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에” 머무는 방법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인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약도나 어떤 기계 사용에 대한 지시 사항 등 우리 모두에게는 수시로 인도가 필요하다.
여러 세기 전에 하나님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소서.]” (예레미야 10:23, 24) 그렇다. ‘예레미야’에게는 인도가 필요하였다. 현대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예
사람이 만든 우주선도 인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차량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필요성 때문에 ‘컴퓨터’, 천측 변환기, 관성 조종기 및 조타 작동기로 이루어진 인도 장치가 있다. 사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예로 들어, 인류에게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함을 설명할 수 있다.
우주선의 “두뇌”는 ‘컴퓨터’이다. ‘컴퓨터’에 ‘프로그래머’가 수확적인 궤도 혹은 기준 침로를 넣는다. 이것이 출발 지점과 목적지를 연결시킨다. 기준 침로는 또한 장애물과 피해야 할 금지 구역을 고려할 것이다.
천측 변환기는 속도와 위치를 지적하기 위하여 표시 도수를 기록하는 장치이다. 예를 들면, 위치를 결정하는 한 가지 방법은 별들과 혹성들을 통하여 우주 공간에 있는 우주선의 위치를 결정하는 천체 추적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관성 조종기는 운동(가속도)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것을 속도 및 위치에 관련시키는 추측 항진기이다. 그것은 천측 변환기와 관련하여 작동한다. 관성 조종기의 방향 전환이 있다면 그것은 이 기구의 결함의 결과이다.
천측 변환기와 관성 조종기로부터의 신호는 ‘컴퓨터’로 간다. 그것은 이러한 신호에 내재하는 의곡, 편견 및 결함을 허용하고 수정하여 보상하게 해 준다. 다음에 ‘컴퓨터’는 이러한 정보를 사용하여 우주선의 현재의 위치와 속도를 추정하고 이것을 목적지에 이르도록 원래 작성된 기준 침로와 비교하여, 우주선 자체를 다시 이 침로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정을 결정한다. 다음에 이러한 수정 사항이 전기 장치에 의하여 조타 작동기로 보내진다.
조타 작동기는 이러한 신호를, 우주선이 아직 지구의 대기권 내에 있다면, 보조 날개, 고무 및 승강타의 적절한 변화로 변환시키는 전동기이다. 만일 우주선이 대기권 밖에 있다면, 추진 ‘로케트’를 발사하여 우주선을 궤도에 돌아오게 한다. 우주선은 발사된 후, 자주 궤도를 이탈하여 여러 번 수정된다. 벗어났다가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돌아온다. 우주선이 자주 궤도를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우주선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 목표로 향하여 항진하는 동안 항상 수정을 받기 때문이다.
생명에 이르는 “기준 침로”
이러한 인도 장치의 특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행로를 설명하는 예로 사용될 수 있다. 성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는 ‘프로그램’ 및 사망에 이르는 ‘프로그램’에 대한 경고를 제시하였다. 인간은 자유 도덕 행위자이므로 인간이 자기 자신의 ‘프로그래머’이며 자기가 취할 행로를 선택한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 [여호와의] 명령[을] ···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신명 30:15-18)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길을 받아 들일 때에, 그는 침례를 출발점으로 하고 영원한 생명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기준 침로”를 ‘프로그램’으로 작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계속 “궤도”에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항상 성서의 이 “길”을 참조해야 한다.
우주선의 ‘컴퓨터’가 장애물과 금지 구역을 피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듯이, 그리스도인도 피해야 할 위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서는 그러한 위험 중 많은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경고한다. 성경은 또한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지적한다. 더우기,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을 완전히 버리라고 권고한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요한 1서 2:15, 16; 고린도 전 15:33; 계시 18:4.
