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결정이 증명되었다
‘캐나다’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위의 신문 표제들은 애기를 위험하고 불필요한 수술에서 보호하기 위한 한 어머니의 용기있는 투쟁의 극적인 이야기를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장소: ‘캐나다’ ‘온타리오’ ‘킹스톤’의 한 병원. 때: 1970년 4월 2일 오전 1시 30분. 의사가 새로 태어난 여아에게 수혈을 감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며 산모인 ‘린 디월’ 부인은 수혈 대신 안전한 광선 요법을 사용해 줄 것을 의사에게 부탁하였다. 의사는 화를 내며 거절하였다. 산모는 가족의 도움으로 두 의사가 강압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가운데 용감하게 애기를 데리고 그 병원을 나와버렸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의사나 병원을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런 경우 보통 아무도 상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는 매우 크나큰 흥분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캐나다’ 전역, 미국, 중미, 영국 그리고 ‘유럽’에 순식간에 알려졌다. 신문, 방송 그리고 ‘텔레비젼’은 이 극적인 사건을 보도하였다. 보도기관의 표제들은 애기가 “강탈”, 혹은 “유괴”되었다는 말로써 크게 보도하였다. 의사들은 극단적인 예측을 하였다. 한 주지사는 산모를 입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후에 입건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경찰은 수색 영장을 발부하였다. 어린이 자선 협회는 구금 명령을 요청하였다. 판사는 사건의 진상을 알기 전의 집행을 거부하였으며 그리고 대검은 어머니가 애기를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을 시사하였다.
이러한 굉장한 흥분을 일으킨 장본인은 누구였는가? ‘온타리오’ ‘스미스 폴즈’에 있는 ‘프란시스’ 종합 병원에서 4월 1일 새벽에 세상에 태어난 여아인 ‘유니스 데비나 디월’이었다. 그의 무게는 3.7‘킬로그램’이었다. 그는 그날 오후 혈액 상반성 증상을 일으켰다. 의사는 그것을 “경증”이라고 말하였다.
‘디월’ 부인은 별거하는 남편과의 이혼 문제로 애기를 낳은 같은 날 오후 6시에 법정에 출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병원 직원들은 산모가 돌아올 때까지 애기를 병원에 둘 것을 확약하였다. 2시간 후에 산모가 돌아왔을 때 애기가 보이지 않았다. 물어본 결과 어린이 자선 협회에서 애기를 약 96‘킬로미터’ 떨어진 ‘킹스톤’ 종합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산모는 부모와 오빠들과 함께 ‘킹스톤’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산모는 여호와의 증인의 자녀들에게 어머니의 동의도 없이, 여러 번 수혈을 감행하려 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는 ‘디. 지. 델라이어’ 의사의 손에 애기가 맡겨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디월’ 부인은 ‘델라이어’ 의사와 자기 애기 ‘유니스 데비나’의 증상에 관하여 토론하였다. 의사는 애기의 붉은 담즙 색소치는 100‘밀리리터’당 18‘밀리그램’으로 늘어났다고 말하였다. 애기가 튼튼하고 활발하였기 때문에 이 측정 검사만으로는 수혈이 필요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델라이어’의 태도는 의론을 더 계속할 수 없게 하였다. 그는 “내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애기에게 수혈을 할 작정이다” 하고 주장하였다. 위험도가 적은 광선 요법의 치료를 고려해 보도록 부탁하였으나, 그는 한마디로 거절하여 버렸다.
의견의 차이가 있는 이러한 경우에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어머니에게 있는가? 아니면 의사에게 있는가? 의사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지만 또한 잘못일 수도 있다! 그 애기는 누구의 애기인가? 잘못 결정할 경우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 어머니인가? 의사인가? 애기의 복지에 대하여 더 깊이 염려하는 것은 누구인가?
또한 때때로 의사들은 그들에게 기대되는 침착성과 신중성이 결여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캐나다’ 의학 협회지는 한 기사에서 그 점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빈번히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에 있어서 외과 의사들은 감정적이 되고 혼돈되며 비합리적이 된다. ···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하여는 너무나 편협하다.”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 된’ 의사가 애기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의사의 진단
‘디월’의 애기에 대한 치료방법을 결정하게 한 의사의 확정적 진단은 무엇이었는가? 애기의 상태가 수혈을 꼭 필요로 하였는가? 혹은 광선 요법으로 충분하였는가?
