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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을 찾으려는 갈망이 충족되다
  • 깨어라!—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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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3 9/1 12-15면

하나님을 찾으려는 갈망이 충족되다

나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여러 신학교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했으며, 그중 마지막 3년간은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이제 한낱 보잘것없는 농부가 성서를 이해하도록 나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신학교 교육에 실망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제가 되고 싶어했던 나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왜 신학교에서 여러 해를 보내고도 하나님을 찾으려는 갈망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는가?

보잘것없는 배경

부모는 우리 일곱 형제를 볼리비아의 바예그란데에서 양육하였다. 우리는 비옥한 골짜기에서 소를 키우고 옥수수, 땅콩, 감자와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았다. 우리가 살던 마을 나란할은 외딴 곳이었고, 그래서 나는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는 배웠다.

지방 종교 축제를 위해 로마 가톨릭 사제가 해마다 우리 마을을 방문하였다. 나는 그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고 경탄하곤 하였다. 한 번은 방문해서, 젊은이들을 사제로 양성하는 신학교가 볼리비아에서 문을 열었다고 발표하였다. 내가 하느님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하자, 그는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는 하늘에 가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닥다리와 같이 될 수 있네.”

나는 신학교에 가서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기를 열망하였다. 그 곳에서, 내가 느끼던 얼마의 혼란이 말끔히 없어지기를 바랐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산, 꽃 그리고 나무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내게 가르쳤지만 또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무시무시한 고초를 겪도록 일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기도 한다고 말해 주었다. ‘하느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신학교 교육

새로운 신학교는 아름다운 골짜기에 자리잡은 읍인 투피사에 있었다. 나는 1958년에 도착하였다. 더 어렸을 때는 언덕에 올라가서 인자하신 창조주에 대해 즐겨 묵상하곤 하였다. 그러나 신학교에서는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실망하였다. 그 곳에는 심지어 성경 전서(全書)조차도 없었고 단지 “신약”만이 있을 뿐이었다. 성경 전서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강사들은 내게 참을성을 나타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1년 후에 우리 중 세 명만이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나머지는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보냈다. 산미겔 신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위압감을 느꼈다. 그 곳이 매우 대단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 곳에서라면 틀림없이 하느님을 가까이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라틴어, 희랍어, 영어,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의 전기를 읽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과 공부는 내게 공허감을 갖게 할 뿐이었다. 내가 품고 있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느님이 어떻게 해서 삼위일체가 됩니까?”라고 한 강사에게 물었다. 그는 13세기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조차도 그런 점은 설명할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때까지도 성경 전서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 교수에게 “구약”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교인들만 사용하는 것이지”라고 교수는 대답하였다.

나는 예수께서도 종종 그 부분에서 인용하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답답하고 우울했다.

이윽고 우리 가운데 여섯 명이 수련자로 선발되어 정결, 청빈, 순종의 서원을 하였다. 수련자로서 1년간의 수련을 마친 후에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에 있는 신학교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하얀 깃이 달린 검고 긴 가운에 묵주와 큼직한 십자가를 목에 거는 종교적 복장만 할 수 있었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제서야 처음으로 신학 과정을 밟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실망

신학 교과 과정은 성서를 다른 책들과 같은 문학 작품의 하나로 간주하는 고등 비평 연구로 특징을 이루었다. 내가 품고 있던 많은 의문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스러웠다. 나는 주교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성서에서는 예수께서 지옥에 계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였다.a (사도 2:31) 그러나 그는 내 질문을 슬쩍 받아넘길 뿐이었다.

나는 많은 도덕적 의문들로 인해서도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 신학자에게 수음과 독신자들간의 성행위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언급하지는 않고 파리에 있는 유명한 신학자들의 최신 사상을 열광적으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그들이 저술한 책들 가운데 하나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그러한 일들이 죄라고 말하지 않네. 염려할 것이 없다네”라고 그는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신학교 도서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우연히 프랑스어로 쓰인 어떤 책을 펴 보게 되었다. 그 책에는 ‘내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라는 시편 42:2이 인용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 마음 그대로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얼마 후 집을 방문하여 바예그란데의 인근 읍에 있는 수도원에 갔다. 그 곳에 있는 서점에서 한 권의 성경 전서—나카르-콜룬가 번역판—를 보게 되었다. 난생 처음 성경 전서를 본 것이다. 판매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면서도, 성서를 살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겨드랑이에 내 소유의 성서를 끼고 그 서점에서 나올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집으로 걸어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휘파람도 불었다.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시작하는 시편 42편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 ‘어쩌면 이제는 하느님을 찾으려는 내 갈망이 충족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내 의문들에 대한 답을 성서에서 찾으려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지만 나는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1966년에 신학과 철학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상급 신학교가 고국인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근처에 개교하였으며 내가 그 곳으로 전학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신학교에는 젊은 스페인 사제들과 현대 신학자들로 이루어진 강사진이 있었으며 아름다운 도서실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는 내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테지’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나는 “어떻게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하였다. 그러나 강사들은 그러한 질문에 흥미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공산주의 철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한 번은 추기경을 만났는데,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 2차 세계 대전 때 몸소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10년 동안 신학 교육을 받은 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1년간의 휴가를 신청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해 주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얼마 안 있어 수도원에서는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나의 서원을 풀어 줄 것을 요청하기로 결심하였다. 후에 나는 수녀였던 포르피리아와 결혼하였고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즈 시에 정착하였다.