우주선의 천측 변환기가 우주선의 위치를 알기 위하여 별들과 행성들을 관측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궤도에”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성서에 있는 영감받은 불변의 귀절들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을 검토할 때, 경건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편견을 피해야 한다. 인종이나 국적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 빈부에 차별을 두는 것—그러한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주선의 ‘컴퓨터’가 그것이 천측 변환기로부터 받는 신호에 때때로 존재하는 오차를 시정해야 하는 것과 같다.—사도 10:34, 35; 야고보 2:1-9.
때때로 그리스도인은 성귀가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문제에 직면한다. 이것은 천측 변환기가 제공할 천체 신호가 없을 때의 우주선의 상황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관성 조종기에 의존해야 한다. 그것은 운동의 변화를 감지하여 이것으로부터 위치를 추론한다. 그러한 추론 혹은 추측은 불완전하며, ‘컴퓨터’가 다시 이러한 결함을 보상해야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성서의 명령이 없을 때, 그리스도인은 성경 원칙을 고려함으로 정확한 길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체적으로 담배를 언급하거나 흡연을 금하는 성귀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흡연이 육체를 더럽히는 것을 피하라는 명령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위배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왜냐 하면 비흡연자의 건강도 담배 연기로부터 유해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고린도 후 7:1; 마태 22:39.
시정을 받아 들이라
예수께서는 당시 위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도다.]” 회당에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어 주었으며, 예수께서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너희는 다 실행하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밝혀 주는 성경을 연구하였으나 실행하지는 않았다.—요한 5:39-42; 마태 23:3, 새번역.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요한 1서 5: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생명의 길을 배우고, 그들의 행실을 성서에 설명된 행로와 비교하고 어떠한 시정을 필요로 하는지 알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한 이 지식을 자신들에게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필요한 시정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알고 있다.—야고보 1:22; 2:26.
이것을 우주선의 예와 비교하여 보라. ‘컴퓨터’는 필요한 시정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정을 하기 위하여 조타 작동기를 가동시킨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시키기 위하여 행동해야 한다.
빗나가는 것은 죄
우주선이 발사 후 자주 진로를 이탈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인도 장치를 통하여 우주선은 항상 스스로 수정한다. 성서에서 “죄”라는 말은 과녁을 빗나가는 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의미에서, “빗나가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와 희랍어 단어에서 번역되었다. 이것은 물질적인 목표 혹은 도덕적 혹은 지성적 목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인은 흔히 이 과녁을 빗나가며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지 못한다.—로마 3:23.
의로운 길을 따르는 것은 때때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우리는 “주 안에서 힘을 얻”고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시험’해야 한다. (에베소 6:10, 새번역; 고린도 후 13:5) 여호와께서 시정하실 때 우리는 들어야 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라.]”—이사야 30:21.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한 커다란 시험이 있을 때 도움이 되는 충실성의 습관을 발전시킨다. 우리의 충실한 행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에 더욱 깊이 하나님의 율법을 새긴다. 영적으로 계몽된 마음이 우리를 더욱 더 인도함에 따라, 우리는 범죄로 인해 과녁에서 빗나가는 일이 더욱 적을 것이다. (에베소 1:18) 마침내, 여호와의 자비와 과분한 친절에 의해, 우리는 그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베드로 후 3:13.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한계 이상으로 생각한다. 우주선과 같이, 그들은 자주 궤도를 이탈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자비와 사랑의 친절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 6:9)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에게 지존하신 분에 대한 그러한 깊은 인식을 ‘프로그램’으로 작성하여 넣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 대한 우리의 인식을 높일 수 있으며 우리의 눈을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주시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대한 우리의 전망을 증진시킬 수 있다. 우리는 필요한 시정을 위하여 조사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다. 우리가 넘어질 때 일어날 수 있고, 다시 “궤도”로 돌아와서 영원한 생명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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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계속 ‘궤도’에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항상 성서의 이 ‘길’을 참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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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성서의 명령이 없을 때, 그리스도인은 성경 원칙을 고려함으로 정확한 길을 추론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