰 용기가 필요하였읍니까?

30 성전은 희생과 관련이 있읍니다. 이 산 영적 성전의 기초를 놓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 「다윗」이 모아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헌납한 모든 귀한 금속과 돌과 나무들 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무죄한 즉 완전한 인간 생명의 희생이었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예수는 이 모든 세상을 이기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임군』인 「사단」 마귀는 그와 하나님의 참다운 제단에서의 그의 완전한 희생을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젊은 왕 「솔로몬」이 가졌던바 담대함 보다도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였읍니다.

31.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담대함을 나타내셨으며, 이 점에 관하여 그가 죽으시기 전에 그의 사도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31 예수는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께 그를 구하도록 열두 영이나 넘는 천사를 보내달라고 구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마귀의 추종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기쁨으로 응하셨읍니다. 이것은 그가 비참한 죽임을 당하기 전날 밤에 그의 충성스러운 사도들에게 그가 마귀의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 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세운 담대함의 본을 알리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 16:32, 33; 마태 26:53.

32.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담대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할 수 있으며, 어떠한 승리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32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적 성전의 기초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봄으로 우리는 담대하게 될 수 있고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신인 마귀를 이길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산 돌들』이 되기 위하여는 「솔로몬」보다 더 큰 성전 건축자를 본 받아야 하며 그분이 하신대로 그리고 그의 사도들에게 하라고 하신대로 『담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 분은 세상을 이기신 분으로서 그의 추종자들이 이겨 하늘 성전에서 『산 돌들』이 되기에 합당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읍니다. 그러한 승리자들에게 그의 천적 약속이 마련되어 있읍니다. (계시 2:7, 11, 17, 26; 3:5, 12, 21) 이러한 승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기초를 둔 믿음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한 1서 5:4, 5) 예수께서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붕사하시는 영적 성전에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경에 기초를 둔 그러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 세상의 거짓 신을 이길 수 있도록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다.

33. 지금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오는 수 십만의 사람들이 성전에 있어서 어떠한 부분을 즐길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한 어디에서 살지 않으면 안됩니까?

33 「유다」지파에 속한「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레위」인의 제사장이 될 수 없었던 것 같이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영적 성전으로 들어오는 수 십만의 사람들도 하늘 성전에서의 『산 돌들』이 될 수 없읍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즉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한 낙원으로 변하게 할 이 땅에서 그를 영원히 숭배할 것입니다. (이사야 2:2-4) 그들은 「다윗」과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 구하는 『한 가지 일』이 「아마겟돈」 전인 오늘날에 있어서나 「아마겟돈」 후에 있어서나 영원히 이 땅에서 그들의 생애 전체를 그의 집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34. 시편 40:7-9에 「다윗」이 말한 바와 같이 이들은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야 합니까?

34 그들은 이것이 바라는 즉 구하는 한 가지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입니까?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특권과 그의 성전을 사모함을 확증해 줄 수 있읍니까? 「다윗」은 한번 예언적으로 이렇게 말한 일이 있읍니다.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시 40:7-9)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다윗」의 이러한 말을 마음에 깊이 새겨 담대하게 그 모든 것을 수행하셨읍니다. (히브리 10:5-10) 그와 함께 영적 성전에서 『산 돌들』이 되는 모든 사람들도 이와 같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들이 성전에서 『산 돌들』이 될 희망은 없다 하드라도 지금 만일 성전에서 숭배하기 원한다면 그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에게로 와서 『두루마리책』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뜻대로 행하고자 자신들을 여호와께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35. (ㄱ) 이 세상에서 그러한 헌신을 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데는 어떠한 것이 요구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세계는 어떠한 사람들의 것입니까?

35 이 헌신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자세히 알고 그것들을 마음에 새겨 기쁨으로 그것들을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모든 세상은 심지어 기독교국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예언된 대로 (마태 24:12) 불법이 성하고 있는 이 때에 그러한 헌신을 하고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는 담대함이 요구됩니다. 온 세상은 그러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적대시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서 환란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을 이길 것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이기신 우리의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앞으로 임한 어떠한 환란의 가능성 때문에 실망하거나 주저할 아무런 이유가 없읍니다.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걷기 원한다면 『담대』하십시요. 그의 의로운 신 세계는 겁장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계시 21:7, 8.

36. (ㄱ) 「다윗」은 어떻게 여호와를 위한 전도인이었읍니까? (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하였으며, 그러므로 그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36 여호와의 이름이 그리 인기가 없는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기 위하여는 담대함이 요구됩니다. 「다윗」은 그가 「레위」제사장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전도인이었읍니다. 그는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여호와 자신이 「다윗」이 하나님의 의의 기쁜 소식을 말하기 위하여 그의 입을 다물지 않았음을 잘알고 계셨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심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 (시 40:9, 10)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말쏟의 전도인으로서 결코 그의 조상들만 못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의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이스라엘」 전국 모든 지역을 통하여 『대회』에서 전하셨읍니다. 그는 심지어 그의 생명이 위태로운 때에도 여호와의 성전에서 있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에 빠지지 않으셨읍니다. (누가 8:1; 사도 10:38, 39; 요한 7:1-10) 예수와 같이 그의 헌신한 모든 추종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참으로 헌신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의 마음 가운데에만 간직해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전도인으로서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는 회중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37. (ㄱ) 그가 이 한 가지 큰 일을 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ㄴ) 그는 어떠한 예언의 성취와 일치하게 행할 것입니까?

37 그는 그의 모든 생애에 있어서 모든 날을 여호와의 집에서 살기를 원하는 한 가지 큰 일을 여호와께 구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 숭배하는 여호와의 회중과 연합할 것입니다. 그는 친절하게 초대된 회중의 모든 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와 그의 열두 사도들이 한 바와 똑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문에서 문으로, 집에서 집으로 방문할 것입니다. (마태 10:5-13; 사도 20:20) 그렇게 하여 그들은 이사야 2:3의 예언을 성취시킬 것입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아마겟돈」 직전에 있는 오늘날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읍니다.

38. 이렇게 하는 것으로 그는 무엇을 바라볼 것이며, 그는 어떻게 「아마겟돈」을 직면할 것입니까?

38 이러한 모든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쁜 소식의 전도인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그는 그가 아름다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선의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악한 나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있게 될 오늘날 그는 하나님의 선의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선의자』들 사이의 한 사람이 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로서 그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평화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누가 2:13, 14, 신세) 하나님의 성전 조직 안에 있는 일들의 뜻을 더 인식하게 되면 될수록 그는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영적 성전을 바라볼 것이며,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기회에 그의 회중과 함께 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로 「아마겟돈」 직전에 있어서까지 하나님의 전도인으로서 계속 남아 있도록 더욱 더 담대함을 갖게 할 것입니다.

[각주]

a 「하나님의 목적 아래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 142면 2난 참조.

b 1954년 5월 1일호 「파수대」의 『신 세계 사회는 극한 북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음』, 『「마곡」의 「곡」으로 말미암은 공격』 그리고 (영문) 1953년 10월 1일호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 세계 사회 대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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