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요법—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에서 트럼펫, 기타, 드럼, 탬버린 그리고 심벌즈의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남자, 여자, 어린이들이 춤을 추며 흥분된 억양으로 열렬히 노래를 부른다. 이제 치료를 시작하기에 꼭 맞는 분위기이다.
하얀 겉옷을 입은 신앙 요법자가 옷자락을 너풀거리며 불구이기 때문에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 어떤 남자에게 손을 얹는다. 그 다음에는 검은색의 안경을 써서, 보지 못하는 두 눈을 가리운 맹인에게도 손을 얹는다. 다리를 못쓰던 그 사람이 걷기 시작하고 맹인이 볼 수 있게 되자, 그것을 본 사람들은 “야, 기적이다!”라고 외치는데 ···
이와 같은 장면은 신앙 요법을 행하는 아프리카의 많은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실상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믿음을 통해 온갖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신앙 요법자가 주장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와 그외의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신앙 요법자를 추종한다. 그에 따라 재정 문제를 갖고 신앙 요법자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자녀가 없는 것을 흔히 치욕거리로 여기기 때문에 불임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신앙 요법자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신앙 요법자의 주된 관심사는 건강 문제이다. 세계 시장에 의약품이 범람하고 있고 의학계에서는 환자들에게 구제책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칭찬받을 만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간이 질병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병에 시달리는 어떤 사람들은 치료책을 찾느라고 막대한 비용을 들였지만 허사일 뿐이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자포 자기한 나머지 신앙 요법자를 찾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 요법이 효험이 있으며, 신앙 요법과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상충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신앙 요법자들이 종종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를 행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주요 종교의 교인이면서 동시에 신앙 요법 교회의 교인인 것도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숭배자가 신앙 요법을 이용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 수 있는가? (요한 4:23) 그리고 신앙 요법자의 치료를 실제로 하나님의 치료라고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