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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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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파86 5/15 4-7면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과학과 고등 비평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서의 기존 신분을 그들 사이에서 배척해 온 것이 사실인가? 흔히들 쉽사리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성서가 비과학적이라는 점을 거침없이 공언하는가 하면, 고등 비평은 더한층 고상한 것으로 여겨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성서와 고등 비평

고등 비평에 있어서, 실상은 아직까지 그 사상을 지지하는 확고한 증거가 제시된 적이 전혀 없다. ‘모세 오경’이나 「이사야」서의 출처라고 가정될 만한 것은 이제까지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니엘」의 고대 파편들이 발굴됨에 따라, 고등 비평가들이 그것의 기록 연대라고 주장하는 때보다 불과 몇해 뒤에 벌써 그 책이 상당히 인정받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한 신학 교수는 이렇게 확언한다. “비평계에서 묘사하듯 성서의 책들이 부정직한 방법으로 생겨난 어떤 특이한 사례도 증명될 수 없다. 비평계가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과,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성서 비평」[Biblical Criticism]에서 위크 브루맬) 한 고고학자는 이렇게 부언한다. “고대 근동에 기록물 곧 문필 제작물들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다고 호언 장담할 수는 없다.” (「석기 시대에서 그리스도교까지」[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에서 W. F. 알브라이트) 고등 비평이 날로 범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날의 세속적 사고 방식과 부합되기 때문이지, 그것이 증명되어 왔기 때문이 아니다.

성서와 과학

그렇다면 과학은 어느 면으로인가 성서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해 왔는가? 때때로 그런 식으로 여겨져 왔다. 예로서, 18세기에 지구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우리의 행성의 나이가 아주 많다는 점이 밝혀졌다. 당시 많은 독실한 신자들은 성서에 의거해 볼 때 지구는 단지 6,000살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성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명백한 사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성서 어디에도 지구의 나이를 말하는 곳이 없다. 독실한 신자들의 오해로 인해 문제가 야기되었던 것이다.

성서의 첫 마디는 이러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 1:1) 시작이 있었다는 이러한 말은 현대 과학의 관측과 일치한다. 그 다음, 성서에 의하면 지구는 “아무 형태도 없이 텅 비어”있는, 즉 거주자도 없고 거주할 수도 없는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창세 1:2, 현대인의 성경) 지구의 초기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지질학자들은 한때 그러한 시기가 실제로 있었다고 시사한다. 그에 뒤이어, 성서는 바다와 대륙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묘사한다. 식물이 나타난 뒤 바다 생물들, 새, 그리고 결국 육지 동물들이 나타났다. 끝으로, 사람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점은 전반적으로, 과학자들이 오래된 지구의 지층을 파들어가서 발견한 것 그리고 심지어 생명 출현의 일반적인 순서와도 아주 유사하다.—창세 1:1-28.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과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사실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점들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그 초기 성서 필자들이 그렇게 많은 점들을 알고 있었는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과학 지식이 아주 낮은 수준이었던 그 옛날에 그러한 것이 주어지려면 누군가 그들에게 말해 주었어야만 하므로, 이것은 성서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이론과 성서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점들이 있는 경우에는, 으례 성서는 틀리고 과학자들이 항상 옳은 것으로 여겨야 하는가? 과학이 때때로 오도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가 많이 있다.

물론, 진화론은 성서와 일치하지 않는 주된 논점을 제기한다. 이 이론에 대해 주목할 만한 점은, 다아윈의 저서인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발행되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 이론이 얼마나 신속히 유행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론은 그 책의 가설을 검토해 보거나 화석 기록상의 그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볼 겨를도 없이 받아들여지고 만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진화론자인 호이마르 V. 디트퍼어드는 이처럼 솔직히 시인한다. “과학이란 기적에 의존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나 사람과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H. V. 디트퍼어드저 「생명의 기원들」[The Origins of Life]) 따라서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열렬히 옹호하면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이론으로 밝혀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거의 해 보지 않는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달리 택할 길이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창조뿐인데,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기적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창조는 과학자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즉 생명 원리, 의식 및 지성의 근원, 인간의 도덕성과 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논리적인 방식인 것이다.

힘을 지닌 책

성서 자체가 세상이 인정하는 지혜와 성서의 가르침 사이에 상충되는 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린도 전 1:22, 23; 3:19) 인간의 연구와 논리에 기반을 둔 지식은 극히 불확실하기에, 이러한 상충점이 있는 것은 놀랄 만한 것이 못된다. 그리고 어떤 인기있는 이론들이 성서와 상치된다고 해서 동요될 것도 없다. 성서는 우리에게 성서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서 자체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것을 직접 제안하고 있다.