뜻밖의 방문객

이듬해 어느 날인가 나는 안뜰에 앉아 있었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안뜰에서 나무를 때는 솥에 빵을 굽고 있었다. 한 남자가 대문에 당도하였다. 나는 그 남자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볼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들어오세요!” 하고 말했다. 그는 들어와서 내 옆에 앉았다. 비록 말쑥하게 차려 입긴 했지만 외모로 보아 그는 보잘것없는 배경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내게 성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나는 그 남자의 이름이 아드리안 게라이고 여호와의 증인임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글을 잘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경계하기는 하였지만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라틴어와 희랍어를 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해 왔고, 신학자들이나 주교들과 함께 철학을 토론하면서 여러 해를 보냈다.’ 나는 자만하거나 그를 경멸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무엇을 배우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악이 세상에 이토록 증가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이어서 그는 내 성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때쯤 나는 얼마 전에 발행된 가톨릭 「예루살렘 성서」를 구입해 두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런 내용이 있는 묵시록 12:12(「공동번역」)을 읽게 하였다. “그러나 제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악마가 크게 노하여 너희에게 내려 갔으니 땅과 바다는 화를 입을 것이다.”

“이 말은 죄가 시작된 때를 지적하는 것이 분명하지요”라고 나는 응수했다. 그는 문맥을 이해하도록 나에게 7-10절을 읽게 하였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셨을 때 하늘에 전쟁이 있었고, 그 결과 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땅으로 내쫓겼음을 알려 준다. 아드리안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무시무시한 상태들은 마귀의 증가된 분노 탓입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왕이시며 마귀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성서에서 이런 내용을 배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한 이 보잘것없는 남자가 매우 유쾌한 미소를 지으면서 여기에 그냥 앉은 채 차분하게 성경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갈망이 충족되다

아드리안은 내게 서적을 전해 주고는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의 다음 방문을 반갑게 맞이하고는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혼란시켜 온 이러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느님께서 삼위일체가 되실 수 있는가?” 그리고 “왜 예수께서는 지옥에 계셨는가?”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라는, 성서에 대한 보조서를 사용하였으며 내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그 책에 참조되어 있는 성구들을 내 성서에서 읽도록 하였다. 나는 내 자신이 부로(바보 혹은 멍청이)와 같다고 느꼈다. 나는 하느님의 이름이 야훼 혹은 여호와이고 그분은 삼위일체가 아니며, 지옥은 무덤이고 예수께서는 그 곳에서 약 3일 동안 무의식 상태로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시 16:10; 전도 9:10; 이사야 42:8.

신학교에 다닐 때 나는 종종 사후 생명에 대하여 물었고 하늘은 모두가 하느님 앞에 서서 기도하게 될 커다란 교회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나 따분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성서의 약속을 들음에 따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나의 믿음에 다시 불이 붙게 되었다.—시 37:9-11, 39; 계시 21:3, 4.

몇 차례 방문하고 나서, 하루는 아드리안이 한 외국인과 함께 와서 그를 회중의 감독자라고 소개하였다. “당신이 많은 질문을 하기 때문에 이 선교인이 당신을 훨씬 잘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드리안을 좋아했고 선교인이 함께하자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드리안과 성서 연구를 계속했다.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성서 연설들이 매우 교훈적임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을 극복함

얼마 안 있어 아드리안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주도록 나를 격려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은 집회에서 집집으로 다니며 가르치도록 격려받는다. 사실 나는 아드리안이 처음에 나와 함께 고려했던, 악이 증가하는 이유에 관한 성서 주제가 1970년 그 달에 볼리비아의 여호와의 증인 사이에서 권장된 대화를 위한 제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드리안이 받은 훈련이 내가 10년 동안 받은 훈련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더 나은 자격을 갖추게 해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집집으로 사람들을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그것은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 다음에 아드리안이 나와 연구하기 위해 왔을 때 나는 집에 숨어서 아무도 없는 척했다. 그가 바깥에서 꼬박 30분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린 뒤에야 떠난 것을 보면 그는 내가 숨지 않았나 의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나를 단념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다음주에 또다시 왔던 것이다. 점차 여호와께 대한 나의 사랑은 강해졌고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1973년에 아내와 나는 침례를 받았다. 아내는 전파 활동과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일에 전 시간 봉사하는 파이오니아가 되었다. 아내는 1992년 초에 사망하는 그날까지 계속 이 일을 하였다.

아드리안은 유창하게 낭독하게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회중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다. 우리 둘 다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집집으로 전파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이렇게 말하는 한 부인을 만났다. “당신은 교회에 머물러 있었어야 했어요. 그 안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을텐데요.”

나는 그 부인에게 자기 성서를 가져오도록 요청하였다. 성서를 가져왔을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배척하였는지를 묘사하는 예레미야 2:13을 보여 주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비슷한 일이 교회에서도 일어났지요”라고 그 부인에게 이야기하였다. “비성서적인 가톨릭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갈망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은 마치 터진 웅덩이에서 물을 공급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찾으려는 나의 갈망이 충족된 때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였다.—우고 두란의 체험담.

[각주]

a 예수께서 지옥에 계셨을 것이라는 견해는 신경에 나오는 말과 스페인어, 영어 그리고 그 외의 언어로 기록된 일부 성서의 사도 행전 2:31에 근거한 것임.

[15면 삽화]

함께 왕국 소식을 전하고 있는 아드리안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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