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S의 도전에 대응하는 일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한 심포지엄에 모인 의사들이 CFS(만성 피로 증후군)의 치료법에 대해 논하던 중, 한 의사는 “이 환자들은 모두 이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만큼이나 건강해 보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환자들은 환자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종종 병세를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치료를 받는다.
텍사스의 CFS 환자 퍼트리샤는 “벗들로부터 언제나 도움을 받지는 못한 욥과 같은 심정이 될 때가 있어요”라고 말하였다. 예를 들어 한 문병객은 퍼트리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안색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요! 정말 병에 걸린 줄로 알았지 뭡니까. 제 시어머니와 비슷하군요. 그분도 건강 염려증 환자라니까요.”
그런 말은 몹시 상심케 하는 것일 수 있으며, CFS 환자들에게 주된 도전이 된다. 유타 주의 CFS 환자 베티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기운을 내지’ 않는다고 핀잔을 들을 때의 감정적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CFS로 인한 고통 중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이해심과 사랑이 필요함
아마 모든 CFS 환자의 심정을 대변하듯이, 베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불쌍히 여겨 줄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동정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정작 필요한 것은 약간의 이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과 슬픔을 알고 계시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로부터 감정적 지원을 받는 것도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경우, CFS는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병이다. 최근에 워싱턴 주의 한 젊은 환자가 지적한 바와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한 가지는 감정 이입입니다. 동정심이 아니라 감정 이입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병을 겪어 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대는 가당찮은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CFS 환자를 이해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의 경험으로는 그런 환자들의 신체 이상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병세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병에 대해 배워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병인 AIDS와는 달리 CFS는 “사람으로 정말 죽고 싶어하게 하는” 병이라고 한 환자는 설명하였다. 1986년에 CFS를 앓은 데브러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나는 매일 밤 하나님께 나를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비교 욥 14:13.
물론 우리는 CFS 환자를 격려하여 그 병의 도전에 대응하도록 돕기를 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CFS 환자의 병문안을 간 한 사람은 좋은 의도로 이렇게 제안하였다. “밤에 따끈한 우유를 꼭 마시도록 하세요. 그러면 잠도 잘 오고 며칠 사이에 좋아질겁니다.” CFS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한 말이었다. 그런 제안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가 된다.
환자들은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는 일과 같은 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 환자들이 실제로 집회에 참석한 경우, 그들이 기울인 노력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전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주의를 끌 것이 아니라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오시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실텐데, 오늘 밤 이렇게 뵙게 되니 기쁘군요.”—함께 실린 네모 참조.
CFS 환자는 대개 신경계에 영향을 받으므로 정상적으로 사람들을 상대하기도 어렵다. 한 CFS 환자의 아내인 제니퍼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런 환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환자들에게 사생활의 자유를 허용하고, 환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철저히 삼가고, 환자가 어떤 불유쾌한 상황에라도 처하지 않게 함으로써 환자를 도와야 합니다.”
환자의 병이 가족에게 짐이 될 수 있다고 제니퍼는 털어놓았다. 가족은 환자를 위해 온갖 일을 해주느라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니퍼가 지적하였듯이, 환자가 쉴 겨를이 없다면 회복은 더딜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모두에게 손해다. 다행히도, 이 고통거리에 실제로 유전적 소인이 있는 것 같지만 전염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감독자의 아내로서 CFS 환자인 토티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여러 해 동안 이 병의 도전에 응해 왔다고 말하였다. 그는 남편에게 감사를 표하는 한편 이렇게 지적하였다. “벗들은 흔히 나에 대해, 내 건강에 대해 안부를 묻지만, 남편에게도 격려가 필요하지요.”
다 나은 것 같아도 위험할 수 있다
CFS로 인해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것을 알면 그 도전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며 많은 환자는 회복된다. 앤소니 코마로프 박사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우리가 연구한 수백 명의 환자 중에서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만성 진행성 악화 과정을 겪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병은 갈수록 악화되는 여느 병과는 아주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적인 CFS 연구가 앤드루 로이드 박사는 그 점을 확증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회복될 경우,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이 회복된다고 보는데, 온전히 회복된다. ··· 그러므로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피로가 초래되든지 간에 그 상태는 온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회복된 환자의 신체 기관에서는 손상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너무 아픈 나머지 죽기를 꾸준히 기도한 데브러는 마침내 건강이 좋아졌다. 이제는 병에 걸리기 전과 같은 기분이며, 최근에는 다시 남편과 함께 전 시간 봉사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회복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CFS가 재발한 적이 있는 키스는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병이 다 나았다고 속단하여 이 병을 과소 평가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키스는 몸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여, 다시 전 시간 봉사를 시작하고 정기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역기를 들면서 활기찬 운동을 하였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그 병이 재발하여 다시 병상에 눕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병의 음흉한 특징이다. 재발이 흔히 있다. 그러나 재발을 면하기가 어렵다.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설명한 바와 같다. “몸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면, 잃었던 시간을 만회하려고 노력하지 않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병을 잊고 싶은 생각이 아주 간절하며, 일하고 싶어지지요.”
