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어린이의 죽음 “성서의 견해” 기사 “하나님은 왜 내 아이를 데려가셨나요?”(한국어판은 1991년 2월 15일 호)와 “어린이의 죽음—왜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가?”(한국어판은 1991년 3월 15일 호)는 아주 적시에 제게 필요한 위안을 주었습니다. 저는 1월 9일에 출산하였습니다만 아기가 세 시간 만에 죽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났으며, 옳지 않게도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 내용은 하나님의 심도 깊은 자비를 표현하였으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외롭고 참담한 심정이었던 제게 희망을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C. K., 일본
학교 운동부 “청소년은 묻는다 ··· 학교 운동부에 가입해야 하나?” 기사에 대해 감사합니다. (한국어판은 1991년 7월 1일 호) 저희 학교에서는 배구부에 가입하고 싶은 학생은 누구나 가입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경기에 참가하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입하는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였습니다. 경기와 훈련 시간은 복음을 전파하는 저의 봉사의 직무나 그리스도인 집회와 겹쳤습니다. 그래서 그 기사를 읽은 후 운동부에 가입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M. C. P., 브라질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화해할 수 있는가?” 주제로 실린 기사를 방금 다 읽었습니다. (한국어판은 1991년 7월 1일 호) 유대인으로서 저는 “선택된 민족”과 “이방인” 간에는 거대한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자랐습니다. 저는 또한 앞으로 메시야가 도래할 것이라고 가르침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호와의 증인이 찾아와서 바로 이 땅에 평화로운 미래가 있을 것임을 이야기하더군요.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증인들은 교회와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증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저의 유대교 유산을 저버리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지의 최근 기사들을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이 인식하며, 좀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과 여느 종교와의 뚜렷한 차이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N. S., 미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 나쁜 습관인 수음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실망스럽게도 번번이 그 습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일련의 기사(한국어판은 1991년 7월 15일 호)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섯 가지 구체적인 단계를 배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쁜 습관을 극복하려는 저의 결의를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R. H., 일본
석면 “석면 이야기—인명 구조자에서 생명 위협자로” 기사에 대해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어판은 1991년 4월 1일 호) 저는 공장에서 일하는데 석면을 가지고 작업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석면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귀지에 제안된 보호 수단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 기사는 저와 직장 동료들에게 유익한 것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제가 매일의 안전 모임에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J. R. T., 브라질
석면을 적재한 차와 관련하여 교통 사고가 있었으며, 구조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석면에 노출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모르더군요. 저는 그 사고가 있기 며칠 전에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기술자로서 그 작업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D. C., 브라질
명금 1991년 5월 22일 호(한국어판은 6월 1일 호)에 실린, 명금에 관한 매혹적인 기사에 대해 감사합니다. 남편은 여러 해 동안 뒤뜰에다 새를 기르는데, 우리 둘 다 새를 지켜 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데 새들이 울음 소리를 내는 방법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것임에 대해 읽은 후로는 이제 새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여호와의 경이로운 일의 또 다른 면을 아름답게 묘사해 준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합니다.
J. S., 미국