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4 1/1 4-7면
  • 당신은 사후에 죄값을 지불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당신은 사후에 죄값을 지불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전통의 소리?
  • 성서의 견해
  • 성경의 대답
  • 참조 문헌
  • 연옥은 성경에 나오는 교리입니까?
    성경 질문과 대답
  • 당신의 사별한 가족은 연옥에 있는가?
    깨어라!—1974
  • 죽은 자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가?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
  • 연옥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파64 1/1 4-7면

당신은 사후에 죄값을 지불하는가?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당신은 사후에 죄값을 특히 연옥에서 지불합니까? 대단히 많은 세상 종교는 여전히 그렇다고 말합니다. 신심깊은 중국 사람들은 『죽은 후에 영이 이년 동안 연옥에서 방황하는데 그가 도움을 받아야 하늘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믿읍니다. 그러한 영들을 돕기 위하여 중국 사람들은 지난 때에 희생물을 바치곤 하였으나 지금은 이 목적1을 위하여 특히 종이로 만든 집을 불사릅니다. 불교2의 경전에는 연옥에 대하여 공들여 묘사한 것이 있읍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런 말들을 듣습니다. 『연옥과 비슷한 것을 대부분의 종교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리하여 사후 중간 상태와 완전한 축복에 이르는 정화 준비에 관한 기본적 사상이 「조로아스터」에서 발견된다. 「조로아스터」는 그들이 하늘에 들어가기에 열두 단계를 거쳐 충분히 정화되어야 비로소 영혼을 취한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파는 개명(開明)의 중간 장소에 대한 견해를 품고 있었다.』 그들은 이 장소를 「엠푸로시스」(Empurosis) 즉 불의 장소3라고 불렀읍니다.

기독교국으로 말한다면 여기 저기에서 신교파 교직자들이 연옥의 가르침4에 동의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특히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으로서 알려져 있읍니다. 「트렌트」 회의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성신에 의하여 교훈을 받은 「가톨릭」 교회는 성서와 신부들이 가르친 옛 전통에서 . . . 연옥이 있는데, 거기에 억류된 영혼들은 충실한 자의 대도(代禱)로 도움을 받으나, 주로 제단의 가납(幕納) 될 수 있는 희생에 의하여 도움을 받는다. 거룩한 종교 회의는 주교들에게 그들이 어디에서나 독실한 신자들에 의하여 가르치고 전파되고 지지되고 믿어지고 있는 연옥에 관한 . . . 건전한 교리를 갖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을 명한다.』5 그러므로, 당신이 사후에 죄값을 진정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은 「가톨릭」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적 입장이기는 하지만, 이 가르침의 자세한 점에 가장 큰 애매한 점이 있읍니다. 도대체 어디에 연옥이 있읍니까? 고난의 기간은 얼마이며, 사랑하는 자들이 마침내 하늘에 이르렀다는 시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그런데 특히 고난의 정확한 성격에 대하여 애매한 점과 의견의 차이가 있읍니다.

예수회 필자 「알 · 더블류 · 글리슨」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연옥이 가끔 지옥의 실제적 사랑방으로 제공되었었다는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신학자들에 의한 이 점은 작은 공로가 아니다. 감금된 영혼들은 귀신들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이 땅에서는 상상조차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글리슨」이 또한 이렇게 쓴 것과 같읍니다. 『「벨라민」이 우리에게 연옥에 불의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 정말 확실하지만, 「불」이란 말이 비유 혹은 적절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것이 감각적인 고통 혹은 상실의 고통을 언급할 수도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정말 우리의 확신에 뚜렷한 것을 많이 남겨 놓지는 않았다.』5

사실상, 심지어 연옥에 있는 자들이 땅 위에 있는 자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견지를 지지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더러 있읍니다. 진정, 『「제노아」의 「캐더린」은 땅 위의 어떤 기쁨도 연옥의 기쁨과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여 확언한다. 사실상, 하늘 자체의 기쁨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쁨도 없다.』5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연옥은 어떠한 제지처(制止處)이어야 하며, 만일 그들이 땅에서 보다 더 잘 산다면 왜 기도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의당 생기게 될 것이다. 진실로 이 문제에 많은 애매한 점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연옥의 정의를 내린 이 「트렌트」 회의가 동시에 「가톨릭」 교직자들을 다음과 같이 훈계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짓 겉모양을 나타내거나 취급해야 할 불확실한 것이나 일들을 용납하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일들을 호기심이나 미신에 끌린다거나 더러운 일을 취하는 따위의 굇심하고 불쾌한 일들은 금지하여야 한다. 주교들은 기도가 . . . 되는대로 행하여지지 않고 열심히 꼼꼼히 행하여지도록 살필 것이다.』6

전통의 소리?