이렇기 때문에 CFS의 도전에 대응하려면 대단한 노력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환자가 할 수 있는 일
병세를 예측할 수 없는 만성 질환에 환자가 정신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병을 앓은 비벌리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여러 주 혹은 여러 달을 잘 지냈기 때문에, 정말 병이 나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면 대개 건강이 더 악화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 한계를 인정하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을성일 것”이라고 키스는 말하였다.
CFS 환자는 자신의 체력을 보존하여 신체가 스스로 치유하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CFS를 성공적으로 이겨 낸 사람들은 적극적 휴식 요법이라는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것은 미리 충분한 휴식을 취해 둠으로 다가오는 일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요법이다. 이렇게 할 때, CFS 환자는 그리스도인 대회나 그 밖의 특별 행사에 참석하고도 과로로 인해 지나치게 고통당하지 않을 수 있다.
차분하고 온유한 영을 유지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 혹은 감정적 압박은 신체적 과로만큼이나 쉽사리 그 병을 재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방어해 주는 힘을 낭비하지 말라”는 조언은 훌륭한 말이다. 그렇다.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서 이해심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증세를 설명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CFS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가가 중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섬기기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인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심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여호와와 천사들이 우리의 생산성이 아니라 욥의 경우처럼 우리의 태도, 인내, 충실성을 지켜 보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CFS에 걸려 거의 2년 동안 병상에 있었던 수전은, CFS의 가장 해로운 부면 중 하나는 환자로 하여금 인생에 목적이 없는 것인 양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수전은 이렇게 권한다. “자신에게 즐거움이나 성취감을 가져다 주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아프리카제비꽃 세 포기를 키우는데, 새싹이 나오는지 날마다 살펴봅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 여호와께 의지하고 자신의 영성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라고 수전은 말한다.
많은 환자들은 [영문판] 성서와 「파수대」 및 「깨어라!」 잡지를 녹음한 테이프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 언급된 프리실라는, 일단 환자가 잃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CFS는 더는 그다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의미 깊은 말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상태가 한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멀리하기 위하여, 방 안의 눈에 잘 띄는 곳곳에 격려적인 성구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치료법은 어떠한가?
현재로서는 그 증상을 치료하는 것 외에는 의료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실험적 약제인 암플리겐을 상당히 기대했었다. 그 약을 먹은 많은 사람들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그 약의 부작용을 겪었기 때문에 미국 식품 의약품국은 그 약제 사용을 중지시켰다.
CFS 환자는 흔히 불면증을 포함하여 수면 장애를 겪는다. 흥미롭게도 항우울제—때로는 우울증 치료시보다 100분의 1정도의 분량—는 일부 환자들—모두는 아님—이 잠을 더 잘 자고 따라서 호전되는 데 도움이 된다. 비벌리는 여러 해 동안 그런 약을 멀리하다가 한번 복용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단히 놀라운 효과를 보았습니다. 좀더 빨리 복용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방법[일반적인 처방이 효력이 없을 때 일부 환자들이 효험이 있음을 알게 되는 “대체” 요법도 포함]이 CFS 치료에 사용되어 왔다”고 「여성 환자」(The Female Patient)지는 지적하였다. “이런 치료법 중에는 여러 가지 약물 처방, 물리 요법, ··· 침, 동종 요법, 자연 요법, 항칸디다 요법, 및 아유르베디즘 등이 있다.”
그 의학지는 이렇게 언명하였다. “의사는 자신의 신념이 어떠하든, 환자를 더 잘 이해하고 환자에게 더 나은 조언을 하기 위하여 그런 것[치료법]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많은 환자들은 의사가 환자의 말에 귀기울여 주고 환자의 여러 가지 병세를 진지하게 고려해 주는 것만도 고마워한다. ··· CFS 환자는—지지해 주는 의사가 있다는 안도감에 불과한 것일지라도—대부분 더 나아짐을 느낄 것이며, 많은 환자는 상당히 호전될 수 있다.”
