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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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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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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12/15 466-478면

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

수백만의 사람들이 교회에 안나가는 이유가 있다. 다음은 그들이 말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된 기독교국의 대군대를 수백만명이 포기하고 있읍니다. 「스칸디나비아」, 중부 「유렆」, 영국, 「캐나다」, 미국과 기타 각처에서 근심에 찬 목사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이유없이 결석한다고 보고합니다. 미국만 하여도 3천만 내지 4천만명의 교회원들이 일요일 예배에 결석하고 있읍니다. 목사들은 당황하여 이렇게 되는 이유를 묻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교회에 안가는 사람 중에는 기본적으로 두가지가 있읍니다. 한가지는 교회의 회원이 된 일이 없어서 안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가지는 교회원인데도 안가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들은 첫째 사람들을 『불신자들』이라 부릅니다. 둘째의 수백만명은 양인데도 길을 잃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교회 자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읍니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불신자들』은 교회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므로 안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중 무신론자들은 조금밖에 없읍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신조로써 판에 밖혀있지 않는 자기 개인의 종교적 철학을 가진자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와 춤에 대한 소소한 설교를 듣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또 『불신자들』은 교회에 나가는 자들이 너보다 거룩하다고 하는 태도를 가진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읍니다. 그들 생각에 교인은 자기들만 천당에 가게 계약해 놓고 이웃 사람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불신자들』은 실지로 금전을 아끼어 교회를 피합니다. 장로교 연합교회에서 과거 3년간 조사한 결과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2월 15일에 대중에게 발표되었읍니다.

목사들은 이 『불신자들』이 교회의 깊은 종교적 심중성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교회가 사교적 단체로써 남과 사귀게 하고 약간의 도덕으로 간을 친 위안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만일 이것이 참말이라면 몇년씩이나 교회 나오던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일요일이 되면 다른 곳에 가기를 원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깊은 종교적 심중성』을 직면하였는 데도 왜 그들은 교회에 돌아오지 않읍니까?

그들의 비관

집에 머물은 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본다면 대부분이 다음과 같이 자기의 비관을 말할 것이다.

「그 전에는 퍽 열심히 교회일을 해왔읍니다. 성원이 됨으로써 위원회며 전화의 계획표를 짜는 것, 참석자를 증가시키는 등 굉장히 바빴지요. 그것이 탈입니다. 목사와 교회는 자금 거두는 것, 소년단체 꾸미는 것이나 기타 사교적 일에 너무 바쁜데 이런 것들은 우리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세속적 일에 사로잡힌 것을 일요일 설교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우리 목사는 아주 건사한 연사입니다. 그러나 좀 더 단순하게 설교를 해줬으면 하고 나는 바랐지요. 한시간 후에라도 다시 추억할 수 있는 말을 한 일은 아주 드뭅니다. 예수와 「바울」을 연단에서 가끔 인용하긴 하였지만, 반면에 목사는, 「버트랜드 럿쎌」, 「레인홀드 니버」, 「노만 빈센트 필」박사나 기타 여러 사람들을 인용했지요.

「설교는 지옥불과 유황불을 떠나 반대 극단으로 가서 긴장과 걱정과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진정시키는 연설이 됐읍니다. 성공과 『마음의 평화』에 바친 설교 시간은 우릴 괴롭혔읍니다. 도덕의 필요성 대신에 기운과 활동력의 필요성이 계제됐읍니다. 응용 심리학은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를 교훈하도록 월급받는 사람이 사용할 때 옳지 못한 것으로 보였읍니다. 그러므로 종교 그렇지요, 심지어 나의 종교에 관한 일이라도 토론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지요. 아는 것이 부족한걸요, 일요일 설교에서 돌아올 때 영적 양식을 받지 못하였다고 느낀바가 여러번 있읍니다. 무엇인지 아주 옳지 못했읍니다.

「교회 선교사는 우리가 스며들어오는 불교 때문에 괴로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읍니다. 참으로 그렇읍니다, 우리가 믿는 한 어느 종교를 믿어도 괜찮다고 점차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선교사는 말하기를 불교도도 동일한 말을 한답니다.—즉 어느 길로 가나 도착점은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우리 교회에 가서 자기가 전에 하신 말씀 즉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신다면 다시 환영을 받을까? 의심스럽습니다.—마태 7:14.

전쟁의 왕자(王子)

「예수가 우리 교회에 맞지 않는 또 한가지는 그의 명칭이 평강의 왕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시인하실른지 안하실른지는 몰라도 우리 교회는 그를 「전쟁의 왕」으로 만들었지요. 우리 기독교는 철저히 애국적입니다. 다행이도 우리 교회가 놓인 나라가 언제나 전쟁 날때마다 도덕적으로 옳은 편에 속하였지요.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읍니다. 따라서 우리 목사는 편리하게 성전(聖戰)의 원인과 인류의 십자군에 대하여 설교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적군이 동일한 교회들, 또 나의 교회의 회원들로서도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불안 하였읍니다. 한 목사는 말하기를 전쟁으로써 하나님이 하늘의 인구를 늘이신다고 했읍니다. 이것은 믿지 못할 것이나 수백만명이 살상됨으로 지상 인구가 주는 것만은 의심할 바 없읍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평강의 왕자」가 되는 것은 12월 25일 밖에 없읍니다. 나에게는 호전적(好戰的) 기독교가 옳게 생각되지 않읍니다.

