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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관습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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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1/15 25-40면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관습

기독교국과 동양에서 이것이 실천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관습을 용납하시는가?

「벤갈」만(灣)의 들여치는 물결가에 무릎을 꿇고 「힌두」교인들이 천당, 연옥, 지옥에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들은 기도함으로써 죽은 자가 하루 속히 윤생(輪生)하여 다시 한번 「너바나」에 이르도록 노력하여 「브라마」신과 영적으로 재연합 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불교신자의 가족은 열성에 있어서 이들에게 지지 않는다. 그들 집안에는 죽은 자의 『천명(天名)』이 들은 나무 패를 진열한 선반을 볼 수 있다. 불교 중들은 이 이름을 계시하여 놓고 떠난 자를 행복케 하기 위하여 경문을 읽는다.

중국 사람은 그들 조상과 일치단결을 강조한다. 그들 중에는 죽은 자가 연옥에 2년 간 머물러 있는고로 하늘로 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조상들이 가족과 인연을 재생하기 위하여는 산 자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찬란한 장례식과 제사들은 죽은 자가 원수를 품은 악귀가 되지 않고 친절한 영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거행된다. 이런 공양물 대신 죽은 자는 산 자에게 행운을 가져 온다고 한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사랑하는 자의 사망 후 2개월간 그리고 일주년 되는 『야-차이트』에 유명한 「케이디쉬」의 기도문을 암송한다. 「유대」교는 죽은자를 위한 기도문을 소유치 않으며 「케이디쉬」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죽음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고 어떤 사람은 주장한다. 그러나 기도로써 죽은 자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울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 「케이디쉬」는 근본 교사의 찬송가였던 것이 학자 장예식에 사용할 기도문으로 변한 것이다. 창피를 면하기 위하여 이것은 후에 「유대」인 장예식 전부에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위 「께헨나」에서 고민하는 사랑하는 자들을 구속할 힘이 그것에 있다고 「유대」인들이 주장한 때도 있었다.

신교파는 보통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소수로 국한 한다. 그들은 천당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는 기도할 필요가 없고 저주 받은 자들을 위하여는 기도하여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신교파는 죽은 자를 위하여 보통 장예식에서만 기도한다. 그 때에 목사는 그 영혼이 천당간 것으로 칭찬하기에 주의한다.—죽은 자와 산 자 양편의 마음을 편히 쉬게끔 하는 술책인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한 연중 한번 축수가 있을 때도 있다.

동양 풍속과 아주 닮은 것은 「로마 가톨릭」의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인 것이다. 「가톨릭」교인들은 천당, 지옥, 연옥 급 중국 가정의 일치 단결에 흡사한 『성인의 성찬』을 믿는다. 이 세가지의 영적 통일은 지상에서 『투쟁하는 신자』와 연옥에서 고민하는 영혼들 그리고 천당에 있는 『승리한 교도』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고민하는 영혼들에게 대하여 진정으로 의무감을 느끼는 「가톨릭」신자들이 많이 있다. 이 책임감을 시인은 표현하였다. 『고민이 우리 잘못과 나쁜 본과 참된 훈계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면 어찌하리요?』

가장 적은 선행이나 가장 간단한 기도라도 또 최소의 고행(苦行)이라도 연옥에 있는 영혼으로 천당에 들어갈 수 있게 돕는다고 열성스러운 「가톨릭」교인은 믿는다. 2월 전체는 특히 「전 영혼의 날」과 더불어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미사에 공헌되고 있다. 미사에서 희생물 드리는 일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성 「바울」협회에 의하면 『성 「요한 크리소스틈」이 말한 바와 같이 미사의 희생물이 헌납된 순시에 천사들은 연옥문을 열고 하나님이 합당케 여기신 자 전부를 집행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또 성 「제롬」의 위안의 말과 같이 성 희생물을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하여 바칠 때 미사 드리는 동안 영혼이 고통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린』 「가틀릭」교인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산 자가 알지 못하는 저주 받은 영혼들을 위하여 모르는 사이에 드리는 기도는 아마 고통을 좀 덜 할 수 있게 하리라고 주장하는 「가톨릭」신학자들도 얼마 있다. 이런 주장이 경솔하고 부당하다 하는 「가톨릭」 신학자들도 있으나 교회 자체가 이것을 비난한 일은 없다. 연옥이 『끝날』이 후에는 존속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가롤릭」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남아 있는 흠을 말세에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이 신속하게 정화하는가는 아직도 신비의 하나이다. 이것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자들은 추기경 「기본스」의 말과 같이 『황금의 기도의 고리가 당신과 「주안에서 잠자는 자」를 연결하여 주며 그들과 담화도 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도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위안을 삼고 있다.