뚜렷한 치료책이 없기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의사에게 갈 가치가 있는지 의아해 한다. 검사를 해 보면 그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다른 질병, 이를테면, 암, 다발성 경화증, 낭창(루푸스), 라임병 등을 분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이런 질병을 조기에 알아내면, 가치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응급 의학」(Emergency Medicine)지는 의사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일단 진찰을 하였으면 최상의 조처는 환자를 만성 피로 증후군 연구 센터로 넘기는 것이다.”
휴식은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최상의 조언은 이것이다. 즉,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 자신의 한계를 알고,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그 한계 내에서 활동하라. 걷기나 따뜻한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과 같은 가벼운 운동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할 정도로 하지 않는 한 유익할 수 있다. 면역계를 튼튼하게 해주는, 건강에 좋은 식품을 먹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병에는 절망이 따를 수 있다. 비참한 실례로 트레이시라는 환자가 있었는데, 그는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였다. 그러나 죽음이 해결책은 아니다. 벗을 잃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트레이시가 실제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압니다. 그는 죽기를 원치 않고 살기를 원했지요. 단, 고통에서 벗어나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목표임에 틀림없지요.” 그렇다. 그 목표는 훌륭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목표에 언제 도달하든 그 때까지 희망의 초점을 죽는 데 둘 것이 아니라 사는 데 두어야 한다.
CFS는 현 인류를 괴롭히는 고통거리의 목록을 더해 주는 많은 괴질 중 하나다. 의학계가 어느 정도로 진보하든지, 그런 괴질을 모두 치료하는 데는 의술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위대하신 의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왕국 정부의 인자한 행정을 통해 그야말로 모든 병의 세계적인 치료를 염두에 두고 계신다. 그 때가 되면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다!—이사야 33:24.
[12, 13면 네모]
다른 사람이 도울 수 있는 방법
하지 않아야 할 말과 행동
◆ “안색이 좋아 보이는데요” 혹은 “아픈 사람 같지 않군요.” 이런 말을 하면 환자는 당신이 그의 증상의 심각성을 믿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 “저도 피곤을 느껴요.” 이런 말은 고통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다. CFS에는 단순히 피곤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다. CFS는 고통스럽고 몸을 쇠약케 하는 질병이다.
◆ “저도 피곤한데, 저 역시 CFS에 걸렸는지 모르겠군요.” 농담조의 말일 것이다. 그러나 CFS는 농담으로 대할 병이 아니다.
◆ “나도 며칠 휴가라도 내서 푹 쉬어 보았으면 좋겠군요.” CFS 환자는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 “과로하셨군요. 그래서 병에 걸린거에요.” 이 말은 환자가 자기 잘못으로 병에 걸렸다는 암시를 준다.
◆ “건강은 어떠십니까?” 실제로 알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묻지 않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환자는 건강이 좋지 않지만 짜증을 부리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 “아무개도 CFS에 걸렸었는데, 1년 만에 낫더군요.” CFS 환자마다 병이 지속되는 기간과 정도가 다르다. 빨리 회복된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더 오래 고생하는 환자에게 격려가 되지 않을 것이다.
◆ 요청받지 않는 한, 그리고 해줄 만한 자격이 있지 않는 한, 의료상의 조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
◆ CFS 환자가 악화되는 일이 있더라도, 환자의 잘못 탓이라는 암시를 주지 않아야 한다.
해줄 수 있는 말과 행동
◆ 환자가 실제로 병에 걸렸음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전화를 하거나 문병 간다. 먼저 전화를 하는 것이 대개 바람직하다.
◆ 문병을 하거나 전화를 거는 것에 대해 제한 사항이 있을 경우 그것을 존중한다.
◆ 방문객을 맞을 수 없는 환자에게는 카드나 편지를 보낸다. 환자는 대개 날마다 우편물을 열어 보기를 기대한다.
◆ 동정심을 나타낸다. 때로는 단지 환자가 겪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 심부름을 하겠다고 제안하거나, 시장을 봐주거나, 의사에게 데려다 주는 일 등을 해준다.
◆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참으로 여호와께서는 충실한 인내를 높이 평가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