‘제퍼슨’ 중앙 의료원의 고참 소아과 의사이며, 소아과 기관지 「북미 소아과 진료」지의 편집인인 ‘한스 카이텔’ 교수는 붉은 담즙 색소치가 높은 애기를 치료할 때 의사들이 고려해야 할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그는 “수혈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할 때”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출생 첫 주간에 붉은 담즙 색소치가 오르거나 혹은 100‘밀리리터’당 20‘밀리그램’에 육박할 경우의 관례에 따른 수혈은 가장 불행한 일이다. [‘디월’의 애기의 붉은 담즙 색소치는 18이었다.] 우리는 전체 사실을 부모들에게 확실히 알려 주어야 하며 불확실한 것과 위험성을 부모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치명적이 될 수 있는 모험보다는 단지 뇌가 다소 피해를 (붉은 담즙 색소치가 생의 첫 주에 하루 이내에 100‘밀리리터’당 25‘밀리그램’ 이상으로 오르지 않을 경우) 입더라도 산 애기를 갖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1965면 12권 210면)
‘디월’ 부인은 “산 애기”를 원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붉은 담즙 색소치가 권고한 100‘밀리리터’당 25‘밀리그램’의 수준에 미달하였을 때의 모험적인 수혈(이 경우의 수혈은 치명적일 수 있음)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수혈은 위험도가 높은 반면 광선 요법(밝은 빛이나 광선을 쏘임)은 의학 문헌에서 권고한 바와 같이 어머니가 애기 옆에 머무는 것이 요구된다. ‘제이. 에이. 루케이’ 박사는 「소아과 의료」지 1968년호 41권에서 광선 요법을 “간단하고도 싸며 안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델라이어’ 의사가 더 위험한 방법을 고집함으로써 이치적임이 증명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캐나다’ 의학 협회지가 말한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인’ 행위의 표본이 되었는가?
병원을 떠남
의사가 어머니의 희망을 고려해 보고자 하지 않으므로 ‘디월’ 부인은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하기로 결심하고 애기를 안았다. ‘디월’ 부인의 동행인이 “이 병원에서 속히 나가자”고 말하였다. ‘델라이어’ 의사는 그 사람의 옷을 잡고 “안된다” 하고 막았다. 그 결과 격투가 벌어졌다. 병원에 있는 두 여직원은 어리석게도 애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의 팔에 상처를 가하면서까지 애기를 어머니로부터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래도 애기를 빼앗기지 않은 ‘디월’ 부인은 그의 오빠의 도움으로 승강기(그곳은 칠층이었다)에 탓다. 승강기가 밑으로 내려갔을 때 비상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층에 있는 경비원을 어떻게 피하여 빠져 나갈 것인가? 그가 승강기 밖으로 나오자 비상 ‘벨’에 놀란 경비원은 그 승강기에 뛰어 들어 칠층으로 황급히 올라갔다. 어머니와 애기는 아무런 방해없이 대기 중인 차에 탓다. ‘델라이어’ 의사는 ‘디월’ 부인과 함께 있던 남자들을 억류하려고 분투하였다. 그들의 대기중인 둘째 차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계단 밑 병원 밖 보도까지 나와서 싸움을 하였다.
도망가는 재소자를 교도소의 간수가 힘으로 제제를 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곳은 병원이었다! 이 의사는 의사의 예절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새로운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
당국의 반응
이제 당국은 어떤 태도를 나타냈는가?
신문들은 애기가 유괴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경찰은 어머니의 행방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주 입법 기관에서 논란이 되었다. 사회 가족상 ‘존 야렘코’는 어머니를 입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야렘코’의 한 부하 관리는 입건을 즉각 부인하였다. 어머니의 집을 수색하라는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러나 곧 대검은 수색영장 취소를 명령하였다.
어린이 자선 협회는 애기의 후견을 요청하였으며 판사가 그 명령을 실행하지 않은 것을 불평하였다. 법률을 신뢰하는 사람인 ‘갈빈’ 판사는 부모에게 공정한 발언권을 주고자 하였으며 치우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전 여호와의 증인의 사건에서 ‘온타리오’ 대법정이 증인들에게 정식 통고와 공판의 기회를 부여한 사실을 상기하였다. 그는 대법정에 대하여 당연한 존경을 보이면서 적절한 절차가 있기 전에 행동하기를 거부하였다.
대검 검사인 ‘시. 제이. 뉴톤’은 ‘스미스 폴즈’ 병원의 ‘아쉬웰’ 박사의 행동을 칭찬하였지만 또한 “어머니는 병원에서 자기 애기를 데리고 나올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였다.
