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언어” 지역 대회에 참석하십시오
언어의 차이는 바벨 이후 줄곧 분열을 초래하는 힘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바벨에서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 사람들이 ‘탑을 쌓아 그들의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을 좌절시키셨다. (창세 11:4, 공동번역) 언어의 차이가 참으로 분열을 초래한다는 것을 벨기에에서 벌어진 일에서 볼 수 있다. 몇년 전, 루뱅의 가톨릭 대학교는 언어상으로 둘로 갈라졌다.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이유들 중 하나일 뿐이다. 국적, 인종, 교육 및 경제 수준도 분열을 초래하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그 모든 분열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참으로 연합해 있다.
지난 여름 폴란드의 도시 호조프(카토비체 부근에 있음), 포즈나니, 바르샤바에서 그러한 연합이 매우 인상 깊게 전시되었다. 적어도 20가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증인이 약 37개 나라로부터 참석하였다. 하지만 모두는 인상 깊게 일치성을 나타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모두는 성경적 진리의 “순결한 언어”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 점이 스바냐 3:9에 이렇게 예언되었다. “그 때에 내[여호와 하나님]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순결한 언어로 바꾸어, 신세]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어깨를 나란히, 신세] 섬기게 하리[라.]”
그러므로 1990년 지역 대회 주제를 “순결한 언어”로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사단의 악한 세상의 영향력 및 마귀와 그에 속한 악귀들의 간교한 행위 때문에, “순결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이기적 경향을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 순결한 언어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다른 번역판들은 그 말이 “같은 멍에 아래” (예루살렘 성서), “이구동성으로” (모팻역), “하나같이” (미국역), “그분의 봉사에서 협력하여” (바잉튼역)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임을 시사한다.
이 대회에서 우리는 여러 연설, 실연, 경험담, 심포지엄, 성서 드라마를 통하여 순결한 언어를 좀더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격려와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러한 내용에 감동되어 형제들과 좀더 효과적이고 화목한 가운데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대회는 첫째 날 오후 한시 조금 지나 시작하여 넷째 날 오후 네시경에 마칠 것이다. 시작하는 노래를 부를 때부터 넷째 날 오후 마치는 기도까지 모든 회기에 참석하도록 지금 계획을 세우자.
성서와 노래책을 가지고 올 것이며, 필기할 준비를 하자. 또한 왕성한 영적 식욕을 가지고 참석하자. 그러면 순결한 언어를 사용하여 여호와를 섬길 수 있도록 좀더 온전히 구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