「우리 목사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한두번 말했읍니다. 그러나 우리 도시 하나만을 환하게 할만한 열성도 우리에게는 없었읍니다. 사실상 교리상으로 보면 교회 내에서도 흐릿한걸요. 그 이유는 주로 「삼위일체」 교리에 의합니다. 어쩐지 이해가 안가는 교리입니다. 그것은 신비이므로 그렇게만 알아 두라고 교회는 말했읍니다. 때때로 우리 목사는 부활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부활절 일요일에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에서는 영혼의 불멸성과 천당간 소리만 하지요. 이것도 이해못할 일이야요. 만일 그리스도나 기타 사람들이 불멸하는 영혼이 있다면 왜 부활할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없게 생각돼요. 목사는 부활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불멸의 영혼과 연합되어 함께 천당 갔다고 말했읍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후에 찾았어요. (고린도 전 15:50) 연단에서는 성경 토론을 자주 안합니다. 목사에게는 영생보다 더 긴급한 문제를 취급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은 교리는 많은 일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못했읍니다.

「또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여 천당갈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보기 위하여 사람을 지상에 두셨다고 교회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이 시험장 이외에는 아무 목적도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늘의 천사들은 어찌하여 「아담」의 자녀들처럼 고통을 받지 않고도 천당에 살게 창조되었읍니까? 또 이 악한 세상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라면 또 하나의 이상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고 기도하라 가르칩니까? 예수께서는 현재의 상태를 변화시키도록 우리더러 기도하라고 하신 것 같은데 교회에서는 자꾸 이 땅으로부터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주장하여 왔읍니다. 교회가 나의 영적주림을 채우지 못하므로 교회에 안나가도 괜찮다고 결론지었지요. 따라서 차차 결석하게 된 것입니다.」

이상은 사실상 허다한 교회 결석자들의 실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써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기대치 않는 축복이 임하여 그들의 생애를 변경시키는 일이 있읍니다. 실제로 경험한 자의 이 예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깁니다.

방문객

「어떤 일요일 아침에 내가 아침을 느지막하게 먹고 빈들거리는 차에 한 청년이 성경을 손에 들고 왔읍니다. 그 사람은 전에 교회에서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터무니 없는』 교리를 가르치는 열광자라고 한 사람들의 하나였읍니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잘들어 봤지요. 『하나님은 사람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셨읍니다. 물론 사람이 순종한다는 조건하에 그런 것입니다. 「아담」의 실패는 우리 전부에게 사망을 초래하였으나 그것으로 여호와의 지상 낙원을 짓고자 하시는 목적이 변경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모범적 기도는 하나님의 천적 정부가 이 악한 세상을 분쇄하고 낙원을 실현화 할 것을 알려주고 있읍니다. 전쟁, 눈물, 사망은 다 지나가고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 24:14와 일치하여 땅 끝까지 이 기쁜 소식을 전도하고 있읍니다.』라고 그는 이야기했지요. 그는 창세 1:28; 다니엘 2:44; 베드로 후 3:13, 계시 21:4, 5를 사용하여 증명하였읍니다. 나는 그를 집안으로 초대했읍니다.

「그에게 수 많은 질문을 쏟아 부었는데 매번 성경적 회답을 얻었읍니다. 그는 삼위일체가 이교의 교리이며 요한 14:28; 고린도 전 11:3등의 성귀와 정반대 된다고 알려주었읍니다. 또 『사람은 영혼이며 성경은 영혼이 죽을 수 있다고 입증합니다.』하고 그는 말했읍니다.(그는 에스겔 18:4; 전도 9:5, 10; 야고보 5:20을 들추었읍니다.) 『영혼이 죽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의로운 신 세계에서 부활하도록 마련하십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이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라고 그는 말했읍니다.—요한 17:3.

「이 젊은 전도인은 그후 수차의 방문을 통하여 다년간 의심스러웠던 성경 질문을 회답하여 주었읍니다. 비가 오든 해가 쪼이든 그는 언제나 약속한 대로 방문하였고 언제나 흥미있고 가치있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참된 그리스도교는 개인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것은 어떤 희생을 하여도 성공하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시시한 말 대신 아직도 세상에 선포할 소식을 가지고 있읍니다. 참 기독교는 지금도 도덕과 믿음을 행실로써 입증하기를 요구합니다. 1900년 전과 같이 하나님은 남녀 노소를 사용하여 증거를 하십니다. 그때처럼 지금도 그들은 이 일을 무료로 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자신을 헌신한 것이지요. 이 사랑으로써 그들은 전 세계에서 형제 관계를 맺고 통일을 유지합니다. 이것 전부를 나는 여호와의 증인 중에서 찾아냈읍니다. 당신도 왕국 회관에 가서 보면 알 것입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나도 전에 교회에 같이 나가던 친구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으로 방문하려고 합니다. 그 중에는 나처럼 더 나은 것을 원하여 교회에 안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들의 원하는 바를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그와 같이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나도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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