성경의 관습인가?

온 세상에서 죽은 자에게 바치는 열성을 보아 이 관습이 성경에 기반을 둔 것이라 상상하게끔 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성경이 이런 관습과 일치조화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샤프-헤르조그」저 「종교지식 백과 사전」은 『이런 관습을 지지하는 구약의 귀절이 하나도 없다』고 주저하지 않고 선언하고 있다. 신교와 「가톨릭」 양편이 시인하는 성경 66권 중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지지하는 명확한 귀절이 하나도 없다』고 「가톨릭 백과 사전」은 인정하고 있다.

연옥을 믿는다는 자체가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톨릭」교도는 주장한다. 단 하나의 귀절은 「마가베」 제2서 3:39-46에서 기원한 것이라 한다. 이 귀절은 「유다 마가베우스」가 「예루살렘」으로 은을 보냈다 하는데 이것은 『죽은 자들의 죄를 위하여 부활에 관하여 염려한 종교심에서 바치는 희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죄로부터 해방되도록 기도하는 것은 성스럽고 건전한 생각이라』고 이 보고서는 결론 내리었다.

「유다」가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하여 미사 드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유대」인 애국자였다. 죽은 자들은 중국인이나 「가롤릭」교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인 것이였다. 죽은 우상숭배 자들에 대하여 그가 염려한 바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범죄함을 용서하시고 부활시켜 주실 것을 원한 것이다. 44절을 보면 이것이 확실하다.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남을 그가 희망치 아니하였다면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한 것이 쓸데 없고 헛되었을 것이다.』 「유대어 백과 사전」에도 중요한 말이 진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제물을 운운하였다는 것은 「유대」 문학에 있어서 근사한 예가 없으며 「예루살렘」성전에서 이런 제물을 바친 일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일이 없다.』

「유대」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마가베」라는 책을 가짜 혹은 외전(外典)이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명확한 사실이다. 예수와 사도들도 이 책에서 인용한 일이 없다. 「마가베」의 4권 중에서—어떤 이는 5권이라 한다—「가톨릭」 성경 자체에는 두권 밖에 들어있지 않다. 「피어스」3세 법황이 『성경 탐구자 중 최상의 박사』라고 칭찬한 「제롬」은 경고 하기를 『외전 전체는 회피하여야 한다 . . . 이들은 그릇된 것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은 적어도 「가톨릭」과 신교파가 공동히 진실성을 인정하는 성경책 만이라도 주의하여 볼 것이다. 「솔로몬」은 죽은 자가 친구도 될 수 없으며 원수 될 수도 없는 것을 말하였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 . .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라고 그는 기록한 것이다. (전도 9:5, 6) 사도 「바울」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사람이 산 영이 되었다』는 「모세」의 말과 동의하였다. (창세 2:7; 고린도 전 15:45, 신세) 영혼이 생명이라는 것과 『불멸의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는 퍽 차이가 있다. 『불멸의 영혼』이란 것은 성경적 문구가 아니다. 반대로 선지자 「에스겔」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기록 하였다. (에스겔 18:4) 그리스도인인 「야고보」는 이와 일치한 말을 하였다.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한다고 한 것이다. (야고보 5:20) 하나님을 제쳐 놓으면 그리스도만이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바울」은 말한 것이다.―디모데 전 6:16.

이상의 경우에서 죽음이라 한 것은 육체를 말한 것이지 『영혼』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께헨나]에 멸하시는 자』라고 예수께서는 경고하셨다. 이 멸망에서는 부활을 받을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마태 10:28, 신세) 이것은 기도로 인하여 「께헨나」로부터 천당으로 영혼을 이동할 수 있다는 학설과 모순된다. 인간의 죽음에 관하여 시인은 진실히 말하였다. 즉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 시 145:4, 「듀웨이」역.

되풀이하여 같은 말로 기도하는 관습을 예수는 책망하여 제거하셨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마태 6:7) 예수께서는 산자가 죽은자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시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더불어 무식한 까닭에 죄의 생활을 한 의로운 경향이 있는 자들을 부활시키실 예정임을 가르치셨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 5:28, 29)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수 없는 죽은 자의 참다운 소망을 지적하신 것이다.

죽음 속에 잠자는 자의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그들의 모습과 사랑스러운 성격을 기억할 때면 이것을 생각하라. 만일 당신의 불완전한 기억력이 그들을 재창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생각과 전능 하신 손으로 그들을 기념 무덤으로부터 회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용이한 일이겠는가? 이 훌륭한 약속으로 인하여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활의 소망을 주신 사랑스런 마련에 대하여 성실한 감사의 기도를 드릴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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