예로서, 성서는 예언서임이 증명되고 있다. (베드로 후 1:19-21) 고등 비평가들은 이러한 예언들이 사건 발생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게 된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 예수께서 출생하시기 수세기 전에 기록된 예수에 관한 예언들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예로서, 이사야 53:1-12; 다니엘 9:24-27 참조)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수 자신의 예언들도 세밀히 성취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관해 그분과 사도 바울이 한 예언들은 오늘 아침 신문을 읽는 것과 같다. (마태 24장; 마가 13장; 누가 21장; 디모데 후 3:1-5) 미래에 대한 인간의 예언들이 워낙 부정확한 터인지라, 성서의 예언들은 그것이 더 높은 근원에서 왔음을 강력히 논증해 준다.

또 다른 강력한 증거는 그 안에 담긴 말 즉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말에서 볼 수 있다. (히브리 4:12) 그러한 운동력은 역사에 걸쳐, 성서를 읽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는 이유로 고통을 겪고 죽임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예시되어 왔다. 그 어떠한 출판물도, 사람들이 겸손하고 합리적인 정신으로 읽을 때 그처럼 유익한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었다. 그 책은 호전적인 사람을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며 개인의 성품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도 있다. (미가 4:3, 4; 에베소 4:24) 일례로, 성서가 루이즈에게 미친 영향을 고려해 보자.

브라질의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루이즈는 한때 극도로 위험한 인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한 ‘여호와의 증인’이 루이즈의 동료 재소자들에게 증거를 하면서 루이즈에게도 이야기를 건네게 되었다. 성서의 말씀은 루이즈가 금방 딴 사람이 될 정도로 영향을 주었다. (골로새 3:9, 10) 이전에는 아무도 감히 그에게 말대꾸를 하지 못했으나, 이제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하며 교도소 책임자들에게도 합당한 존경을 나타내었다. 성서가 루이즈의 성품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재소자들에게 알려 주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교도소 밖에서 전파하는 것이 허락되기까지 한다.

그 다음 웨인의 경우를 알아보자. 웨인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온통 부도덕하고 마약을 남용하는 방종한 생활에 빠져 있었다. 결혼해서도 그의 나쁜 행실로 인해 그의 아내 마저 부도덕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의 가정 생활은 악화되었다. 그들이 이혼할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웨인은 한 ‘여호와의 증인’을 통해 가족들 간의 책임과 사랑에 대해 성서가 말하는 바를 듣게 되었다. (에베소 4:22-24; 5:22-28) 그는 자신의 일부 문제들의 근원을 깨닫게 되었다. (고린도 전 15:33 참조)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의 아내 역시 변화하게 되었다. 이제 이 젊은 부부는 성서 덕택에 만족해 하는 가정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끝으로 엘레나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젊은 아르헨티나 아가씨는 우울증으로 고생하였다. 도움을 받으려고 정신병 의사에게 갔는데, 그 의사는 그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적으로 난잡한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부도덕과 영매술에 빠졌고, 과도하게 담배를 사용하였다. 낙태도 두번이나 하였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이 엘레나에게 관심을 갖고 그가 성서를 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 주었다. 차츰, 성서의 말씀으로 인해 그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이제 엘레나는 그 두분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그분들로부터 받고 있는 좋은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저는 받을 자격이 없읍니다. 그 때문에 저는 우리에 대한 그분들의 자비와 사랑에 대해 더욱더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예들이 알려 주듯이, 성서는 우리 생활에 아주 유익한 힘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루이즈와 웨인 그리고 엘레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를 가지고 가서 성서가 말하는 바를 그들이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보여 줌으로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그들 ‘증인’은 삼백만이 넘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도 과거에는 비슷한 경험을 하였으나 그들 모두는 성서를 통해 생활에서 현격한 변화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 삼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 사회 내에서는 현재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주요 문제들이 이미 해결되고 있다. 그들은 국적이나 종족상의 구분으로 분열되어 있지 않다. 그와는 달리 그들은 성서의 도움으로 인종적, 경제적 편견들을 극복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평화로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왔으며, 그 자체가 더욱 주목할 만한 성서 예언들 중 하나의 예비적인 성취인 것이다.—이사야 11:6-9.

그러한 무리가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성서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우리는 독자가 이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알아보고 이러한 증거가 정확한지 직접 확인해 보도록 초대하는 바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꺼이 독자가 그렇게 하도록 도울 것이다.

[5면 삽입]

고등 비평의 주장들을 지지하는 확고한 증거는 전혀 없다

[6면 삽입]

성서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 과학이나 철학들에 의존하지 않는다

[7면 삽화]

성서는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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