『「가톨릭」은 연옥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렇게 「콜럼버스」의 기사」에 의해서 후원을 받은 광고는 말합니다. 연옥이 존재한다는 이러한 광고에는 『교회의 신부나 박사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는 사실을 거듭 말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읍니다. 또한 『제 이세기의 「텔툴리안」이 「충실한 아내에게 고인이 된 남편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충고하였다. 제 사세기의 역사가 「요세비우스」는 「예루살렘」의 성 「씨릴」, 성 「에프렘」, 성 「암부로오우스」 및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모두 떠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말하였다.』는 주장이 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확실한 사실 이상을 가정하여 하였다는 것은 한 권위자의 증거로부터 뚜렷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처음 사세기의 어느 기록에서도, 충성스런 어느 죽은 사람의 상태를 격렬한 고통받는 자로서 묘사한 어느 인용절을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 . 하물며 그들이 중간 상태를 속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지적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7 이것은 동방 정교회가 제공하는 연옥의 가르침의 애매함에 의하여 더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전통의 소리가 이 점에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도 멉니다.

그러나, 전통의 소리가 애매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자체가 연옥의 존재를 증명하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서의 필자들이 죽은 후에 참된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자들이 있으며 사실 그들의 생존시에 이미 그 일이 시작되었다고 경고한 까닭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 이전 습관의 유풍』5에 믿음을 돌려야 한다는 연옥의 가르침을 찬성하려는 취지의 초기 증거들이 이미 그 때에 얼마간 허용되고 있었읍니다.—사도 20:29, 30; 요한 1서 2:18.

성서의 견해

또한, 성서에서도 이 연옥의 가르침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주된 성귀들 가운데 고린도 전 3:11-15이 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가톨릭」 단체역 참조.

이 성귀가 연옥을 증명하는데 사용될 수 있겠읍니까? 아니 그럴 수 없읍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의 일 즉 공력이 문자적으로 금과 은, 풀이거나 짚이 아니므로 불도 문자적이 아닐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의 일 즉 공력이 올바른 종류의 것이 아닐 때 그 일이 소멸될 것을 말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명백히 연옥에 가는 일들이 아닙니다. 세째로, 이 진술은 실제 불 가운데서가 아니라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되어 있읍니다. 분명히 이 성귀가 말하는 것 이상을 말하려는 노력 가운데 「녹쓰」경은 『하지만, 마치 사람이 불을통과함으로써만 구원되듯이, 그 자신은 구원될 것이다.』 라고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 전 3:11-15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읍니까? 금, 은과 귀중한 돌들은 불꽃을 통하여 견디지만 나무, 풀과 그루는 그렇지 않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일은 그의 심판에 의하여 없어지지 않읍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리나 일들은 여호와의 불 같은 시험 앞에 설 수 없읍니다. 이러한 후자와 같 은 일들을 행하고 있는 자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충고와 심판을 직면하여 그러한 것을 잃는 고통을 견디도록 준비한다면, 그는 마치 불에 의한것처럼 이러한 깨끗해 짐으로써 구원될 것 입니다. 심고 물 주는 일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은 그가 어떻게 일하는가 즉 모든 일을 진리와 일치하며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세워진 본에 따라 수행함으로써 견고한 재료로 세워 나가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읍니다.—고린도 전 3:5-10.

마태 5:25, 26(「가톨릭」 단체역 참조)은 연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또 하나의 성귀입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그러나, 예수께서 여기에서 사후 죄값을 지불한다는 것이 아니라, 재판소에 고소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는 지혜를 말씀하고 계셨읍니다. 상상력을 멋대로 구사해도 연옥을 증명하는데 이것은 사용 될 수 없읍니다. 단지 연옥 자체가 증명되는 경우에만 이 원칙은 그것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게다가 예수의 말씀은 누구나 죄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연옥을 가르치고 있는 자들은 그 점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연옥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용되는 또 다른 성귀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입니다. (마태 12:32; 「가톨릭」 단체역 참조) 이 말은 오는 세상에서 용서받는 것을 의미한다고들 주장하며, 그럴려면 연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읍니다. 첫째로, 이 성귀의 기본적 의미는 단순히 성령에 대항한 죄는 어느 때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오는 세상』에서도 그러한 용서의 마련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가 3:29과 비교해 보십시오) 성경은 악한 일을 행하되 고의적으로 행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심판의 부활을 말하고 있읍니다.