이러한 상반된 의견에 관하여 「글로브 앤드 메일」(터론토)지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3일된 애기가 사라진 일은 어제 법적 문제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혼란을 야기시킬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였다. 그 애기는 자기의 애기였다. 사람에게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간의 기본 관계이며 이치적인 의사들은 그러한 관계에 대하여 기꺼이 존경을 표시한다. 상호간의 신임은 그 관계의 기본이다. 당국이 개입하여 압력을 가할 성질이 아니다.
병원측도 마찬가지이다. 병원은 감옥이 아니다. 환자 혹은 애기 환자의 부모가 퇴원하는데 “간수”(의사)의 허락이 필요치 않다. 사실 어떤 병원은 퇴원을 원하는 환자를 간섭한 연고로 손해 배상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일이 있다.
의사의 과장
의사들이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어린이가 죽거나 혹은 뇌에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불길한 위협을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들이 일반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수혈을 받은 많은 자(어떤 이들은 10‘퍼센트’로 추산)가 치명적이 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혈 후에 야기되는 일률적인 장애인 것이다.
「세계 보건」지 1970년 1월 16일자는 “수혈의 위험성”이라는 표제 아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수혈이 요구될 만큼 심한 태아성 적아세포증으로 생을 출발하는 애기는 수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애기를 결코 따르지 못하고 있다.” ‘에드워드 슐레징거’ 박사는 수혈을 받은 어린이들에 대한 시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두 가지 시험에서 대부분의 점수가 낮은 어린이는 수혈로서 치료받은 태아성 적아세포증 어린이들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행한 결과에 관하여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부가하였다. “소아과 의사들에게 있어서 이제 수혈은 불필요한 것같이 생각된다.”
이 애기를 분만시킨 ‘아쉬웰’ 박사는 과장된 위협의 기준을 발표하였다. 그는 「더 텔레그램」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애기가 살 것인지 혹은 회복할 수 없는 뇌 파손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인지는 내가 오늘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포괄적인 이 진술도 ‘아쉬웰’이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을 때 어느 정도 확실성의 결함을 나타내었다. “나는 정직하게 말하여 여러분에게 그 병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내 자신이 단지 조금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유니스 데비나’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머니는 그토록 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한 천진한 주인공을 다른 도시에 있는 한 친구집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 분야에 광범위한 경험을 가진 한 간호원에 의하여 광선 요법의 치료를 받았다. 그는 푸른 광선을 5일간 쏘이는 동안 완치되었다.
그를 진찰한 한 의사는 “활발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비정상의 증거가 없다”라고 진단하였다. 이 기사를 쓸 때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행복하게, 총명하게 그리고 모든 면으로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불행하게 된 것은 ‘델라이어’ 의사인듯 하다. 그는 애기의 건강에 대한 위협에 더하여 애기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린이 자선 협회의 “모호한 태도”를 고소하였다. 그는 “잠잠해진 문제”를 ‘온타리오’의 대법원에 고소하였다.
그는 4월 3일 「더 텔레그램」지와의 회견에서 “백혈병을 앓는” 한 여호와의 증인의 자녀가 관련된 다른 사건을 말하였다. “의사가 수혈을 하기 전에 부모가 ‘킹스톤’ 병원에 와서 그 아이를 데려갔다. ‘터론토’의 의사들은 수혈을 반대하는 부모의 희망에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아이는 살아났다.”
역설적으로 ‘디월’의 애기도 살아 났다. 역설적으로 수혈을 받지 않기 위하여 병원을 떠난 여호와의 증인들의 다른 모든 자녀들이 살아났다. 정말 역설적이 아니게도 부모로부터 자녀를 빼앗아 강제로 수혈을 시킨 ‘캐나다’의 여호와의 증인 자녀 여섯명은 죽었다.
6월 3일 이 어머니와 애기 그리고 그의 법률 고문은 사건의 경위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오따와’에서 ‘텔레비젼’에 나타났다. 먼저 ‘델라이어’ 의사는 애기가 “십중팔구는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으나 ‘유니스 데비나’는 큰 소리를 내면서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밝혔다. 후에 이 ‘푸로’는 ‘캐나다’ 전역에 방송되었다.
이번 사건을 고려할 때 법률학 교수인 ‘호워드 오랙’이 「세계 보건」지(1969년 12월 5일)에서 논평한 것을 연상하게 된다. 그는 “만일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체 하지” 않는다면 의사와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많은 훌륭한 의사들은 부모를 존경한다. 그리고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한 의사들은 부모의 결정에 대하여 균형잡힌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건전한 협동을 이루게 하며 상호간에 유익한 관계를 맺게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부모의 결정을 가볍게 무시해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유니스 데비나’는 의사와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모에 의하여 보호되었다. 이 애기의 정상적인 발육과 건강하고 충실한 성장은 어머니의 결정이 정당함을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