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71 11/1 499-500면
  • 나는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잊을 수 없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나는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잊을 수 없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 비슷한 자료
  • 마침내 달성한 나의 어린 시절의 목표
    깨어라!—1985
  •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가족
    깨어라!—1995
  • “여호와께서 저를 찾아내셨군요!”
    깨어라!—2004
  • 내가 하느님의 돌보심으로부터 유익을 얻은 방법
    깨어라!—1995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파71 11/1 499-500면

나는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잊을 수 없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이 우리 집을 방문한 그 날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나는 겨우 여덟살이었다. 그 증인이 성서를 설명하는 서적을 나의 부모에게 제공하였을 때 나의 부모는 그 서적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나는 관심이 있었다. 나는 성서에 관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서적을 내가 받아 볼 수 있는지 부모에게 여쭈어 보았다. 부모는 나에게 돈이 있으니까 만일 내가 원한다면 내 돈으로 받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바로 이 첫 방문에서 그 증인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돕기 시작하였다. 나는 성서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시 83:18.

그 후 몇 주일이 지나서 그 증인은 자기 남편과 함께 나를 도우러 찾아 왔다. 그 후에는 다른 증인들을 보내 주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부모에게 성서에 관하여 말해 봤지만 성서를 우리와 함께 연구하는 데는 조금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매 연구 후에 나는 내가 배운 것을 부모에게 이야기하였다.

그 후에 나는 증인들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증인들이 나에게 베푼 사랑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나를 집회에 데리고 가기 위하여 그들은 16‘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우리집까지 차를 몰고 오곤 하였다. 여러 번 나는 그들이 어떻게 전도 봉사를 하는지 알아 보려고 그들과 함께 유숙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이러한 방문 중 한번은 증인의 딸과 함께 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상 숭배적이고 그리스도인 중립을 범하는 국가주의적인 행동을 피할 필요성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나는 어른 증인으로부터 더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참으로 기뻐서 이 사실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에게 이야기하기를 원하였다.

그때 나의 나이는 열 한살이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요구 조건과 그 요구에 일치된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내가 결심한 것을 부모에게 이야기하였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부모는 격분하셨다. 증인들이 다음에 오면 다시는 오지 못하게 하고 만일 그래도 오면 총으로 쏘겠다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요구 조건이라는 것을 성서로부터 보여 드리겠다고 부모님께 호소하였지만 허사였다.

이제 부모는 이것으로 나의 문제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하셨다. 그러나 나는 성서 연구 서적들과 내 성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기도로써 통신하는 것이었다.

그후 5년간 나는 여러 번 내가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것을 머리에서 지워버리려고 굳게 결심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잊을 수가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나의 일부였고 진리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 전체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내가 제한된 숭배나마 수행하도록 항상 사랑스럽게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내가 혼자 힘으로서만 하나님을 섬기고자 애쓴다고 생각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즈음에는 꼭 나에게 서적을 전해 주는 증인들이 방문하게 되곤 하였다. 나는 마치도 목마른 사람이 한 목음의 시원한 물을 얻은 것과 같이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몰래 다 읽곤 하였다.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일로서 한번은 읍에 갔을 때 한 증인이 건너 길 모퉁이에서 행인에게 잡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그런 분을 만난다는 것이 나에게 어찌나 반가운 일인지 몰랐다. 나는 인사만이라도 하기 위하여 그가 있는 쪽으로 뛰어 갔다. 그러나 아, 내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증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자를 만난 것만으로도 참으로 가슴설레였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내 믿음을 튼튼히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 연구를 많이 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한 성귀 중 하나는 고린도 전 10:13이었다. 그 성귀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받음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에 우리가 충성을 지킬 수 있도록 피할 길을 항상 내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신 성귀이다. 그 외에도 갈라디아 6:9과 같은 성귀는 하나님께서 내가 더 온전히 그분을 섬길 기회와 축복을 갖도록 살피신다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또한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약속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결국 여호와의 종들과 어느 정도의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느 정도 집회와 심지어 대회에까지도 참석할 수 있었다. 내가 16세 되었을 때, 나는 다가오는 대회에서 침례 받기를 원한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나는 아버지 집에 머무르는 한,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의 뜻을 존중할 것이지만 내가 성년이 되면 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결정하시고 결국 동의해 주셨다. 나는 1965년 3월 20일에 침례를 받았다.

졸업식 날까지 거의 문제없이 세월이 흘러 갔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인 중립을 범하는 직업을 거절하자 아버지의 분노와 격분은 다시 터졌다. 아버지는 내가 더 이상 자기의 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완전히 의절당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숨이 끊어지실 것같이 욕을 퍼부우시며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다.

이 고통의 기간 중에도 증인들이 나를 찾아와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다, 항상, 나에게 힘주시는 여호와께서 계셨다. 그분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시었고 변함없이 친절하시었으며 한번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를 더욱 온전히 섬길 영광을 달라고 한 나의 기도가 결국에 응답되었다. 그분의 왕국에 관하여 전도하는 데 내 휴가 전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다. 이후 즉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규적 전 시간 전도인이 되었다. 이 때부터 이 봉사야말로 나의 즐거운 활동이 되었다.

내가 지난 수년간을 회고해 볼 때, 여호와께서는 나의 진실한 목자가 되어 오셨으며 나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앞으로 더 큰 박해를 당한다 하여도 만일 내가 성실을 유지하는 한, 여호와께서는 항상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위로하시며 축복하실 것을 확신한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은 아무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경험하였다.—기고.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