부활될 때, 그러한 자들이 순종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순종함으로 성령에 대하여 죄를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며,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사도 24:15; 요한 5:28, 29; 계시 20:11-15.

성경의 대답

사후에 당신은 죄값을 지불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하면 그렇지 않읍니다. 첫째로, 성경은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산 영혼]이 된지라.』 둘째로, 성경은 영혼이 죽을 수 있으며 불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그(예수)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그리고 세째로, 죽은 자가 의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줍니다. 『그들은 죽음의 선고 아래 산다. 그리고 죽음이 올 때 그들은 더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보상도 받지 못한다 . . . 그들은 사랑도 미움도 시기도 느끼지 못한다. . . . 네 힘이 닿는 대로 네가 할 수 있는 동안에 그것을 하라. 머지 않아, 너의 집이 될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또한 지혜나 기술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창세 2:7, 신세; 에스겔 18:20; 이사야 53:12; 전도 9:5, 6, 10, 「녹쓰」.

그러므로,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면 그리고 그 영혼이 죽을 수 있으며 또한 죽을 때 그의 생각이 소멸된다면 어찌 인간이 사후에 연옥에서 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읍니까?

사후에 고통을 받음으로써 자기 죄를 속한다는 생각은 현 생명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성서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께 데려온 중풍 환자를 고치실 때 『아들이여 담대하라 네가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고통을 받을 필요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제자들에게 『회개와 죄 사함』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사람이 자기의 죄를 위하여 나중에 고행이나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는 일언 반구도 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리고 또 한 사도 「베드로」도 「유대」인들을 그와 같이 충고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개종하라, 이는 너희 죄가 없이 함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죄에 대한 고행이나 고통에 관하여 아무 것도 말 하지 않았읍니다. 같은 진리를 증거하면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깨끗케 한다면 연옥의 불로 깨끗케 할 것이 아무 모든 남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9:2; 누가 24:47; 사도 3:19, 「가톨릭」 단체역; 요한 1서 1:7.

하나님의 말씀은 천국 복락의 생명과 고통의 생명 중 택일하라고 하지 않고, 생명이 아니면 사망임을 알려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며 의로우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그분의 한가지 선물입니다. 인간이 그 선물을 감사하지 않는다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단지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할 따름입니다.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연옥에 갈 것이라거나 혹은 그 때문에 불 붙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또한 「아담」이 하늘에 가게 된다는 소망을 제시하시지도 않으셨읍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창세 3:19; 로마 6:23.

그러나, 아마 어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의를 말할지 모릅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불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라고 말한 그러한 표현은 어떠합니까? 그러한 진술은 앞서 말한 것과 모순되지 않읍니까? 천만에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모순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읍니다. 우리 모두는 가끔 상징적인 언어 즉 액면 그대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경 필자들도 역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되는 제목과 그 표현의 내용을 고찰해 보기만 하며 문자 그대로 취하여서는 안될 경우를 알게 됩니다.—마가 9:48; 누가 16:23; 계시 21:8, 「가톨릭」 단체역.

성경의 증거는 헷갈리지 않으며 이치적이고 바른 것입니다. 사후에 당신이 죄값을 지불하며 고통을 받음으로 지불한다는 생각은 이교적이지 성서적이 아닙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죄값을 지불합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로마 6:23, 「녹쓰」.

참조 문헌

1 「세계의 대종교들」 1957년 「타임」사 90면.

2 「하바드 고전」 1910년 제 45권 701-704면.

3 「백과사전 브리타니카」 제 11판 제 22권 660면.

4 「우리의 일요일 방문객」 1952년 10월 26일.

5 「아메리카」 1958년 11월 1일 135, 136면.

6 「백과사전 브리타니카」 제 9판 제 20권 제120면.

7 「아이비드」121면.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